2011년 Desktop Summit 여행기 – 2

컨퍼런스 일정은 8월 7일과 8일로 이어졌고, 여러 가지 발표들이 흘러갔다. 아래 사진들은 당시 들었던 발표 중 일부를 포함하고 있고, 발표 중 기억에 남는 것들 위주로 이야기하겠다. LibreOffice 개발에 관한 발표에서는 재미있는 사실을 얻을 수 있었다. 2011년 당시에는 선이 오라클에 인수되면서, 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OpenOffice.org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2010년 11월에 LibreOffice가 갈라졌고, 2011년 8월은 LibreOffice가 몇 개의 버전을 내놓은 이후였다.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 중에는 일상적일 수도 있는 코드 재정리도 있었지만, 독일어로 된 주석을 번역하는 것을 자동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은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영어권에서 시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발표에서는 웹 브라우저의 플러그인으로 작동하는 LibreOffice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Qt 4.2부터 추가된 CSS를 사용한 위젯 꾸미기 기능 덕분에, 그놈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어떻게 구현했나 호기심이 생겨서 그놈 쪽의 발표도 들어가 보았다.

점심 직전의 키노트인 무한한 종류의 장치에 대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에서는 여러 종류의 다른 장치에 필요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폭소가 터진 슬라이드 중에는 사용자의 데이터 제어권에 관한 슬라이드가 있었다. PRISM 사태가 터지면서 무분별한 정보 수집에 관하여 사용자들의 인식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이 키노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오픈수세에서 시작한 오픈 빌드 서비스는 빌드 팜을 다른 프로젝트에게도 제공해 주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빌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페도라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systemd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었으며, systemd의 디자인에 관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init.d에서 결별하는 것이 systemd의 디자인 목표이고, 리눅스 이외의 다른 시스템에서는 다른 종류의 init를 구현해 두었기 때문에 systemd는 리눅스에서만 볼 수 있는 기능들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비록 KDE가 유럽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갈수록 인도에서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고(그놈과는 달리 동아시아 지역 개발자들을 찾기는 어렵지만…) 커뮤니티 역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인도 지역 커뮤니티의 성장은 Akademy를 참석할 때마다 눈여겨 볼 수 있었는데, 2008년에 얼마 없었던 인도 사람들은 해가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데스크톱 서밋이었던 만큼 자유 소프트웨어 데스크톱에 관한 일반적인 발표도 볼 수 있었는데, 유럽 지역에서는 점진적으로 자유 데스크톱을 도입하는 국가가 늘어난다는 발표도 있었다. 인도에서의 도입에 관한 발표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 유럽 지역의 발표와는 달리 숫자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어붙인 듯한 발표여서 자세한 정보가 더 궁금해졌다.

이외 들었던 발표는 과학적 데이터 시각화에 오픈소스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으며, 내가 큰 영향을 주었던 룸메이트 덕분에 약간의 배경 지식은 있었지만 그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소식을 듣기 힘들었던 E17에 관한 발표도 있어서 오픈소스 데스크톱에는 그놈과 KDE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시기 삼성이 모바일 UI에 사용하기 위해서 E17에 투자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뭔가 제품화된 성과가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닫는 발표는 그놈과 KDE가 서로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가를 들었고, 올해의 행사가 베를린 시 정부의 버프를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던 강렬한 스폰서 프레젠테이션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발표 날 저녁 때 허준회 님과 함께 베를린 시내의 식당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같이 먹고 들어갔다.

발표는 이 정도로 접어 두고, 이틀째인 7일 저녁에는 Beach at the Box에서 맥주 파티가 있었다. 분명히 베를린은 바다와는 떨어져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 위치가 슈프레 강을 끼고 해변처럼 꾸며져 있어서 나름 바닷가 분위기가 났다. 맥주와 소시지가 빠지면 독일식 파티라고 하기는 서운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호스텔이 시내 중심부에 있었고 근처에 베를린 장벽이 지났던 곳도 있어서 파티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베를린 장벽 주변을 보고 왔다. 현재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곳은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베를린 시내의 체크포인트 찰리 주변은 장벽이 있었던 당시를 일부 남겨 두었고 그 당시의 역사에 대한 전시물이 일부 있다. 지금이야 발로 건너다닐 수 있었지만 장벽이 있었을 때의 풍경은 과연 같은 지점이 맞나는 생각도 들게 하였다.

컨퍼런스가 열린 학교 주변으로는 베를린 노면 전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베를린 노면 전차 차량도 볼 수 있었다.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된 타트라 KT4D를 개조한 바 차량인 FahrBar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 다음으로 도입된 ADtranz GT6N도 있었다. 베를린 분단 당시 U-Bahn 노선망은 대부분 서베를린에 집중되어 있었고, 동베를린으로 들어가는 U-Bahn 노선은 U2호선의 동부 구간 및 U5호선의 전 구간이다. 서베를린의 교통망이 U-Bahn 중심으로 발전한 반면 동베를린은 노면 전차 및 트롤리버스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현재에도 노면 전차 노선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고 U-Bahn은 서부에 집중되어 있다. 훔볼트 대학교가 과거 동베를린에 있었던 만큼, 학교 주변에서 트램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베를린이 분단되어 있었던 동안 S-Bahn은 동독 DR에서 운영하였다. 서베를린 지역으로 운영하였던 S-Bahn은 동독에 짭짤한 외화를 벌어다 주었고, 당시 서베를린 지역의 S-Bahn 노동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서독에서 일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베를린이 분단되어 있었던 동안 경계선에 걸쳐 있었던 노선은 유지 보수가 어려웠고, 1980년에는 파업도 일어나서 S-Bahn도 파행 운영하였다. 현재 운행 중인 베를린 S-Bahn 차량은 대부분 이 시기 이후에 들어왔다. 1984년 서베를린 지역의 S-Bahn 운영이 서베를린 BVB로 넘어가면서 서독 소유의 차량을 제작해야 했고, 이는 현재도 운행 중인 480 차량이다.동베를린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485 차량을 도입하였다. 독일 통일 이후에 끊겼던 동서간 S-Bahn 연결이 복구되면서 과거 동베를린에서 사용하였던 오래된 차량이 전부 퇴역하였고, 481 차량이 대거 도입되었다. 워낙 대차된 차가 많았기 때문에 현재는 480/485 차량은 보기 어렵고 대부분 차량은 481로 운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베를린에 있었던 동안 480 차량은 보지 못했고, 481 및 485 차량은 한 대씩 마주쳤다.

훔볼트 대학교 안에는 헤겔 동상과 막스 플랑크가 있었다는 판도 볼 수 있었다.

워낙 많은 발표가 있었던 탓에 일정을 소화한다고 꽤나 힘들었고, 그래서 다음 날부터 있었던 KDE e.V. 회의 및 각종 BoF들은 전보다는 조금 느슨하게 참가했다. 이 날 이후부터는 거의 베를린 주변 관광으로만 일정을 짜서 컨퍼런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