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떡밥: 한국형 무언가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국산화가 최고의 가치였고, 산업의 원동력이었다. 지금보다도 기술 교류가 훨씬 적었을 때라서 어딘가에서 ‘완성품’을 수입해 오긴 쉬워도 ‘기술’ 자체를 수입해 오기는 어려웠다. 수입할 수 있는 기술은 최대한 배워 오고, 아무 나라에서도 공개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우리 산업이 지금처럼 성장해 왔다. 지금 현대로템이 해외에 진출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도 일본에서 초저항을 라이센스 생산해 왔을 때부터 쌓인 기술이 있어서이고,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치킨게임에도 죽지 않는 것도 소용량 메모리칩을 만들었을 때부터 쌓인 기술이 있어서이다.

외국 기술의 국산화 전략은 20세기 말까지 한국 산업을 잘 발전시켜 왔다. 한국의 이동통신 사업이 다른 나라에서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르게 성장한 것도 과거 논문으로만 언급되었던 CDMA를 상용화시킨 것과 무선 인터넷 플랫폼을 생각하기도 전에 WIPI를 만들었던 것 때문이다. KTX-2 또한 알스톰의 TGV 기술을 배워온 것을 토대로 국산화를 시작한 결과이다. 동력 분산식 고속열차 이야기도 단순히 초기 TGV 기술만 가지고 있었다면 생각하기도 힘든 것이다.

21세기 현재, 지금 세계는 20세기에 비해서 국가간 교역량도 증가하였고, 20세기에 쌓은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유용하게 쓰였지만 현재는 걸림돌이 되는 기술은 과감하게 포기하기도 한다. 유럽 연합에서 단계적으로 적용시켜 나가고 있는 통합 신호 시스템 ETCS도 유럽 연합 각 나라가 자신들의 철도 신호만 고집하겠다면 그 나라만 손해다. 여러 나라를 드나드려면 철도 차량에 각 나라별 신호를 장착해야 하는데, 이는 차량 단가만 높이는 꼴이 된다. ETCS 시스템은 각각 나라별 신호 시스템을 유럽 전체적으로 통용되는 하나로 통일시키자는 것이 목표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나라별 사업의 결과가 눈에 보이는 형태였지만,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사업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 생긴 BM 특허라는 개념은 사업 모델 자체를 특허로 삼는다는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아마존에서도 ‘인터넷 쇼핑’이라는 개념 자체를 특허로 삼아서 반즈앤노블과 특허 분쟁을 한 적도 있었다. BM 특허를 이야기하면서 이 사건을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정보화 시대에서 한국형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립을 의미한다. 세계의 국경이 옛날보다 더 낮아진 지금은 한 나라에서 만든 모델이 전세계적으로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가장 먼저 만든 사람이 세계 표준화시켜 버리면 한국형 표준은 고립을 자처하는 꼴이다. 부요라는 배포판인지 뭔지 모르는 사업도 현재 전혀 레퍼런스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진입 장벽이 매우 낮고 개방된 사업에 한국형이라는 탈을 씌우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된다.

더군다나 한국인의 ‘포기할 줄 모르는’ 성질은 과거에 만들어진 기술이 도태될 때가 되어도 도태시키지 않는다는 문제를 낳는다. 지금 한창 까이고 있는 웹 브라우저 접근성 문제나, WIPI의 무역 장벽 효과도 구닥다리 기술을 한국식, 원천 기술의 이름 하에 들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정부가 주도해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시장이 바뀌는 것을 정부가 모른 척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시작은 거창했지만 결과가 비참한 기술이 나오는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를 만들면서, 앱스토어라는 개념을 도입한 지도 시간이 지났다. 중앙 집중형 저장소에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을 등록하고 사용자들에게 배포한다는 개념은 앱스토어 등장 전에도 있었다. 대부분 리눅스 배포판이 중앙 집중형 저장소를 사용한 것은 꽤 오래 되었다. 애플은 이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하였던 것 뿐이다.

이런 애플을 본받아서 한국형 앱스토어를 만든다는 걸 보면 한심하기만 하다. 중앙 집중형 저장소에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등록하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오래 전에도 만들 수 있었는데다가, 모든 휴대폰에 WIPI가 올라와 있는 한국에서는 WIPI SDK를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통신사가 지원만 해 준다면 한국형 앱스토어를 지금 만든다고 설칠 필요도 없었다. 더군다나 앱스토어가 대단한 모델인 양 떠들고 다니는 언론은 그저 까야 마땅할 따름이다.

아무튼 앱스토어에 열광하는 것은 좋다. 우린 앱스토어에 열광만 하고 있었을 게 아니라, 왜 우리는 앱스토어와 같은 모델을 만들 수 없었는지 분석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한국 산업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3 thoughts on “지겨운 떡밥: 한국형 무언가

  1. uriel

    한국형 무언가의 최고봉으로 한국형 민주주의가 있죠–;

    기술적인 것에서 한국형 무언가는 단지 억지로 만든 진입 장벽이라는 말밖에는 안나오고요.

    1. peremen

      진입 장벽은 둘째쳐도, 한국형 민주주의에서 뿜었습니다. 🙂

  2. 아리온

    이미 나온 거(중 성공한거) 모방해서 제대로 되는건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미 선점이란걸 했기 때문에,,
    미엥바르크 리 – 기술개발 지원을 줄이고 토목공사에 돈을 더 붓겠읍니다.
    p.s 이제 다시 Uncyclopedia:대문 페이지를 쓸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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