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뻘글 쓰기도 힘든 이유

요즘 어떤 사이트든 뻘글이라도 하나 올리기 힘들어진다. 옛날에는 블로그에 짧은 뻘글도 마음대로 올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짧은 뻘글 하나 만들기도 상당히 힘들다. 그렇다고 글 쓸 거리가 바닥난 것도 아니다. 글 쓸 거리야 주변에 얼마든지 많이 널려 있다. 그러면서도 내가 쉽사리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한 배경 지식이 쉽사리 안 모여서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배경 지식을 충분히 모아야 한다. 하다못해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해도 충분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글을 쓸 때 배경 지식은 얼마나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가를 판가름내린다. 예를 들어서 다음 두 문장을 보자.

ETCS는 유럽 연합에서 개발하는 유럽 통합 신호 시스템이다.

ETCS는 1996년부터 유럽 연합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유럽 통합 신호 시스템이다. 기존 유럽 국가에서 사용하였던 신호 시스템을 하나로 합쳐서 국가간 통행 비용을 줄이는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이 두 문장을 비교해 보면 두 번째 문장에 더 많은 정보가 나와 있다. 글에 있는 모든 문장이 첫 번째 문장과 같다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충실한 글임을 느낄 수 없다. 모든 문장이 두 번째 문장처럼 길어진다면 첫 번째 문장보다는 더 탄탄한 글이 될 수 있다. 진지한 글을 쓸 때도 이런 고민을 해 보아야 하는데, 웃긴 글을 쓰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며칠 전 논술 시간에 했던 이야기이다. “한 사람이 공원에서 비둘기 150마리를 죽였다.” 이 결론을 가지고 이야기를 지어 보라고 했다. 먼저 이 황당한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시도해 본 다음, 150마리를 어떻게 죽였을법직한 스토리를 먼저 구성한다. 그렇게 스토리를 짜 본 다음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부분이 생기면 그 부분의 내용을 좀 더 보강시켜 본다. 이 과정을 거쳐서 글이 완성이야 될 수 있지만, 곳곳에 땜빵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은 신경에 거슬릴 수도 있다.

교수님께서 이야기한 방법은, 이야기를 각각 부분별로 나눈 다음, 부분별로 적당한 결론을 내리고 전체적인 흐름을 비둘기 죽이기로 몰아 나간다는 것이다. 각각 부분별로 결론에 하자가 없으면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한다는 이유였다. 방에 와서 룸메이트와 이야기해 보다가, 그 동안 백괴사전에서 정책과 지침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 소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괴사전으로 가도 대놓고 웃기려고 쓴 글은 사람들이 별로 재미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놓고 웃기는 글이라면 사람들을 무작정 까는 글이거나, 끝을 카더라로 도배하거나, 단순한 말장난만 가지고 웃기려는 글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은 처음 봤을 때는 웃기지도 모르겠으나, 여러 번 보게 되거나 다른 글과 같이 보게되면 오히려 더 재미없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난 백괴사전의 각종 정책과 지침을 통해서 너무 대놓고 웃기는 글을 쓰기보다는 고품격 유머를 구사해 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막상 내가 고품격으로 글을 쓰려고 해도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문제다. 무언가를 충분히 웃기려면 위키백과에 무언가 글을 쓰는 것 이상으로 세세한 조사를 해야 한다. 이들 정보를 가지고 잘 조합해서 엉뚱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재미있는 글이 된다. 이 과정도 마냥 성공하지만 않는 것이, 진지함과 재미있음은 정말 백지 한장 차이다. 결론을 어떻게 도출하는가에 따라서 잼이 없음 틀이 꼽히고 삭제되기도 하고, 대문에 특집 기사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관리자라는 직책 때문인지 괜히 어설프게 글을 쓰면 다른 회원들마저 글을 어설프게 쓰게 되기 때문에, 난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글 중에는 ETCS/ERTMS 시스템에 관한 글도 있고, 한국 철도 동호계의 일본 의존성을 비판하는 글도 있다. 이 둘 다 충분한 자료를 모으지 않으면 772들의 떡밥으로 두고두고 쓰일지도 모르고, 열심히 글을 써 놨는데 어디가 틀렸다는 댓글이 달리면 나로서도 마음이 아프다. 자료가 충분히 모이지 않아서 이들 글을 깔끔하게 마무리짓기 힘들다는 말을 이 글로 대신하고 싶다.

* 알림: 이 글은 2009년 봄학기 카이스트 과학적 글쓰기 과목에 사용할 예정으로 쓴 글입니다. 무단 복제 및 불펌 금지.

2 thoughts on “블로그에 뻘글 쓰기도 힘든 이유

  1. 아리온

    그런 면에서 제가 90% 이상 작성한 넥슨, 펌프잇업, 한국마약산업진흥원, 기타 원소류(뭘 제가 적었는지 기억이,,) 평가 부탁드립니다..

    1. peremen

      아하 아하하;;;;; 삭제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보아 저질 개그는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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