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간다면 가장 큰 문제점이 어디서든 최소한 한 번 환승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서울로 간다면 유럽 내 대형 공항에서 한 번만 환승하면 끝이지만, 목적지가 서울이 아니라면 여러 번의 환승은 불가피하다. 제아무리 환승 내항기와 인천공항행 KTX가 다닌다고 해도 목적지 공항에 최소 환승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의 메리트는 상당히 크다. 또 하나의 문제는 베를린발 대륙간 노선 수가 얼마 없다는 것이다. 2017년 현재 테겔에서 아시아로 오는 노선은 카타르 항공의 도하행, MIAT 몽골 항공의 모스크바 경유 울란바토르행, 하이난 항공의 베이징행 정도를 빼면 이스라엘이나 터키까지만 간다. 쇠네펠트 쪽에는 이란행 노선이 좀 있지만 한국 가는 길에 굳이 거기를 경유할 필요는 없다.
그 동안 부산으로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인천으로 갔으나, 이번에는 베이징 경유 부산행이라는 다른 옵션을 시도해 보았다. 베를린까지 환승 횟수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는 게 가장 컸고, 적어도 이 티켓을 예약하는 시점에서는 에어 베를린이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마일리지를 쌓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물론 에어 베를린은 이제 퇴갤해 버렸지만) 그리고 아무리 중국 항공사라도 UA보다는 장거리 서비스가 나을 것이라는 기대 덕분에 베를린 테겔발 베이징 경유 부산행 항공권을 끊었다. AVOD 없는 UA 747로 대서양도 건너 봤는데 어떤 걸 더 못하겠냐. TXL-PEK 구간은 하이난 항공, PEK-PUS 구간은 아시아나항공으로 예약했는데 이게 나중에 환승 시에 좀 문제가 되었다.
하이난 항공은 베를린 테겔에서 터미널 C를 사용하는데, 여기는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있는 터미널 A/B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중간에 한 번 계단을 내려가는 구간이 있는데, 문이 늦게 열리기는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짐이 많으면 그 쪽으로 가면 된다. 예상대로 테겔 공항의 부가세 환급 데스크는 하이난 항공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온 사람들로 붐볐고, 나는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에 바로 체크인 카운터로 직행했다. 이 티켓은 두 항공사가 걸친 여정이라서 아시아나 쪽에서도 하이난 쪽에서도 웹 체크인이 불가능했다. 테겔 공항의 직원들은 PUS가 어디에 있는 지 잘 모르는 듯했지만, 짐이 부산까지 간다는 말은 베이징에서 깔끔하게 예상이 빗나갔다.
베를린 테겔의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어차피 터미널 C도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히 시간을 죽치고 있다가 바로 탑승했다. A330-300 기체를 보내며 이코노미 좌석은 다행히도 2-4-2 배치였다. 출발 요일은 주말을 살짝 피했기 때문에 빈 자리가 아주 없지는 않은 편이었다. 좌석에는 베개, 담요가 놓여 있고, 안대, 칫솔과 치약 세트, 수면 양말 정도가 들어가 있는 Amenity kit이 같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식사 메뉴를 나눠 주는데 그 덕분에 아무리 중국식이라고 해도 최소한 무엇을 먹는지는 알고 먹을 수 있었다. 기내식은 출발할 때 한 번, 도착하기 전에 한 번 나온다. 하이난 항공이 지금은 코드셰어 편으로만 한국에 취항하기 때문에 의외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 승무원도 최소한 2명은 탑승하고 있었다. 승무원 명찰에 달려 있는 국기를 보고 알아챌 수 있다. 당시 TXL-PEK 편에 탔던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덕분에 유리한 점이 없진 않았다.
중국 항공사들은 아직도 기내에서 비행기 모드의 휴대폰도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항공사의 금연 표시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 휴대폰 금지 표시등이 있다. 덕분에 기내 엔터테인먼트가 없으면 비행 시간이 지루해지기 쉽다. 한국에 취항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 영화나 TV 프로그램은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한 때 불태웠던 2048이 AVOD에 들어가 있어서 이걸로 시간을 오래 때웠다. (보너스로 2048 하던 시절의 손 감각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시차 적응을 위해서 저녁을 먹은 다음에 눈을 붙였더니 시베리아 동쪽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이 비행편은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 터미널 2로 도착하고 출발한다. 문제는 연결편으로 끊은 아시아나항공은 터미널 3을 사용하는데, PEK에서 다른 터미널의 비행기로 갈아타려면 일단 공항을 나갔다가 들어와야 한다. Transfer라고 쓰여 있는 곳에서는 같은 터미널의 비행기로만 갈아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터미널의 비행기로 간다면 살인적인 인파를 뚫고 일반적인 출입국 절차를 밟아야 한다. (중국 출입국 카드도 다 써야 한다는 점은 보너스) 짐이 혹시나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기대하긴 했지만, 수하물 컨베이어에 올라와 있는 점을 보고 고생길 시작이란 걸 느꼈다. T2를 빠져나가서 T3으로 갈 때에는 공항에서 운영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사용하면 되는데, 걸어갈 수 없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교통 수단은 잠시 잊어 두자. 택시는 잘못 탔다가는 고생할 수 있다. 아무튼 T2의 입국 심사와 T3의 아시아나항공 체크인+출국 심사를 다 뚫고 나니 약 2시간 정도가 걸렸고, 여기에는 아시아나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지 않아서 기다렸던 30분 정도가 포함된다. 아시아나항공의 PEK-PUS 노선은 그냥저냥 평범했다. 아시아나가 서비스 줄인다는 말이 있지만 다행히도 Hot meal이 나왔다.
부산에서 올 때에도 이 과정의 역순을 그대로 밟았다. 짐을 체크인할 때 베를린까지 바로 간다는 말을 들었고 Baggage tag에도 PEK/TXL이 다 찍혀 있었으나, 출국편에서 본 것처럼 수하물 찾는 곳에 짐이 있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24시간 내 환승용 임시 비자를 받아서 입국 심사를 통과한 뒤에도 컨베이어 벨트를 다시 확인했다. 내 짐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T3을 떠나 T2로 갔다. 처음 이걸 해 본다면 당황하기 쉬운 구조이지만, 올 때 한 번 해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리가 없었다. 부산에서 비행기가 15분 늦게 출발해서 안 그래도 부족할 수도 있는 3시간 45분이라는 환승 시간도 15분 짧아졌지만, T3 입국 심사와 T2 출국 심사 및 하이난 항공 체크인을 모두 합쳐서 2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다. 이리저리 뛴다고 고생은 했지만.
역시 PEK-TXL도 TXL-PEK와 같은 서비스가 제공된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중국에서 기내식을 입고시킨다는 것 뿐. 이번에는 출발 요일이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게 더 큰 차이점이다. TXL-PEK 편은 군데군데 빈 자리가 보였지만, 이번에는 자리가 꽉 차서 나왔다.
TXL과 PEK 두 공항 양쪽에서 보딩 브리지는 쓰지 못하고 버스로 주기장까지 이동해야 했는데, PEK 쪽은 그래도 입국 심사대가 여러 개라서 인원이 분산될 여지라도 있기에 별 우려가 없었지만 TXL 쪽은 입국 심사대 개수도 적기 때문에 일단 뛰는 게 중요했다. 심사대를 빠르게 통과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 여권에 유효 기간이 남은 독일 D 비자가 있는 상태에서 페이지가 다 차서 새 여권을 발급받았다. 이 상황에서 독일 입국이 가능한가가 문제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했다. 입국 심사관은 구 여권에 있는 비자는 구 여권에 VOID 구멍이 뚫리면서 효력이 정지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비자를 재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운 좋게도 Ausländerbehörde에 예약을 잡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거기까지는 안 가도 되었다.
에어 베를린 파산 직전까지 하이난 항공은 베를린에서 AB 편으로 다른 유럽 도시로 짐을 연결시켜 주었는데, 이제 AB가 파산하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는가가 궁금해진다. 실제로 AB 파산 이후에 테겔 공항의 손님이 줄어들고 베를린발 항공 노선의 가격이 인상되었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AB가 버텨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BER4EV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