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2009년 GCDS

GCDS 2009 여행기 – 일곱째날(귀국)

호텔에서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하러 프론트로 갔다. 2005년 호주에서 첫 선을 보인 ‘돌아올 때 짐 더 줄이기’ 스킬은 이번에 좀 불안불안했다. 여태까지는 해외 여행을 갔다 오면서 짐이 거의 같거나 줄어드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번 비치타올은 제대로 크리다. 게다가 ‘오 한국 만화다’하면서 충동구매했던 한국 만화책들의 부피는 오늘따라 웬수같던지. 아무튼 체크아웃을 하고 안전 보관소 열쇠를 맡기려는데 갑자기 웬 종이를 내놓으란다. 안전 보관소 열쇠 종이가 분명히 어디 있었을 텐데 하면서 종이를 넣어뒀을법한 곳을 다 뒤졌다. 다행히도 종이를 찾아서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별 하나짜리 Catalina Park 호텔에 작별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오전 9시경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었고, 나와 같이 공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나 좀 있었다. 가까스로 짐을 챙긴 가방을 버스 화물칸에 밀어넣고 공항까지 약 30분 정도를 자다 갔다. 카나리아 공항에서 체크인을 끝낸 다음 마드리드까지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사촌동생 선물할 카나리아 인형과 카나리아 제도를 나타내는 장식품을 좀 골라잡았다.

이베리아 항공 비행기를 타니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T4s에 떨어졌다. 대한항공 비행기를 잡으려면 T1까지 저 멀리 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좀 복잡하다. 일단 T4s에 내린 다음 지하로 내려가서 T4로 가는 무인 철도를 타야 한다. 제조사 패찰이 어디 달려 있을까 내심 궁금했는데 의문을 풀어 줄 무언가는 안 보였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내린 다음 패찰을 찾아보려니까 빨리 내리라는 협박성 멘트 때문에 모른 채로 내렸다. T4를 다시 빠져나와서 T1/2/3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타면 된다. 이번에도 또 안내방송에 낚여서 T2에 내린 다음 무빙워크를 걸어서 T1 저 구석에 있는 대한항공 카운터로 갔다.

게이트로 들어가면서 보안 검색을 거치는데, 이게 또 같은 유럽이지만 독일과는 달랐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벗어날 때 내 주머니에 노키아 N810에서 나오는 케이블을 묶는 가는 철사가 들어 있었는데, 이 철사가 보안 검색에 걸려서 5분 가까이 지체된 기억이 났다. 반면 스페인에서는 엄청나게 절차가 허술했다. 대강 손으로 뭔가를 더듬더니 아무것도 없으니 보내 줬다. 각종 액체들 가지고 벌인 잠깐의 소동은 둘째쳐도. 더 충격적으로, 스페인에 들어올 때 썼던 입국심사 카드의 출국용 부분을 여권 심사관이 가져가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유럽으로 들어올 때 뭔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 때 가서 볼 일이다. 난 분명히 심사관이 놓칠까봐 카드를 보여줬지만 안 가져갔다. 어쨌든 스페인 출국 스탬프를 받고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 A를 전ㅋ세ㅋ내서 놀고 있었다. 가게들도 문을 다 닫았고 비행기 출발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사람도 없었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 터미널 A 전세 인ㅋ증ㅋ

열 시간에 가까운 비행 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서 공항철도 직통열차를 잡아 타러 먼 거리를 걸어갔다. 도착해 보니까 날짜는 그새 하루 지나 있었고, 시간은 오후 4시에 가까웠다. 긴장된 남북 관계 탓인지 북한 영공을 살짝 스치지도 않고 돌아갔고, 암스테르담에서 지연된 탓인지 인천에도 예정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한 시간 배차간격의 직통열차를 놓칠라 승차권을 빨리 사서 플랫폼으로 뛰어들어갔다.

공철 직통열차 승차권 인ㅋ증ㅋ

공철 직통열차 승차권 인ㅋ증ㅋ

직통 열차를 타 보니 왜 공항철도가 공기철도인 줄 알았다. 한 칸에 나를 포함해서 일본인 관광객 4명과 한국인 두 명밖에는 없었고, 다른 칸도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로템 패찰과 와이브로 사용 가능이라는 말이 외롭게 느껴지기만 했다. GPS를 통해서 지상 구간의 속도를 다 재어 보아도 100km/h를 넘는 구간이 참 드물었다. 영종대교 구간에서 80을 못 넘는 건 둘째쳐도, 전체적인 평균 속도가 개판 오분 전이니 누가 탈까 의문이 든다.

김포공항햏 직통열차

김포공항햏 직통열차

작년 프랑크푸르트 왕복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놓친 게 억울해서라도 이번에는 스카이패스를 만들어서 마드리드행 마일리지를 꿀꺽했다. 스페인에서 대한항공 예약을 하려고 하니 도대체 이놈의 ActiveX는 사람 괴롭히기 십상이었고, 때마침 버박 업데이트와 맞물려 키보드 보안이 꼬여서 한국 와서 예약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대한항공 해외 홈페이지에서는 국내선 예약을 하는 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보니 공철 맞은편에서 9호선 안내판과 전광판이 기다리고 있었고, 개통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했다고 기억한다. 부산 가는 6시 40분 비행기를 잡아 타고 집으로 왔다.

이번 여행에서 제대로 느낀 점이라면, 노키아가 왜 오픈소스 진영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어하는지, 왜 이미지 마케팅에 신경쓰는지, 왜 트롤텍을 인수했는지 알 수 있는 자리였다. Quim Gil의 폭탄선언 ‘maemo는 Qt로 간다’는 말 한 마디에 그놈과 KDE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놈 사람들은 당황한 나머지 ID 패치를 만들어서 Qt 로고를 그놈 로고로 가려 버렸고, KDE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신난다는 말을 언급하기를 자제했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오픈소스 사람들은 이미지 마케팅에 약하다. 누가 오픈소스에 동참하고 누가 오픈소스를 배신하는 등의 몇 마디에도 쉽게 바뀌는 게 오픈소스 사람이다. cdrecord나 X.org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픈소스 사람들은 순수성, 이미지를 상당히 좋아한다. 어쩌면 노키아는 이 점을 노리고, 오픈소스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 접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많이 들었다.

어쩌면 오픈소스를 둘러 싼 이미지 마케팅의 정점에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 있을 수도 있다. Qt가 GPLv3/LGPL로도 공개되면서 리처드 스톨만도 ‘Qt는 이제 괜찮다’고 인정했고,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서 각종의 스티커를 공급하는 게 좀 신기해 보일 수도 있다. Bad Vista와 GPLv3 스티커, Linux Inside 스티커는 일치감치 동이 나서 행사장 주변 식당까지 습격했다. 오픈소스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각종 스티커와 티셔츠로 치장한다는 점, 그 둘의 주목 효과가 크다는 점을 잘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행사장 근처 식당을 점령한 Bad Vista 스티커.

행사장 근처 식당을 점령한 GPLv3 스티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나라 개발자들도 이런 행사에 많이 참여해서 영향력과 지명도를 키워 놔야 한다. Akademy/GUADEC은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드문 자리 중 하나다. 각종 파티에 참가할 체력도 미리 키워 놔야 파티에서 흘러나오는 시가 수백만원짜리 고급 정보도 낚아챌 수 있고, 사 람들이 소홀하다고 까는 CJK 지원 역시 ‘우리가 계속 요구하고 소스를 보내 줘야’ 관심이라도 가진다. Albert Astals Cid와 poppler 라이브러리의 CJK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역시 테스트 케이스가 부족함을 엄청 지적했다. 이건 마치 EUC-KP 인코딩이 뭔지도, 테스트 케이스를 주지도 않고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걸 깡그리 무시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원을 했다가 실제 사용자에게 욕을 먹는 사례도 왕왕 있지만.

마지막으로 Akademy 2009 단체 사진을 링크하면서 여행기는 이만 마친다. 시간이 남으면 노키아 6210 리뷰나 더 써 보려고 한다.

GCDS 2009 여행기 – 여섯째날 (섬 여행)

이제 마지막 날에 예정되어 있는 섬 여행만 마치면 내 GCDS 일정은 여기서 끝난다. BoF 세션으로 분위기가 넘어오면서 전체적인 행사의 밀도가 좀 낮아졌고(BoF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다), 들을만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재미가 없어졌다. 오늘도 BoF가 일부 있긴 한 것 같은데, 대부분 참가자들이 여행에만 신경이 쓰여 있어서 BoF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우왕ㅋ굳ㅋ.

목요일에도 일단 대학교로 갔다. 오전에도 BoF가 몇 개 열리긴 했지만 나는 해킹 룸에 있었다. 대개의 BoF 진행자들이 오후에 있을 섬 여행 때문에 제대로 준비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에 전세 버스 3대를 빌려서 여행을 시작했다. 섬의 동쪽 해안을 돌고 오는 코스이다. 도중에 해변가도 좀 거치고, 마을에도 한 번 들렀다 갔다. 카나리아 제도의 태양은 엄청 이글거리기 때문에 SPF 35 썬크림도 준비해 갔다. 그 덕분에 피부가 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첫 목적지는 섬 남쪽에 있는 Playa del Inglés 해안이다. 해석하면 영국인 해안이라는 뜻이다. 이곳 해안은 사하라 사막에서 날려온 모래가 해수욕장을 이루기 때문에 해안가를 얼핏 보면 사막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해수욕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막 비스무레한 게 바로 보였다. 과연 집 앞 광안리나 해운대 바닷가에 비해서 어떤 점이 다를까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결국 사고가 터졌다. 내가 탄 버스가 터졌다.

복불복도 이런 복불복이 따로 없다

복불복도 이런 복불복이 따로 없다

작년 Akademy 때에는 브뤼셀 공항이 파업했고, 2007년에는 하필 글래스고에 폭탄 테러가 개막식 날 터지는 통에 ‘올해는 어떤 복불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는데, 하필 여행 맨 마지막 날에 터질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무튼 GC-1 고속도로 위에서, 약 30도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선크림을 잘 챙겨왔다) 대체 버스를 기다리는 건 나름대로 스릴있었다. 내 앞에는 해수 담수화 공장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저기서 섬에 사용되는 식수를 공급하고 있었다.

님들 저는 결코 싸대가 아닙니다

님들 저는 결코 싸대가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한창 해가 뜰 때인 오후 2시경에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가에 바로 도착하기 전에 앞서 이야기했던 사막과 해안의 조화를 먼저 구경하였다. 흔히 봐 왔던 사막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깰 수 있었다. 이쪽 바닷가를 잠시 둘러본 다음 진짜 해변가에 도착했다. 사막에서 날려온 모래 때문인지 모래 자체는 매우 고왔다. 한술 더 떠서, 내 숙소 주변 해안가보다 관리가 더 잘 된다는 인상도 받았다. 해변의 한 쪽 끝은 누드 비치가 있었고(진입로를 몰라서 가 보지는 못했다), 해안가를 벗어나면 각종 음식점과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관광 안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명찰을 걸고 있었다. 바람직해 보이는 현상이다.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다양한 메뉴를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고, 기념품 가게에서는 카나리아 제도를 상징하는 여러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다음 일정은 산 중턱 마을에 올라가는 건데, 저녁을 먹는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언급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서 치킨 커리와 칵테일로 저녁을 해결했다. 열대 과일과 음료의 조화는 지금도 잘 기억난다. 물론 무알콜 칵테일이었다.

흔히 보기 힘든 사막과 해안의 조화.

야호 해안가다!

저 멀리 누드 비치도 있었다. 물론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해안가에 밀집해 있는 관광 안내소와 식당.

오후 6시에 Agüimes 마을을 향해서 출발했다. 출발하는 동안 동지들을 찾기는 아주 쉬웠다. 자유 소프트웨어 쪽 사람들은 꼭 하나씩 티를 낸다. 예를 들면 가방이라든가, 비치 타올이라든가, 티셔츠 등이다. 6시보다 살짝 일찍 돌아와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사람들과 함께 일명 ‘geekspotting’을 즐겼다. 내가 탔던 고장난 버스도 수리되어 돌아왔는데, 난 그 버스에 다시 타야 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인원들이 실종된 것 같아서 살짝 혼선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이름을 검사하는데, 드디어, 여기 스페인에서, 내 이름을 내가 의도한 대로 부르지 못한 사람이 등장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기준으로 로마자로 이름을 적는데다가, 같은 로마자 또한 언어마다 읽는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나도 여기에서 제대로 충격을 받아서 ‘로마자 표기법과 영어는 상관없다’는 내 생각을 확실히 했다. 그저 영어권 외국인 때문에 로마자 표기법을 손질하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답답하다.

하여튼 Aguimes 마을은 섬 중앙 화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고, 지대가 높은 만큼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할 수 있어서 농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현재 이 마을은 전통적인 생활 양식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마을을 따라다니면서 오래된 집을 둘러보았고, 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Aguimes 마을 한복판

Aguimes 마을 한복판

이 마을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옛날에 지어진 집과 좁은 거리, 그리고 마을 한복판에 있는 큰 성당같이. 하지만 산을 타고 올라가니까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이가 빠져 있거나 색이 빠져 있어서, 나중에 후보정으로도 영 무리가 올 것 같아서 여기서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카메라는 모두 고쳤지만, 볼거리가 많았는데 남겨 오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사탕 수수를 재배했던 Ingenio를 거쳐서 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가이드는 재미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과거 비행기가 다니지 않았던 시절 이 섬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을 이어 주는 곳이었다. 세 대륙 사이를 이동하려면 중간에 선원들도 쉬어 주고 배에 물자도 보급해야 했는데, 카나리아 제도는 이 목적으로 딱 적당했다. 섬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하려면 관개 시설이 필수적이다. 바나나나 토마토 등의 작물이 카나리아 제도의 햇볕을 받으면서 엄청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더 싼 가격으로 농작물이 수입되고 있어서 가격에서는 밀리는 듯 하지만 품질로 승부를 보고 있다고 한다.

카나리아 제도에는 산업 시설이 따로 없기 때문에, 농업이 쇠퇴한 이후 관광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옛날에 있었던 거대한 플랜테이션은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아파트 단지로 변신했다. 옛날에 농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지금 직 간접적으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때문에 카나리아 제도의 관광 사업은 쉽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 카나리아 제도는 관광 수입의 감소 때문에 실업률이 증가해서 문제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버스는 호텔이 있는 Santa Catalina 정류장으로 들어갔다. 많은 참가자들이 사실상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여행을 끝냈다. 나도 다음날이 출국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는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처음 여기로 들어올 때는 짐이 적은 편이었는데, 어느새 추가된 기념품과 비치 타올 때문에 가방은 그새 불어났다. 빨리 집에 가서 이것들을 모두 풀어놓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밤에 짐을 대강 싸고, 나머지 짐들은 아침에 챙겼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긴 긴 여행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까지 들어오는 동안 있었던 재미난 일은 다음 편에서 이야기할 것이다.

GCDS 2009 여행기 – 다섯째날 (BoF)

여기서부터 나오는 일부 사진의 색은 좀 보랏빛 끼가 돌 수도 있는데, 내가 들고 간 캐논 A95의 CCD 결함이 하필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터져서이다. 그렇다고 현지에서 새 카메라를 사자니 당장 내 수중에 돈이 없었고, 그나마 김프 등으로 후보정을 어떻게든 시도해서 원색의 느낌을 살리려고 해 본 것이다. 양해를 바란다.

오늘부터 진행되는 장소인 라스 팔마스 데 그란 카나리아 대학교로 가기 위해서 Intercambidor Santa Catalina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Intercambidor는 그냥 지하 환승센터이다.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모두 여기를 경유하며, 노선별로 정차지가 배당되어 있어서 쉽게 갈아탈 수 있다. 파크 앤 라이드를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땅이 좁아서 이런 걸 쉽게 도입할 수는 없겠지만 환승 센터가 엄청나게 커진다면 이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Intercambidor에 서 있는 시외버스.

전광판이 꺼진 걸 보니 음사장의 포스가 여기까지 미친 건가

Intercambidor를 빠져나온 버스는 고속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려서 라스 팔마스 데 그란 카나리아 대학교로 간다. 대학교에서는 크고 아름다운 발표는 진행되지 않았다. BoF 세션들이 열렸고, 유선랜이 잔뜩 깔려 있는 해킹 룸이 제공되었다. BoF 세션은 그 특성상 워낙 즉흥적으로 진행될 수 있어서 시간표도 거의 주최 하루 전날에야 만들어졌다.

Las Palmas de Gran Canaria 대학교에 걸려 있는 현수막.

어김없이 걸려 있는 행사 안내판.

git BoF에서는 KDE의 한창 뜨는 떡밥인 git 이야기를 나눴다. KDE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은 어떻게 git로 전환시키고, git로 전환하는 동안 할 작업을 이야기했다. 다양한 커밋 스크립트도 git에 맞게 조정하고, 테크베이스와 유저베이스, 번역자에게 맞는 조치도 필요하다. KDE 저장소의 특성상 프로그램들을 조각조각내면 약 450개에 달하는 저장소가 탄생하기 때문에 이걸 관리하는 것도 상당한 일이다. BoF 진행 동안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각종 이야기들이 나왔고, 의사 결정 속도와 메일링 리스트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게 끝나고 나서 거의 동시에 Amarok이 혼자서 git로 갈아탔다.

다음 이야기의 제목만 보면, 배포판 기반 솔루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가 왠지 터키스러운 이름이 등장했다. 터키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개발하는 배포판 Pardus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였다. Pardus가 좀 상당히 특이한 게 파이썬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패키지 관리자 PiSi, 설정 관리자 ÇOMAR 등이 전부 파이썬 기반이다. 오늘의 발표는 KDE 4에 어떻게 설정 관리자를 통합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freedesktop 쪽 사람들도 엄청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어쩌면 freedesktop에서 나갈 무언가를 Pardus가 대신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표자는 freedesktop보다 일찍 작업을 시작했다는 걸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비록 나는 아깝게 놓쳤지만 Pardus 라이브도 들고 와서 참가자에게 나눠 주었다. 단순히 레드햇이나 페도라의 스냅샷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를 부요에 앞으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려면 Pardus를 많이 참고해야 할 것 같다.

Pardus BOF.

Pardus BOF.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었다.

CPack 잘 사용하기 BoF에서는 CPack을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패키징하는 방법을 이야기했다. CPack은 CMake에 딸려오는 패키징 툴이다. 다양한 플랫폼을 위한 설치 파일을 제공하는데 복잡해 보여서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대학교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대강 때우고 쿠분투 BoF에 들어갔다. 쿠분투는 우분투보다 커뮤니티 중심으로 개발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조나단 리델이 직접 나와서 쿠분투에서는 오픈오피스를 KDE 4로 포팅하고 이를 업스트림에 직접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무튼 이게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고, 우분투에 비해서 홍보도 덜 되는 등 ‘2급 시민’ 취급받는 것 같아서 영 불안하다는 내 의견도 이야기했다.

IT 건물 1층에는 각종 후원 기업들의 홍보물이 걸려 있었고, 바깥으로 살짝 나가 보니까 옛날 컴퓨터 부품들을 전시해 둔 진열장이 보였다. 카이스트도 이런 건 좀 보고 배워야 한다. 우분투, 노벨, 노키아 마에모 쪽에서 포스터를 건 게 살짝 보인다.

각종 기업들의 홍보물.

옛날 부품 전시장.

대학교 식당은 컨퍼런스 장소와 살짝 떨어져 있었다. 6.50유로에 미리 차려져 있는 밥 중 하나 선택+음료수+요구르트 조합을 제공했다. 좀 딱딱한 바게트 빵도 하나 낼름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쌀이 일명 월남쌀이라서 아쉽긴 했지만, 먼 타지에서 밥이 보여서 대학교에 있던 두 날 다 밥부터 낼름 집어먹었다. 학교 식당 치고는 상당히 맛도 있었다. 식당을 빠져나와 보니 각종의 자판기가 있어서 ‘굳이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BoF들이 다 끝나고 나서는 해킹 룸에서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었다. 나름 유선이 있어서 무선에 비하면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해킹 룸 분위기

해킹 룸 분위기

그렇게 오전 BoF들을 듣고 숙소로 돌아왔다. 왠지 이 숙소도 내일 모레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숙소 근처 사진을 찍었다. 내일 여행 끝나는 게 밤으로 예정되어 있고, 금요일 오전에 비행기가 떠나기 때문에 짐 정리 한다고 바쁠 것 같다.

GCDS 기간 동안 묵었던 별 하나짜리 호텔.

호텔 앞으로 나서면 보이는 Ripoche 거리. 여기에 슈퍼마켓이 있어서 다행이다.

절대로 그 누구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GCDS 2009 여행기 – 셋째날과 넷째날 (KDE 발표 및 e.V. 회의)

둘째날 파티가 끝나게 셋째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대강 짐을 꾸려 보았다. 처음에야 강당 가는 길을 몰라서 GPS를 켜고 바닷가를 걸었지만, 이제는 길을 알기 때문에 굳이 GPS를 안 켜더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셋째날은 마지막 Akademy이자, GUADEC 쪽은 하루 더 남아 있다.

Beauty 트랙에서는 Qt 소프트웨어 쪽 사람들이 와서 Qt 위젯과 그래픽스 뷰 이야기를 했다. 첫 발표는 Andreas Aardal Hanssen의 Qt 위젯의 진화 이야기이다. Qt에서 위젯을 포함하기 위한 여러 모델들을 소개하였다. 과거 사용했던 캔버스 모델이나, 그래픽스 뷰 모델 등의 이야기이다. 둘째 발표는 Ariya Hidayat의 그래픽스 뷰를 사용한 효과 이야기이다. 꽤 복잡해 보이는 Qt 코드를 사용해서 ‘플래시로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애니메이션 효과를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현재 개발 중인 Qt Kinetic 프레임워크와 합친다면 플래시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데스크톱 위젯 툴킷으로 구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Qt를 사용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보여 주기 위한 코드

Qt를 사용한 애니메이션 효과를 보여 주기 위한 코드

스페인어를 몰라서 간신히 시킨 커피와 상당히 독특한 레몬맛(한국에서는 이게 왜 안 나올까) 아이스크림을 먹고 다음 발표를 들으러 왔다. Artur de Souza가 진행하는 넷북용 Plasma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MID(삼성 넥시오, 노키아 인터넷 태블릿 등)를 위해서 계획되었으나 넷북 등의 하드웨어를 포함할 수 있도록 변경되었다. 바탕 화면을 여러 페이지로 나눠서, 각 페이지에 위젯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했다. 넷북의 작은 해상도 때문에 대부분 프로그램을 전체 화면으로 실행한다고 가정하였고, 따라서 별도의 창틀이 없다. 창 전환은 위젯 페이지 전환처럼 이루어진다. 아 뭐랄까 넷북 리믹스에 달려 나오는 형태를 보고 싶을 뿐이다. 우분투 넷북 리믹스는 그놈이라서 쓰기 싫다.

그 다음 디자인이라는 말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KDE 사람들이 낚여서(게다가 여자라는 이유도 추가) Celeste Lyn Paul의 디자인 강의를 들으러 갔다. 자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디자인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는데, 이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ASCII 아트부터 시작해서 목업 그림, 스크린샷을 사용한 목업, Qt 디자이너 등 여러 도구를 소개하였다. 디자인을 나타내야 하는 정도에 따라서 적절한 툴을 사용하며, 자유 소프트웨어로도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git는 현재 KDE의 엄청 강력한 떡밥이다. 백만 리비전을 자랑하는 서브버전 저장소를 어떤 도구를 사용해서 옮기든, 고통스럽지 않게 옮기는 것은 대작업이다. 단일 서브버전 저장소 치고는 규모도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분산 리비전 관리 시스템은 개별 구성요소별로 단일 저장소를 만드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KDE 구성 요소들을 모두 저장소 분리하면 약 400여개의 저장소가 탄생한다. Qt가 호스팅되어 있는 gitorious에서도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Simon Hausmann의 발표는 이런 사실을 정리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나서는 Oxygen 발표가 진행되었다. Nuno Pinheiro의 발표에서, Oxygen 테마를 디자인한 철학이나, 다양한 사용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테마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잠시 나가서 졸다가 비즈니스 트랙 때 다시 들어왔다. 상업적인 지원을 받는 KDE 프로그램 개발도 끌리지만,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돈 벌기’라는 발표에는 그놈 사람들도 낚여온 것 같다.

Till Adam의 발표에서는 그의 회사 KDAB에서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지 이야기했다. 정부 기관에서 벌어오는 수입도 일부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은 일반 기업을 상대로 돈을 번다고 한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구현하되 자유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는 점을 빼면 큰 차이는 없다. 단지 유럽 국가의 정부에서는 유럽 내부의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차이가 있다. Nikolaj Hard Nielsen과 Bart Cerneels의 발표에서는 Amarok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이야기했다. Amarok 1.4에 처음 추가된 Magnatune 기능을 통해서 처음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Amarok을 통해서 Magnatune에 가입한 사람이 생길 때마다 커미션을 주고, 광고료 자체도 조금씩 들어온다고 했다. Amarok 2.0 이후부터는 더 많은 서비스에서 돈을 빨아먹기를 지원하기 위해 서비스 API를 추상화했다.

지막으로 들은 Akademy 발표는 Frank Karlitschek의 자유 소프트웨어로 돈 벌기 발표였다. 발표에서 그는 여러 방법을 제시하였다. 기부 링크를 추가하고,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 자신을 광고하는 건 고전적인 방법이다. 특정 기능을 구현해 주는 데 현상금을 걸거나(KLDP에서 phpBB to Drupal 변환기를 만들 때 이 방법을 사용했다!) 지원을 돈 받고 하는 건 신선한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나온 자유 소프트웨어를 위한 앱스토어는 대단한 아이디어이다. 목업 스크린샷을 보니 Get Hot New Stuff를 사용한 것 같았다. 리눅스 사용자들이라면 컴파일이 대개 익숙하지만, 컴파일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 윈도나 맥 사용자들을 위해 바이너리를 팔자는 것이다. 엄청 좋은 생각이지만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자유 소프트웨어로 돈 벌기 발표의 일부

자유 소프트웨어로 돈 벌기 발표의 일부

모든 발표가 끝나고 Akademy 시상식이 열렸다. Adrian de Groot이 사회로 나갔고, 직전해 수상자들이 상을 전달해 주는 훈훈한 모습이 보였다. 작년에 Plasma로 상을 받은 Aaron Seigo가 올해 불참해서 대역이 나온 걸 보고 신기했다. 가장 좋은 프로그램 상은 Dolphin을 개발한 Peter Penz, 심사관의 선택 상은 KDE의 오랜 기여자 David Faure, 비 기술적 기여 상은 Celeste Lyn Paul에게 주어졌다. 작년 호스텔에서 방을 같이 썼던 Augustin Benito에게는 주최를 기념하는 특별상이 주어졌다.

2009년 Akademy 상 수상자들

2009년 Akademy 상 수상자들

Akademy 행사가 종료된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목걸이와 팔찌를 좀 사 갔다. 다다음 날부터는 Alfredo Kraus 강당에서 행사가 열리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일부러 나오지 않는다면 Las Canteras 해변으로 나올 일도 없을 것 같다.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사진을 좀 찍으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찍은 Las Canteras 해변

마지막으로 찍은 Las Canteras 해변

저녁을 잠시 해결한 후, 밤에 KDE 파티가 있었다. 첫 노키아 파티는 해안가 주변 클럽에서 진행했고 상당히 시끄러운 느낌이 강했다. 그에 반해서 KDE 파티는 산 중턱 클럽에서 진행했고 음악도 전날에 비하면 조용했다. 파티장까지 택시를 타고 가는데, 4.95유로(85였나)라는 요금은 둘째치고 택시 운전하는 법과 미터기 올라가는 속도가 감동이었다. 간이 떨리는 속도로 0.05유로(90원)씩 올라갔다. 파티장까지 약 4유로로 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40유로가 나올까봐 간이 떨렸다. 더 간이 떨리는 건 택시 운전사의 운전 솜씨인데 부산택시 저리가라다. 계기판 바늘 춤추는 거 보면서 이러다 나 죽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KDE 파티 진행 방식은 노키아 파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위기가 조용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더 좋았고, 여러 사람들과 말하다 보니까 쉽게 지쳐서 탈이었다. 다행히도 다음 날은 KDE e.V. 회의였고, 나는 KDE e.V.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참석하지는 않았다. 이것 하나만 믿고 늦잠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그 날 오전 11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넷째날 오전에는 AVGN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죽치다가, 오후 2시가 다 되어서 뭔가 배가 고파져서 머리를 대강 감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스페인식 낮잠 때문인지 대부분 식당이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을 따로 써 놨다. 공교롭게도 내가 나간 시간대는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영업을 중단하는 시간이라서 슈퍼마켓 빼고는 쓸만한 가게도 안 열었다. 그냥 시리얼이나 사 먹으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콘플레이크 한 통과 우유 한 통을 사 와서 저녁을 먹었다. 다섯째날부터는 Las Palmas de Gran Canaria 대학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아침에 이동하는 셔틀 시간을 감안해서 일찍 잤다.

GCDS 2009 여행기 – 둘째날

첫날 키노트를 듣느라 졸린 걸 뒤로 하고, 내일도 행사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씻고 잠부터 잤다. 오전에 공통 데스크톱 발표가 있었고, 오후부터는 다시 나뉘어서 진행된다. 알프레도 크라우스 강당 자체도 넓었고, 별관에서 진행되는 발표도 있었다. 내가 들은 발표는 자유 데스크톱에서의 오디오, 전력 관리였다. 전력 관리에 대해서 발표한 Matthew Garrett의 발표는 개념을 좀 뒤흔들었다. 그는 전력 관리는 사용자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용자가 전력 관리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절전 진입 시간과 화면 밝기 슬라이더만 있는 상당히 단촐한 UI를 제안했는데, 질의 응답 시간에 꽤나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발표 장소를 찾아가는 참가자

화제가 되었던 Matthew Garrett의 전력 관리 발표

별관 Music Hall. 초반에 골탕 좀 먹었다.

과연 스페인답게 점심 시간도 길었고, 중간중간 커피 마시는 시간도 있었다. 행사장에는 인텔이 지원해 준 커피와 아이스크림(나중에 아이스크림은 엄청 남았다고 한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완전한 공짜는 아니고, 하루 한 장씩 총 세 장의 쿠폰을 등록할 때 줬다. 여기서 또 당한 게 커피 파는 데 직원도 영어를 대강대강 알아들었다. 밀크 커피가 Cafe con leche라는 것 말고는 한 마디도 몰라서, 우유를 넣지 않은 커피를 시켜 보려고 고생했던 게 문득 떠오른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서 준 스티커 중 GNU/Linux Inside 스티커는 첫날 동이 다 났고, 나머지 스티커들은 행사가 진행 되는 동안 천천히 사라졌다. 첫 날 준 명찰에 그놈 쪽 참가자들은 불만이 있던 것 같다. 명찰에는 이름과 닉네임, 데스크톱 서밋 로고가 찍혀 있었고, 그놈 진영의 불만을 불러온 건 바로 Qt 로고였다. 행사장에는 ID Patch(이름 참 귀엽지 아니한가)가 놓여 있어서 이름표의 Qt 로고 위에 붙이라는 친절한 배려도 해 줬다. 바깥에서 보면 참 웃길 것 같지만, 나는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한다.

행사장 뒤편으로 보이는 바다

스티커 협찬: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공짜임.

ID Patch. Qt 로고를 그놈 발바닥으로 바꿔 준다.

커피 시간이 끝나고 나서 Kate Alhola의 마에모 5에 사용된 애니메이션 UI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마에모 5는 개발이 거의 다 끝났고, OpenGL ES 2.0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OpenGL/OpenGL ES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줬는데 이게 좀 설명하기 미묘한 맛이 있다. 단순한 포함관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포팅이 좀 까다롭다는 말도 하였다. N800/N810의 TI OMAP 프로세서에 내장된 그래픽 엔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GPL 드라이버가 없어서라고 했는데, 앞으로 나올 인터넷 태블릿도 GPL의 저주를 피해가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감질맛 나는 한마디: “노키아는 GPL을 지키기 원합니다.”

Kate Alhola

Kate Alhola의 발표. 도대체 좋은 사진이 없어서 그나마 상태가 나은(;;) 걸 골랐다.

다음에 들은 이야기는 Bastin Nocera의 블루투스 이야기다. BlueZ의 역사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설명하고, 그놈 블루투스 프레임워크 이야기를 길게 하였다. 기능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광경을 보면서, KDE 4로 채 포팅되지도 못한 KBluetooth 생각이 나서 좀 안타깝기도 했다. 블루투스라는 신기한 괴물을 다루는 데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는 Albert Astals Cid의 poppler 라이브러리였다. poppler는 xpdf를 기반으로 하며, xpdf를 라이브러리로 구현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래서 xpdf의 구조나 라이선스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며, 의존성이 거의 없는 xpdf와는 달리 다양한 외부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수 있다. xpdf의 개발 과정은 외부에 거의 열려 있지 않고 릴리즈도 상당히 띄엄띄엄 나오는 데 반해, poppler는 freedesktop에서 호스팅을 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좀 공식적인 poppler 소개다.

발표 중 CJK 지원 이야기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았다. 우선 회귀 테스트 이야기가 나왔다. 약 1만개의 pdf를 사용해서 회귀 테스트를 하며, 리비전이 올라갈 때마다 회귀 테스트를 통해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고쳐졌는지 확인한다. 웹 브라우저의 렌더링과는 달리 PDF 렌더링은 어도비 PDF라는 참조 렌더링이 있어서 그나마 쉽다고 한다. 회귀 테스트를 할 때, latin-1 이외의 문자를 사용하는 PDF 파일이 많이 없어서, 더 나은 CJK 지원을 위해서라면 테스트용 PDF 파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한글 11172자와 옛한글 이야기도 같이 하면서 헤어졌다.

Albert Astals Cid

Albert Astals Cid의 발표. 발표 끝나고 나서 얻은 게 더 많았다.

여기까지는 공통 데스크톱 발표이고, 이 다음부터 개별 데스크톱 세션이 진행되었다. Akademy의 첫 키노트는 Glyn Moody의 “왜 해커들이 세계를 구하는가”였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위키백과 등등의 사례를 들면서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뤂이 좋아할 것 같아서 엄청난 떡밥을 던져 줬는데, 아직까지 발표 자료가 올라오지 않아서 기억을 되살려주기는 좀 힘들 것 같다.

KDevelop 4와 Qt Creator에 대한 발표를 한 세션에서 같이 들으면서, 이 둘의 설계 철학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KDevelop은 다른 KDE 프로그램처럼 엄청난 기능 집약적 IDE인 한편, Qt Creator는 순수하게 Qt만을 위한 IDE로 탄생하였다. Qt의 개발이 최근 전격 공개된 데 힘입어 Qt Creator와 같은 부수적인 도구들도 공개되었다. Qt Creator 발표는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마음껏 소스를 고쳐 달라는 말로 끝났다. 행사장 주변에는 Qt Creator 단축키 목록이 적혀 있는 Cheat Sheet가 많이 보였다.

다음으로 들은 발표는 지역화 세션으로, 하우사어(나이지리아의 공용어 중 하나) 번역 작업과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KDE였다. 작년 Akademy 때 문득 아프리카 쪽 사람을 본 듯 한데, 그 사람이 왠지 발표를 할 것 같아서 찾아가 보았다. 아프리카의 상황이 어떨가 많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발표를 할라고 강단에 올라간 사람은 Adrian de Groot이었다. 스페인 비자가 거부되어 대신 발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 대한 이야기 잠깐, 나이지리아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다루기 위해서 드는 노력과 FOSS Nigeria 행사 홍보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발표를 들은 사람은 어째서인지 작년에 내가 Transcript에 대해서 발표를 했을 때보다 한참 적었지만, 다들 궁금한 점은 하나씩 가지고 올라왔다.

라틴 아메리카 KDE와 구글 섬머 오브 코드 학생 프로젝트 이야기로 그 날의 발표가 끝났다. 노르웨이에 있는 여러 대학교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Qt 소프트웨어에서 협찬을 받아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그 날 발표에서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했는가에 대해서 짤막한 이야기를 했다. 이것으로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고, 노키아가 지원하는 환영 파티가 저녁에 열렸다.

작년 Akademy 때의 교훈을 되살려서 최대한 가벼운 복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내 노트북이 왠지 마음에 좀 걸린다.
호텔 프론트 근처에 있는 열쇠가 달려 있는 상자를 이용하려는데 프론트에 있는 직원이 영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종이에
숫자를 써 가면서 돈을 얼마 내야 하는지를 대강 알려줬다. 보증금 8유로(나중에 돌려받음)와 사용료 12유로(못 돌려받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직원이 끊어 준 영수증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리 노키아가 망해 간다고 한국 언론에서 떠들어도(원문 기사를
찾아보니 엄청나게 상세한 반박글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쓰여 있다.) 스폰서는 확실하게 해 줬다. 파티에 들어갈
때 맥주, 와인, 탄산음료 쿠폰을 세 장 주고, 그걸로 뭔가 마시면 된다. 쿠폰 자체도 꽤나 남아 있어서 얼마든지 더 마셔도
되었고, 그냥 세 잔에서 끝내도 되었다. 술이나 음료를 마시는 그 자체보다는 파티에서 오고가는 이야기가 꽤나 많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작년 파티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음료는 중앙에서 마실 수 있었고, 직원들이 돌면서 각종의 안주를 줬다. 거기서 먹은 치즈 맛은 잊을 수 없었지만, 회가 들어간 김밥인지 캘리포니아 롤인지는 참 잊을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쌀이 들어가서 반가운 느낌이었다. 역시 동양인들은 파티 체질이 아니어서인지, 12시를 좀 넘긴 무렵에 방으로 돌아와서 일단 잠부터 청했다. 아침 10시부터 또 발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KDE 발표가 시작될 때부터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아서 글 후반부에는 사진이 없다. 셋째날 역시 사진이 적기는 마찬가지라서, 다음 여행기는 천천히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