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DS 2009 여행기 – 둘째날

첫날 키노트를 듣느라 졸린 걸 뒤로 하고, 내일도 행사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씻고 잠부터 잤다. 오전에 공통 데스크톱 발표가 있었고, 오후부터는 다시 나뉘어서 진행된다. 알프레도 크라우스 강당 자체도 넓었고, 별관에서 진행되는 발표도 있었다. 내가 들은 발표는 자유 데스크톱에서의 오디오, 전력 관리였다. 전력 관리에 대해서 발표한 Matthew Garrett의 발표는 개념을 좀 뒤흔들었다. 그는 전력 관리는 사용자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사용자가 전력 관리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절전 진입 시간과 화면 밝기 슬라이더만 있는 상당히 단촐한 UI를 제안했는데, 질의 응답 시간에 꽤나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발표 장소를 찾아가는 참가자

화제가 되었던 Matthew Garrett의 전력 관리 발표

별관 Music Hall. 초반에 골탕 좀 먹었다.

과연 스페인답게 점심 시간도 길었고, 중간중간 커피 마시는 시간도 있었다. 행사장에는 인텔이 지원해 준 커피와 아이스크림(나중에 아이스크림은 엄청 남았다고 한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완전한 공짜는 아니고, 하루 한 장씩 총 세 장의 쿠폰을 등록할 때 줬다. 여기서 또 당한 게 커피 파는 데 직원도 영어를 대강대강 알아들었다. 밀크 커피가 Cafe con leche라는 것 말고는 한 마디도 몰라서, 우유를 넣지 않은 커피를 시켜 보려고 고생했던 게 문득 떠오른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서 준 스티커 중 GNU/Linux Inside 스티커는 첫날 동이 다 났고, 나머지 스티커들은 행사가 진행 되는 동안 천천히 사라졌다. 첫 날 준 명찰에 그놈 쪽 참가자들은 불만이 있던 것 같다. 명찰에는 이름과 닉네임, 데스크톱 서밋 로고가 찍혀 있었고, 그놈 진영의 불만을 불러온 건 바로 Qt 로고였다. 행사장에는 ID Patch(이름 참 귀엽지 아니한가)가 놓여 있어서 이름표의 Qt 로고 위에 붙이라는 친절한 배려도 해 줬다. 바깥에서 보면 참 웃길 것 같지만, 나는 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한다.

행사장 뒤편으로 보이는 바다

스티커 협찬: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공짜임.

ID Patch. Qt 로고를 그놈 발바닥으로 바꿔 준다.

커피 시간이 끝나고 나서 Kate Alhola의 마에모 5에 사용된 애니메이션 UI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마에모 5는 개발이 거의 다 끝났고, OpenGL ES 2.0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OpenGL/OpenGL ES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줬는데 이게 좀 설명하기 미묘한 맛이 있다. 단순한 포함관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포팅이 좀 까다롭다는 말도 하였다. N800/N810의 TI OMAP 프로세서에 내장된 그래픽 엔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GPL 드라이버가 없어서라고 했는데, 앞으로 나올 인터넷 태블릿도 GPL의 저주를 피해가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감질맛 나는 한마디: “노키아는 GPL을 지키기 원합니다.”

Kate Alhola

Kate Alhola의 발표. 도대체 좋은 사진이 없어서 그나마 상태가 나은(;;) 걸 골랐다.

다음에 들은 이야기는 Bastin Nocera의 블루투스 이야기다. BlueZ의 역사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설명하고, 그놈 블루투스 프레임워크 이야기를 길게 하였다. 기능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광경을 보면서, KDE 4로 채 포팅되지도 못한 KBluetooth 생각이 나서 좀 안타깝기도 했다. 블루투스라는 신기한 괴물을 다루는 데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들은 이야기는 Albert Astals Cid의 poppler 라이브러리였다. poppler는 xpdf를 기반으로 하며, xpdf를 라이브러리로 구현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래서 xpdf의 구조나 라이선스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며, 의존성이 거의 없는 xpdf와는 달리 다양한 외부 라이브러리를 사용할 수 있다. xpdf의 개발 과정은 외부에 거의 열려 있지 않고 릴리즈도 상당히 띄엄띄엄 나오는 데 반해, poppler는 freedesktop에서 호스팅을 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좀 공식적인 poppler 소개다.

발표 중 CJK 지원 이야기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았다. 우선 회귀 테스트 이야기가 나왔다. 약 1만개의 pdf를 사용해서 회귀 테스트를 하며, 리비전이 올라갈 때마다 회귀 테스트를 통해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고쳐졌는지 확인한다. 웹 브라우저의 렌더링과는 달리 PDF 렌더링은 어도비 PDF라는 참조 렌더링이 있어서 그나마 쉽다고 한다. 회귀 테스트를 할 때, latin-1 이외의 문자를 사용하는 PDF 파일이 많이 없어서, 더 나은 CJK 지원을 위해서라면 테스트용 PDF 파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한글 11172자와 옛한글 이야기도 같이 하면서 헤어졌다.

Albert Astals Cid

Albert Astals Cid의 발표. 발표 끝나고 나서 얻은 게 더 많았다.

여기까지는 공통 데스크톱 발표이고, 이 다음부터 개별 데스크톱 세션이 진행되었다. Akademy의 첫 키노트는 Glyn Moody의 “왜 해커들이 세계를 구하는가”였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위키백과 등등의 사례를 들면서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뤂이 좋아할 것 같아서 엄청난 떡밥을 던져 줬는데, 아직까지 발표 자료가 올라오지 않아서 기억을 되살려주기는 좀 힘들 것 같다.

KDevelop 4와 Qt Creator에 대한 발표를 한 세션에서 같이 들으면서, 이 둘의 설계 철학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KDevelop은 다른 KDE 프로그램처럼 엄청난 기능 집약적 IDE인 한편, Qt Creator는 순수하게 Qt만을 위한 IDE로 탄생하였다. Qt의 개발이 최근 전격 공개된 데 힘입어 Qt Creator와 같은 부수적인 도구들도 공개되었다. Qt Creator 발표는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마음껏 소스를 고쳐 달라는 말로 끝났다. 행사장 주변에는 Qt Creator 단축키 목록이 적혀 있는 Cheat Sheet가 많이 보였다.

다음으로 들은 발표는 지역화 세션으로, 하우사어(나이지리아의 공용어 중 하나) 번역 작업과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KDE였다. 작년 Akademy 때 문득 아프리카 쪽 사람을 본 듯 한데, 그 사람이 왠지 발표를 할 것 같아서 찾아가 보았다. 아프리카의 상황이 어떨가 많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발표를 할라고 강단에 올라간 사람은 Adrian de Groot이었다. 스페인 비자가 거부되어 대신 발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 대한 이야기 잠깐, 나이지리아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다루기 위해서 드는 노력과 FOSS Nigeria 행사 홍보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발표를 들은 사람은 어째서인지 작년에 내가 Transcript에 대해서 발표를 했을 때보다 한참 적었지만, 다들 궁금한 점은 하나씩 가지고 올라왔다.

라틴 아메리카 KDE와 구글 섬머 오브 코드 학생 프로젝트 이야기로 그 날의 발표가 끝났다. 노르웨이에 있는 여러 대학교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Qt 소프트웨어에서 협찬을 받아서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그 날 발표에서는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했는가에 대해서 짤막한 이야기를 했다. 이것으로 둘째 날의 일정이 모두 끝났고, 노키아가 지원하는 환영 파티가 저녁에 열렸다.

작년 Akademy 때의 교훈을 되살려서 최대한 가벼운 복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내 노트북이 왠지 마음에 좀 걸린다.
호텔 프론트 근처에 있는 열쇠가 달려 있는 상자를 이용하려는데 프론트에 있는 직원이 영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종이에
숫자를 써 가면서 돈을 얼마 내야 하는지를 대강 알려줬다. 보증금 8유로(나중에 돌려받음)와 사용료 12유로(못 돌려받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직원이 끊어 준 영수증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리 노키아가 망해 간다고 한국 언론에서 떠들어도(원문 기사를
찾아보니 엄청나게 상세한 반박글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쓰여 있다.) 스폰서는 확실하게 해 줬다. 파티에 들어갈
때 맥주, 와인, 탄산음료 쿠폰을 세 장 주고, 그걸로 뭔가 마시면 된다. 쿠폰 자체도 꽤나 남아 있어서 얼마든지 더 마셔도
되었고, 그냥 세 잔에서 끝내도 되었다. 술이나 음료를 마시는 그 자체보다는 파티에서 오고가는 이야기가 꽤나 많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작년 파티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거울삼아, 이번에는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면서 잡다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음료는 중앙에서 마실 수 있었고, 직원들이 돌면서 각종의 안주를 줬다. 거기서 먹은 치즈 맛은 잊을 수 없었지만, 회가 들어간 김밥인지 캘리포니아 롤인지는 참 잊을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쌀이 들어가서 반가운 느낌이었다. 역시 동양인들은 파티 체질이 아니어서인지, 12시를 좀 넘긴 무렵에 방으로 돌아와서 일단 잠부터 청했다. 아침 10시부터 또 발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KDE 발표가 시작될 때부터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아서 글 후반부에는 사진이 없다. 셋째날 역시 사진이 적기는 마찬가지라서, 다음 여행기는 천천히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