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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베를린 여행기 – 3

8월 9일에는 포츠담 상수시 궁, 작센하우센 수용소를 둘러보았고, 8월 10일에는 베를린 통신 박물관, 8월 11일에는 베를린 지하 벙커 관광, 8월 12일에는 동독 박물관 등을 다녀왔다. 이미 이 시점에서는 Desktop Summit 정규 프로그램이 끝났고, KDE e.V. 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e.V. 모임에 들어가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BoF 세션 참가는 정규 발표에 비하면 널널하기 때문에 관광에 쓸 시간이 많이 있었다. 인텔에서 AppUp 프로그램을 소개하면서(지금은 확실히 망했다고 기억하지만) 별도의 신청을 받는 BoF를 열었는데 여기에서 기념품으로 아톰 기반 태블릿 ExoPC를 나눠 주는 사태가 발생했고, 나는 그 시간대의 다른 BoF를 듣는다고 이걸 취소해 버리는 바람에 눈 앞에서 ExoPC를 놓쳐 버렸다. 이 사건의 교훈으로 나는 별도의 신청을 받는 BoF가 있다면 신청을 해 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외에도 번역자 BoF가 내 기억이 맞다면 이 해부터 진행되었고, 그 이후 KDE 번역자들끼리 Akademy에서 계속 만나고 있다.

모든 여행의 출발점은 숙소 근처인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이었다. 제3제국 시기 베를린에 있었던 유대인들이 빠져나가는 통로이자, 베를린으로 집결하여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는 허브 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아래에 있는 동상은 이들의 엇갈리는 운명을 나타낸 삶을 향한 열차, 죽음을 향한 열차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베를린 분단 이후 과거 동베를린에 있었고, 서베를린과 동베를린 간 국경역으로 활용되었다. 역 앞을 지나는 지하철 U6호선은 베를린 분단 시기엔 잠시 동베를린 구간을 지났는데 이 역에서 환승이 가능하다. 국경 통과 지점 주변은 서독과 동독의 가족이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는 뜻으로 Tränenpalast라고 불렸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 앞 동상

프리드리히슈트라세 역 앞 동상

포츠담은 베를린의 서쪽에 있고, RE/RB/S반으로 이동할 수 있다. 포츠담에서는 상수시 궁을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인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이동하였다. 나치 시기 중부 및 동부 유럽에 많은 강제 수용소가 건설되었고, 현재는 해체되거나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작센하우젠 수용소는 지금의 독일 영토 내에 남아 있는 수용소 중 가장 큰 규모이며, 동독이 살아 있었을 때에는 소련군에 의해서 비슷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유명한 문구인 “Arbeit Macht Frei”의 복제품은 여기에도 있다. 수용소가 해방되기 전 죽음의 행진을 기념하는 비석이 설치되어 있다.

베를린의 통신 박물관은 전신, 우편, 현대의 통신에 관해서 다루고 있으며 DHL로 유명한 현대 독일 우편이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근처에 있는 커리부어스트(Currywurst) 박물관은 전후 베를린의 경제 상황에서 어떻게 커리부어스트가 탄생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소시지를 구워서 카레 가루와 케찹을 쳐서 내놓는 음식이지만, 베를린 시내에서는 패스트푸드 가게와 술집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베를린 게준트브루넨(Gesundbrunnen) 역에서는 베를린 지하 투어에 참가할 수 있다. 게준트브루넨 역 근처에 매표소에서 투어를 시작할 수 있으며, 사람이 꽤나 많기 때문에 일찍 와서 예약해야 한다. 내가 참가했던 베를린 지하 관광은 게준트브루넨 역 근처의 나치 시기 지하 벙커에서 시작하였다. 그 때의 벙커는 전기를 사용하려면 직접 발전기를 돌리는 시스템이었고, 폭격을 견딜 수 있는 수준의 단순한 벙커였다. 베를린 분단 이후 서베를린 지역에 지어진 벙커는 내부가 현대화되었고, 비상 식량과 식수를 나치 시기 벙커보다 더 많이 저장할 수 있었다. 현재 이 벙커는 당초 계획된 목적을 상실하고 관광 자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만에 하나 비상 사태가 생기면 원래 목적대로 복원이 가능할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박물관 섬 근처에는 동독 박물관이 있으며, 동독 시기의 정치사보다는 동독 국민의 생활사를 위주로 전시하고 있다. 동독에서 사용되었던 소비재와 더불어 슈타지의 감시가 어떠한 식으로 진행되었고, 동독의 의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상당히 재미있는 모형으로 만들어 두었다. 손잡이를 돌리면 안건이 전환되고 동독 의회 의원들이 전부 손을 든다. 하나의 안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안건들이 돌아가면서 튀어나오긴 하는데 손을 다같이 든다는 점은 완전히 동일하다.

이 외에도 베를린 TV 송신탑, 박물관 섬의 나머지 박물관 근처를 둘러보기는 했지만 시간상의 이유로 전부 입장해 보지는 못했다. TV 송신탑은 3년 후 다른 이유로 방문하게 된다. Akademy가 끝난 다음에는 다른 숙소로 이동하여 독일 동부를 잠깐 동안 둘러볼 준비를 하였다.

2011년 Desktop Summit 여행기 – 2

컨퍼런스 일정은 8월 7일과 8일로 이어졌고, 여러 가지 발표들이 흘러갔다. 아래 사진들은 당시 들었던 발표 중 일부를 포함하고 있고, 발표 중 기억에 남는 것들 위주로 이야기하겠다. LibreOffice 개발에 관한 발표에서는 재미있는 사실을 얻을 수 있었다. 2011년 당시에는 선이 오라클에 인수되면서, 선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OpenOffice.org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었다. 2010년 11월에 LibreOffice가 갈라졌고, 2011년 8월은 LibreOffice가 몇 개의 버전을 내놓은 이후였다.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일화 중에는 일상적일 수도 있는 코드 재정리도 있었지만, 독일어로 된 주석을 번역하는 것을 자동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점은 마냥 웃기만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영어권에서 시작한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발표에서는 웹 브라우저의 플러그인으로 작동하는 LibreOffice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Qt 4.2부터 추가된 CSS를 사용한 위젯 꾸미기 기능 덕분에, 그놈에서도 비슷한 기능을 어떻게 구현했나 호기심이 생겨서 그놈 쪽의 발표도 들어가 보았다.

점심 직전의 키노트인 무한한 종류의 장치에 대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에서는 여러 종류의 다른 장치에 필요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폭소가 터진 슬라이드 중에는 사용자의 데이터 제어권에 관한 슬라이드가 있었다. PRISM 사태가 터지면서 무분별한 정보 수집에 관하여 사용자들의 인식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이 키노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오픈수세에서 시작한 오픈 빌드 서비스는 빌드 팜을 다른 프로젝트에게도 제공해 주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빌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페도라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systemd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쯤이었으며, systemd의 디자인에 관한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init.d에서 결별하는 것이 systemd의 디자인 목표이고, 리눅스 이외의 다른 시스템에서는 다른 종류의 init를 구현해 두었기 때문에 systemd는 리눅스에서만 볼 수 있는 기능들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다.

비록 KDE가 유럽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갈수록 인도에서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고(그놈과는 달리 동아시아 지역 개발자들을 찾기는 어렵지만…) 커뮤니티 역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인도 지역 커뮤니티의 성장은 Akademy를 참석할 때마다 눈여겨 볼 수 있었는데, 2008년에 얼마 없었던 인도 사람들은 해가 가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데스크톱 서밋이었던 만큼 자유 소프트웨어 데스크톱에 관한 일반적인 발표도 볼 수 있었는데, 유럽 지역에서는 점진적으로 자유 데스크톱을 도입하는 국가가 늘어난다는 발표도 있었다. 인도에서의 도입에 관한 발표도 들어볼 수 있었는데, 유럽 지역의 발표와는 달리 숫자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이어붙인 듯한 발표여서 자세한 정보가 더 궁금해졌다.

이외 들었던 발표는 과학적 데이터 시각화에 오픈소스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으며, 내가 큰 영향을 주었던 룸메이트 덕분에 약간의 배경 지식은 있었지만 그 친구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평소 소식을 듣기 힘들었던 E17에 관한 발표도 있어서 오픈소스 데스크톱에는 그놈과 KDE만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계기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시기 삼성이 모바일 UI에 사용하기 위해서 E17에 투자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뭔가 제품화된 성과가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닫는 발표는 그놈과 KDE가 서로에서 어떤 것을 배웠는가를 들었고, 올해의 행사가 베를린 시 정부의 버프를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던 강렬한 스폰서 프레젠테이션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발표 날 저녁 때 허준회 님과 함께 베를린 시내의 식당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같이 먹고 들어갔다.

발표는 이 정도로 접어 두고, 이틀째인 7일 저녁에는 Beach at the Box에서 맥주 파티가 있었다. 분명히 베를린은 바다와는 떨어져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 위치가 슈프레 강을 끼고 해변처럼 꾸며져 있어서 나름 바닷가 분위기가 났다. 맥주와 소시지가 빠지면 독일식 파티라고 하기는 서운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호스텔이 시내 중심부에 있었고 근처에 베를린 장벽이 지났던 곳도 있어서 파티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잠시 베를린 장벽 주변을 보고 왔다. 현재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곳은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베를린 시내의 체크포인트 찰리 주변은 장벽이 있었던 당시를 일부 남겨 두었고 그 당시의 역사에 대한 전시물이 일부 있다. 지금이야 발로 건너다닐 수 있었지만 장벽이 있었을 때의 풍경은 과연 같은 지점이 맞나는 생각도 들게 하였다.

컨퍼런스가 열린 학교 주변으로는 베를린 노면 전차가 지나가고 있었고, 베를린 노면 전차 차량도 볼 수 있었다.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된 타트라 KT4D를 개조한 바 차량인 FahrBar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그 다음으로 도입된 ADtranz GT6N도 있었다. 베를린 분단 당시 U-Bahn 노선망은 대부분 서베를린에 집중되어 있었고, 동베를린으로 들어가는 U-Bahn 노선은 U2호선의 동부 구간 및 U5호선의 전 구간이다. 서베를린의 교통망이 U-Bahn 중심으로 발전한 반면 동베를린은 노면 전차 및 트롤리버스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현재에도 노면 전차 노선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고 U-Bahn은 서부에 집중되어 있다. 훔볼트 대학교가 과거 동베를린에 있었던 만큼, 학교 주변에서 트램을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을 것이다.

베를린이 분단되어 있었던 동안 S-Bahn은 동독 DR에서 운영하였다. 서베를린 지역으로 운영하였던 S-Bahn은 동독에 짭짤한 외화를 벌어다 주었고, 당시 서베를린 지역의 S-Bahn 노동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서독에서 일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베를린이 분단되어 있었던 동안 경계선에 걸쳐 있었던 노선은 유지 보수가 어려웠고, 1980년에는 파업도 일어나서 S-Bahn도 파행 운영하였다. 현재 운행 중인 베를린 S-Bahn 차량은 대부분 이 시기 이후에 들어왔다. 1984년 서베를린 지역의 S-Bahn 운영이 서베를린 BVB로 넘어가면서 서독 소유의 차량을 제작해야 했고, 이는 현재도 운행 중인 480 차량이다.동베를린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485 차량을 도입하였다. 독일 통일 이후에 끊겼던 동서간 S-Bahn 연결이 복구되면서 과거 동베를린에서 사용하였던 오래된 차량이 전부 퇴역하였고, 481 차량이 대거 도입되었다. 워낙 대차된 차가 많았기 때문에 현재는 480/485 차량은 보기 어렵고 대부분 차량은 481로 운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베를린에 있었던 동안 480 차량은 보지 못했고, 481 및 485 차량은 한 대씩 마주쳤다.

훔볼트 대학교 안에는 헤겔 동상과 막스 플랑크가 있었다는 판도 볼 수 있었다.

워낙 많은 발표가 있었던 탓에 일정을 소화한다고 꽤나 힘들었고, 그래서 다음 날부터 있었던 KDE e.V. 회의 및 각종 BoF들은 전보다는 조금 느슨하게 참가했다. 이 날 이후부터는 거의 베를린 주변 관광으로만 일정을 짜서 컨퍼런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Desktop Summit 여행기 – 1

2010년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었던 다른 Akademy 여행기를 이제 쓸 시간이 되었다. 2014년의 Akademy는 예년과는 다르게 9월 초순에 열릴 예정인데, 문제는 추석 연휴가 이 때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 수 있을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2013년까지의 여행기를 빨리 써 두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2011년 늦봄부터 대학원 진학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2011년 여름에는 시간을 많이 내기 어려웠고, 그래서 2011 Desktop Summit을 전후로 한 독일 여행은 그렇게 오래는 다녀오지 못했다.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났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은 좀 지워지기도 해서 2011년 이후 여행기는 2010년 여행기만큼의 글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이 나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써 볼 것이다.

2011년 Desktop Summit는 2009년 그란 카나리아 이후로 두 번째로 열린 KDE와 GNOME이 힘을 합쳐서 연 컨퍼런스이다. 공식 일정은 2011년 8월 5일부터 1주일간이었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2010년까지 사용했던 캐논 A95(카나리아 제도의 태양열에 CCD가 맛이 갔던)의 가장 불편했던 점이 AA 건전지 4개였고 북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건전지의 부족을 제대로 느꼈기 때문에, 2011년에는 가급적 리튬 충전지를 사용하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싶었고 그 결과 카메라를 니콘 P300으로 교체하였다. 8월 5일 KLM 암스테르담 경유편으로 베를린 테겔 공항까지 갔고, 베를린 테겔에는 밤 늦게 도착했지만 동행을 찾을 수 있어서 호스텔까지는 문제 없이 갔다.

KLM 인천-암스테르담 비행기

KLM 인천-암스테르담 비행기

컨퍼런스가 열렸던 장소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였다. 기억이 남아 있는 2012/2013년과는 달리, 2011년의 데스크톱 서밋은 그놈, KDE, 다른 데스크톱 환경 사람들의 발표가 섞여 있었고 또한 그만큼 일정의 밀도가 높았다. 당시에는 흥미 있었던 발표를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사진을 기반으로 해서 기억을 되살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첫 발표는 인텔의 Dirk Hohndel이 했고, 인텔에서의 오픈소스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분은 2012년과 2013년 Korea Linux Forum 때에도 한국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다음으로 들었던 두 개발표는 새로운 사람들을 어떻게 찾고 이들과 잘 어울리는 방법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발표였다. 팀이 커지다 보면 어디를 가든지 문제가 생기게 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텔은 2011년 당시 큰 스폰서였고 행사장 곳곳에서 인텔 로고가 찍혀 있는 클럽-마테를 볼 수 있었다. 여름의 베를린은 은근히 더워서 음료수가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오후 첫 발표 중에는 WebKit의 Clutter 포팅 이야기를 들었고, 당시 Collabora에 재직 중이었던 허준회 님이 발표의 절반을 진행하였다. 2009년 Desktop Summit에서 처음 만난 이후 베를린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발표가 끝난 다음에는 Qt가 KDE에 하는 기여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지금이야 풉 망해버린 노키아지만, 당시의 노키아는 Qt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가 강했고, 그 때의 장밋빛 로드맵은 비록 완벽하게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모바일에 대해서는 Jolla와 블랙베리 10에서 그 흔적을 지금도 찾아 볼 수는 있다. 오후 발표의 끝을 장식했던 것 중에는 그놈/KDE 학생 개발자들의 성과를 소개하는 것이 있었으며, 그 때의 충격은 상당했기 때문에 2011년 가을에 제주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녁의 발표는 저작권 양도에 관련된 패널 토론이었고, 이 발표를 다 듣고 나니 오후 7시가 되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는 1810년에 설립된 베를린 시 중심에 있는 대학교이며, 알렉산더 폰 훔볼트빌헬른 폰 훔볼트의 전신상을 학교에서 찾을 수 있었다.(학교의 이름은 이 두 형제에서 붙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를린 분단 당시 이 학교는 동독/동베를린에 속했으며, 서독에서는 베를린 자유 대학교를 비슷한 목적으로 설립하게 되었다. 공산 동독의 엘리트 학교였던 훔볼트 대학교는 독일 통일 이후 교수진이 완전히 교체되는 등 공산 체제의 영향을 지우고 현대적인 학교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학교 주변에는 막심 고리키 극장, 브란덴부르크 문 등 베를린 시내의 큰 볼거리가 많이 있었고 숙소 또한 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첫날에는 별다른 파티가 없었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길게 이어진 일정을 소화한다고 일찍 들어가서 잤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21-ᅟ25일

시간은 2013년이고 그 동안 2011, 2012, 2013년 Akademy를 다녀 왔으나 여행기가 계속 안 올라왔기 때문에 이제 여행기를 마무리지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시간도 오래 되었고 디테일에도 큰 기억은 나지 않기 때문에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하겠다. 게다가 일단 독일로 들어온 이후에는 북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쌓였던 피로를 푸는 목적도 컸기 때문에, 북유럽 때에 비해서 밀도가 높은 여행을 하지도 않았다.

7월 30일. 쾰른에 도착한 이후 그 날 오전 일찍 대성당에 올랐다. 대성당 정상에 오르려면 일단 밥을 먹고 가는 게 좋은데, 엘리베이터 그런 거 없던 시대의 건물이기도 하고 절대적인 높이도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 부근으로 올라가면 계단의 경사도가 가팔라지는 등 그렇게 호락호락한 건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그 날 오전을 거의 먹지 않고 오르는 짓을 했기 때문에 내려오자 마자 일단 무언가부터 먹어야 했다. 쾰른 Hbf에서 바로 보이는 3복선짜리 철도 교량 호헨촐레른 철교를 둘러보고 왔는데, 보행자 교량 쪽에 걸려 있는 자물쇠가 상당히 많다. 점심을 해결한 다음 린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초콜릿 박물관을 둘러보고 라인 강가를 산책하다가 돌아왔다.

7월 31일 오전에는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였다. 쾰른-프랑크푸르트 간은 고속선과 기존선이 병행하는데, 기존선은 라인 강가를 따라서 좌우안 모두에 걸쳐져 있다. 강 주변 경치를 보기 위해서 ICE를 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IC 열차에 탑승하였다. 라인 강가의 경치를 보고 있는 동안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고, 열차는 규모가 상당히 큰 프랑크푸르트 Hbf에 도착하였다. 사실 프랑크푸르트 시내는 꽤 작은데다가 현대에 와서 건축된 건물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가면 실망할 수도 있다. 구 시가지라고 만들어 놓은 것도 규모가 생각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는 동안 한국 식당을 프랑크푸르트에 와서야 겨우 찾긴 했지만, 귀국을 앞두고 있어서 굳이 들어가 볼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8월 2일. 1달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핀에어 항공편으로 헬싱키 경유 집으로 가는데, 헬싱키 공항에서 좀 쇼핑을 하다가 가려고 했다. 당시 사고 싶었던 노키아 N900을 공항 면세점에서 집으려고 했으나, 500유로라는 믿기 힘든 가격 때문에 결제를 단념했다. 이어폰과 같은 다른 걸 살려고 해도 카드가 이상하게 긁히지 않았고, ATM을 찾으려고 해도 출국 심사를 이미 거쳤기 때문에 현금 인출도 물건너 갔다. 결국 헬싱키 반타 공항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8월 3일 오전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 인천국제공항철도 직통열차(당시는 김포공항까지만 운행)의 한 칸을 거의 전세내다시피해서 김포로 갔다. 거기에서 에어부산 비행기로 갈아타고 돌아오는 것으로 한 달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인천국제공기철도 직통열차

인천국제공기철도 직통열차

2011년부터 2013년까지의 여행기도 업로드해야 하는데 이 속도로 가다가는 언제 다 끝날지 알기가 어렵다. 이로서 2010년 여행기 완성.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19/20일

오르후스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드디어 노르딕 국가를 벗어난다는 생각으로 오르후스 역으로 갔다. 그 다음 ICE-TD에 올라서, 호차 번호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엉뚱한 자리에 앉아서 독일까지 갈 뻔 했다. 현재 덴마크와 독일을 연결하는 국제 열차편은 함부르크-오르후스/코펜하겐 편이 있으며 전자는 육로, 후자는 해로를 통하여 연결된다. 비록 코펜하겐까지 기찻길은 연결되어 있으나, 코펜하겐으로 가는 육로 기찻길이 ㄱ자의 가로와 세로를 따라 가는 거라면 해로는 ㄱ자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이다. 따라서 빠른 시간이 중요한 여객 열차는 현재도 페마른 해협을 가로지르는 페리를 이용하며, 화물 열차는 페리에 일일이 실을 수 없으므로 육지로 보낸다.

ICE-TD 열차는 DB/DSB 공동 운행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으며, 덴마크 내에서는 IC급, 독일로 들어가면 ICE급으로 운행한다. 덴마크 내에서는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해서 고속 열차를 탄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는 않았다. 독일-덴마크-스웨덴으로 가는 기찻길은 전철화되어 있으나 (생뚱맞은 점은 독일과 스웨덴이 교류 15kV 16.7Hz를 사용하나, 덴마크는 교류 25kV 50Hz를 사용한다) 이 두 국제 열차는 비전화 구간을 도중에 지나므로 디젤 동차로 운행할 수 밖에 없다.

열차는 오르후스에서 남쪽으로 가서 독일 슐레스비히를 지난 다음 함부르크로 들어왔다. 덴마크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씨가 흐려서 수상했으나 독일로 내려오면서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함부르크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가 엄청 퍼부었다. 가려고 했던 호스텔로는 이러다가 못 갈 것 같아서 함부르크 역에서 끼니를 때우다 가기로 했다. 역 안에 있는 서브웨이에서 끼니를 때운 다음 비가 그치나 안 그치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통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하기에, 노르웨이에서 경험했던 대로 일단 빗속을 뛰어서 호스텔로 도착한 다음 머리를 말리든지 뭘 하든지 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니 비가 그쳤는데, 운이 없게도 비가 그쳤을 때에는 이미 해도 떨어질락 말락 하고 있었다. 그랬던 탓에 볼 것이 많을 수도 있었던 함부르크였지만, 시내를 조금 걸어다니다가 함부르크 항구 쪽만 주마간산처럼 보고 들어왔다. 아, 또한 사용하고 있었던 스웨덴 선불 USIM 카드가 슬슬 잔액이 다 떨어질 시점이 되었는데, 노르웨이나 덴마크라면 몰라도 독일에서는 스웨덴으로 올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독일 USIM 카드를 사기로 결심하였다. 이거 하나가 함부르크에서 이룬 성과인 것 같다. 장거리 기차 여행은 아니었지만 비를 쫄딱 맞은 탓에 일찍 잠이 왔다. 또한 여행 당초부터 함부르크는 찍고 가는 곳의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오전에 바로 쾰른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라도 일찍 자야만 했다.

함부르크의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쾰른으로 가는 IC 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왜 IC 열차인가? 어차피 이 때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ICE는 직선 선로를 달리지만 IC 열차는 강을 끼고 굽이굽이 달린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긴 시간을 열차에서 보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IC 열차를 탔다. IC 여행 시간이 길기 때문에 + 쾰른에서는 좀 오랫동안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첫날 도착하자 말자 별도의 일정을 잡지는 않았다. 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스텔을 잡은 덕분에 들어가서 자기는 쉬웠다. 막간을 이용해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빨래도 해치웠다. 아무래도 함부르크에서 젖은 옷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