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날에 예정되어 있는 섬 여행만 마치면 내 GCDS 일정은 여기서 끝난다. BoF 세션으로 분위기가 넘어오면서 전체적인 행사의 밀도가 좀 낮아졌고(BoF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다), 들을만한 것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재미가 없어졌다. 오늘도 BoF가 일부 있긴 한 것 같은데, 대부분 참가자들이 여행에만 신경이 쓰여 있어서 BoF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우왕ㅋ굳ㅋ.
목요일에도 일단 대학교로 갔다. 오전에도 BoF가 몇 개 열리긴 했지만 나는 해킹 룸에 있었다. 대개의 BoF 진행자들이 오후에 있을 섬 여행 때문에 제대로 준비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에 전세 버스 3대를 빌려서 여행을 시작했다. 섬의 동쪽 해안을 돌고 오는 코스이다. 도중에 해변가도 좀 거치고, 마을에도 한 번 들렀다 갔다. 카나리아 제도의 태양은 엄청 이글거리기 때문에 SPF 35 썬크림도 준비해 갔다. 그 덕분에 피부가 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다.
첫 목적지는 섬 남쪽에 있는 Playa del Inglés 해안이다. 해석하면 영국인 해안이라는 뜻이다. 이곳 해안은 사하라 사막에서 날려온 모래가 해수욕장을 이루기 때문에 해안가를 얼핏 보면 사막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해수욕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막 비스무레한 게 바로 보였다. 과연 집 앞 광안리나 해운대 바닷가에 비해서 어떤 점이 다를까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데, 결국 사고가 터졌다. 내가 탄 버스가 터졌다.
작년 Akademy 때에는 브뤼셀 공항이 파업했고, 2007년에는 하필 글래스고에 폭탄 테러가 개막식 날 터지는 통에 ‘올해는 어떤 복불복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찾아왔는데, 하필 여행 맨 마지막 날에 터질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무튼 GC-1 고속도로 위에서, 약 30도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선크림을 잘 챙겨왔다) 대체 버스를 기다리는 건 나름대로 스릴있었다. 내 앞에는 해수 담수화 공장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저기서 섬에 사용되는 식수를 공급하고 있었다.
한창 해가 뜰 때인 오후 2시경에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가에 바로 도착하기 전에 앞서 이야기했던 사막과 해안의 조화를 먼저 구경하였다. 흔히 봐 왔던 사막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깰 수 있었다. 이쪽 바닷가를 잠시 둘러본 다음 진짜 해변가에 도착했다. 사막에서 날려온 모래 때문인지 모래 자체는 매우 고왔다. 한술 더 떠서, 내 숙소 주변 해안가보다 관리가 더 잘 된다는 인상도 받았다. 해변의 한 쪽 끝은 누드 비치가 있었고(진입로를 몰라서 가 보지는 못했다), 해안가를 벗어나면 각종 음식점과 관광 안내소가 있었다.
관광 안내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명찰을 걸고 있었다. 바람직해 보이는 현상이다. 근처에 있는 식당들은 다양한 메뉴를 걸고 장사를 하고 있었고, 기념품 가게에서는 카나리아 제도를 상징하는 여러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다음 일정은 산 중턱 마을에 올라가는 건데, 저녁을 먹는다는 건지 만다는 건지 언급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서 치킨 커리와 칵테일로 저녁을 해결했다. 열대 과일과 음료의 조화는 지금도 잘 기억난다. 물론 무알콜 칵테일이었다.
오후 6시에 Agüimes 마을을 향해서 출발했다. 출발하는 동안 동지들을 찾기는 아주 쉬웠다. 자유 소프트웨어 쪽 사람들은 꼭 하나씩 티를 낸다. 예를 들면 가방이라든가, 비치 타올이라든가, 티셔츠 등이다. 6시보다 살짝 일찍 돌아와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근처 사람들과 함께 일명 ‘geekspotting’을 즐겼다. 내가 탔던 고장난 버스도 수리되어 돌아왔는데, 난 그 버스에 다시 타야 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인원들이 실종된 것 같아서 살짝 혼선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이름을 검사하는데, 드디어, 여기 스페인에서, 내 이름을 내가 의도한 대로 부르지 못한 사람이 등장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기준으로 로마자로 이름을 적는데다가, 같은 로마자 또한 언어마다 읽는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나도 여기에서 제대로 충격을 받아서 ‘로마자 표기법과 영어는 상관없다’는 내 생각을 확실히 했다. 그저 영어권 외국인 때문에 로마자 표기법을 손질하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답답하다.
하여튼 Aguimes 마을은 섬 중앙 화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고, 지대가 높은 만큼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할 수 있어서 농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현재 이 마을은 전통적인 생활 양식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마을을 따라다니면서 오래된 집을 둘러보았고, 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이 마을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옛날에 지어진 집과 좁은 거리, 그리고 마을 한복판에 있는 큰 성당같이. 하지만 산을 타고 올라가니까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이가 빠져 있거나 색이 빠져 있어서, 나중에 후보정으로도 영 무리가 올 것 같아서 여기서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카메라는 모두 고쳤지만, 볼거리가 많았는데 남겨 오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사탕 수수를 재배했던 Ingenio를 거쳐서 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가이드는 재미나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과거 비행기가 다니지 않았던 시절 이 섬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을 이어 주는 곳이었다. 세 대륙 사이를 이동하려면 중간에 선원들도 쉬어 주고 배에 물자도 보급해야 했는데, 카나리아 제도는 이 목적으로 딱 적당했다. 섬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기 때문에 농사를 하려면 관개 시설이 필수적이다. 바나나나 토마토 등의 작물이 카나리아 제도의 햇볕을 받으면서 엄청 자라고 있었다.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더 싼 가격으로 농작물이 수입되고 있어서 가격에서는 밀리는 듯 하지만 품질로 승부를 보고 있다고 한다.
카나리아 제도에는 산업 시설이 따로 없기 때문에, 농업이 쇠퇴한 이후 관광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옛날에 있었던 거대한 플랜테이션은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아파트 단지로 변신했다. 옛날에 농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은 지금 직 간접적으로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때문에 카나리아 제도의 관광 사업은 쉽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 카나리아 제도는 관광 수입의 감소 때문에 실업률이 증가해서 문제라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버스는 호텔이 있는 Santa Catalina 정류장으로 들어갔다. 많은 참가자들이 사실상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기 때문에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여행을 끝냈다. 나도 다음날이 출국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들과는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처음 여기로 들어올 때는 짐이 적은 편이었는데, 어느새 추가된 기념품과 비치 타올 때문에 가방은 그새 불어났다. 빨리 집에 가서 이것들을 모두 풀어놓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밤에 짐을 대강 싸고, 나머지 짐들은 아침에 챙겼다. 다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긴 긴 여행을 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까지 들어오는 동안 있었던 재미난 일은 다음 편에서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