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ademy 기간 동안 묵었던 TOAS City를 뒤로 하고, 이제 헬싱키로 떠난다. 오늘부터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는 이미 한국에서 사용 시작 날짜를 정해서 왔기 때문에 탐페레 역에서 별도의 확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직 26세 이하이기 때문에 2등석 유레일 패스를 끊을 수 있다. 핀란드에서 유레일 패스를 사용한다면 인터시티(2) 이하 모든 열차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며, 펜돌리노나 (투르쿠/헬싱키)-(로바니에미-콜라리) 간 야간 열차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일단 탐페레 역으로 가서 헬싱키로 가는 IC 열차를 타자. 시간은 넉넉하므로 탐페레 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핀란드의 역 승강장은 A/B/C/D로 나뉘어 있어서, 객차가 들어올 때 몇 호차가 어느 구역에 들어오는지를 알려 준다. 핀란드의 주요 간선 철도는 전철화되어 있고, 이미 Sr1/Sr2 전기 기관차와 객차 조합이 간선 노선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열차 시간이 되어서 내가 탈 열차가 Sr1 기관차에 이끌려 탐페레 역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시속 140km까지밖에 못 낼 거라고 생각하고 일단 차에 탔다.
일요일 낮 시간대라서 그런지 대부분 구간에서 공기수송. 좌석 지정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자유석 상태였던지라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인터시티 열차에 사용되는 Ed/Edb/Edfs 2층 객차는 핀란드 트랜스텍(한 때 탈고에 인수되었다가 현재는 뱉어낸 상태)에서 2000년대 초반에 제작하였고, 최근 생산한 객차답게 편의 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나는 유레일 패스를 보여 주고 끝나지만, 핀란드의 SMS 티켓은 티켓 바코드를 MMS로 보내 주기 때문에 플랫폼 가리지 않고 잘 보인다. 어느 나라의 철도공사는 스마트폰 승차권이랍시고 아이폰/안드로이드 전용으로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핀란드를 보고 배워라 좀. 풀숲 한가운데에 마을과 역이 드문드문 있는 핀란드의 기존선을 통과하는데 어 속도가 140을 넘기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탄 열차의 Sr1 기관차는 160짜리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헬싱키를 거의 다 와서야 뭔가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들었고, 궁금해서 내려서 열차 앞쪽으로 갔더니…
두둥. Sr2였다. 어째 탐페레 역에 오랫동안 정차하고 기관차가 들어온 것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알아봤더니 탐페레 역으로 들어와서 반대쪽에 Sr2 기관차를 붙였다. 하긴 시속 200짜리 펜돌리노가 공유하는 기존선인 만큼 200까지 밟을 수 있는 Sr2 기관차를 붙이는 게 맞다. 헬싱키 역에는 이 놈 말고도 Sm4들이 대거 보였는데, 헬싱키 지역 통근 열차로 사용되었던 Sm1/Sm2 전동차가 상당히 오래되어서 대체하기 위하여 반입하였다. 최고 시속 160km까지 낼 수 있고 저상 열차이다.
완전히 굶주린 채로 헬싱키에 도착해서 헬싱키 역 앞에 있는 골든 락스로 점심을 해결했다. 여기 피자는 얇은데다가 토핑도 별로 다양하지 못하지만 사이드 디시가 다양해서 9유로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 배가 고파서 막 넘어갔다. Erottajanpuisto 호스텔에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체크인 시간 오후 3시가 아직 되지 않아서 근처 공원에서 죽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앞에 한국 대사관이 있네?
7월의 헬싱키는 상당히 더웠다. 일단 씻고 잠을 좀 잤다. 일어나니 이미 오후 6시가 넘어 있어서 어지간한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호스텔 안에서 인터넷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호스텔을 빠져 나와서 주변을 걸어다녔다. 실외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위주로 구경하려다 보니 핀란드 국회(에두스쿤타) 의사당, 만네르헤임 동상 정도밖에 보지 못하고 들어갔다. 지금도 헬싱키에는 노면 전차가 다니고 있고, 우연히도 헬싱키 노면 전차 사진도 몇 장 건졌다. 에두스쿤타를 지나서 호스텔로 돌아오는데 한국+핀에어 직항편 광고를 단 버스가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니 눈 앞에서 사라져 못 찍었지만, 아무리 핀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편이라고 해도 최소한 핀란드어로 써 주는 성의는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각보다 상당히 더웠던 헬싱키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밤 11시쯤 되니 떨어지기 시작했다. 위도가 좀 더 높은 탐페레에서는 밤 12시가 되어도 해가 안 떨어져서 잠을 많이 설쳤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블라인드를 쳐도 해가 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므로, 탐페레를 떠난 이후 엄청 편안하게 잠을 잤다. 탐페레의 TOAS City에 있던 침대에 비해서 상당히 푹신해서 잠도 더 잘 왔다. 이제 내일은 핀란드 철도 박물관, 수오멘린나 해상 요새를 살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