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Akademy의 첫 컨퍼런스 부분은 끝나고, 이제부터는 각종 BoF와 재미난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도 발표를 무사히 마쳐서 안심할 수 있었고, BoF들은 참가자들이 떠나지 않을법한 화요일과 수요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핀란드에 오기 전, KDE e.V. 회의 참가를 위한 프록시를 못 받을 때에 대비해서 탐페레 시내 관광을 월요일과 토요일로 나누어 놓았다. 월요일 오후에도 BoF가 있긴 있으니. 아무튼 지금은 군대에 있는 jachin 님에게 ‘일단 받은’ 프록시를 들고, 자취가 조금 남아 있을법한 탐페레 대학교로 가서 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KDE e.V. 프록시 규정 상 프록시는 e.V. 회원 사이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다. 덕분에 회의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으로 이름을 바꿔 버리는 건 사문서 위조에 해당하니 별 수 없었다. jachin 님도 이 규정을 몰랐고, 나도 몰랐다. 덕분에 내년에 KDE e.V. 가입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지원을 받기 위하여 KDE e.V. 지출 보고서와 항공권은 전달해 주고 왔다. 이게 언제 입금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다시 숙소로 발길을 돌려서, 시내 관광용으로 짐을 다시 싸고, 오후에는 Demola에서 죽칠 수 있도록 오전에는 탐페레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탐페레 시내는 내시얘르비(Näsijärvi)/피해얘르비(Pyhäjärvi) 호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이 두 호수가 연결되는 탐메르코스키(Tammerkoski) 급류를 둘러싸는 형태로 시내 중심가가 놓여 있다. 급류의 수위 차가 18m나 되기 때문에 수력 발전소가 있으며, 급류 동서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5개(철교 1개 포함) 놓여 있다. 탐메르코스키를 가로지르는 다리 중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리는 사타쿤난카투(Satakunnankatu)/해멘카투(Hämeenkatu)를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전자의 다리는 핀레이슨 지역을 지나기 때문에 주변에 공업 지대와 댐 정도밖에 없지만, 후자의 다리 근처에는 탐페레 극장과 시청, 버스 터미널 등 볼거리가 많다.
데몰라(Demola)로 가기 전 레닌 박물관에 들렀다. 여기서 티셔츠 사오면 본격 좌빨인증(?) 과거 이 박물관 자리는 레닌이 핀란드에 머물렀을 때 사용했던 숙소였기도 하고, 레닌은 핀란드의 독립을 지지하였다. 구 소련 멸망 이후 구 소련 지역에 있었던 레닌 박물관과 동상은 철거 및 폐쇄의 수모를 당했지만, 여기 있는 이 박물관은 아직까지도 잘 버티고 있다. 주소지에 쓰여 있는 건물 3층으로 가면 꽤 작은 박물관이 있다. 표를 살 때 영어로 된 가이드북을 빌려서 들어가자. 주요 전시물은 레닌의 생애, (특히 핀란드에서의) 활동, 임시 전시물이 있다. 제정 러시아에서의 독립 주변에 일어난 핀란드 내전 시기, 레닌의 서명이 들어간 핀란드 독립 승인서는 볼만하다. 내가 갔을 때 임시 전시물에는 무려 조선우표란 게 있었다. 흠좆무.
레닌 박물관을 지난 다음 뭔가 더 둘러보자니 시간이 애매하고, 그렇다고 Hands-on Qt for mobile 세션은 1시에 시작해서 그냥 노트북 들고 데몰라로 갔다. 과거 핀레이슨 사는 탐페레에 거대한 공장을 가지고 있었고, 한동안은 탐페레를 먹여 살리는 기업이었다. 시대가 현대화되면서 섬유 가공 사업은 비용이 올라서 사양화되었고, 현재 핀레이슨 공장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이후 공장 건물은 일부는 개축, 일부는 신축되어 식당, 박물관, 기업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데몰라가 있던 자리 역시 과거 핀레이슨 공장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탐페레에 있을 때 가려고 했던 박물관 중 3곳이 핀레이슨 지역에 있다. 탐페레에 왔으면 꼭 가 볼 곳 중 하나이다.
저기 저 광장을 지나면 박물관 2곳과 함께 데몰라가 있다. 노키아 맵이 저게 광장이란 걸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해서 처음에 길 찾을 때 좀 낚이긴 했다. 도착한 시간이 12시쯤 되었고, Hands-on Qt for mobile 트랙은 1시부터 시작하고, 아침은 먹지도 않았다. 행사가 준비될 동안 아침을 먹으러 핀레이슨 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니 Ziberia 건물이 보이고, 그 안에 Juvenes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탐페레 대학교에서 같은 상호를 봐서 뭔가 먹는 거겠지 하고 들어갔는데 주황색 옷이 좀 보여서 도움을 좀 받았다. 탐페레 시내의 학생회에서 운영하는 기업으로 식당, 서점 외에도 여러 사업을 한다. 배 고파지면 일로 가면 좋지만, 평일에만 한다는 걸 조심하자.
Hands-on Qt for mobile 트랙에서는 왜 오픈소스인가라는 간단한 발표로 시작하여, 노키아 Qt SDK 및 Qt Mobility 발표를 진행하였다. 이후 할당된 시간은 모두 자유 시간/노키아 쪽에서 도와주는 시간이라서 나는 발표만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처음으로 발표를 진행한 Knut Yrvin은 왜 오픈소스가 뜨고 있는지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이제는 오픈소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이야기했다. 올해 5월 쯤 KDE 뉴스에 이 분의 Norske Talenter 결승 진출 이야기가 떴고, 아쉽게도 입상을 하지는 못했다. 발표 슬라이드 중 이걸 언급한 재밌는 부분이 있어서 잠깐 싣고 지나간다.
다음 발표는 노키아 Qt SDK와 Qt Mobility 이야기다. Qt SDK는 Qt/S60이 탄생한 이후로 S60 지원을 점점 강화시켰고, Qt Mobility는 PC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모바일에서 사용되는 기능을 모아 둔 라이브러리이다. 과거 내가 쓴 글에서는 Carbide.C++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을 수동으로 설치하여 Qt/S60 개발 환경을 구축한다고 하였으나, 이제는 시대가 완전히 달라져서 Qt SDK 설치 시 S60 관련 옵션이 추가되었다. 아직까지 S60 개발 환경이 공식적으로는 윈도만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플랫폼에서는 이걸 누릴 수 없지만, 리눅스에서 Qt/S60 개발 환경 구축을 위한 비공식 페이지도 찾아보면 있다. 특히 Qt 시뮬레이터는 S60v3/S60v5/마에모 환경에서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볼 수 있다.
아무튼 이게 끝나고 Qt Mobility 시연을 하였다. 위젯 몇 개 던져넣고, 배터리, IMEI, 신호 강도 정보를 보여 주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뮬레이터와 실제 장치에 올렸다. 시뮬레이터에는 배터리 부족, 신호 끊김, GPS 위치 정보 등 모바일 환경에서 나타날법한 시나리오를 에뮬레이션하는 기능이 있다. 실제 장치에서도 어려움 없이 프로그램을 올렸다. 아 물론 IMEI 역시 실제 장치의 그것이 뜬다.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통신비밀보호법은 ESN 시대에 만들어져서 아직까지도 IMEI를 휴대폰 뒷면에 찍고 있지 않으며, ‘일련 번호’라는 괴상한 번호로 가입자를 관리한다. 게다가 IMEI 화이트리스트 같은 폐지되어 마땅한 천하의 개쌍놈들 같은 제도까지 있으니, 아마 안 될 거야.
둘째날은 이거 덕분에 BoF도 많은 편은 아니었고, 본격적인 BoF는 화요일과 수요일에 몰려 있다. BoF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한다.
잘보고 갑니다. 재미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