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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E 4 자동 조사 추가 기능 – Part 2

지난번에 이은 KDE 4 자동 조사 추가 기능의 Part 2이다. ko-po-check 프로젝트에 있는 조사 8가지를 모두 다 다루도록 조절하고, 스크립트에서 CV를 최대한 줄이도록 공통되는 부분은 밖으로 빼냈다. 구체적인 변경 기록을 보려면 이 링크를 따라가면 된다. 지난번의 스크립트와 비교했을 때, 모든 조사를 목록으로 처리하고 조사 추가 부분을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빼냈다. 번역할 때는 $[을를 %1]과 같은 문자열을 문장 안에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처리한다는 전설이 있다. 저 목록에는 없지만 와(과) 또한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예제로 볼 것은 KDE 4의 원격 데스크톱 클라이언트 Krdc를 끝낼 때 뜨는 창이다. 보시다시피 제대로 를 문자를 끼워넣는다.

KDE 4 자동 조사 추가 기능

아직까지는 KDE 4 번역 자체도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사용자들이 자주 접하게 될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완벽을 기하려고 삽질하고 있다. 가장 큰 것들은 desktop_*.po 파일에서 프로그램 이름을 번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놈과는 다르게 KDE의 기본 설정은 프로그램 이름과 설명을 같이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프로그램 이름을 번역해서 알려 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이름을 그대로 놔두는 대신, 설명을 최대한 자세히 쓰기로 했다. kdeedu의 desktop_kdeedu.po 파일은 이번 버전에서 새로 번역되었는데, 한 번 맛을 보면 다음과 같다.

KDE 4 K 메뉴 - 교육

보다시피 프로그램 설명만 나와 있고 이름은 강조해야 보이는 구조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프로그램 이름은 번역이 필요 없다고 판단하여 쓰지 않았다. 일본어 번역에서도 나왔던 것이지만, 이제는 도구 모음 항목 이름에서 더 이상 가속기 키의 잔재를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Transcript의 최초의 역할은 가속기 키의 잔재를 지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스크린샷을 보면 KWrite 도구 모음에는 가속기 키의 잔재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KDE 4 가속기 키 잔재 제거

눈깔사탕들을 만든다고 지금까지 고생해 왔다면, 이제는 번역률 자체도 높이고 사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곳에는 여러 차례의 검수가 들어갈 차례라고 봐야겠다.

문화와 단어

RSSF에 간 동안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번역 정책의 방향이다. 일본에서 보았던 각종 프로그램들은 잠시 침체되었던 KDE 번역의 정책 방향을 결정해 줄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RSSF 이야기는 잠시 제껴 두고, 거기서 보았던 일본 컴퓨터들과 일본어 윈도 이야기를 좀 해 보자. 물론 이 글은 전문적인 글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전산 용어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은 안 따지겠다.

우선 내가 일본에 와서 받은 충격은 대부분 외래어를 가타카나로 전사만 해서 쓴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어 단어와 완벽하게 구분해서 쓴다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을 완벽하게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전혀 안 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정책과는 생판 달랐다. 리츠메이칸 BKC에 좍 깔려 있었던 터보리눅스 시스템의 GDM 화면을 보자. 참고로 본인은 KDM을 쓰므로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터보리눅스의 GDM

터보리눅스 vs 쿠분투. 뭔가 차이나지 아니한가

저기 보면 사용자 이름을 입력하는 곳에 “ユーザー名”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적어도 KDM의 한국어 번역은 “사용자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고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비밀번호도 “パスワード”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은 KDE 한국어 번역의 “열쇠글”이 모두 “비밀번호”와 “암호”로 바뀌었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사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일본어 윈도 XP에서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당장 USB 꼽았을 때 나오는 말이 “リムーバブルディスク”다. 한국어에서는 “이동식 디스크”라는 말이지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많은 단어를 한자어를 사용하거나 다른 일본어 단어를 끼워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가타카나를 쓴 것을 보면 이것은 문화 차이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 때의 KDE 한국어 번역은 한국어 순혈주의를 고집해서 “사용자 편의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일본어 번역들을 보면 우리는 너무 움츠리고 있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KDE 4부터는 적극적으로 외래어들을 순화시키지 않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니까 순혈주의를 포기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동안의 순혈주의 정책도 어떤 면에서는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든 외래어를 순화시키지 않는 것은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은 억지 한국어를 쓰기보다는 외래어를 그대로 써야겠다.

벌점 만능주의

학교로 돌아왔더니, 이제는 아주 벌점만능주의가 극도에 달하고 있다. 자 오늘은 학교 축제의 시작이라고 한다. 어제 수업들은 원래 공강이 많아서 제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부터의 축제에는 나도 학생이다 보니까 어찌저찌 연결이 될 것만 같다. 그런데 축제 첫 단추부터 아주 벌점이라고 하신다?

일본에서 학생회 홈페이지를 확인했던 결과, 이번 해 체육대회는 전교생이 다 참여해 달라고 했다. 작년까지는 1학년만 의무 참여였지만 갑자기 이렇게 바뀐 걸 보니 좀 많이 수상했다. 어제 8교시에 예비 소집도 하자고 했던 걸 보면 더더욱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때 마침 일본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빠질 수 있었지만, 그 다음 날이 걱정되었다.

아침부터 무려 5번이나 안내방송으로 체육대회와 SAC 개막식에 참여해 달라는 말이 나왔다. 뭐 SAC 개막식이라면 충분히 갈 의향이 있었지만, 거기 갔다가는 체육대회에 갇힐 뻔 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피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방송을 한 사람은 다 달랐고, 마지막 방송은 아주 가관이다? 평소 하던 대로, 학교에서 행사 하나 열어 두고 “안 오면 벌점”이란다. 어이구.

올해 와서 이 벌점 만능주의는 선생들의 무기가 된 것 같다. 사소한 행사든 뭐든 안 오면 벌점. 작년까지는 그래도 전교생 동원 행사가 적었지만, 올해 와서는 뭐든 전교생을 동원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안 오면 벌점” 무기를 사용해서 강제로 오게 만든다. 내 생각이지만, 체육대회에 전교생 참여도 왠지 뒷거래가 있었을 것 같다.

학교 축제가 자발적인 참여로 만드는 것이 맞다면, 첫날부터 벌점이라는 카드를 써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여기 벌점 먹이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리고 매일같이 사소한 행사를 하면서 벌점을 주는 것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써 본다.

추가. 이런 걸 독려문이라고 쓰는 이유는? 내가 보기는 독려보다는 협박 같아 보이는데. 거 참 축제 때 학생 참여를 끌어내려고 하는 것은 좋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본교 1학년 학생들은 11월 8일 오전 09시부터 13시까지 “인문학술대회 및 총장님 특강 그리고 시사토론”에 꼭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주의사항 : 특히 사회, 체육과목 수강학생들은 출석 참여 점수에 적극 반영하고, 확실한 이유가 없는 불참자는 벌점을 부여함.(인문사회부장 남율수, 특별활동부장 안정덕)

초인

그래 내가 왜 초인이라고 했을까.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글을 쓰는 걸 봐도 내가 지금 제정신은 아닌 거 같다. 일본 RSSF의 빡빡한 일정을 다 마치고, 그리고 공항에서 짐을 한 번 잃어버릴 뻔도 하고, 학교 와서는 독서대로 짐 옮긴다고 삽질하고, KTF한테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듣고 오는 하루였다. 평소 같으면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RSSF 때는 평소보다 더 일찍인 새벽 6시 정도에 일어나기도 했고, 평소대로 자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특별히 피곤하거나 한 것은 없다. 왜일까. 내 내부의 에너지를 지금까지 다 끌어내지 못하고 뻗은 것 아닐까. 간사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오늘 와서는 독서대 짐 정리라는 큰 일을 해 냈는데, 이것도 생각만큼 피곤하지 않았다. 미리 꾸려 놓은 것에다가 내가 사 온 것들을 덧붙이는 정도였긴 했지만, 짐 자체가 무겁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금 그다지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나중에 씻으러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고 있다. 이건 뭔가 수상할 뿐이다.

이번 RSSF에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내 내부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법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일정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 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도 들고 내 체력의 한계가 더 높았다는 느낌도 온다. 받은 충격도 크긴 컸지만, 내 잠재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