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여행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5일

아침 6시 가까이 되어서 잠에서 깼다. 자고 일어나서야 샤워실은 검은색 키로 연다는 걸 알아채는 바람에 일단 아침 일찍 씻었다. Edm 침대차에 부속된 샤워실은 따뜻한 물은 나온다. 원래 침대차 내 샤워실이 다 그렇듯이 공간은 꽤나 협소한 편이다. 대부분 Edm 침대차는 뽑은 지 5년도 안 된 완전 새삥이기 때문에 샤워실 청결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전 8시쯤 로바니에미 역에 딱 도착했고, 위층에서 자던 사람이 물을 안 먹어서 당장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 득템. 안내방송 그런 거 없기 때문에 내릴 때 우루루 내리면 된다.

로바니에미 역

Edm 침대차

로바니에미 역 뒤편

역 뒤에 있는 Tk3 증기 기관차

당장 8시에 로바니에미에 도착하긴 했는데, 시내에 있는 모든 식당은 문을 아직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이 도심에 근접한 것도 아니라서 로바니에미 역 위에는 증기 기관차밖에 안 보인다. 내가 찾은 루돌프 호스텔은 하룻밤 묵는 데 무슨 3~40유로(싱글 룸)씩이나 하는 바람에 로바니에미에서는 하룻밤만 지내기로 했다. 체크인 시간의 압박으로 짐까지 들고다니느라 고생 좀 했다. 이번 여행 동안 대부분 호스텔들은 체크인 시간 이전에도 짐을 맡아 준다는 사실을 몰라서 도시를 이동할 때 고생 꽤나 했다. 북극권을 오전 일찍 건너고 아르크티쿰 박물관을 보고 온 다음, 호스텔에 짐 풀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로바니에미 역 앞에서 산타 마을로 출발하는 8번 버스 시간표는 정류장 밑에 붙어 있다. 시내를 통과하면서 몇몇 사람을 태우고 공도를 달려서 산타 마을로 간다. 인구 수는 적은데 땅은 넓다보니 지나가는 차나 사람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볼래야 볼 수 없는 풍경. 산타 마을에는 진짜 산타가 사는 집이 있고(여기서 사진 촬영은 불가능) 북극권 인증을 할 수 있도록 금까지 그어 놓았다.

산타 마을 입구

북극권 코앞. 여러 도시간의 거리를 나타낸 표지판.

북극권 밟기 인증

산타의 집 입구

나도 Qt 스티커 하나 붙이고 돌아옴

북극권을 따라 놓여 있는 램프

버스 정류장

산타 기념품 가게를 뒤로하고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와플 한두개로 아침을 때웠다. 사촌동생 선물을 보러 갔던 스와로프스키 가게에서 핀란드의 1/2센트 동전을 무료로 증정하고 있었다. 대부분 유로 통용국과는 다르게 핀란드에서는 5센트 미만은 반올림하거나 버린다. 그래서 1/2센트 동전은 도안이 존재하고 유럽 중앙 은행 규정 때문에 동전을 발행해야 하지만 실제 유통되는 동전은 많지 않다. 다른 나라의 1/2센트 동전은 핀란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시내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와플 한두개는 배고픔을 금방 달래 주었다. 산타 마을 주변은 숲밖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역 주변으로 돌아갔다.

로바니에미에 있는 세계 최북단 맥도날드

로바니에미 시내

시립 미술관이 공사 중이어서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 중에는 아르크티쿰 박물관이 제일 크다. 이름처럼 핀란드 북부의 생활상을 전시해 놓고 있었고, 노르딕 국가 북부 지방의 원주민인 사미 족에 대하여 깊게 다루고 있다. 사미 족은 남쪽에 있는 사람들과는 생활 양식이나 언어나 민족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과거에는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모습이 많이 변했다. 사미 족의 주거지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러시아 일부에 걸쳐 있으며, 이들 나라의 국립 박물관은 항상 사미 족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아르크티쿰 박물관 입구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판

이 외에도 지구 온난화로 핀란드 북부 지역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다루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 입장에서는 주거지가 물에 잠기는 등 재앙이지만, 멀리 북쪽에서는 얼음에 봉인되어 있던 각종 자원의 봉인이 해제되고 항로가 뚫리는 등 이득도 보고 있다. 하지만 북극에 살고 있는 각종 생물의 삶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긍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 중에는 술이 있었다. 핀란드 북부는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고, 술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핀란드 정부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지금도 노르딕 국가에서 시행되는 국가의 주류 독점 제도는 모두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 유통되었던 주류라든가, 주류를 구입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이런저런 허가증이 전시되어 있다. 술 마시면 심신미약으로 형이 감경되는 어떤 나라에는 이런 걸 도입하지 못하겠지. 당장 소주도 알코올 농도 4.7% 이상이잖아.

호스텔 체크인을 맞추기 위해서 아르크티쿰에서 적절히 시간을 때운 다음 시내 중심으로 갔다. 특이하게도 도심을 관통하는 도로는 모두 비포장이다. 9유로 주변에 배를 채울 수 있는 중식 뷔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골든 락스에 질려 있었기에 맛있게 먹었고, 유럽 어디를 가나 저렴한 중식 뷔페가 있어서 배 채울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로바니에미에는 세계 최북단의 맥도날드가 있지만, 핀란드의 다른 패스트푸드가 그렇듯이 가격대 성능비가 안 좋아서 보는 걸로 만족했다. 일단 이걸 끝내고 루돌프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산타클로스 호텔로 갔다.

루돌프 호스텔은 독립적인 체크인 시설이 없는 완전 기숙사형 호스텔이라서 밑에 있는 산타클로스 호텔에서 체크인 및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호텔에서 운영하다 보니 방값도 장난 아니게 비싸서, 로바니에미에서는 하룻밤만 자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도시도 작아서 볼 것도 많이 없다. 루돌프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방 열쇠를 받은 다음, 스톡홀름에서 뭐를 볼지 보려고 노트북을 펼쳤는데… 방에서 무선랜이 안 잡힌다. 스톡홀름에서 지낼 호스텔은 예약해 두었지만 관광지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낭패다. 침대차에서 푹 잘 수 있었지만 오전에 돌아다닌다고 체력 소모가 커서 일단 낮잠을 좀 잤다.

여기가 바로 루돌프 호스텔

여기가 바로 루돌프 호스텔

자고 일어나서 로바니에미 시내를 좀 둘러 보았다. 로바니에미 시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조성되었다. 핀란드는 소련을 몰아내기 위하여 독일과 동맹을 맺었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결과는 패전이었다. 소련과의 평화 조약 중에는 독일군을 핀란드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도 있었고, 독일군은 핀란드에서 철수하면서 이런저런 피해를 남기고 갔다. 핀란드 북부의 큰 도시 로바니에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시내에 이런저런 기념비를 건설하였고, 기념비 근처에는 로바니에미의 이런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핀란드 철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전철화된 역도 바로 로바니에미 역이다. 여기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더 작은 케미얘르비가 나오고, 더 동쪽으로 가다가 러시아 국경선을 앞두고 끊긴다. 과거에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수요 문제로 폐선되어, 지금 핀란드와 러시아를 잇는 철도 노선은 남부에 하나 있다. 로바니에미 동쪽으로 가기 위하여 케미 강을 건너는 다리도 전후에 복구되었다. 오후 5~6시쯤 되었으나, 어지간한 공공 시설은 문을 닫았고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해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시내 곳곳에 있는 조형물

로바니에미에서 동쪽으로 가는 철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복구되었고 전철화는 안 되어 있다.

시립 도서관

밤이 깊어가는데도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리고 창을 완전히 닫고서야 겨우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탐페레는 그래도 12시 주변이 되면 해가 살짝 지는 척이라도 하지, 북극권에 인접한 로바니에미는 그런 거 없다. 룰레오발이라고 착각했던 우메오발 스톡홀름행 쿠셰트 티켓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무선랜이 터지지 않으니 론리플래닛 책을 봐 가면서 스톡홀름에 도착하고 호스텔로 가기 직전까지 볼 장소를 찾아 보았다. 미리 받아 놓은 케미-룰레오 버스 시간표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놓고 잤다. 스톡홀름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다가 스웨덴 쿠셰트는 편안함은 엿 바꿔먹은 물건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4일

오늘은 헬싱키를 떠나 투르쿠를 오후에 둘러보고 탐페레 경유 로바니에미로 올라간다. 핀란드에서 유레일 패스 사용 시 IC 이하
대부분 열차는 예약 없이 탑승 가능하지만, 펜돌리노 및 야간 열차는 예약이 필수다. 오전 9시에 투르쿠로 가는 펜돌리노를
예약하고, 오후 늦게 출발하는 로바니에미행 침대차 P 265 열차를 예약하였다. 어차피 로바니에미는 헬싱키나 투르쿠 둘 다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침대차 요금도 아낄 겸 탐페레에서 로바니에미까지 예약하였다.

펜돌리노는 예약비 5유로 고정이고, 침대차는 이용 구간에 따라서 요금이 다르다. VR은 두 종류의 침대차를 사용 중이며,
상대적으로 구형 CEmt 침대차와 신형 2층 Edm 침대차가 있다. CEmt 침대차는 단층 구조에 1방에 3명이 들어가며, Edm 침대차는
복층 구조에 2인 1실이며, 위층이 공간이 조금 더 넓다. 아직까지 Edm 침대차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기 때문에 2010년 1월
기준으로도 헬싱키-로바니에미-케미얘르비 구간만 운행 중이며, 1일 4편성만 Edm 침대차가 연결된다. P 265 열차를 일부러
시간 맞춘 이유도 Edm 침대차 때문이다. 투르쿠에서 바로 로바니에미로 가는 열차에는 Edm이 편성되지 않는다.

헬싱키에 온 목적 중 하나가 헬싱키 지하철 탑승이었기 때문에, 열차 승차권을 예약하기 전 지하철 체험을 해 보려고 좀 빨리 나섰다.
헬싱키 지하철은 1982년 개통되었고, 차량은 1979년부터 반입된 M100과 2000년
반입된 M200
차량이 있다. M100 차량은 전 세계 최초 VVVF(-RCT) 제어를 사용하는 차량이다. 헬싱키 역 바로 앞에 있는
라우타티엔토리 역에서 루오홀라티 역까지를 시간 때우기 용으로 몇 번 왕복해 보았다. 2유로짜리 표를 사면 1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환승 가능하므로 이런 짓도 맘대로 할 수 있다.

1089145756.mp3

그 외 기억나는 거라면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빨랐다는 점, 헬싱키 시는 물과 가깝기 때문에 지하 구간이 꽤나 깊었다는 점이 기억에 난다. 한국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솔직히 느린 편이다. 한국 속도 감각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가 계단이 빨리 꺼져서 당황스러웠는데, 다른 북유럽 국가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이것과 비슷했다.

라우타티엔토리 역 열차 안내 전광판.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한국에 비해 상당히 빠르다.

라우타티엔토리 역 승강장

M200 열차

떠나는 M200 열차. M100이 궁금해서 떠나보냈다.

M100 열차 내부

떠나가는 M100 열차

M100 열차 중련 연결부

M200 열차 중련 연결부

M100 제작사 패찰

헬싱키 역에서 9시에 출발하는 펜돌리노 열차를 탄 다음 투르쿠로 간다.
헬싱키 역을 서울역에 비유하면 펜돌리노 이하 전 열차가 정차하는 파실라 역은 영등포역 정도로 취급할 수 있다. 파실라 역을
지나면서부터 선로가 서/북/동쪽으로 갈라진다. 투르쿠로 가는 란타 선으로 진입하면 에스포로 진입하고, 에스포의 서쪽 키르코누미
역에서 복선 구간이 끝난다. 헬싱키 통근 열차는 대부분 복선 구간만 운행하며, Y 열차는 키르코누미에서 조금 더 나아가기도 한다.
키르코누미를 벗어나면 단선 구간을 시속 160 정도로 달리며, 살로, 쿠피타 역에 정차한 다음 투르쿠 역에 도착한다. 가끔씩
투르쿠 항까지 가는 열차가 있으며, 투르쿠 성은 항구에서 더 가깝다.

투르쿠에 도착한 다음 투르쿠 역 매표소에서 스웨덴
룰레오-스톡홀름 간 침대차
예약하려고 했는데, 몇 글자를 틀려 버려서 실제로 예약한 열차는 우메오-스톡홀름 간 쿠셰트가 되어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침대차와 쿠셰트는
편안함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역 앞으로 나와서 지도 한 장만 거머쥐고 투르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일단 역 근처에 있는 투르쿠 시립 미술관을 간단히 둘러본 다음, 아우라 강을 건너서 투르쿠 대성당으로 갔고, 거기서 한 템포 쉬었다. 끌고 다니던 캐리어 가방은 투르쿠 역에 넣어 두었다.

투르쿠 역 열차 전광판. 통근 열차는 꺼져 있었다.

투르쿠 역 매표소

투르쿠 시립 미술관 측면

투르쿠 시립 미술관 정면

투르쿠 대성당과 아우라 강

아우라 강변

시벨리우스 박물관은 투르쿠 대성당 상당히 근처에 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앞에서 엄청난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학생은 상당히 저렴하게 입장할 수 있다. 시벨리우스의 생애, 투르쿠에서 열린 음악 축제, 각종 피아노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깊은 곳에는 시벨리우스의 음악과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실이 있다. 내가 갔던 시간대에는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자료실을 전세내고 혼자서 놀 수 있었다. 어지간한 영상 자료는 핀란드어 음성에 영어 자막이 있다.

시벨리우스 박물관

시벨리우스 박물관

투르쿠 대성당 주변을 빠져나온 다음 루오스타린매키 수공예 박물관으로 갔다. 1827년 투르쿠 대화재에 살아남은 가옥을 지금까지 보존해 왔으며, 지금도 당시 전통적인 복장을 입고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당시 작업실이 대부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에도 일부 작업실은 사용 중이다. 가옥이 보존되어 박물관이 된 만큼, 별도의 전시실은 없고 옛날 집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볼거리이다.

루오스타린매키 박물관의 한 거리

아우라 강변의 배를 개조한 식당

또 다른 식당

시내

여기까지 둘러보니 오후 서너시. 이 때쯤 되면 박물관에 하나 들어가서 돌아보기도 애매하고, 야간 열차는 상당히 늦게 출발하기 때문에 저녁부터 먹었다. 헬싱키에서 내 배를 채워 준 골든 락스는 핀란드 전국에 깔려 있고, 피자 맛이나 종류는 상당히 실망스럽긴 하지만 무제한 음료수와 사이드메뉴의 힘으로 투르쿠에서도 버텼다. 그 다음 투르쿠 역으로 가서 탐페레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투르쿠 역 정면

Sr2 기관차

Sr1 기관차와 객차

투르쿠 역 승강장 구조. 1번 승강장은 자동차 진입로가 있다.

탐페레행 열차의 Sr1 기관차

투르쿠에서 탐페레로 가는 P 열차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통근 열차이다. S/IC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곳에는 P 열차가 운행하며, 가장 오래 된 객차로 운행한다. 1980년대에 생산된 객차에 좌석은 여러 방향이 섞여 있고, 리클라이닝 따위는 사치고, 창문도 열려서 고속으로 주행할 때에는 기분마저 찝찝했다. 헬싱키-탐페레, 헬싱키-투르쿠와는 달리 투르쿠-탐페레 간 노선은 역간 거리도 길고 투르쿠, 로이마, 움필라, 토이알라, 탐페레에만 정차한다. 탐페레에 도착할 때가 되니 동 시간대 접속 열차 환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Akademy 이후 탐페레에 두 번째로 오지만, 이번에는 탐페레를 그냥 지나간다. 열차가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탐페레 역을 좀 둘러봤다. 평소에는 헬싱키 주변 지역에서만 놀던 Sm4가 탐페레 역에서 포리로 행선지를 바꿔 달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전역에 동글이가 와서 대전선 경유 익산행이나 김천행 무궁화로 운행하는 풍경이다. 헬싱키 통근 열차에 쓰이는 게 아니므로 노선 글자가 표시될 자리는 비어 있다. 백야 현상 때문인지 오후 10시가 다 되었는데도 밝다.

로바니에미까지 갈 야간 열차에는 Edm 침대차, 식당차, 객차, 쿠셰트, 자동차 수송차가 연결되어 있는데 Sr1 1량이 거의 15량을 끌고 간다. 흠좀무.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HEP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차를 아직도 붙여 다니지만 유럽의 전기 견인 차량에는 발전차 같은 건 안 보인다.

탐페레-포리를 운행하는 Sm4 열차.

Sr2 기관차와 Sm4 전동차

Sm4 전동차. 시계와 풍경을 같이 볼 것.

침대차에 연결된 기관차

Edm 침대차를 타고 내가 잘 곳으로 가는데 문이 도대체 안 열린다. 더워서 씻고 자긴 해야 할 텐데 문이 안 열리니 답답했다. 난 시발역에서 탄 것도 아니라서 안내도 제대로 못 받았다. 알고 보니 문 앞에 있는 흰색 카드키를 찔러 넣으면 된다. 이 카드키는 단지 문만 열 수 있고, 샤워실로 가려면 침대차 안에 있는 검은색 카드키를 사용해야 한다. 이걸 모르고 첫날에 객차를 왔다갔다하면서 엄청 헤맸다. 객차 안에는 간단한 세면대가 있고 세면대 위에 있는 찬장에 물이 좀 있다. 거기 있던 두 팩의 물을 간단하게 해치우고, 위층에 있는 사람이 이미 자고 있어서 로바니에미까지 잤다. 도착 예정 시간은 다음날 오전 8시.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3일

일단 일어난다. 방에 나 혼자다.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아침 식사를 찾으러 간다. 호스텔에 부탁한 아침 식사는 샌드위치, 시리얼, 차가 나왔다. 7유로에 이 정도라는 게 아깝긴 하지만 양 자체는 많았던 편. 차 한 잔을 걸치고, 대강 짐을 챙겨서 헬싱키 역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 가 볼 곳은 핀란드 철도 박물관, Heureka 과학관, 그리고 수오멘린나 해상 요새이다. 나라는 인간이 철도 박물관을 놓칠 리는 없고, 과학관은 개인적인 호기심, 수오멘린나는 꼭 보고 가야 할 곳이다.

방문 순서는 반쯤 의도적으로 조정했다. 철도 박물관이 제일 북쪽, 과학관이 그 다음, 수오멘린나는 헬싱키 중심까지 들어왔다가 나가야 한다. 철도 박물관으로 가려면 히빈캐(Hyvinkää/Hyvinge) 역까지 통근 열차를 타야 하고, Heureka로 가려면 티쿠릴라(Tikkurila/Dickursby), 수오멘린나로 가려면 카우파토리(Kauppatori/Salutorget)에서 페리로 접근해야 한다.

철도 박물관은 히빈캐 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좀 걸어 가면 선로 주변에 있으므로 쉽게 보인다. 헬싱키 통근 열차의 T/H/R 노선이 히빈캐에 서며, T는 헬싱키-리히매키까지 전역 정차, H/R은 중간역을 건너뛴다. T나 H는 타고 싶어도 발에 채이는 게 R 노선이다 보니 그걸 타려는데… 일부 R 노선은 리히매키에서 탐페레까지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천안 급행 중 몇 편성을 대전역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운행을 하려면 열차 속도가 빨라야 하고, 그래서인지 R 노선은 전부 Sm4로 운행한다. R이라고 쓰여 있는 차를 타고 올라간다. 통근 열차 타는 곳에는 SMS 티켓 광고가 있다. 문자 메시지를 특정 번호로 보내면 2유로짜리 티켓이 폰으로 들어오고 이게 표 대신 사용 가능하다.

왼쪽부터 Sr1, Sr2, Sm4

Sm1(2?), Sm4

Sm3, Sr1. 아래쪽에는 통근 열차 SMS 티켓 광고가 있다.

이제 히빈캐 역에 내려서 남쪽으로 걸어간다. 내가 타고 왔던 Sm4는 2+3에 저상 열차이다. 승객 탑승 편의성을 위해서는 승강장을 높이거나 열차를 낮추어서 열차 내 좌석과 승강장의 높이를 맞추는 방법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시도되는 방법은 주로 전자였기에 열차를 낮춘다는 말 자체가 우리나라 철도계에서 생소하다. Sm4는 열차를 낮춘 케이스이다.

Sm4 사진을 보면 창문 높이가 출입문 주변은 낮고 대차 및 운전석 주변은 높으며, 출입문과 승강장 높이가 거의 비슷하고, 천정부가 우리나라 전동차류보다 더 두꺼움을 알 수 있다. 전장품이 죄다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실제 열차를 타 보면 차 내부에 계단이 있고, 저상부에 휠체어 탑승 공간이 있다. 전장품을 위로 올려서 얻는 장점은 동파 방지도 있다. 선로에 쌓인 눈이나 냉기가 차량 하부보다는 상부에 영향을 더 적게 주며, 여기는 북위 60도를 넘기는 핀란드다.

핀란드 철도 박물관은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크게 실내 및 여러 실외 전시실로 나뉘어 있으며, 실내에는 기념품 판매점 및 정태 보존 중인 차량, 실외에는 핀란드 철도 역사관 및 운행 가능한 차량이 있다. 과거 핀란드에서 사용하였던 증기 기관차 및 디젤 차량, 철도 신호기 모형, 철도역 관제실 모형이 있다. 핀란드 쪽 증기 차량 계보는 잘 모르기 때문에 역사관이 있는 바깥쪽으로 나왔다.

핀란드에 철도가 처음 깔린 시기는 제정 러시아 시기였고, 이 때문에 1524mm 러시아 궤간 및 우측 통행을 현재에도 사용한다. 1918년 핀란드가 독립한 이후에도 1524mm 궤간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해안가부터 시작하여 내륙으로 철도가 설치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핀란드 동부 영토를 소련에게 뜯긴 때에도 철도 노선 자체는 연장되었다. 이후 전철화, 고속화, 복선화 등을 거쳐서 현재 핀란드의 철도망이 완성되었다.

역사관에서 볼만한 것은 궤간 비교 모형, 과거에 사용하였던 행선판, 철도역 모습, 철도원 복장 등이다. 글자 형태로 미루어 보아(러시아 혁명 이후 경음 기호 Ъ가 대부분 경우에 빠졌지만, 여기 있는 행선판에는 경음 기호가 들어가 있다) 꽤 오래된 유물부터 지금 사용하는 행선판까지 다양하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박물관을 빠져나오는데 어린이용 기차 모형 코너에 신칸센이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건 뭐. Heureka로 가기 위해 여기를 빠져나와서 티쿠릴라 역으로 내려간다.

히빈캐 역. 역 건물 하나 있고 승강장끼리는 다리로 이동 가능.

핀란드 철박 정문

Dm6(7?) 디젤 동차. 부수차는 아니겠지.

증기 기관차

역 관제실 모형

협궤, 표준궤, 광궤. 핀란드의 궤간은 1524mm이다.

핀란드에 시대 순으로 개통된 철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토의 변화가 보인다.

과거 행선판

어 왜 여기에 신칸센이 있지

한국에서 과학관을 가서 그다지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Heureka 과학관 구경은 나름 기대가 되었다. 티쿠릴라 역 승강장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여, 헬싱키행 열차는 무조건 1번 승강장에 서고 2번부터 7번까지는 티쿠릴라 이북으로 올라가거나 당역 착발 열차이다. 1번 승강장은 버스와 평면으로 연결되어서 좋지만 나머지 승강장은 그렇지 않다. 헬싱키로 내려오는 열차를 타고 티쿠릴라 역으로 갔기 때문에 Heureka까지 가기는 쉽다.

과학관은 실내와 실외로 나뉘어 있으며, 실내는 상설 및 특집 전시관, 그리고 농구하는 햄스터가 볼거리다.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관에서는 범죄 수사를 다루고 있었고, 농구하는 햄스터는 Heureka에서 직접 기르면서 공을 주고받고 골대에 넣는다. 아 물론 앞에서 죄다 핀란드어로 말해서 해설은 못 알아들었지만, 대강 보니 한 골 넣을 때마다 먹을 걸 받는다.

어지간한 전시물들은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러시아어로 되어 있었고, 개방된 공간에 있는 모니터들은 화면을 반으로 나눠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화면을 출력시키는 배려를 하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과는 확실히 비교된다. 과학관 안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실도 있었고, 이건 내가 갔을 때는 열리지 않았다. 과학관 밖에 있는 놀이터에도 재미난 장난감과 암석이 좀 전시되어 있었다. 월요일 오후, 방학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꽤 많이 왔다.

정문

과학관 1층 개방된 공간

실험실

과학관 외부 놀이터

야외 암석 전시

Heureka를 둘러보고 나서 수오멘린나로 내려간다. 오후 2시라 그런지 초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땀이 엄청 났다. 역 앞의 혼란스러운 카우파토리 광장을 헤쳐 나가면 수오멘린나로 가는 페리가 있다. 카우파토리 광장으로 가는 길은 그냥 바닷가고, 거기서 먹을것들을 팔고 있다. 바닷가라는 특성상 갈매기들이 자주 유람을 오시고, 덕분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갈매기 주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페리 하나는 HKL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값이 싸지만 순수한 운송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이 외에도 여러 관광 회사에서는 페리+관광 상품을 같이 팔고 있다. 난 돈 없는 여행자다 보니까 HKL 페리를 타고 그냥 수오멘린나로 왔다.

수오멘린나는 핀란드가 스웨덴령이었던 시절에 군사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이후 러시아가 접수하면서 러시아군 요새로 용도 전환되었고, 현재는 평소에는 민간 주거지로 사용되다가 비상시에만 군사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곳곳에 핀란드 국기가 걸려 있고, 심지어 이 안에는 민가도 있다. 헬싱키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지번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돌로 포장된 길이 대부분이며, 해안 경치와 과거 군사 요새의 흔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한 곳에서는 지금은 쓸 수도 없어 보이는 과거 대포의 유적이 보이고, 다른 곳에서는 보트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거 지역과 관광 지역은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민가 주변에는 민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다. 섬을 산책하는 곳곳에도 민가가 보였다. 수오멘린나 박물관은 하필 내가 도착했을 때 닫아 버려서 거의 산책만 하다가 돌아왔다. 이 때가 저녁 6시쯤이었는데 목이 말라서 죽는 줄 알았다.

헬싱키에 도착한 첫 날 갔던 골든 락스를 다시 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 거기 피자가 영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 근처 지하에 있었던 또 다른 피자집으로 갔다. 헌데 이게 고생의 시작이다. 골든 락스는 음료수도 무제한이었지만, 거기는 뷔페 입장료는 싸지만 음료수는 돈 주고 사야 했다. 골든 락스는 살짝 비싸지만 음료수는 그래도 공짜다. 피자 자체는 이 집이 더 내 취향에 잘 맞았지만, 당시 엄청 목이 말랐기 때문에 배가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피자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한 판 정도만 간신히 먹고 호스텔로 되돌아갔다. 피자 맛은 괜찮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수오멘린나 방면 HKL 페리에서

수오멘린나 선착장

관광객을 위한 이정표

왼쪽: 수오멘린나 박물관

과거 군사 요새였음을 보여 주는 대포의 흔적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우파토리 광장

자 이제 헬싱키에서는 마지막 한 밤을 보내고, 내일 오전에는 투르쿠로 갔다가 저녁에 탐페레를 경유하여 로바니에미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탄다. 수오멘린나에서 체력을 많이 써서 그런지 씻고 나니 잠이 저절로 온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2일

Akademy 기간 동안 묵었던 TOAS City를 뒤로 하고, 이제 헬싱키로 떠난다. 오늘부터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는 이미 한국에서 사용 시작 날짜를 정해서 왔기 때문에 탐페레 역에서 별도의 확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직 26세 이하이기 때문에 2등석 유레일 패스를 끊을 수 있다. 핀란드에서 유레일 패스를 사용한다면 인터시티(2) 이하 모든 열차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며, 펜돌리노나 (투르쿠/헬싱키)-(로바니에미-콜라리) 간 야간 열차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TOAS City

TOAS City

일단 탐페레 역으로 가서 헬싱키로 가는 IC 열차를 타자. 시간은 넉넉하므로 탐페레 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핀란드의 역 승강장은 A/B/C/D로 나뉘어 있어서, 객차가 들어올 때 몇 호차가 어느 구역에 들어오는지를 알려 준다. 핀란드의 주요 간선 철도는 전철화되어 있고, 이미 Sr1/Sr2 전기 기관차와 객차 조합이 간선 노선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열차 시간이 되어서 내가 탈 열차가 Sr1 기관차에 이끌려 탐페레 역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시속 140km까지밖에 못 낼 거라고 생각하고 일단 차에 탔다.

탐페레 역 전광판

탐페레 역 승강장

Sr2 기관차와 인터시티 객차

Dm12 디젤 동차. 전철화가 많이 된 핀란드에서는 보기 힘들다.

오늘 내가 타고 갈(?) Sr1 기관차

일요일 낮 시간대라서 그런지 대부분 구간에서 공기수송. 좌석 지정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자유석 상태였던지라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인터시티 열차에 사용되는 Ed/Edb/Edfs 2층 객차는 핀란드 트랜스텍(한 때 탈고에 인수되었다가 현재는 뱉어낸 상태)에서 2000년대 초반에 제작하였고, 최근 생산한 객차답게 편의 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나는 유레일 패스를 보여 주고 끝나지만, 핀란드의 SMS 티켓은 티켓 바코드를 MMS로 보내 주기 때문에 플랫폼 가리지 않고 잘 보인다. 어느 나라의 철도공사는 스마트폰 승차권이랍시고 아이폰/안드로이드 전용으로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핀란드를 보고 배워라 좀. 풀숲 한가운데에 마을과 역이 드문드문 있는 핀란드의 기존선을 통과하는데 어 속도가 140을 넘기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탄 열차의 Sr1 기관차는 160짜리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헬싱키를 거의 다 와서야 뭔가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들었고, 궁금해서 내려서 열차 앞쪽으로 갔더니…

두둥. Sr2였다. 어째 탐페레 역에 오랫동안 정차하고 기관차가 들어온 것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알아봤더니 탐페레 역으로 들어와서 반대쪽에 Sr2 기관차를 붙였다. 하긴 시속 200짜리 펜돌리노가 공유하는 기존선인 만큼 200까지 밟을 수 있는 Sr2 기관차를 붙이는 게 맞다. 헬싱키 역에는 이 놈 말고도 Sm4들이 대거 보였는데, 헬싱키 지역 통근 열차로 사용되었던 Sm1/Sm2 전동차가 상당히 오래되어서 대체하기 위하여 반입하였다. 최고 시속 160km까지 낼 수 있고 저상 열차이다.

진짜로 내가 타고 온 Sr2 기관차와 Sm4

헬싱키 역 서쪽 출구

완전히 굶주린 채로 헬싱키에 도착해서 헬싱키 역 앞에 있는 골든 락스로 점심을 해결했다. 여기 피자는 얇은데다가 토핑도 별로 다양하지 못하지만 사이드 디시가 다양해서 9유로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 배가 고파서 막 넘어갔다. Erottajanpuisto 호스텔에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체크인 시간 오후 3시가 아직 되지 않아서 근처 공원에서 죽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앞에 한국 대사관이 있네?

호스텔 앞에 있었던 공원

호스텔 앞에 있었던 공원

7월의 헬싱키는 상당히 더웠다. 일단 씻고 잠을 좀 잤다. 일어나니 이미 오후 6시가 넘어 있어서 어지간한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호스텔 안에서 인터넷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호스텔을 빠져 나와서 주변을 걸어다녔다. 실외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위주로 구경하려다 보니 핀란드 국회(에두스쿤타) 의사당, 만네르헤임 동상 정도밖에 보지 못하고 들어갔다. 지금도 헬싱키에는 노면 전차가 다니고 있고, 우연히도 헬싱키 노면 전차 사진도 몇 장 건졌다. 에두스쿤타를 지나서 호스텔로 돌아오는데 한국+핀에어 직항편 광고를 단 버스가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니 눈 앞에서 사라져 못 찍었지만, 아무리 핀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편이라고 해도 최소한 핀란드어로 써 주는 성의는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핀란드 국회(에두스쿤타) 의사당 건물

핀란드 3대 대통령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동상

헬싱키 노면 전차의 최신형 차량 바리오트램

구스타프 만네르헤임 동상

생각보다 상당히 더웠던 헬싱키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밤 11시쯤 되니 떨어지기 시작했다. 위도가 좀 더 높은 탐페레에서는 밤 12시가 되어도 해가 안 떨어져서 잠을 많이 설쳤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블라인드를 쳐도 해가 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므로, 탐페레를 떠난 이후 엄청 편안하게 잠을 잤다. 탐페레의 TOAS City에 있던 침대에 비해서 상당히 푹신해서 잠도 더 잘 왔다. 이제 내일은 핀란드 철도 박물관, 수오멘린나 해상 요새를 살펴 볼 예정이다.

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8, 9일

사실 Akademy는 공식적으로 제 8일째인 2010년 7월 10일에 끝나고 9일차 일정은 없지만, 글의 분량을 위해서 합쳤다. 어제 있었던 Field Trip만 참가하고 간 사람이 많아서 오늘의 Demola는 상당히 한산하다. BoF도 참가자들이 다 가 버려서 들을 사람만 들을 BoF만 남아서, 난 탐페레 시내 구경한다고 점심까지만 먹고 나왔다. Sjors Gielen은 결국 maried를 다 디버깅했는데 봐 준 사람이 얼마 없어서 안습.

maried

maried

점심 먹으러 행사장 근처에 있었던 Ziberia를 마지막으로 갔다 온 다음 Demola 건물 1층에 있었던 TR1을 찾았다. TR1은 미술관이었고, 그 옆에 바로 붙어 있는 Rupriikki는 자그마한 통신 박물관이다. 금요일은 무료 입장이라서 그냥 들어갔다. 핀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GSM 전화기의 기지국, 원격 송수신이 가능한 타자기 등 핀란드에서의 통신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유선 전화가 최초로 깔린 곳은 바로 탐페레이다.

Akademy 행사장과 그 옆의 TR1

Akademy 행사장과 그 옆의 TR1

Ziberia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스파이 박물관으로 갔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추축국 편에 붙긴 했지만 이건 소련을 치기 위한 전략적인 이유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면서 핀란드는 땅도 뜯기고 독일군과의 협력 관계를 청산해야만 했고 소련에 전쟁 배상금도 물어야 했으며, 이후 중립국을 선언하였다. 러시아가 바로 옆에 붙어 있고, 서방 세계와도 친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갓 독립했을 때부터 핀란드 내 스파이 활동은 꽤 활발했다. 보이지 않는 잉크라든가, 세계 대전 동안 사용된 각종 장비 등이 볼거리이다. 여기 박물관은 무려 인터넷으로 가게도 운영한다.

Akademy 동안 이용한 Ziberia

Akademy 동안 이용한 Ziberia

자 이제 좀 일찍이긴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자. 다음 날 오전 동안 탐페레 시내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좀 쉴 계획이었고, 핀란드 와서도 KDE 번역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 날 저녁에는 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인도 사람들의 협찬으로 ‘고기가 안 들어갔는데 한국에서는 맛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운’ 카레와 ‘풀풀 날리는’ 쌀이 나왔다. 둘을 같이 놓고 먹으니 쌀이 풀풀 날아가는 게 좀 덜해서 먹을만했고, 기분 좋게 공짜 맥주도 돌았다. 숙소에 있던 TV와 N900을 연결해서 Gluon 데모도 하고 있었다. N900의 가속도 센서를 이용해서 블럭을 맞추는 데모였다.

사타쿤난카투. 뒤에 보이는 건물은 옛 핀레이슨.

해멘카투. 앞에 보이는 건 탐페레 역.

시차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다 자러 갔을 때 쯤 되어서 나도 잠을 자기 시작했고, 토요일이 되었다. 오늘은 탐페레 시내를 구경하는 날이고, 여러 사람들이 추천하는 대로 퓌니키(Pyynikki) 전망대를 찾기로 했다. 한국에 팔린 6210은 내비게이션 라이선스가 없어서인지 길 찾기를 시도하면 안내해주는 척 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꾸 구매하라고 뜬다. 게다가 퓌니키로 가는 길을 이정표에만 의지하자니 주거 지역과 산길을 지났고, GPS의 오차 때문인지 다른 뭐 때문인지 내리막을 걸었다가 다시 올라오는 등의 삽질을 반복해서야 퓌니키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

퓌니키 정상에 올라가는 건 2유로인가를 내야 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탐페레 시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호수 두 개가 보이고, 호수 사이에 있는 땅에 시가지가 들어서 있다. 한국과는 달리 고층 빌딩이 없어서 스카이라인이 전체적으로 낮다. 멀리 경치를 내다보면서 여기를 찾는다고 삽질했던 순간을 잊어버리고, 전망대 1층에서 파는 도넛을 먹으러 갔다. 검은 깨가 박혀 있는 코코넛 도넛이다. 안 먹으면 후회한다.

퓌니키로 가는 첫 길.

퓌니키 전망대.

퓌니키 정상에서 바라본 탐페레 시내.

꼭 먹어봐야 할 도넛.

퓌니키에 갔다 내려온 다음 무민 박물관을 찾으러 갔다. 무민 박물관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탐페레 시립 도서관을 찾아야 했다. 무민 박물관과 광물 박물관 둘 다 시립 도서관 지하에 있는데 어 지하에 어떻게 들어가지? 탐페레 도서관 입구로 들어가긴 했는데 위로 올라가는 계단만 있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없다. 건물을 나와서 옆쪽으로 가 보니 계단 발견. 할렐루야.

광물 박물관은 입장료도 저렴하고 사진 촬영도 자유로웠다. 핀란드 및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광물을 전시해 놨고, 정말 이런 것도 있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번쩍번쩍 빛나는 무언가가 많다. 바로 옆에 있는 무민 박물관은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의 생애, 무민 캐릭터와 그림, 전 세계에 출판된 무민 동화책을 갖다 놓았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도 박물관 안쪽에 마련해 놓았고, 번역된 동화책 중에는 한국어판도 있다.

무민과 광물 박물관 입구

할렐루야

광물 박물관의 전시품

도서관에서 나와서 핀레이슨 지역으로 가서, 이번에는 노동 박물관이다. Akademy 행사장(아 여기는 박물관이 아니지), TR1, 노동 박물관, 스파이 박물관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탐페레에 간다면 핀레이슨 지역으로는 꼭 가 보자.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1900년대 초중반에 탐페레 지역 경제를 유지했던 회사가 핀레이슨이다 보니 핀레이슨의 흔적은 탐페레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이 노동 박물관은 당시 탐페레에 살았던 노동자의 모습과 핀레이슨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중에는 인터내셔널도 있고, 여기 가면 핀란드어판을 들어 볼 수 있다. 이 외 탐페레에 있었던 대형 증기 기관의 복원 모형이라든가, 핀레이슨 공장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한 산업 철도, 핀란드 섬유 산업과 핀레이슨의 역사, 그리고 탐페레 시의 발전을 볼 수 있었다.

핀레이슨 지역의 과거와 현재

노동 박물관 입구

핀레이슨의 직물 견본

이후 사타쿤난카투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시립 Vapriikki 박물관으로 갔다. 2011년 9월까지의 특집 전시 주제는 곰이다. 또 다른 특집 전시로는 1918년 독립 당시 내전에 휩싸인 탐페레, 인형과 장난감, 사무라이들이 사용한 인로가 있다. 상설 전시는 북유럽 아니랄까봐 핀란드 하키 선수들과 신발이 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자연사에 대해서 전시하기 위하여 추가 전시실을 공사하고 있었다.

Vapriikki 입구

근처 전시되어 있는 증기 기관차

바프리키 박물관 북쪽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오후 3시쯤 숙소로 귀환하였다. 탐페레 시내는 볼거리가 확실히 많지만, 오래 있었다 보니 볼거리들은 거의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늘 오전에 떠났고, 난 하루 더 잔류하는 <10명 중 한 사람이었다. Akademy는 첫날과 둘째날이 가장 바쁘고 날이 갈수록 느긋해지는 특성이 있다. 한국 시간은 오후 9시쯤이므로 IRC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있다. 시차 때문에 밤에 IRC에 들어오면 다들 자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를 못 나누다가, 오늘에 와서야 뭔가 IRC를 즐길 수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탐페레를 떠나서 헬싱키로 간다. 탐페레여 안녕, Akademy여 안녕. 철도 티켓과 돈만 있고 나머지 계획은 이제 내가 짜야 한다. 말도 안 통하는 북유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긴장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