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F에 간 동안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번역 정책의 방향이다. 일본에서 보았던 각종 프로그램들은 잠시 침체되었던 KDE 번역의 정책 방향을 결정해 줄 수 있던 계기가 되었다. RSSF 이야기는 잠시 제껴 두고, 거기서 보았던 일본 컴퓨터들과 일본어 윈도 이야기를 좀 해 보자. 물론 이 글은 전문적인 글은 아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전산 용어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은 안 따지겠다.
우선 내가 일본에 와서 받은 충격은 대부분 외래어를 가타카나로 전사만 해서 쓴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본어 단어와 완벽하게 구분해서 쓴다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을 완벽하게 끌어안으려는 노력을 전혀 안 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정책과는 생판 달랐다. 리츠메이칸 BKC에 좍 깔려 있었던 터보리눅스 시스템의 GDM 화면을 보자. 참고로 본인은 KDM을 쓰므로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
저기 보면 사용자 이름을 입력하는 곳에 “ユーザー名”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적어도 KDM의 한국어 번역은 “사용자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고 기억한다. 마찬가지로 비밀번호도 “パスワード”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은 KDE 한국어 번역의 “열쇠글”이 모두 “비밀번호”와 “암호”로 바뀌었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사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일본어 윈도 XP에서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당장 USB 꼽았을 때 나오는 말이 “リムーバブルディスク”다. 한국어에서는 “이동식 디스크”라는 말이지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많은 단어를 한자어를 사용하거나 다른 일본어 단어를 끼워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가타카나를 쓴 것을 보면 이것은 문화 차이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 때의 KDE 한국어 번역은 한국어 순혈주의를 고집해서 “사용자 편의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일본어 번역들을 보면 우리는 너무 움츠리고 있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KDE 4부터는 적극적으로 외래어들을 순화시키지 않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니까 순혈주의를 포기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 동안의 순혈주의 정책도 어떤 면에서는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모든 외래어를 순화시키지 않는 것은 너무 무책임해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은 억지 한국어를 쓰기보다는 외래어를 그대로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