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노키아 배터리가 4개나 있다. 2개는 6210(BL-5F), 다른 2개는 N810(BP-4L)용이다. 둘 다 배터리 충전용 거치대가 없기 때문에 배터리를 서로 바꿔서 충전하는 수고를 매번 하고 있다. 이미 노키아 까페 등지에서 24핀 충전 거치대를 개조한 사람도 있고, 서드파티 충전 거치대를 파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성품 거치대 중에서 내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건 없었다. BL-5F와 BP-4L 둘 다 충전할 수 있는, 24핀 입력을 받는 거치대가 필요했다.
TTA 24핀 규격에 따르면, 충전 회로가 내장되지 않은 휴대폰은 1, 21, 22번 핀, 충전 회로가 내장된 휴대폰은 4, 5번 핀을 사용하며 접지 핀으로 12, 19번 핀을 사용한다. 대부분 시장에 풀린 충전기는 1, 12, 19, 21, 22번 핀을 사용하며, 휴대폰들 역시 충전 회로를 충전기에 넘기면서 4, 5번 핀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충전 거치대 역시 회로는 1, 12, 19, 21, 22번으로 연결되어 있고, 뜯어 봐도 별다른 조정 회로 없이 배터리를 바로 연결시킨다. 충전 회로를 내장시킨 충전기 보급 탓인지, 20핀 규격이 되면서 충전 회로 내장형 휴대폰을 위한 전원 공급이 삭제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썼던 LG-LC8000은 충전 회로가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장 AC 어댑터를 들여다보면 4, 5번 핀만 연결되어 있었다. 표준형 충전기로 충전이야 할 수 있었지만 충전 인식이 되지 않았고 충전 자체도 잘 되지 않았다. 전압 0.8V 차이가 이런 걸 만들어낸다. 충전기 전압이나 전류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들 어디 가셨나.
이론적인 설명은 이쯤에서 줄이고 직접 사진으로 충전 단자 차이를 보자. 필요한 설명은 아래 사진에 다 되어 있다. LG-xC8000 어댑터 출력은 5V/2A, 일반 TTA 충전기 어댑터 출력은 4.2V/750(일부 900)mA, 노키아 충전기 어댑터 출력은 5V/890mA이다. 배터리 충전 거치대를 만들기 위해서 일반 충전기 핀 배열을 참조할 것이다. 노키아용 24핀 젠더를 만들고 싶다면, 일단 4.2V를 5V로 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과학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무엇인지는 알 것이고, 전력은 전압과 전류의 곱으로 나오고, 모든 전압/전류 변환에는 손실이 생긴다는 것도 알 것이다. 노키아 어댑터에 필요한 전력은 5*0.89 = 4.45W, TTA 24핀 충전기에서 끌어낼 수 있는 전력은 4.2*0.75=3.15W이다. DC 변환 IC를 통과했을 때 손실을 감안하면 전력 부족으로 제대로 충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뛰어넘고, 전력 부족으로 제대로 충전이 안 되는 걸 극복하고 노키아용 24핀 젠더를 굳이 만들겠다면, 2mm 충전 단자 스펙과 TTAS-KO-06.0030을 읽어보자. 2mm 충전 단자 스펙 3.1절에는 고정전류 충전기, 4.1절에는 태양전지나 수동 발전기 같은 가변전류 충전기에서 허용되는 전압/전류 값이 나와 있다. TTA 충전기 스펙에서 정하는 4.15~4.23V/450~900mA는 3.1절과 4.1절 모두에서 허용하는 값이다. 4.2절에는 가변전류 충전기에서 나오는 전압이 4.65V 이상이 되지 않으면 충전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충전을 시작하기 위해서 충전기 판별을 할 때, 1~2mA 전류가 흐를 때 충전기 전압을 확인한다. 4.65~5.2V면 가변전류 충전기, 5.5~9.3V면 고정전류 충전기, 이 범위 외의 값이면 불량으로 판정한다. TTA 스펙에는 V/I 곡선이 나타나 있지 않아서 1:1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노키아 충전기에 들어가는 전압이 TTA 충전기보다는 높으며, 전류 문제도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미 애플 아이팟/아이폰용 24핀 젠더는 시중에 출시되어 있고, 내부적으로 4.2V를 5V로 승압해서 출력한다. 하지만 이것도 간혹 인식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며, 노키아 2mm 충전 단자는 5V보다 전압을 높여야 한다. 자연스럽게 공급 가능한 전류의 양은 떨어지고 충전 속도도 느려진다. 여기다가 인식 문제도 추가하면 답이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나는 노키아 휴대폰으로 갈아타자마자 24핀 충전기를 모두 집에 놔뒀고, 노키아 충전기 하나로 폰 2개를 같이 충전해서 쓴다.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기 전에 강조 하나만 하자면, 24핀 충전기 그 자체는 매우 좋다. 좀 더 범용적으로 개조해서 아무 리튬이온 배터리나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이미 가능하다. 이걸 가지고 노키아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는 건 전기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충전기를 가지고, 충전 회로가 내장되어 있는 기기의 배터리 충전용 전원 공급을 시도하는 건 전기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충전 회로 내장형 기기를 위한 전원 공급은 24핀 단자 스펙에는 명시되어 있지만 20핀으로 오면서 빠졌다. 어떻게 저떻게 젠더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노키아가 굳이 이 일에 손을 댈 필요가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젠더 찾는 사람들은 아쉽지만 포기하는 게 좋다.
배터리 충전 거치대 제작 계획으로 돌아가자. 노키아 배터리의 접촉 단자는 총 3개 달려 있다. 각각 V, GND, BSI이다. V와 GND에서는 전압이 나온다. BSI는 배터리 용량 및 온도 센서이자, 온도가 증가하면 작아지는 가변 저항이다. 과거에는 니켈계 배터리와 리튬계 배터리가 혼용되었기 때문에 BSI 핀이 배터리 용량, BTEMP 핀으로 온도를 파악했지만 현재는 이 둘이 합쳐져 있다. BSI 핀과 GND 사이의 상온에서의 저항은 배터리마다 다르다. BL-5F는 27㏀, BP-4L은 120㏀ 값이 찍혔다. 다른 노키아 배터리는 어떨까 찾아 보았지만 잘 안 보인다. 상온에서 BSI를 측정하려면 아무 표시도 안 되어 있는 극과 -극 사이 저항을 멀티테스터로 재면 된다. BSI 핀의 저항이 급격하게 변화하면 배터리 문제로 파악하고 휴대폰이 켜지거나 충전이 시작되지 않는다.
국내 휴대폰 배터리의 접촉 단자는 V, GND, BID이다. 노키아 배터리의 BSI 단자를 멀티 테스터로 찍어 보면 저항처럼 보이고, 처음에는 나도 저항인 줄 알았다. 주위에 있는 삼성 휴대폰 배터리를 찍어 보니 4.7㏀, 에버 배터리 하나는 1.5㏀이 나왔다. TTA 스펙의 BID에 따르면, 27㏀/4.7㏀/1.5㏀에 따라서 충전 전류가 450/750/900mA로 달라진다. BL-5F 배터리의 BSI 값 27㏀은 순전히 우연이다. TTA 스펙에 의해서 충전 전류도 450mA밖에 못 뽑아내기 때문에 충전 시간도 느린 게 당연하다. BP-4L 배터리를 그대로 연결시켰다면 저항값이 안 나와서 충전이 되지 않았거나, 되긴 하는데 뭔가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서드파티 충전기 제작자의 홈페이지에는 “배터리가 삽입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쓰여 있다.
사전 조사는 이 정도로 끝내고, 언제 한 번 서면 근처에 나가서 24핀 커넥터와 만능 기판, 4.7㏀ 저항을 사 와서 제작에 들어가야겠다. 노키아 배터리와 연결되는 단자 부분은 SPH-W2100 배터리 거치대를 잘 잘라서 쓰고, 가능하면 SPH-W2100 충전 거치대 안의 보드와 기구물을 사용하고 싶지만 BP-4L 배터리 크기 때문에 만능 기판 사용으로 선회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거치대 만들면서 블로그로 무단 링크 하였습니다. 허락하지 않으시면 삭제하겠습니다.
http://mailbone.tistory.com/13
아 뭐 괜찮아요. 펌질 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저 이거 제작하다가 좀 해먹은 게 많아서(…) eBay에서 배터리 충전 거치대 하나 사서 제작할 예정입니다. 제가 전에 쓰던 폰 충전 거치대는 BP-4L은 도저히 들어가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