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베이에 주문을 넣고 3주쯤 지나서 소포가 도착했다. BP-4L의 크기가 더 크기 때문에 충전 거치대는 BP-4L용으로 2개 질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실패를 대비해서 2개를 지른 건 잘 한 선택이었다. 하나는 AC 플러그가 달린 버전, 하나는 2mm 잭만 달린 버전이다. 원래는 2mm 잭만 달린 버전을 개조하고 AC 플러그 버전은 그대로 쓰려고 했다. 하지만 2mm 잭에 충전기를 끼웠다 빼는 순간 중간의 극이 삐뚤어져서 ‘아 이것이 중국 퀄리티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AC 플러그 버전도 하드웨어 퀄리티가 그닥 좋지는 않아서, 학교 잡화점에서 산 돼지코가 끝까지 들어가지도 않아서 ‘내장은 버리고 외장만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내가 여기서 필요한 건 저 위 전극 뿐인데, 어찌 전극 납땜 상태도 영 안 좋다. 선을 새로 납땜하는데, 인두 열기 때문에 녹은 납이 아래로 흘러내려서 플라스틱을 변형시켜 버렸다. 변형 정도가 점점 커져서 하는 수 없이 상판 중 하나는 버리고, 하나를 더 뜯었다. 작업하기 정말 골때리겠지만, 90도로 세워서 작업하면 그나마 녹는 시간이 좀 늦춰진다. 하지만 이것도 전극이 가열되면 플라스틱이 녹기 때문에 저 부분 납땜은 속전속결이 답이다. 여담이지만 중국산 납은 연기에 무슨 이상한 물질이 섞인 건지 작업하는 동안 문을 열어 놔야만 했다.
그 다음 미리 준비해 둔 24핀 커넥터와 4.7kOhm 저항을 납땜한다. 다행히도 옛날 휴대폰 충전 거치대에서 뜯어낸 24핀 커넥터는 SMD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잘 구부리면 만능 기판에도 들어간다. 배터리 ID는 4.7kOhm으로 이어 버려서 BSI 값이 실수로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 그 대신 충전기를 먼저 꼽으면 빨간 불만 깜빡이므로 배터리를 먼저 꼽아야 한다. 나머지야 배터리 쪽 전극의 양극과 음극을 충전기 쪽과 이으면 되기 때문에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다. BP-4L과 BL-5F의 홈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인두기로 홈 부분을 지져서 두 배터리 모두 들어가도록 손봤다.
다만 이걸 어떻게 깔끔하게 수납하느냐가 문제인데, 원래 기획대로라면 24핀 커넥터가 저 아래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아래쪽 플라스틱이 상당히 강해서 옆판을 파내기로 계획을 바꿨다. 옆판 플라스틱을 가위로 뭉텅뭉텅 자르고, 회로 기판을 돌려서 24핀 커넥터가 바깥쪽으로 나오게 만든다. 그 다음 나사를 적당히 조여 줘서 케이스가 맞물리도록만 만든다. 일단 배터리를 꽂지 않고 충전기만 꽂았을 때, 빨간 불이 깜빡이는지로 정상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이건 오래 전에 기존 애니콜 충전 거치대를 사용할 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빨간 불이 깜빡이면 BP-4L과 BL-5F 둘 다를 꼽아 보자. 6210에 BL-5F를 꼽고 빈 상태에서 만충전까지 걸린 시간보다 24핀 충전기로 BL-5F를 만충전시키는 데 걸린 시간이 좀 많이 오래 걸려서 처음에는 과연 녹색불이 뜰 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BL-5F 만충전이 한 2시간 30분 정도 걸렸고, 용량이 그거의 1.6배(950mAh vs 1500mAh) 정도 되는 BP-4L은 4시간이 지나도록 만충전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처음에는 무슨 문제가 생겼나 했다. BP-4L을 시험해 볼 때는 도대체 만충전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이러다가 배터리 터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뺐다가 N810에 끼워서 잔량 확인했다가 다시 끼웠다를 반복했다.
여튼 BP-4L은 완전 충전까지는 보지 못했다. BP-4L 거치대에 BP-4L을 끼운 만큼 어긋남은 없었다. 1500mAh 충전시키는 데 시간이 이리 오래 걸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긴, 국산 휴대폰 중 1500mAh 배터리 쓰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게 충전 시간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추가: 1500mAh 배터리를 사용하는 T*옴니아 2의 배터리 충전 시간이 약 5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이번에는 5시간을 기다려 봤다. 5시간쯤 되니 BP-4L도 만충전이 뜬다.
BL-5F는 다행히도 만충전이 떠 줘서 제작이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여튼 원래 목적이었던 BP-4L 충전 거치대 제작은 충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용성이 좀 떨어졌지만, 24핀 충전기를 다시 꺼내 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작할 이유는 충분하다. 역시 24핀 충전기는 좋은 리튬이온 배터리 충전기지, 좋은 Power Source는 아니다. 배터리 하나 충전 시키는 것도 폰에다가 꼽는 것보다 더 느린 판국에 폰에 이걸 꼽는다고? 비상용 아니면 쓰지도 못하겠군.
새삼스럽지만, 님 좀 짱이네염. 이런 것도 하고…
그러면 24핀 충전기의 모양을 가진 컴퓨터용 어댑터를 구해서 (아이리버 dicple 상점에서 구할 수 있음) 시험을 해보는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