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 일찍 이동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는 철도 박물관이 북부의 예블레와 남부의 엥겔홀름 두 곳이 있는데, 이 중 북쪽에 있는 예블레 지역 철도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웁살라를 경유하여 저녁에 스톡홀름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예블레로 가는 X2000 열차는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며, 스웨덴의 X2000 열차는 핀란드의 펜돌리노처럼 예약이 필수이므로 스톡홀름 중앙역이 딱 하고 여는 순간 예약부터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호스텔에서 좀 일찍 빠져 나왔다. 어제 끊어 놓은 스톡홀름 카드가 오전 10시에 활성화되었으므로 오늘도 오전 10시까지는 지하철 무제한 탑승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시행 중인 도시 철도 1일권은 발권 당일만 사용이 가능하므로 오후 늦게 끊으면 오전에 끊는 것보다 불리한데, 발권 당일보다는 발권 이후 24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인건비가 비싼 북유럽인 만큼 스톡홀름 중앙역의 발권 창구는 역이 열었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전 9시가 땡 하고 되어야 열린다. 발권 창구가 열렸다 해도 줄을 먼저 서는 게 아닌 번호표를 먼저 받아야 표를 살 수 있으므로, 내가 발권 창구에 갔을 때는 번호표 뽑는 기계를 노리는 매의 눈이 여럿 보였다. 오늘 오전에 이동할 X2000 및 내일 오전에 오슬로로 가는 IC 열차를 예약해야만 하므로 나도 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예블레로 가는 X2000 열차는 자리가 바로 나왔지만, 오슬로로 가는 IC 열차는 애완동물 동반 가능석만 남아 있다고 해서 좀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서서 가지 않는 걸 위해서 일단 끊었다.
표를 받자마자 바로 X2000 열차에 뛰어들어 일단 앉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속 300을 못 넘겨서 세계 랭킹 매길 때에도 언급이 거의 되지 않지만, 펜돌리노가 등장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업 운행이 시작되었다. 스웨덴에는 고속 열차 전용선이 깔린 구간은 없지만, 스톡홀름-예테보리-말뫼를 잇는 삼각형은 시속 200km급으로 고속화가 되어 있으며, 2010년 10월 경에 스웨덴 북부 지역을 관통하는 시속 250km급 보트니아 선이 개통되었다. 고속선 주제에 단선이다. 앞서 여행기에서 이야기했던 룰레오에서 스톡홀름으로 이동하는 야간 열차가 보트니아 선 개통 이후로 보트니아 선 경유로 조정되었으나, 내가 갔을 때는 아직 개통 전이었으므로 내륙을 넘나들었다.
아침 시간대에 출발하는 X2000 1등석 열차에는 공짜 식사가 딸려 나오지만, 2등석에는 그런 것 없었다. 난 그저 예블레로 가기만 하면 장땡이었으므로. 스톡홀름 중앙역을 출발한 열차는 알란다 선으로 진입하여 알란다 공항에 정차한 다음 스웨덴 북부로 올라갔다. 고속 철도를 운영하는 일부 유럽 국가는 장거리 고속 열차의 경우 시내 이동을 고속 열차로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면 서울발 KTX로 서울-광명을 이동할 수 없거나, 부산발 KTX로 부산-구포를 이동할 수 없는 제한을 거는 것이다. 알란다 중앙역도 비슷한 경우로, 이 역에서는 시외로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린 후 예블레에 도착하였다.
예블레 철도 박물관은 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내가 못 찾은 건지 가는 길이 차도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인도가 전부였고, 교외 아니랄까봐 차들도 씽씽 달렸다. 걸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겁도 조금 나기도 했다. 유레일 패스 소지자에게는 할인 혜택만 제공된다. 스웨덴의 철도 박물관은 여기 말고도 남쪽의 엥겔홀름에 한 군데 더 있지만, 스웨덴 남부 여행은 일정상 계획에 없었고, 보기로 했던 웁살라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예블레가 있다는 점 때문에 예블레의 박물관을 선택하였다.예블레 박물관에 들어서니 스웨덴의 과거 차량들이 반겨 주고 있다. T44 도입 이후로 물러난 T43 기관차, 아주 오래 전에 사용되었던 X9 전동차, IORE가 도입되면서 퇴역한 Dm 기관차 등이 있었다. Dm 기관차는 스웨덴 북부에서 사용되었던 철광석 수송에 특화된 기관차였고, 처음에 2량으로 시작해서 중간차를 끼워넣어서 3량으로 만들었다. 이후 IORE가 들어오면서 Dm3은 퇴역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 2010년은 스웨덴에 철도가 들어온 지 15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예블레 박물관에서 이걸 기념하고 있었다. 객차 몇 칸을 빌려서 스웨덴 철도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고, 전철화 비율이 높은 스웨덴의 특성 상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예블레에는 순전히 철도 박물관 때문에 왔고, 웁살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예블레 역 주변에서 핫도그로 점심을 대강 때우고, 웁살라로 내려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내려오는 길에는 X40이 걸렸다. 2층 열차인 건 좋은데 악랄하게도 2층이 전부 1등석이라서 어쩔 수 없이 1층에 앉아야 했다. 거의 1시간 정도를 달려서 웁살라 역에 도착하였다. 웁살라 역은 최근 공사가 끝난 듯 승강장과 역 건물이 개축되어 있었다. 웁살라 역을 빠져나와서 우플란드 박물관과 웁살라 대학교 방면으로 갔다. 우플란드 박물관은 대학 도시 웁살라의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웁살라 대학교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고, 그러다 보니 여러 학생들이 웁살라를 거쳐 지나갔다. 우플란드 박물관은 이 지역의 역사만큼 이 지역에서 배출된 학자, 학생들의 생활상을 잘 다루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역에서 찾아가기는 쉬운 편이다. 웁살라 박물관을 나온 다음 웁살라 대학 박물관으로 가 봤다. 앞서의 박물관이 일반적인 웁살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면, 웁살라 대학 박물관은 린네로 대표되는 웁살라의 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웁살라 대학 박물관을 빠져나와서 드넓은 웁살라 대학 식물원으로 갔다. 규모 하나는 꽤 어마어마해서 야외 전시된 식물을 보는 데만 꽤 시간이 걸렸다. 웁살라 대학 식물원을 둘러보다가, 폐장 시간이 슬슬 다가와서 스톡홀름으로 되돌아갔다. 웁살라-스톡홀름 간은 여러 철도 운영사들이 경쟁적으로 열차를 굴리며, SJ에서도 웁살라 통근 열차(Uppsalapendeln)를 굴린다. 기관차 2량이 앞뒤에 연결되어 스톡홀름-웁살라를 거의 고정 편성으로 운행한다. SL 열차와 접속은 주로 종점 부근에서만 이루어지며, SJ 열차는 스톡홀름 도심으로 빠르게 진입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단 다른 SL 열차와 운임은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오후 6시경인데도 불구하고 공기 수송이었다. 그 다음 호스텔로 이동해서 내일 오전 6시 오슬로행을 준비하였다. 스웨덴에서 노르웨이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은 총 4곳 있지만 어느 곳 하나 열차가 자주 다니지는 않는다. 남쪽부터 북쪽으로 오슬로-예테보리, 오슬로-스톡홀름, 트론헤임-외스테르순드, 나르비크-룰레오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거리 및 속도 문제로 인하여 열차가 많이는 다니지 않고, 오슬로-스톡홀름은 상징성과는 달리 열차편이 의외로 적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예약할 때도 창구 직원이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고, 이 예상이 상당히 적중했다.열차는 스톡홀름 남쪽으로 떠난 다음 쇠데르텔리에에서 SL 열차와 마지막으로 만나고, 다시 서쪽으로 달려서 카를스타드 등을 거쳐서 노르웨이 영내로 진입한다. 여기까지는 좋았고, 기찻길이 거의 숲 속에 있고 역 주변으로 가야 거주지가 보였다. 카를스타드까지는 상당히 잘 왔으나… 노르웨이 국경을 앞두고 킬(Kil)에서 열차가 섰다. 안내 방송으로는 기관차가 퍼졌다는 말만 나왔다. 객차에 전원은 계속 공급되고 있었고, 공조 장치는 계속 작동하고 있어서 굳이 나가 보지는 않았다.
한 2시간쯤 후. 대체 기관차를 수배할 수 없어서 버스 대행 수송을 한다는 말이 나왔고, 그 때가 다 되어서야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열차를 탄 사람들이 노르웨이 국경 주변에 내릴 일은 없고, 의외로 오슬로는 노르웨이 동부 국경과도 멀지 않아서 버스는 오슬로로 바로 갔다. 참 놀라웠던 점이라면, 오슬로로 가는 길은 왕복 2차선 이상으로 된 구간 찾기가 힘들었고, 국경선 주변의 검문소는 형태만 남아 있었다. 노르웨이 휴대폰 신호가 잡히기 시작해서 로밍 문자가 가서야 국경을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웨덴과 도로 표지판의 글자체가 미묘하게 다르다.
철도를 이용하면 높은 확률로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을 거치지만, 도로는 철도보다는 남쪽으로 노르웨이에 진입한다. 오슬로에 거의 다 왔을때쯤 혼잡 통행료 징수 톨게이트가 보였고, ‘아 이제 내려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슬로에는 거의 2시간 반을 지연먹고 도착하였다. 아니 도대체 기차가 얼마나 느리기에/버스가 얼마나 빠르기에 역에서 2시간 반을 세워 놓고도 그만큼 지연되어서 도착하나.
여담으로, 이 열차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안내 방송도 안 나오고 ‘기다리라’는 말만 나오고, 승무원들은 전혀 코빼기도 안 보이고(실제 그랬다!), 열차 내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면 절대 사람들이 두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 열차가 5분 지연되었다고 그걸 가지고 들고 일어나는 게 한국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역 만리에서는 이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다는 게 내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 부디 한국에서도 몇 분 지연되었다고 언론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람들이 철도공사를 뒤엎을 기세로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되나.
열차 지연+오슬로의 비가 왔다갔다하는 날씨 때문에 호스텔로 들어가서 일단 씻었다. 내 외환은행 체크카드가 통하지 않아서 근처 ATM에서 1000 크로네(약 25만원)를 뽑았는데, 500크로네 지폐 한 장을 프론트에 내면서 이게 12만원짜리 지폐라는 게 잘 실감이 가지 않았다. 뭐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피곤해서 이것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내일의 오슬로는 과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