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8일

핀란드 로바니에미보다는 덜했지만, 스톡홀름의 백야도 만만찮았다. 일어나 보니 꽤 이른 시간이었다. 어제는 스톡홀름의 야외 관광지를 둘러보고 뻗었다면, 오늘은 박물관을 위주로 일정을 계획하였다. 돌아다닐 일이 많아서 스톡홀름 카드를 샀다. 내가 샀을 때에는 학생 할인이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2011년 현재에는 없다. 1일권이 425크로나 정도이고, 대개 박물관 입장료가 100크로나 안팎, SL A구역 표가 30크로나이므로 본전 뽑기는 쉽다.

호스텔 주변에 있는 큰 호텔로 가서 스톡홀름 카드를 산 다음, 지하철을 타고 감라 스탄으로 올라갔다. 지하철 역은 감라 스탄의 바깥쪽에 있고, 여기서 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야 관광지와 박물관이 나온다. 옛날 스톡홀름의 좁은 골목길이 잘 보존되어 있기에 차가 쉽게 들어오지 못해서 걸어다니기는 좋다.

감라 스탄 지하철역

감라 스탄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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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라 스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노벨 박물관이다. 여기쯤에서 스톡홀름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노벨의 일생, 역대 노벨 상 수상자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 영어와 스웨덴어 가이드 투어를 확인하였고, 삼성과 기아가 후원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팸플릿도 있다. 이 안에 있는 까페에서는 노벨 상 메달 디자인 초콜릿을 팔고 있다. 노벨의 유언 중에는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결정하라는 말이 있었고, 이는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동군 연합을 이루었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오슬로에는 노벨 평화 센터가 있다.

노벨 박물관

노벨 박물관

노벨 박물관을 다 둘러 본 다음 근처의 스톡홀름 왕궁으로 갔다. 관람객에게 개방된 곳은 왕궁의 일부이고, 스웨덴 왕실의 역사와 왕궁 건물 그 자체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스톡홀름 왕궁

스톡홀름 왕궁

왕궁을 다 둘러본 다음 화폐 박물관으로 갔다. 스웨덴은 유럽 연합 국가이지만 스웨덴 크로나를 사용하고 있으며, 당분간 유로로 전환될 일은 없어 보인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스웨덴에서 사용되었던 화폐들, 그리고 스웨덴 크로나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당시 스웨덴 전국이 공주의 결혼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기념 주화와 기념품을 박물관에서 팔고 있었다.

멀리서 본 화폐 박물관

화폐 박물관 입구

감라 스탄에서는 매일 정오 쯤 근위병 행진이 있다. 일부가 개방되어 있기는 하지만 왕궁이 여기에 있기에 이것도 나름 볼거리다.

감라 스탄 주변의 근위병 행진

감라 스탄 주변의 근위병 행진

근위병 행진을 본 다음 슬루센 역으로 가서, 노면 전차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노면 전차라는 이름과는 달리 ‘작은 철도 박물관’ 수준이다. 현재 스톡홀름에는 유르고르덴 방면 노면 전차가 있으며, 1967년 우측 통행으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기타 노선의 노면 전차도 운행하였다. 물론 버스, 통근 열차, 지하철 등 다른 대중 교통 수단도 많이 있다. 노면 전차 박물관은 이름만 노면 전차지, 스톡홀름 지역 대중 교통의 역사를 다 다루고 있다.

특히 스톡홀름 지하철 및 통근 열차는 공간 문제 때문에 앞부분만 잘라서 전시해 놓은 차량도 많지만, 가능한 한 실차를 보존하려고 하였다. 임시 열차로 쓰려고 투입한 알루미늄 무도장 지하철 열차 C5도 여기에 있다. 다른 스톡홀름 지하철 전동차와는 다른 은색의 외관, 임시 열차로만 나타나는 희귀성 때문에 도시 전설과 자주 얽힌다. 이 외에도 스톡홀름 지하철에 사용되었던 롤지, SL의 이름이 변해 온 역사나 글씨체의 역사 등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내 자료실에는 SL뿐만 아니라 스웨덴 전국 철도차량 정보를 담은 연감도 있고, 안에는 자그마한 식당이 있어서 끼니를 여기에서 해결했다. 결코 지나가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 박물관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여행기에서 다룰 예블레의 철박보다 연감 하나는 좋았다.

슬루센 역

노면 전차 박물관

스톡홀름 지하철의 행선판과 롤지

SL 역사에 관한 자료

노면 전차 박물관을 다 둘러본 다음, 마지막으로 뽕을 뽑기 위해서 유르고르덴 쪽에 있는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고 왔다. 과학 기술 박물관경찰 박물관이다. 슬루센에서 유르고르덴으로 가려면 T-센트랄렌이나 카를라플란 쪽에서 버스를 타야 하고, 버스의 경우 유르고르덴을 지나서 더 들어가면 박물관 지역에 내려 준다. 거의 종점이므로 같이 내리면 된다.

슬루센 역의 또 다른 출구

슬루센 역의 또 다른 출구

과학 기술 박물관은 입장 시간이 거의 끝나서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 핀란드에서 봤던 과학관처럼 시설 자체는 꽤 잘 되어 있고 스웨덴어와 영어로 둘 다 설명이 적혀 있다. 눈여겨 볼 전시물로는 The Pirate Bay에서 압수한 서버, 우분투, OLPC이다. The Pirate Bay는 스웨덴에 서버를 두고 있는 토렌트 사이트고, 우분투와 OLPC야 잘만 사용하면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언젠가 스웨덴에서 소송이 걸려서 서버를 압수당한 게 여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과학 박물관 앞에 있는 경찰 박물관은 범죄 수사 기법과 스웨덴에서 일어난 특종 등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는 영어 설명이 거의 없어서 보기 불편할 수도 있다. 버추어 캅 아케이드도 갖다 놓았다.

과학 기술 박물관 입구

The Pirate Bay 서버

우분투

OLPC

경찰 박물관 입구

경찰 박물관에 전시된 헬리콥터

이제 유르고르덴 지역을 빠져 나와서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하여 도심으로 다시 나왔다. 스톡홀름에서 버스를 탄다면 세르겔 광장(Sergals Torg)과 T-센트랄렌 역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퇴근 시간이 되니까 역 앞은 상당히 붐볐다.

세르겔 광장/T-센트랄렌

세르겔 광장/T-센트랄렌

여기까지가 오후 6시쯤. 많은 볼거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박물관 투어는 이제 어렵고, KTH 건물이나 보고 오자고 생각해서 지하철을 탔다. 우리 학교 전자과 학생으로 교환학생을 가려면 전자공학실험을 듣기 전 일찍 가거나 들은 후 늦게 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데, 난 어쩌다 보니 둘 다 놓쳐 버려서 캠퍼스만 보고 왔다. 테크니스카 획스콜란(Tekniska Högskolan) 역에 내리면 KTH 정문이 바로 보인다.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일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대학교가 원래 그런 걸 수도 있다. 입구 쪽에 있는 캠퍼스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다.

KTH는 잠깐 둘러보고, 그 앞에 있는 로스라그스 선 기차역으로 갔다. 로스라그스 선은 스톡홀름 동북부로 나아가는 861mm 협궤 철도이다. 직류 1500V로 전철화되었다. 개통 초기에 비하면 많은 구간이 폐선되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80년대에 생산된 X10p 차량은 2+2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총 3종류의 운행 계통이 있으며, 모두 스톡홀름 외스트라 역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분기된다. 여기 말고는 지하철 접속 지점도 찾기 힘들고, 배차 간격도 짧지는 않아 보여서 그냥 보고만 왔다.

KTH 건물

테크니스카 획스콜란 지하철역. 코앞에 KTH가 있다.

스톡홀름 외스트라 역

승강장. 891mm 협궤가 눈에 보인다.

내일은 예블레의 철도 박물관, 웁살라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모레는 노르웨이 오슬로로 들어가기 위한 기차를 끊어 놨는데, 여기에서 난생 처음 기차가 퍼져서 2시간을 갇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