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1일

올해 Akademy는 핀란드에서 열린 덕분에, 예년에 비해 참가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했던 돈도 조금 많이 필요했다. 2008년과 2009년 Akademy 때는 딱 거기만 둘러보고 왔던 과거가 있어서 올해는 북유럽 여행까지 같이 계획해 버려서, 두 해 전에 비해서 결코 돈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딱 5월 말에 핀란드로 가는 항공권을 마련해 놓고, 6월에는 핀란드 탐페레 및 북유럽 투어 코스를 짠다고 한 달을 다 썼고, 7월에는 드디어 출국이다.
집 근처에서 김해공항 리무진을 타고(정류장별 첫차 시간은 공항리무진 버스에 전화해 보면 알려준다. 인터넷에는 첫차와 막차 시간만 있어서 낭패봤다.) 일단 김해공항으로 간 다음, 하루에 몇 편 없는 인천행 KE1402편을 타고 올라간다. 은근히 외국인들도 많이 탔고, 안내방송도 델타와 코드셰어 운항을 한다고 했다. 사실 이거 타기도 전에는 김해공항 전광판에 코드셰어가 된다는 것도 안 나와서 몰랐다. 아무튼 이걸 타고 인천공항에 8시쯤 도착한 다음, 출국 카운터를 거쳐서 핀에어 AY42편을 타러 갔다.

인천공항에 대기 중인 AY42편

인천공항에 대기 중인 AY42편

그 날 비가 상당히 오고 있어서 제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출발했지만, 헬싱키 반타 국제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한 걸 보면 얘들은 마법사인 게 확실하다. 한국에 오는 핀에어 비행기에는 모든 좌석에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달려 있고, 언어에 한국어도 들어가 있다. 갈 때 탄 비행기에는 무려 무한도전도 들어 있었다. 한국인 승무원도 타고 있었고,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한국어 순서로 방송이 나온다. 안내방송이 나오는 중에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잠시 중지되는데,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 방송을 한 사람이 하고, 한국어 방송을 다른 사람이 하기 때문에 두 방송 사이 잠깐동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중지에서 풀린다. 이 날은 가다가 집단리셋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재부팅 화면에 뭔가 익숙한 펭귄이 떴다. 재부팅 이후 내 자리에서 도대체 지도가 안 보여서 ‘다시 한 번 더’ 재부팅시켰더니 지오드 기반 임베디드를 쓴다는 것까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날 나왔던 기내식

그 날 나왔던 기내식

핀에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정체

핀에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정체

아무튼 헬싱키 반타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조금 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환승을 위한 또 다른 게이트로 빠져나가고, 나는 그대로 입국 심사 및 공항 출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 쪽으로 나간 사람이 나 포함해서 10명도 안 되었다는 건 반쯤 확신한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헬싱키 경유 다른 데로 빠져나갔지, 핀란드가 목적지인 사람은 내가 그 날 혼자, 아니면 한두명 더 있었을 것이다. 2008년 독일/2009년 스페인 입국 심사 때와는 달리, 올해 핀란드 입국 심사 때는 non-EU 게이트에 줄 선 게 나 혼자서였는지(유럽 공항 입국 심사대 게이트는 대개 EU(여따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유럽 안에 있는 EU 미가입국 추가)/non-EU 게이트로 나뉘어 있다)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졌다. 방문 목적과 기간은 입국 심사에서 빠지지는 않을 질문이고, 복편 항공권은 마련해 두는 게 좋다. 이게 없으면 좀 골치아파질 수 있다. 어쨌든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온 다음, 티쿠릴라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왔다. 공항이 작아서인지 얼마 걷지 않아도 된다. 61/61V번 버스를 타면 되고, 표는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하면 된다. 61V 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인 대신 61번보다 5분 정도 빠르다.

하여튼 티쿠릴라 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헬싱키 시내와는 반대방향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탐페레 공항이 작은 편이기 때문에+기차를 좀 타 보고 싶어서 헬싱키까지만 비행기를 타고 탐페레는 기차로 가기로 했다. 일단 당장 출발하는 펜돌리노 열차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만석이 뜬 덕분에 1시간이나 기다린 다음 다음 펜돌리노 열차를 타기로 했다. 핀란드에는 별도의 고속선이 없기 때문에 시속 220까지 밟을 수 있는 펜돌리노나, 140/160 정도 밟는 인터시티나 시간 면에서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직선화가 잘 된 구간에서는 펜돌리노도 상당히 잘 밟아준다. 기존선을 시속 190으로 밟는 광경은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 하여튼 펜돌리노 열차를 타고 탐페레 역으로 간다.

VR Sm3 펜돌리노.

VR Sm3 펜돌리노. 이걸 탄 건 아니다.

탐페레 역에서 TOAS City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같이 갈 사람이 있나 싶어서 한국에서 올 때 파란 KDE 티셔츠를 입었던 덕분에 한 사람까지는 찾아서 같이 갈 수 있었다. TOAS City를 호텔이나 호스텔로 착각할 때에 대비해서, 여기는 탐페레 시내 외국인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Akademy 기간 동안 빌려준 것이다. 체크인을 끝내고 열쇠까지 받아 와서 방에 짐을 넣어 놓은 다음, 명찰을 찾으러 Demola로 갔다. 이미 사전 등록으로 사람이 많이 와 있어서 반쯤 놀자판이 되어 있었다. 적당히 알고 있던 사람과 인사를 나눈 다음, 한 몇 시간을 놀다가 오후 7시인가 8시쯤 샤워젤과 면도기를 사러 빠져나왔다. 난 처음에 소파와 자작 아케이드 머신, 축구 경기가 나오는 프로젝터가 있는 분위기를 보고 Demola가 사무실인 줄 몰랐다.

Demola 입구

Demola 입구. 저 건물 3층이다.

기내 액체 반입 규정 때문에 다른 건 다 100ml 이하의 용기를 구했지만 유독 샤워젤은 최소 단위가 2/300ml이다. 게다가 1회용 면도기는 위탁 수하물로 부칠 수는 있지만, 기내에 들고 탈 수는 없다. 1달 동안 쓰고 버리고 갈 거를 생각해서 탐페레 역 주변에 있는 Lidl에서 파는 가장 작은 300ml짜리 샤워젤과 저렴해 보이는 면도기 세트를 사 왔다. 그 다음 역 앞에 있는 R-Kiosk에 가서 Saunalahti 선불 심카드를 사 왔다. 내 노키아 6210은 출국 전에 지인을 통해 언락시킨 상태라서, KT 회선은 일시정지시켜 두고 나라를 이동할 때마다 선불 심카드로 버티기 위해서였다. 한 5.7유로인가에 선불 카드를 살 수 있고, 카드를 사면 6.얼마 정도가 충전되어 있다. 핀란드에 깔려 있는 아무 R-Kiosk에 가서 최소 10유로부터 충전시킬 수 있다. 단 선불이다 보니 최초로 휴대폰에 끼운 날부터 3개월이나, 마지막으로 충전한 날부터 12개월 동안까지만 번호가 유효하다. 아무런 신분증 제시 없이 전화카드처럼 살 수 있는 게 모 후진국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애시당초 핀란드에는 공중전화의 씨가 말랐다.

This is 선불 심카드

This is 선불 심카드


이제 내일부터 Akademy가 시작되어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자야 하는데… 오후 9시가 되었는데도 해가 질 생각을 안 한다. 11시가 되어도 꿈쩍도 하지 않다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해가 떨어지는 척을 좀 한다. 블라인드를 쳐서 잘만한 상태로 만들긴 했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새벽 5시인가 6시다. 그런데 해가 중천이라서 오전 8시쯤으로 착각했다. wt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