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2일

올해 들은 발표를 되짚어 보면, 생각만큼은 많지 않았다. 비록 재미난 건 많았지만 이 날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체력 보충도 제대로 안 되었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 15분(이게… 10시간 가까이 된다) 동안 점심과 저녁 빼고, 발표만 진행된 탓에 제대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커피 쿠폰이 4장이나 나온 게 다 이유가 있었군 도중에 잠깐 나가서 쉬기도 하고, 오후 늦게 있는 발표는 안 듣고 와서 잠이나 잤다. 그래도 후보작을 꽤나 높은 비율로 압축한 탓에 들을거리는 많았다. 여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오후 8시부터 파티까지 있었으니… 첫날 체력 게이지를 잔뜩 깎아서 둘째날 발표를 못 듣게 하려는 주최측의 음모다는 건 훼이크고… 써 놓고 보니 진짜 같다는 느낌도 든다.

뭐, 일단 탐페레 대학교에서 첫 두 날이 진행된다. 오프닝 행사가 9시 반부터고, 9시 45분 노키아에서 온 Valtteri Halla의 미고 프리젠테이션으로 시작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슬라이드는 공식적으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비디오는 있다. 큰 밑그림은 노키아와 인텔이 앞으로 미고를 어떻게 쓸 것인지고, 엔드 유저나 프로그래머가 좋아할만한 떡밥은 가끔씩 터져 나왔다. 처음에 노키아가 트롤텍을 인수한다고 하였을 때 모바일 플랫폼에 쓸 것이라는 예상은 모두 하고 있었고, 그게 바로 미고다. 비록 실제 제품화는 경쟁 진영에 비해서 상당히 늦었지만, 그 동안 각종 오픈소스 회사 및 프로젝트와 협력을 눈에 안 보이게 하고 있었고, KDE 쪽에서 개발한 기술도 미고에 많이 흡수되었다.

첫 날 한쪽 발표장은 사실상 모바일 트랙이 독점하였고, 다른 한 쪽은 커뮤니티와 개발이다. Collabora에서는 텔레파시 이야기를 들고 왔고, 그 다음 발표가 Qt 기반 프로그램을 오비 스토어에 올리기다. 예전에 올렸던 Carbide C++/Open C++/Qt 라이브러리 설치는 Qt/S60이 베타 시절 이야기고, 지금은 Qt 크리에이터가 그만큼 발전해서 S60용 개발 도구와 시뮬레이터를 같이 설치할 수 있다. 당연히 저 세 조합을 설치할 때보다는 쉽다. 웹킷 컨트롤 하나 올리고, 주소 표시줄과 뒤로/앞으로 버튼만 슥슥 올려 주고, 시그널과 슬롯만 이어 주면 웹 브라우저 데모가 탄생한다. 발표 중에 심비안의 큰 문제인 인증 이야기도 잠시 나왔다. 자가 서명한 인증서를 사용하면 무료, Symbian Signed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유료, 오비 스토어 개발자 계정이 있으면 무료이나 오비 스토어로만 배포 가능하다. 미고에는 인증 개념이 없다. 애시당초 심비안의 인증이란 게 플랫폼 보안과 직결된 거라서 일정 수준 이하로 간단하게는 못 만들 것이다. 이쯤 들은 다음 잠시 쉬러 나왔다.

안드로이드 iOS 꺼져

안드로이드 iOS 꺼져

발표는 일단 여기까지 듣고, 오전의 키노트 및 이 발표까지 IRC로 중계한다고 닳아 버린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시키러 조금 빠져나왔다. 충전 센터의 많은 자리가 점령되어 버려서 빈 자리를 간신히 하나 찾았다. 거기서 오늘 챙긴 수확물(각종 스티커, 오리)을 정리하던 중 갑자기 펭귄이 방에 난입했다. 기분 전환을 위한 주최측의 장난 치고는 꽤나 엉뚱했다. 나중에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니 저 펭귄은 이곳저곳 다녔다.

펭귄이_지나가네.jpg

펭귄이_지나가네.jpg

발표장 바로 바깥에는 적절한 식당과 커피가 있었다. 뭐 핀란드 사람들이 커피 좋아하는 사실 정도는 알고 넘어가는 게 좋다. 그냥 커피만 뽑으면 상당히 쓴 놈이 튀어나오므로 설탕인지 자일리톨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단 거를 넣거나, 우유를 넣지 않으면 상당히 쓰다. 그런데 이런 놈을 들이부어도 잠이 오는 건 무슨 센스인지 참. 고등학교 때 커피계가 몸에 잘 듣지 않아서 잠과 전쟁할 때에는 미리 잘 시간을 벌어두는 게 답이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잘 없는 진한 커피로도 어쩔 수 없는 거 보면 GG. 환경 보호에도 신경쓰고 있어서 샌드위치류를 잘라먹기 위한 식기는 대개 나무에 종이 접시였다. 에너지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는 따로 모으고 있다.

행사장 바깥

행사장 바깥

아무튼 커피를 좀 들이붓고 재미있어 보이는 Marble 모바일 발표를 듣고 왔다. 이미 Marble은 Qt만 사용하는 버전도 같이 개발되고 있으며, 지도를 보여주는 데는 이만한 프로그램은 없다. 버전이 점점 올라가면서 GPS에 바로 접근해서 경로를 가져오거나, Qt 컨트롤로 변신하여 다른 프로그램에서 지도를 보여주는 등 여러 기능이 추가되었다. 오전 발표는 이 정도로 끝나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학교 식당에서 7유로 정도의 뷔페로 해결하고, 오늘의 메뉴는 연어 스테이크였다. 다행히도 밥이란 게 나와서 많이 퍼먹었다.

7유로에 이런 거 구하기 힘듭니다

7유로에 이런 거 구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여기를 벗어나면 이 정도 음식을 먹으려면 돈도 좀 비싸져서 가능하면 점심을 많이 퍼먹고, 아침과 저녁을 줄여서 돈을 아꼈다. 저기 나온 저 연어 스테이크는 꽤나 맛이 괜찮았다.

오후 발표로는 KWin 모바일 이야기를 들었다. 모바일에서 사용되는 OpenGL ES로 변환, 모바일을 위한 새로운 UI 설계, 제스처 등의 흥미있는 떡밥이 나왔다. 실제 N900에서 사용할 수 있는 KWin 모바일 버전도 이 때 시연해 보았다. 데스크톱에서 볼 수 있는 효과 중 창 크기 조절은 과감하게 삭제되었으며, 창을 그룹별로 나누고 제스처를 사용하여 화면을 전환하는 것 까지 시연하였다. 발표 중에 월드컵 8강전 독일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려서, Plasma의 네트워크 애플릿 공유를 사용했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화면 한쪽에 점수가 떴다.

KWin on N900

KWin on N900

아르헨티나 대 독일 0:1

아르헨티나 대 독일 0:1

이거 다음 들은 발표가 KDE 플랫폼 프로필이다. KDE가 모바일과 같은 여러 플랫폼으로 이식되려면 플랫폼에 따라서 필요한 기능 집합이 바뀌어야 한다. 데스크톱/넷북/MID 다 특성이 다르며, 그에 필요한 기능이 다르다. 현재는 Plasma 넷북을 제외하면 별도로 구분되는 게 없지만, 차후 더 개발이 된다면 플랫폼에 따라서 KDE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표는 이거 말고도 하나 더 있었지만, 흥미가 이미 좀 사라져서 잠 자러 들어갔다. 그와 함께 다음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내 발표를 좀 더 가다듬기 위해서, 그 날 있었던 파티에도 불참하였다. 2008년과 2009년 파티는 꽤나 괜찮은 경험이었지만, 한 번 말려들었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몰라서 내 발표에 집중하기 위해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탐페레 대학교에서 컨퍼런스가 진행된 곳을 찍고 왔다. 탐페레 대학교를 빠져나오면 철도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있는데,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탐페레 역이 잘 보인다. 오늘은 탐페레 역 남쪽에 Sr1 5중련과 급행 객차가 있었다. 차후 철도 여행기에서 설명하겠지만, 핀란드의 P(ikajuna) 열차는 결코 Express가 아니다.

탐페레 대학교

탐페레 대학교

Sr1 5중련

Sr1 5중련

아무튼 이 정도만 하고 방에서 발표 자료를 보강하였다. 과연 내일 아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