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Akademy는 공식적으로 제 8일째인 2010년 7월 10일에 끝나고 9일차 일정은 없지만, 글의 분량을 위해서 합쳤다. 어제 있었던 Field Trip만 참가하고 간 사람이 많아서 오늘의 Demola는 상당히 한산하다. BoF도 참가자들이 다 가 버려서 들을 사람만 들을 BoF만 남아서, 난 탐페레 시내 구경한다고 점심까지만 먹고 나왔다. Sjors Gielen은 결국 maried를 다 디버깅했는데 봐 준 사람이 얼마 없어서 안습.
점심 먹으러 행사장 근처에 있었던 Ziberia를 마지막으로 갔다 온 다음 Demola 건물 1층에 있었던 TR1을 찾았다. TR1은 미술관이었고, 그 옆에 바로 붙어 있는 Rupriikki는 자그마한 통신 박물관이다. 금요일은 무료 입장이라서 그냥 들어갔다. 핀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GSM 전화기의 기지국, 원격 송수신이 가능한 타자기 등 핀란드에서의 통신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핀란드에서 유선 전화가 최초로 깔린 곳은 바로 탐페레이다. Ziberia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스파이 박물관으로 갔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추축국 편에 붙긴 했지만 이건 소련을 치기 위한 전략적인 이유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면서 핀란드는 땅도 뜯기고 독일군과의 협력 관계를 청산해야만 했고 소련에 전쟁 배상금도 물어야 했으며, 이후 중립국을 선언하였다. 러시아가 바로 옆에 붙어 있고, 서방 세계와도 친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갓 독립했을 때부터 핀란드 내 스파이 활동은 꽤 활발했다. 보이지 않는 잉크라든가, 세계 대전 동안 사용된 각종 장비 등이 볼거리이다. 여기 박물관은 무려 인터넷으로 가게도 운영한다. 자 이제 좀 일찍이긴 하지만 숙소로 돌아가자. 다음 날 오전 동안 탐페레 시내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좀 쉴 계획이었고, 핀란드 와서도 KDE 번역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 날 저녁에는 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인도 사람들의 협찬으로 ‘고기가 안 들어갔는데 한국에서는 맛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운’ 카레와 ‘풀풀 날리는’ 쌀이 나왔다. 둘을 같이 놓고 먹으니 쌀이 풀풀 날아가는 게 좀 덜해서 먹을만했고, 기분 좋게 공짜 맥주도 돌았다. 숙소에 있던 TV와 N900을 연결해서 Gluon 데모도 하고 있었다. N900의 가속도 센서를 이용해서 블럭을 맞추는 데모였다. 시차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다 자러 갔을 때 쯤 되어서 나도 잠을 자기 시작했고, 토요일이 되었다. 오늘은 탐페레 시내를 구경하는 날이고, 여러 사람들이 추천하는 대로 퓌니키(Pyynikki) 전망대를 찾기로 했다. 한국에 팔린 6210은 내비게이션 라이선스가 없어서인지 길 찾기를 시도하면 안내해주는 척 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꾸 구매하라고 뜬다. 게다가 퓌니키로 가는 길을 이정표에만 의지하자니 주거 지역과 산길을 지났고, GPS의 오차 때문인지 다른 뭐 때문인지 내리막을 걸었다가 다시 올라오는 등의 삽질을 반복해서야 퓌니키 정상에 올라갈 수 있었다.퓌니키 정상에 올라가는 건 2유로인가를 내야 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탐페레 시의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카메라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호수 두 개가 보이고, 호수 사이에 있는 땅에 시가지가 들어서 있다. 한국과는 달리 고층 빌딩이 없어서 스카이라인이 전체적으로 낮다. 멀리 경치를 내다보면서 여기를 찾는다고 삽질했던 순간을 잊어버리고, 전망대 1층에서 파는 도넛을 먹으러 갔다. 검은 깨가 박혀 있는 코코넛 도넛이다. 안 먹으면 후회한다.
퓌니키에 갔다 내려온 다음 무민 박물관을 찾으러 갔다. 무민 박물관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탐페레 시립 도서관을 찾아야 했다. 무민 박물관과 광물 박물관 둘 다 시립 도서관 지하에 있는데 어 지하에 어떻게 들어가지? 탐페레 도서관 입구로 들어가긴 했는데 위로 올라가는 계단만 있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없다. 건물을 나와서 옆쪽으로 가 보니 계단 발견. 할렐루야.광물 박물관은 입장료도 저렴하고 사진 촬영도 자유로웠다. 핀란드 및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광물을 전시해 놨고, 정말 이런 것도 있나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번쩍번쩍 빛나는 무언가가 많다. 바로 옆에 있는 무민 박물관은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의 생애, 무민 캐릭터와 그림, 전 세계에 출판된 무민 동화책을 갖다 놓았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도 박물관 안쪽에 마련해 놓았고, 번역된 동화책 중에는 한국어판도 있다.
도서관에서 나와서 핀레이슨 지역으로 가서, 이번에는 노동 박물관이다. Akademy 행사장(아 여기는 박물관이 아니지), TR1, 노동 박물관, 스파이 박물관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탐페레에 간다면 핀레이슨 지역으로는 꼭 가 보자.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1900년대 초중반에 탐페레 지역 경제를 유지했던 회사가 핀레이슨이다 보니 핀레이슨의 흔적은 탐페레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이 노동 박물관은 당시 탐페레에 살았던 노동자의 모습과 핀레이슨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 중에는 인터내셔널도 있고, 여기 가면 핀란드어판을 들어 볼 수 있다. 이 외 탐페레에 있었던 대형 증기 기관의 복원 모형이라든가, 핀레이슨 공장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한 산업 철도, 핀란드 섬유 산업과 핀레이슨의 역사, 그리고 탐페레 시의 발전을 볼 수 있었다.이후 사타쿤난카투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시립 Vapriikki 박물관으로 갔다. 2011년 9월까지의 특집 전시 주제는 곰이다. 또 다른 특집 전시로는 1918년 독립 당시 내전에 휩싸인 탐페레, 인형과 장난감, 사무라이들이 사용한 인로가 있다. 상설 전시는 북유럽 아니랄까봐 핀란드 하키 선수들과 신발이 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자연사에 대해서 전시하기 위하여 추가 전시실을 공사하고 있었다.
바프리키 박물관 북쪽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서, 오후 3시쯤 숙소로 귀환하였다. 탐페레 시내는 볼거리가 확실히 많지만, 오래 있었다 보니 볼거리들은 거의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늘 오전에 떠났고, 난 하루 더 잔류하는 <10명 중 한 사람이었다. Akademy는 첫날과 둘째날이 가장 바쁘고 날이 갈수록 느긋해지는 특성이 있다. 한국 시간은 오후 9시쯤이므로 IRC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있다. 시차 때문에 밤에 IRC에 들어오면 다들 자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화를 못 나누다가, 오늘에 와서야 뭔가 IRC를 즐길 수 있었다.이제 내일이면 탐페레를 떠나서 헬싱키로 간다. 탐페레여 안녕, Akademy여 안녕. 철도 티켓과 돈만 있고 나머지 계획은 이제 내가 짜야 한다. 말도 안 통하는 북유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긴장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