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7일

오늘 Akademy의 Field Trip은 탐페레 교외 지역에 있는 회위태뫼얘르비 호(Höytämöjärvi)로 나갔다. 탐페레 시 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약 15분 거리에 있으며, Demola는 12시까지만 뭔가 잠깐 진행되고 BoF도 열리지 않았다. 오전 중에 잠깐 있었던 Demola에서는 음악 서버 maried를 디버깅하는 훈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이거 전자과 로비에 설치하면 재밌겠는데? 전자공학실험이나 다른 과목 프로젝트로 이런 거 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소스 코드를 보려고 했는데, 구글을 아무리 뒤져도 안 나와서 거기 디버깅을 하고 있던 Sjors Gielen에게 물어서 GitHub에 있던 저장소를 알아냈다. MySQL 데이터베이스, 파이썬 코드라는 내 눈에도 익숙한 집합이어서 그랬을까. 오늘 오전까지는 Nokia Certified Qt Developer 시험을 칠 수 있어서 시험장이 아직 철수하지는 않았다.

열심히 maried를 디버깅 중

오늘의 Demola. 다들 노트북을 보면 내 노트북 상판 정도는 양반이다.

자고 있는 COSS 인형. 다양한 응용도 나왔다.

오후 1시에 출발한다는 말을 들었고, 시간을 지키라는 말이 홈페이지에도 굵은 글씨로 쓰여 있었고, 핀란드인들은 정시성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12시가 다 되어서 숙소 근처에 헤스버거에서 대강 끼니를 때웠다. 데몰라를 빠져나와서 옛 핀레이슨 정문으로 가는 길에, 핀레이슨 지역에 첫 전등불이 들어온 것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있어서 하나 찍어 보았다.

북유럽의 첫 전깃불 기념판

북유럽의 첫 전깃불 기념판

자 이제 버스를 타는데… 어 소속이 탐페레 시 교통국(TKL, Tampereen Kaupunkiliikenne)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지자체 소속 교통 회사이다. 이런 곳에서 왜 버스를 빌려주는가 좀 의아해하면서 일단 버스에 탔다. 북유럽의 버스들은 아주 오래된 모델이 아니면 틸팅 기능이 있어서, 정차할 때 출입문을 아래쪽으로 기울여 좀 더 타기 편하게 한다. 물론 저상은 기본이다. 아직까지도 저상 버스 찾아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거 좀 개발해 보면 안 되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자 수에 비해서 빌린 버스가 적어서, 거의 가축 수송으로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호숫가로 갔다.

탐페레 시 교통국 소속 버스

탐페레 시 교통국 소속 버스. Morjens! == 안녕하세요!

일단 버스에 내린 다음 조금을 더 걸어가니 호숫가가 펼쳐졌다. 길을 따라 자라 있는 식물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달랐다. 참가자들이 대충 다 모였을 때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바베큐는 야채와 음료는 준비되어 있고, 소시지는 직접 구워 먹어야 했다. 다트와 활도 한 세트씩 준비되어 있고, 활 쏘는 곳에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응급 키트도 갖다 놓았다. 사우나는 2개 있었으며, 사우나를 끝내고 바로 물로 뛰어들 수 있도록 길도 잘 나 있었다. 거기다가 호수에서 즐길 수 있는 카누도 돈 내고 빌릴 수 있었고, 아 물론 수영은 공짜다. 6살 때 수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한 번 익사할 위기를 겪은 다음에는 수영장 근처에도 안 가 봤다는 게 문제지만.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라서 쓰여 있는 문구를 ‘RTFM’해야 한다는 말에는 모두 박수쳤다.

야채를 굽고 있었던 오두막

사우나가 요기잉네

소시지는 구워야 제맛

과연 핀란드는 물 좋은 나라였다. 500 제곱미터(가로 25, 세로 20미터짜리 방을 상상해 보자) 이상의 호수 갯수가 187,888개 있는 나라이다. 내 앞에 있는 이 호수도 거기에 해당한다. 대부분 시간은 소시지를 구워 먹거나(헤스버거 잊지 않겠다. 감자튀김에 케찹이 없어서 뭔가 했는데 직접 짜 가는 방식이었다.) 몇 번 활 쏘는 데 썼다. 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쉽게 뛰어들지 못해서 호숫가에 발이나 담그면서 시간을 보냈다. 과연 물은 맑았다. 이따금씩 호수 저편에 카누를 타고 있거나 통나무 잡고 수영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집에서 광안리나 해운대나 그리 멀지 않아서 바닷가는 자주 보면서 자라 왔지만(덕분에 카나리아 제도의 바닷가도 영), 호숫가는 바닷가와는 달리 상당히 고요했다.

호숫가 풍경

좀 더 당겨보자

카누

실제 듣고 온 핀란드식 센스 한마디: <나> 저 호수 좀 떼가고 싶다 <FI> 그러면 우리나라에 호수가 187,887개가 되어서 안 된다. 호수에서 풍덩풍덩이 지겨워질 때쯤, 한 쪽에서는 웬 나무토막이 보였다. 핀란드 회사에서 만든 게임 묄키(Mölkky) 현장이다. 나무토막을 볼링 핀처럼 쌓은 다음, 1개를 쓰러트리면 나무토막에 쓰여 있는 점수, 2개 이상은 쓰러트린 갯수를 점수로 따서 50점을 정확하게 채우는 게임이다. 나무도막 무게도 꽤 묵직해서 실제 할 때에는 던지는 감 맞추기가 영 힘들었다. 이게 아직까지 한국에는 안 들어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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묄키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다 되어서 숙소로 귀환해야 했다. 내일은 어차피 BoF도 없어서, 오전 중에만 Demola에 있다가 오후에는 탐페레 시내를 좀 둘러보면서 쉬기로 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이 오늘 이후 떠나거나, 내일까지만 있다가 떠날 예정이었고, 난 이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해야 했다. 다시 TKL에서 빌린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서, 일단 씻고 좀 쉬었다. 조용한 호숫가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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