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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슬럼프

오늘자 KDE 4 번역 상태.

오늘자 KDE 4 번역 상태. 전번에는 5000까지 갔는데...

요즘 힘이 없어서 KDE 4 번역도 전만큼 의욕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카이스트 1차 발표가 오늘 났는데다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들. 그 덕분에 요즘에는 무언가를 손에 잡기도 싫어졌다. 그러나 마지막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고, 성균관대 면접(20일) – 중간고사(22~25일) – 정보과학회 발표(26일) – 리츠메이칸(29일~11월 5일) – SAC(11월 7일~10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무언가를 해 두고도 싶다.

사실 KDE 4 번역 작업이 멈춘 것처럼 보인 이유는 이제 간단한 번역 작업은 다 끝났기 때문이다. HSL에 있었던 소스 파일들을 가져오는 작업도 진행 중이긴 하지만, KDE 4에만 있는 KWin의 컴포지팅 같은 부분들 같은 경우에는 새로 번역해야 한다. 또한 긴 옵션들 중에서도 번역이 안 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번역자는 쓰러져 가고 있다. 다행히도 오늘 Konqueror의 HTML 보기 설정 부분을 다 끝냈고 이제 좀 만만한 것들만 남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오늘 아침에 받은 VirtualBox 1.5.2 버전이 나오니깐 문자열을 정비해 달라는 안내 메일을 받고 나서였다. 그것 덕분에 충격을 받고 그 동안 너무 방치해 왔던 번역을 다시 가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낮 시간 동안 버닝해서 파일 하나를 접수하고 밤 쯤에 몇 개 더 정비해서 커밋할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KDE 4 가 나오기 전까지 목표 40%는 꼭 달성하고 말 것이다. 그 이전에 중간고사나 어떻게 끝내 주기를… 라멘.

가속기 문제

내가 생각하는 번역 작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가속기이다. 대부분의 영어로 된 프로그램들은 가속기를 표시할 때 Browse와 같이 문맥 안에 가속기가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러시아어 같은 알파벳 기반 언어들에서는 Справка와 같이 자국어 알파벳에 그냥 가속기를 먹여 버린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파일(F)와 같이 따로 괄호 안에 가속기 키를 표시한다. 과거 윈도 3.1에서는 가속기를 통째로 한글로 바꿀 수 있게 했던 설정이 있었으나,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많은 GUI 라이브러리들에서는 가속기 키를 선택적으로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내가 과거에 VirtualBox에 제보했던 버그처럼 이 사실을 모르는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실수를 한다는 것이다. VirtualBox의 경우에는 가속기 키를 제거하면서 (&[a-zA-z]) 형식의 문자열을 일단 발견한 다음, 그런 문자열이 있으면 통째로 제거하고 없으면 그냥 &만 제거한다. 그래서 현재 VirtualBox에는 그 부분이 패치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프로그램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또한 한국어 문자열의 가속기 키 관습이 다른 언어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발생한다. 가령 Adept(쿠분투의 패키지 관리자)의 경우, 이게 모두 영문으로 되어 있어서 저렇게 놔두어도 되지만, 다른 한국어 문자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Adept(A)라고도 할 수 있지만, 또 이런 경우에는 어색하다. 영문 텍스트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풀어쓰기를 도입하지 않는 한 가속기 키 문제는 계속될 것이고 번역자들은 상황에 맞게 대처하기 위해서 골치가 아플 것이다. KDE 4에도 이런 걸 신경써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으니 어떡한담.

인터넷 불통

오늘 우리 학교에서 인터넷이 두 번 끊겼다. 그 덕분에 나는 서버와 IRC 프록시가 된통당했다. 한 번은 화상회의 시스템 테스트 덕분이고, 또 다른 한 번은 알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화상회의 시스템 덕분에 된통당한 것은 한 번이 더 있었지만, 나는 예고를 했건 안 했건 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

우리 학교는 그야말로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학교이다. 비록 학교 인터넷이 최근에 좋아져서 끊김 사태도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불안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매일같이 과제 수행과 개인 여가(학교가 고립되어 있다 보니까)를 위해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인터넷이 끊기면 안 된다. 자 오늘 인터넷이 끊겼을 때의 학교 풍경을 보자.

오후 4시경 독서대. 화상 회의 시스템 때문에 인터넷 가동 중단됨을 알린 이후였다. 자 내 자리 옆에 스타를 즐기는 팀이 보이네요.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영화 감상을 하거나 자는 팀도 있습니다. 이제 기숙사로 가 보겠습니다. 한 방에서는 네트워크 게임에 미친 사람들이 있네요. 비록 운동장에도 애들이 뒹굴긴 하지만, 운동 좋아하는 애들만 나오지 일반적인 애들은 시큰둥합니다. 자 5시가 되었고 인터넷은 다시 살아 돌아왔습니다.

여기에서 하는 뻘짓 중에 이 닦는 날(이 클리닝 데이)가 있는데, 그 날은 학생들의 인터넷이 차단된다.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글을 인용해 보자.

현재 교내의 거의 모든 장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문명중의 이기인 인터넷에 얽매여 있으며 오히려 필요없는 시간 낭비 등이(불필요한 인터넷 서핑, 네트워크 게임 등)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효율적인 시간관리 등을 체험하기 위해 ‘인터넷 없는 날’을 매달 한번씩 시행하고자 합니다.

모든 생활에 근접해 있는 인터넷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보다 아날로그적인 환경을(독서, 운동, 타인과 대화 등) 경험하고 필요없는 인터넷 서핑과 네트워크 게임 등에서 벗어나 인터넷 사용을 통제하고 관리해 봄으로써 인터넷 사용의 좋은점과 나쁜점을 알 수 있고, 반대로 인터넷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터넷의 중요함과 필요성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자. 기숙사 가면 인터넷이 당장 되지 않습니다. 또한 예기치 않은 때에 인터넷이 끊겨 줘서 중요한 작업을 할 때 무언가가 끊기도록 합니다. 평소에도 학생회나 VOD, ebook 등 학교 주요 서버 접속은 많습니다. 인터넷 끊긴 날이라고 이런 것을 안 해야 하는 줄 아십시까? 그 날에도 평소처럼 과제는 나옵니다. 그렇다고 선생님 컴퓨터나 도서관에 빌붙으라고요? 자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현대인의 생활과 인터넷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곳까지 갔습니다. 이 상황에서 인터넷을 막아 두면 좋은 효과보다는 당장 생활이 불편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인터넷 사용이 걱정되신다면, 이것을 제안한 선생님께서는 그 날 무엇을 하실 겁니까? 어른이라고 해서 되고 학생이라고 해서 안 된다고요?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왕 좋은 제도를 시행하자고 하면, 선생님들도 동참하셔서 자신들의 인터넷 사용을 통제해 보시고, 아날로그적인 환경을 경험해 보시죠? 학생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 저는 눈 감고 싶지 않습니다.

좀 감정이 격해졌지만, 자 돌아오자. 나는 KDE 커미터이고, 한국어 번역팀의 “얼마 안 되는” 인원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KDE SVN에 연결해서 그 날마다의 소스를 받아 오고, 번역 작업을 해서 SVN 트리에 커밋한다. 이 과정에서 빌드가 깨지지는 않았는지, 또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신경써야 할 것은 내 일이다. 거기 너, 다른 사람이 일 하라고? 나는 내가 좋아서 취미 활동으로 KDE 커밋을 하는 데 니가 왜 내 취미 활동에 간섭하냐?

어쨌든 다음 번에 인터넷을 중단한다는 말이 나오면, 저번의 정독실 때와는 다른 더 강력한 무언가를 준비할 것이다.

대화의 부재 (2)

10월 6일 서울에서 열릴 모임에서 발표할 내용이다. 10월 6일 이전까지는 함부로 도용하지 말기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 박신조입니다. 우선 이런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제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제 친구들 중에는, 제가 가지지 못한 지능을 가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저는 혼자 왔어야 했을까요? 바로 제 친구들 중에는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안에서도 저 혼자만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과학고나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한 학교에 한 명도 채 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제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리눅스를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리눅스는 단지 윈도를 대체할 수 있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때의 리눅스는 정말 조악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하려면 엄청난 삽질을 해야 했고, 당시 제가 쓰던 랜카드가 인식이 되지 않아서 인터넷을 즐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중학교 때 다시 깔아 보게 되었습니다. 한 3년 되었나? 그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명령어 한 줄이면 되었고, 인터넷도 자동으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새로 노트북을 한 대 사면서 무선 네트워크 카드가 잡히지 않아서 고생했으나, 이것도 금방 해결되더군요.

이렇듯, 자유 소프트웨어 세상은 빠른 진보가 특징입니다. 불과 1년 전의 지식이 오래 전의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이런 빠른 진보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입니다. 하지만 왜 누군가가 선뜻 나서서 참여를 하지 않을까요? 각종 제도권의 틀을 뜯어 고치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도권에 책임 하나는 묻겠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권장하고, 또한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만약 백 명이 모여서 똑같은 물건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그 백 명을 한 데 모아서 물건을 같이 만들어 보라고 할 것입니다. 백 명을 모아서 물건을 같이 만들어 보라고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두 데스크톱 환경은 그놈과 KDE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오면 이들 둘의 점유율이 확 차이가 납니다. 왜냐고요? 그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실한 KDE의 한국어 번역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KDE의 한국어 번역은 과거 2001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한국산 배포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KDE의 번역이 난립했습니다. 이들은 한 데 모아지지 않았죠. 나름대로 문서화까지 거쳤던 배포판도 있었으나, 이들도 결국에는 배포판이 망하면서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과거 코디네이터 분이 작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한 동안 KDE 한국어 작업은 백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의 성과물들은 결국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중단하려면, 누군가가 “한데 모이라”고 외쳐 줘야 하지 않을까요?

다행히도 저는 “한데 모이라”고 외쳐 보았습니다. 과거 KDE 번역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메시지와 문서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KDE 최신 버전의 번역을 합쳐 보았습니다. KDE 3을 예로 들어 보면 KDE 공식 SVN에서는 거의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녀석들이, 합치고 나니까 엄청나게 번역률이 올라가더군요. 10%도 안 되던 것이 56%까지 말입니다. 부진했던 KDE 한국어 문서도 어느 정도는 있더군요. 지금은 국산 배포판들이 한두개 남기고 다 사라져서 배포판별로 난립하는 번역은 사라지겠지만, 배포판 업체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제발 제대로 된 문서 좀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메시지 번역은 쉽지, 문서 번역은 정말 전문가가 아니면 힘든 작업입니다.

이상으로 제 짧은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최근 KDE 번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최근 KDE 4의 kwin이 밥솥이 되었기 때문에, 멀쩡히 돌아갔던 KDE 4 세션이 요즘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놈의 kwin은 언제 고쳐질 지 도대체 알 수 없는데다가, Plasma는 매일같이 불안정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Phonon은 작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덕분에 Phonon을 사용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kdemultimedia 쪽은 도통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빌드가 깨지는 것은 예삿일이요, 라이브러리도 심심하면 바뀐다. 내 성격 탓에 매일 체크아웃을 해 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지만 별 수 있나.

하여간 좋은 소식을 좀 전하도록 하겠다. KDE 4부터는 그래도 나아진 번역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KDE 3.5.8에서는 이것들 중 극히 일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KDE 3.5.8은 10월 7일에 나오지만, 우분투 7.10이 그 주변에 나올 확률이 크고, 따라서 deb 패키지가 바로 제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KDE 4.0이 12월 초에 나온다고 하니까, 그 두 달 사이에 새로운 버전을 내놓지 않는 배포판은 KDE 3.5.8을 탑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KDE 3 번역에 한소프트 리눅스의 번역물을 합쳐서 최근 번역율이 58%까지 뛰어오르긴 했지만, 이것을 느낄 사용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KDE 4는 이야기가 다르다. 충분히 우분투 8.04나 7.10의 백포트로 제공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KDE 4를 접해 보기 위해서 새로운 배포판을 깔아 보는 모험을 해 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어 라이브러리를 갈아 엎는 등 골때리는 선전도 많이 해서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덕분에 그 선전에 알맞게 번역도 잘 제공될 것이다. 좀 더 나은 번역을 위해서, IRC 채널을 통해서 피드백도 받고 있다.

KDE 4의 기본 파일 관리자 Dolphin을 번역하면서 모든 설정 항목의 끝은 “-하기”로 통일하거나 아예 안 쓰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시스템 설정의 애플릿 이름을 번역하는 것인데, 이것도 신경이 꽤나 쓰였다. 이건 윈도로 따지자면 “제어판” 같은 도구이기 때문에 많은 사용자들이 시험해 볼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최근에는 “해상도와 회전” 애플릿, 그리고 “내 정보” 애플릿을 번역하면서 많은 태클도 받아 보았다. 그 결과물로 나온 시스템 설정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KDE 4의 systemsettings

군데군데 영어로 된 부분이 보이겠지만, KDE 3의 “일터” 급의 난감한 단어는 안 보인다고 자신할 수 있다. 과거 KDE 번역의 순 우리말 사용 정책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적당한 부분에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과감히 도입하는 쪽으로 틀어 버렸다. 이미 KDE 4 번역 파일을 체크아웃해 보면 저런 단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kdei18n.kldp.net에 있었던 한소리 번역 파일들 덕분에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해야 할 노력이 줄어 들기도 했다.

어쨌든 KDE 4 번역 통계 페이지는 주목해 주기 바란다. 지금 목표는 40% 달성이다. KDE 4부터는 어색한 순 우리말 단어 + 미번역된 부분이 너무 많아서 KDE를 꺼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