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일상/무조건 까기

국산 리눅스 배포판에 대한 생각

최근 KDE 번역을 테스트해 본다고 국산 리눅스 배포판을 두 개나 깔아 보았다. 하나는 한소프트 리눅스 오픈에디션 3이고 또 하나는 딛고 2005이다. VirtualBox 안에다가 리눅스 위에 리눅스(!)를 까는 식으로 설정해 보았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VirtualBox 커널 모듈도 잘 올라왔고 게스트 확장도 잘 작동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 주었던 번역이나 문서 품질은 실망스러웠다.

나는 번역 품질을 주로 KDE 위주로 검사하였다. 한소프트 리눅스 오픈에디션 3을 보면 KDE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그렇게 KDE를 켜고 나니, jachin 님이 한 때 말했던 것처럼 “알바를 고용해서 번역한다”는 말이 왠지 진짜 같았다. 번역률 자체는 높았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다가왔다. 그래도 일부 설정 모듈 번역에서는 KDE 4 SVN을 다듬어 갈 만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기대했던 도움말은 실망으로 끝났다. 없었다.

자 그 다음 딛고 2005를 깔아 보았다. 부요라는 것이 믿기 힘든 물건이라고 해도 정부 돈을 들여서 개발했다고 하니깐 뭔가 좋은 게 있을 줄 알았다. 자 기본 그놈 데스크톱 환경은 양호하다. 그러나 KDE는… KDE는… 한소프트 리눅스의 것을 거의 손도 안 보고 가져온 것 같다. KLDP에 떴던 CD를 택배로 보내 준다는 말에 혹해서 매뉴얼이라도 보자 했더니 정말 간단한 사용 안내서였다. 하지만 매뉴얼과 CD 케이스 제작비가 워낙 비싸 보여서 택배비 3500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딛고 2005 CD 케이스

딛고 2005 CD 케이스. 3500원이 아깝지 않았다.

이제 외국산 배포판들도 한국어 환경을 완벽하게 지원해서 더 이상 국산 배포판의 메리트가 없어진 상황에서, 국산 배포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한국어로 작성된 문서 뿐이다. 전번 10월 6일 했던 이야기 중 “GUI 번역은 쉽다. 그러나 문서 번역은 전문 집필가가 도와 줬으면 한다”는 말이 있었다. 외국산 배포판은 영어 문서가 풍부하지만 실제로 읽기 위해서는 또 노력을 해야 한다. 무조건 우리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우리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으로 다가가는 것이 앞으로의 리눅스 산업 발전에도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번역물을 자기 혼자 쓰지 말고 다른 배포판 사용자들과 공개하기 위한 업스트림과의 활발한 교류도.

추신: 혹시 제가 테스트해 보지 못한 국산 배포판 중에서 KDE 번역이 잘 되어 있는 배포판은 항상 구합니다. 책임지고 업스트림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번역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무작정 한국어 번역을 해 보겠다고 팀에 뛰어들거나 프로그램 메인테이너에게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이 글은 이런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될 글일 것 같으니깐, 까는 것 같아도 원래 의도가 그러니깐 이해해 주기 바란다. 하여간 한국어로 되어 있지 않은 프로그램을 번역한다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번역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조언이 없으면 도리어 욕만 먹고 갈 수도 있다. 그러니깐 이 글을 따라가 보자.

우선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프로젝트 내부에서는 영어로 대화가 진행된다. 그래서 영어를 못 알아 들으면 업스트림과 통신이 되지 않아서 번역 작업을 할 때도 애로 사항이 꽃필 것이다. 대부분 프로그램들의 번역 안내는 다 긴 영어로 된 글로 쓰여 있고, 작업물을 메인테이너에게 보낼 때에도 영어로 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영맹 티를 팍팍 낸다면, 한국어 번역이 좋았다고 해도 자기가 영어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에 좋은 번역이 될 리가 없다. Hi How are you!!! 정도만 쓸 수 있는 실력이라면 어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찾아보기 바란다.

번역은 무엇보다도 편의성이 중요하다. 자신이 한국어를 사랑하고 있든, 한자 빠돌이든 번역할 때는 집어치워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용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내가 한국어를 사랑한다고 억지로 순 한국어 낱말만 쓰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편만 초래한다. 당장 예제를 보고 싶다면, 주위에 있는 KDE를 사용하는 배포판들을 하나 잡아서 깔아 보기 바란다. 번역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메인테이너가 순 한국어 낱말의 사용을 강조한 나머지, 대부분 사용자에게 명확한 의미 전달을 못 해 주었기 때문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끌여들어서 테스트, 테스트, 테스트해 보고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자.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도 있을 것이고, 잘못 번역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잔소리로만 들린다면 어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찾아 보기 바란다.

또한 번역은 꾸준히 해야 한다. 메인테이너가 손을 대지 않아 버리면 프로그램이 발전하는 속도를 번역이 발전하는 속도가 못 따라갈 수 있다. 그런 일이 한 해 두 해 쌓이다 보면 너무 많은 부분이 틀어져 버려서 사용성 꽝이 될 수 있다. KDE 번역 파일들도 2001, 2002년에 수정된 것 다음에는 2004년에 부분적으로 수정된 것이 전부다. 올해가 2007년이고 그 동안 KDE는 엄청난 발전을 했다. 번역이 이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안 한 것만 못 하게 된다. 이것은 다음 버전 번역가에게도 피해가 되는데, 실제로 KDE 4 번역을 하면서 기존 문자열은 없는 것만 못하다 수준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다음 메이저 버전이 나올 때 내가 번역을 하기 두렵다면 어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찾아 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비공식 한글 패치 내놓는 팀들. 언제까지 비공식으로만 있을 것인가. 프로그램의 정보에 자기나 팀 이름이 박히는 것이 좋지 않은가! 폐쇄적인 번역 팀 사이트만 운영하지 말고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오기 바란다! 메인스트림과 대화하기 싫다면 어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찾아 보기 바란다.

인터넷 한글 폰트 주권 회복 선언?

여기 이 사이트를 보자. 오늘 뉴스를 읽다가 인터넷 한글 폰트 주권 회복 선언이라는 거창한 낚시성 제목이 있길래 딱 그 사이트에 가 봤다. 그런데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수준이었다. 주권 회복 선언을 하기 전에 이 개념없는 사람들 보세요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첫 화면부터 비 윈도/IE 사용자들은 닥치고 즐 하고 있다.

저희 사이트는 우리 고유의 서체인
명조체를 포함한 다양한 서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보다 선명한 글꼴로 보시기 위하여 엑티브엑스를 설치해주세요.

자. 나는 윈도 안 쓰는데 당신네 글꼴 써 보고 싶다. 그리고 윈도에서도 IE 웹폰트를 안 쓰면 병신이 된다는 소문도 있다. 이 사이트의 소스를 뜯어보니 좀 수상한 부분이 나왔다. 컨트롤 이름이 참 수상하게도 MS의 ClearType 제어 컨트롤이었고 JS를 통해 클리어타입을 강제로 켜는 것 같군요. 이건 전형적인 한국식 발상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에 좀 의문도 제기하고 싶다. 첫째로, “셋째, 사용할수 있는 글꼴이 모두 제목용인 “돋움”과 “굴림” 의 기본형 단 2개 뿐입니다.” 이 부분이다. 궁서와 바탕은 폼으로 박혀 있는지, 그리고 공개용 한글 폰트들은 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여섯째, 인터넷활자의 공급을 오직 미국의 MS 사에만 의존하고 있습니다.” 부분이다. 한국어 윈도에 들어가는 글꼴들은 모두 국내에서 라이센스 받은 것이다. 굴림 및 그 4인방 시리즈들은 한양에서 개발한 것이고 맑은 고딕은 산돌에서 개발한 것이다. 알아보려면 좀 제대로 알아보고 써라.

그리고 이들이 주장하는 벡터스크린폰트 기술의 실체가 궁금하다. 분명히 글꼴들 늘어놓은 거 보면 비슷해 보이는데 과연 그 기술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요약해 보면 벡터스크린폰트는 모든 모니터에서 글자의 크기에 비례하여 글자를 명확하게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은 안티알리아싱, 힌팅 등의 기술을 그럴싸하게 풀어서 설명한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난다.

그리고 웹 사이트도 좀 엉성한 맛이 있다. 나는 분명히 윈도가 없고 리눅스를 쓰는데, 자기들의 글꼴도 좀 보고 싶다. 예시 페이지에 가 봐도 다 내가 깔아 둔 맑은 고딕만 뜬다. 나 윈도 살 돈 없는데 정말 글꼴 궁금하거든염? 게다가 초보자들에게 너무 화려한 포장을 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기술의 실체가 뭔지 궁금하다. 말로만 폰트 주권 하지 말고 더 많은 사용자들이 그 영광을 함께할 수 있도록 제발 ttf 파일도 공개해 주고 소개도 좀 쉽게 써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