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서울에서 열릴 모임에서 발표할 내용이다. 10월 6일 이전까지는 함부로 도용하지 말기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 박신조입니다. 우선 이런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제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제 친구들 중에는, 제가 가지지 못한 지능을 가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저는 혼자 왔어야 했을까요? 바로 제 친구들 중에는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안에서도 저 혼자만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과학고나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한 학교에 한 명도 채 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제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리눅스를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리눅스는 단지 윈도를 대체할 수 있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때의 리눅스는 정말 조악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하려면 엄청난 삽질을 해야 했고, 당시 제가 쓰던 랜카드가 인식이 되지 않아서 인터넷을 즐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중학교 때 다시 깔아 보게 되었습니다. 한 3년 되었나? 그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명령어 한 줄이면 되었고, 인터넷도 자동으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새로 노트북을 한 대 사면서 무선 네트워크 카드가 잡히지 않아서 고생했으나, 이것도 금방 해결되더군요.
이렇듯, 자유 소프트웨어 세상은 빠른 진보가 특징입니다. 불과 1년 전의 지식이 오래 전의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이런 빠른 진보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입니다. 하지만 왜 누군가가 선뜻 나서서 참여를 하지 않을까요? 각종 제도권의 틀을 뜯어 고치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도권에 책임 하나는 묻겠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권장하고, 또한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만약 백 명이 모여서 똑같은 물건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그 백 명을 한 데 모아서 물건을 같이 만들어 보라고 할 것입니다. 백 명을 모아서 물건을 같이 만들어 보라고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두 데스크톱 환경은 그놈과 KDE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오면 이들 둘의 점유율이 확 차이가 납니다. 왜냐고요? 그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실한 KDE의 한국어 번역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KDE의 한국어 번역은 과거 2001년부터 시작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한국산 배포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KDE의 번역이 난립했습니다. 이들은 한 데 모아지지 않았죠. 나름대로 문서화까지 거쳤던 배포판도 있었으나, 이들도 결국에는 배포판이 망하면서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과거 코디네이터 분이 작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한 동안 KDE 한국어 작업은 백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의 성과물들은 결국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중단하려면, 누군가가 “한데 모이라”고 외쳐 줘야 하지 않을까요?
다행히도 저는 “한데 모이라”고 외쳐 보았습니다. 과거 KDE 번역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메시지와 문서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KDE 최신 버전의 번역을 합쳐 보았습니다. KDE 3을 예로 들어 보면 KDE 공식 SVN에서는 거의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녀석들이, 합치고 나니까 엄청나게 번역률이 올라가더군요. 10%도 안 되던 것이 56%까지 말입니다. 부진했던 KDE 한국어 문서도 어느 정도는 있더군요. 지금은 국산 배포판들이 한두개 남기고 다 사라져서 배포판별로 난립하는 번역은 사라지겠지만, 배포판 업체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제발 제대로 된 문서 좀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메시지 번역은 쉽지, 문서 번역은 정말 전문가가 아니면 힘든 작업입니다.
이상으로 제 짧은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