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일상

근황

1. KDE 쪽 일

KDE 로고

1월 11일 KDE 4 릴리즈 이후, 솔직히 KDE 쪽 일은 거의 보지 못했다. KDE 4가 릴리즈되기 전 메일링 리스트에서 KDE 4.0과 4.1의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하나는 trunk/l10n-kde4에서 KDE 4.0과 4.1 번역을 모두 다 나오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branches/stable/l10n-kde4를 만든다는 것이다. 나 같은 귀차니스트들은 전자에 투표했지만, 이상하게도 대세는 후자였다. 문자열도 거의 다른 것도 없는데다가, 아직까지 KDE 4.0은 불안정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KDE 4.1까지는 어쨌든 기다려 봐야 하는데, 이 개새들. 설상가상으로 KDE 3.5.9 릴리즈 소식도 들려와서 KDE 3.5 번역도 다시 합쳐야 하는데… 아이고 골치다. 최근 시작한 문서 번역은 http://docs.kde.org 사이트에는 뜨지도 않고 말이다. 에라 몰라 귀찮아 훡유.

2. 일반화학 삽질

옥스토비 일화

어차피 카이스트 일화와 일생은 한 학기만 듣고 고생할 거지만, 그 고생하는 한 학기라도 학점을 잘 받아 보자고 방학 중에 일화 삽질을 시작했다. 1학년 때 필수 화학을 들은 다음은 화학과 생물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 때 보고 집 구석에 꽂아 두었던 옥스토비를 지금 다시 꺼내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번 학기 수3 성적은 꽤나 괜찮게 나왔지만, 수3 공부를 하면서 이게 내가 초딩 경시 때 공부했던 내용이란 것을 알고 감동받았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자 이제 대전에서 일생 책을 질러서 내려온 다음 카이스트 일생이 어떨까 짐작해 보는 것만 남았나.

3. 노키아의 트롤텍 인수와 KDE

트롤텍 로고

Qt Blog나 KDE 개발자 블로그를 보아도 앗싸 좋구나! 하는 글 이외의 글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논리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노키아가 KDE의 새로운 후원자가 되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긴 하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KDE 개발자들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 기대도 된다. (젭라 aKademy 2008 좀 보내 주세요 굽신) 그렇지만, KDE 개발자 블로그의 한 글에 따르면, 노키아의 자산은 트롤텍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많다. KDE 프로젝트를 자금력으로 휘어잡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게다가 노키아는 이미 자신의 모바일 플랫폼 심비안을 가지고 있고, Maemo 프로젝트는 GTK+ 기반이다. 예전에 ATI가 AMD에 인수되면서 ATI의 인텔 칩셋 라인을 단종시킨 것을 보면 왠지 Qtopia가 죽지 않을까 고민된다. 하여간 이 재미있는 드라마는 천천히 지켜보도록 하자.

4. 카이스트

남표쨩이 과연 어떤 짓을 하는가 지켜보자.

초인

그래 내가 왜 초인이라고 했을까. 일본에서 귀국하자마자 글을 쓰는 걸 봐도 내가 지금 제정신은 아닌 거 같다. 일본 RSSF의 빡빡한 일정을 다 마치고, 그리고 공항에서 짐을 한 번 잃어버릴 뻔도 하고, 학교 와서는 독서대로 짐 옮긴다고 삽질하고, KTF한테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듣고 오는 하루였다. 평소 같으면 쓰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RSSF 때는 평소보다 더 일찍인 새벽 6시 정도에 일어나기도 했고, 평소대로 자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특별히 피곤하거나 한 것은 없다. 왜일까. 내 내부의 에너지를 지금까지 다 끌어내지 못하고 뻗은 것 아닐까. 간사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오늘 와서는 독서대 짐 정리라는 큰 일을 해 냈는데, 이것도 생각만큼 피곤하지 않았다. 미리 꾸려 놓은 것에다가 내가 사 온 것들을 덧붙이는 정도였긴 했지만, 짐 자체가 무겁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금 그다지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나중에 씻으러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고 있다. 이건 뭔가 수상할 뿐이다.

이번 RSSF에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내 내부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법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일정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 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다는 생각도 들고 내 체력의 한계가 더 높았다는 느낌도 온다. 받은 충격도 크긴 컸지만, 내 잠재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나중에)

백괴사전 亡亡亡

백괴사전 서버가 망한 것이 이제 일주일이 다 되어 간다. 시건의 발단은 월요일인가 화요일이었다. 백괴사전 서버가 갑자기 망해 버리면서 한국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 백괴사전이 들어 있는 캐나다에 있는 서버가 망해 버렸다. 처음에는 이것이 한국어판 백괴사전의 문제일 줄 알았지만, 이것은 다른 여러 언어판의 문제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서버 관리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 쪽 인터넷에 문제가 생겼고 이것은 데이터센터에서도 잘 안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번 기회로 아주 저 서버에서 떠나려고 한다. 백괴사전 has a problem이라는 글이 있듯이 툭하면 DB가 죽어 버린다. 가끔씩 접속 자체가 안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많은 한국 사용자들이 이 서버 때문에 불만이 많다고 한다. 과거 내 서버에서 백괴사전이 돌아가는 시절, 그 때는 참 자기들 서버에 오라고들 부추겼다. 처음에는 내가 라이선스 문제(당시에는 GFDL이긴 했음)로 거절했지만, 속뜻은 속도와 안정성 문제였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은 저런 서버에 붙기 힘들 것 같다. 많은 백괴사전 회원들이 서버 독립을 원하고 있고, 또한 그렇게 하면 메타 같은 곳에서 영향력도 줄어들고 황당한 사고도 지금보다는 적게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후원자들을 구해 보고 있지만 과연 결과가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백괴사전 서버가 살아 들어 온다고 해도 지금까지의 사태 때문에 몰려 올 후폭풍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도 감당이 불가능해 보인다. ㅁㄴㅇㄹ

Nightlife

우리 학교에서는 밤에 어디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안 그래도 귀교 시간은 10:30까지로 정해져 있고 (그나마 점호가 11:50이기 때문에 어디 나갔다 오면 1시간 20분을 벌 수는 있다만) 학교도 산 구석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밤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다. 저번에 10월 6일 모임을 끝내고 부산역에서 학교로 가면서, 거리의 밤풍경을 좀 훑어보다가 왔다.

부산역에서 10:50에 도착하는 KTX를 타고 와서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간 것이 11시였다. 부산역이 한산했던 모습은 그 때 빼고는 보지 못했다. 밤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돌아가는 사람들. 적긴 했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니 새로웠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11시답지 않게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사연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11시 5분에 들어온 열차를 낚아서 타고 서면까지 갔다.

우리 학교에 가려면 서면에서 2호선 동의대역으로 간 다음 거기에서 택시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그러나, 1호선 열차가 늦게 온 것을 보고 2호선 열차를 지금 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면역에서 내렸다. 학교 쪽으로 가는 출입구에 내린 다음 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올라가겠다는 생각이었다. 11시쯤 되니 대부분 건물들은 셔터를 내렸고, 그 앞을 쓸쓸히 지키는 노숙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을 지나치고 근처에 있는 택시를 탄 다음 “한국과학영재학교요” 하는 말 한 마디만 한 다음 잠시 눈을 붙였다.

택시가 학교 교문에 도착한 것은 11:30. 다행히도 내가 돌아올 시간을 딱 맞추었다. 4000원 정도 하는 돈을 드리고 나온 다음 바로 기숙사로 가서 눈을 붙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부산 밤 거리였다.

대화의 부재 (2)

10월 6일 서울에서 열릴 모임에서 발표할 내용이다. 10월 6일 이전까지는 함부로 도용하지 말기 바란다.

안녕하십니까? 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 박신조입니다. 우선 이런 모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제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제 친구들 중에는, 제가 가지지 못한 지능을 가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저는 혼자 왔어야 했을까요? 바로 제 친구들 중에는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안에서도 저 혼자만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다른 과학고나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한 학교에 한 명도 채 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본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제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리눅스를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리눅스는 단지 윈도를 대체할 수 있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때의 리눅스는 정말 조악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하려면 엄청난 삽질을 해야 했고, 당시 제가 쓰던 랜카드가 인식이 되지 않아서 인터넷을 즐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중학교 때 다시 깔아 보게 되었습니다. 한 3년 되었나? 그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하려면 명령어 한 줄이면 되었고, 인터넷도 자동으로 연결해 주었습니다. 새로 노트북을 한 대 사면서 무선 네트워크 카드가 잡히지 않아서 고생했으나, 이것도 금방 해결되더군요.

이렇듯, 자유 소프트웨어 세상은 빠른 진보가 특징입니다. 불과 1년 전의 지식이 오래 전의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이런 빠른 진보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입니다. 하지만 왜 누군가가 선뜻 나서서 참여를 하지 않을까요? 각종 제도권의 틀을 뜯어 고치자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제도권에 책임 하나는 묻겠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에 더 이상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권장하고, 또한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만약 백 명이 모여서 똑같은 물건을 처음부터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라고 하겠습니까? 아마 그 백 명을 한 데 모아서 물건을 같이 만들어 보라고 할 것입니다. 백 명을 모아서 물건을 같이 만들어 보라고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두 데스크톱 환경은 그놈과 KDE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오면 이들 둘의 점유율이 확 차이가 납니다. 왜냐고요? 그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부실한 KDE의 한국어 번역이 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KDE의 한국어 번역은 과거 2001년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한국산 배포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KDE의 번역이 난립했습니다. 이들은 한 데 모아지지 않았죠. 나름대로 문서화까지 거쳤던 배포판도 있었으나, 이들도 결국에는 배포판이 망하면서 수명을 다하게 됩니다. 과거 코디네이터 분이 작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한 동안 KDE 한국어 작업은 백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까지의 성과물들은 결국 다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중단하려면, 누군가가 “한데 모이라”고 외쳐 줘야 하지 않을까요?

다행히도 저는 “한데 모이라”고 외쳐 보았습니다. 과거 KDE 번역들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메시지와 문서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들과 KDE 최신 버전의 번역을 합쳐 보았습니다. KDE 3을 예로 들어 보면 KDE 공식 SVN에서는 거의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 녀석들이, 합치고 나니까 엄청나게 번역률이 올라가더군요. 10%도 안 되던 것이 56%까지 말입니다. 부진했던 KDE 한국어 문서도 어느 정도는 있더군요. 지금은 국산 배포판들이 한두개 남기고 다 사라져서 배포판별로 난립하는 번역은 사라지겠지만, 배포판 업체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제발 제대로 된 문서 좀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메시지 번역은 쉽지, 문서 번역은 정말 전문가가 아니면 힘든 작업입니다.

이상으로 제 짧은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