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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3일

반쯤 뜬 눈으로 발표 자료를 마감한 채,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고 탐페레 대학교로 갔다. 전날 있었던 Akademy 파티의 영향 때문인지, 아침 10시가 되어도 대학교가 제법 한산했다. 덕분에 내 발표장까지 한산했던 건 우왕 썅. 오전 10시가 되어서도 사람들이 생각만큼 많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녹화 장비 문제까지 겹쳐서 한 15분간 지연해서 시작했다가, 결국 다음 발표 때문에 녹화되지 않은 채로 발표를 진행했다. 2008년에 했던 발표에 비하면 나름 대박이었고, 덕분에 발표가 끝나고 Translatewiki.net 운영자와, 카노니컬 쪽 사람까지 만날 기회가 생겼다. 하여튼 이거 덕분에 그 날 내 발표 이후 점심때까지 아무것도 못 들었다.

내 발표 이후 점심 때까지는 여러 Lightning talk가 진행되었다. 그냥 발표에 비해서 세션 시간도 짧으며, 주제도 꽤 다양한 편이었다. 이 시간에 난 사람들을 만난다고 발표장 밖에 나와 있었다. Lightning talk가 끝나고 나서도 다른 한 쪽 세션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 이야기가 나왔는데, 못 들은 게 아쉽긴 하지만 발표 덕분에 사람을 만났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생각하자. 점심 먹기 전 Akademy 2010 단체 사진을 찍었고, 30분으로 예정된 사진 촬영 시간이 금방 끝나서 그만큼 빨리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저 사진의 주황색 옷은 일단 자원 봉사자로 생각하면 되고, 나중에 이름을 보니 올해 처음 오는 사람들, 특히 핀란드에서 많이 왔다. 어제 나왔던 연어 스테이크가 그립긴 했지만, 뭐 점심은 먹을만하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Aaron Seigo의 키노트가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KDE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는 자리였지만, 브라질에 있는 많은 KDE 수요와 전세계 독일 대사관의 Okular 사용만큼 재미난 뉴스는 없었다. 결코 Chief Morale Officer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발표이다.

Aaron Seigo

Aaron Seigo

이 키노트가 끝난 다음 Platform 트랙으로 들어갔다. 어제 진행된 모바일 트랙은 말 그대로 모바일 플랫폼을 위한 발표이고, Platform 트랙은 윈도 쪽에 집중한 모습이다. KDE on Windows는 KDE 4.0 들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며,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인스톨러도 등장했으며 셸로 Plasma를 쓸 수도 있다. 반면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신경써 왔던 리눅스 이외의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거고, 따라서 고려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KDE 소프트웨어는 윈도 시장에는 갓 들어왔기 때문에 앞으로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기대가 된다.

Beyond our comfort zone - spreading KDE software to non-free platforms 중

Beyond our comfort zone - spreading KDE software to non-free platforms 중

플랫폼 트랙의 마지막은 Chakra 프로젝트이다. 사실 나야 데비안 계열 이외의 배포판은 ‘말만 들은’ 수준으로 알고 있어서 이게 뭔지 아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자리였다. 발표에서 사용자 편의성을 상당히 많이 언급했는데, 나중에 테스트할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Chakra 프로젝트

Chakra 프로젝트

모든 발표가 다 끝나고 이번 Akademy 스폰서 발표가 진행되었다. 인텔, basysKom, openSUSE, Collabora, 캐노니컬(내 기억이 맞다면, 더 있을 수도 있음)에서 발표를 진행하였다. 잠깐 동안의 기업 홍보와 함께 살짝살짝 채용 정보도 알려 주었다. 특히 이번 해 인텔은 오픈소스 쪽 구인 광고를 Akademy에서 했다. 캐노니컬에서는 추첨을 통해서 뭔가 나눠 줬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경품운이 없는 내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다.

Collabora 홍보 프리젠테이션

Collabora 홍보 프리젠테이션

경품 추첨이 끝나고, 해마다 진행되는 Akademy 시상식이다. 프로그램 부문은 Gwenview의 Aurélien Gâteau, 비 프로그램 부문은 KDE 포럼의 Anne Wilson, 심사위원 부문은 전체적인 문서화의 Burkhard Lück이 받았다. 시상식 장면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와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꽤 좋았던 거는 확실하다. 다음날 Demola에 가 보니 상장에 사인하라는 공지가 떠 있었다. 이것으로 Akademy의 키노트 부분은 끝났다.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노키아에 있는 인도인 직원 한 분과 이야기하면서 들어갔다. 한 때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에도 근무했던 적이 있었고, 현재 노키아에서 맡고 있는 부문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행히도 한국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없어서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자기는 다음 날 직장에 나가야 해서 이번 Akademy는 발표만 듣고 들어간다고 하였다. 게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인도 사람들이 작년과 재작년에 비해서 상당히 많았다. 사실 이게 전 여행동안 중국인이나 일본인 오해받지 않은 유일한 자리였던 게 애시당초 여기 오는 아시아인이 인도, 중국, 한국 정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Akademy에서 일본인 찾기는 불가능했기에 가능하다.

탐페레 대학교에서 숙소로 오려면 역 위를 지나야 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Sm4가 탐페레까지 올라와 있다. ‘어 이놈 탐페레 올 일이 없을텐데’ 하면서 갸우뚱거리다가, Akademy 이후 헬싱키에 와서 이게 왜 여기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탐페레 역에 있는 Sm4

탐페레 역에 있는 Sm4

내일은 KDE e.V. 회의가 있고, 올해 의제인 사무실 이전과 OIN 가입에 대한 내 나름대로 생각과 프록시를 받아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

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2일

올해 들은 발표를 되짚어 보면, 생각만큼은 많지 않았다. 비록 재미난 건 많았지만 이 날은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체력 보충도 제대로 안 되었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 15분(이게… 10시간 가까이 된다) 동안 점심과 저녁 빼고, 발표만 진행된 탓에 제대로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커피 쿠폰이 4장이나 나온 게 다 이유가 있었군 도중에 잠깐 나가서 쉬기도 하고, 오후 늦게 있는 발표는 안 듣고 와서 잠이나 잤다. 그래도 후보작을 꽤나 높은 비율로 압축한 탓에 들을거리는 많았다. 여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오후 8시부터 파티까지 있었으니… 첫날 체력 게이지를 잔뜩 깎아서 둘째날 발표를 못 듣게 하려는 주최측의 음모다는 건 훼이크고… 써 놓고 보니 진짜 같다는 느낌도 든다.

뭐, 일단 탐페레 대학교에서 첫 두 날이 진행된다. 오프닝 행사가 9시 반부터고, 9시 45분 노키아에서 온 Valtteri Halla의 미고 프리젠테이션으로 시작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슬라이드는 공식적으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어쨌든 비디오는 있다. 큰 밑그림은 노키아와 인텔이 앞으로 미고를 어떻게 쓸 것인지고, 엔드 유저나 프로그래머가 좋아할만한 떡밥은 가끔씩 터져 나왔다. 처음에 노키아가 트롤텍을 인수한다고 하였을 때 모바일 플랫폼에 쓸 것이라는 예상은 모두 하고 있었고, 그게 바로 미고다. 비록 실제 제품화는 경쟁 진영에 비해서 상당히 늦었지만, 그 동안 각종 오픈소스 회사 및 프로젝트와 협력을 눈에 안 보이게 하고 있었고, KDE 쪽에서 개발한 기술도 미고에 많이 흡수되었다.

첫 날 한쪽 발표장은 사실상 모바일 트랙이 독점하였고, 다른 한 쪽은 커뮤니티와 개발이다. Collabora에서는 텔레파시 이야기를 들고 왔고, 그 다음 발표가 Qt 기반 프로그램을 오비 스토어에 올리기다. 예전에 올렸던 Carbide C++/Open C++/Qt 라이브러리 설치는 Qt/S60이 베타 시절 이야기고, 지금은 Qt 크리에이터가 그만큼 발전해서 S60용 개발 도구와 시뮬레이터를 같이 설치할 수 있다. 당연히 저 세 조합을 설치할 때보다는 쉽다. 웹킷 컨트롤 하나 올리고, 주소 표시줄과 뒤로/앞으로 버튼만 슥슥 올려 주고, 시그널과 슬롯만 이어 주면 웹 브라우저 데모가 탄생한다. 발표 중에 심비안의 큰 문제인 인증 이야기도 잠시 나왔다. 자가 서명한 인증서를 사용하면 무료, Symbian Signed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유료, 오비 스토어 개발자 계정이 있으면 무료이나 오비 스토어로만 배포 가능하다. 미고에는 인증 개념이 없다. 애시당초 심비안의 인증이란 게 플랫폼 보안과 직결된 거라서 일정 수준 이하로 간단하게는 못 만들 것이다. 이쯤 들은 다음 잠시 쉬러 나왔다.

안드로이드 iOS 꺼져

안드로이드 iOS 꺼져

발표는 일단 여기까지 듣고, 오전의 키노트 및 이 발표까지 IRC로 중계한다고 닳아 버린 노트북 배터리를 충전시키러 조금 빠져나왔다. 충전 센터의 많은 자리가 점령되어 버려서 빈 자리를 간신히 하나 찾았다. 거기서 오늘 챙긴 수확물(각종 스티커, 오리)을 정리하던 중 갑자기 펭귄이 방에 난입했다. 기분 전환을 위한 주최측의 장난 치고는 꽤나 엉뚱했다. 나중에 참가자들의 사진을 보니 저 펭귄은 이곳저곳 다녔다.

펭귄이_지나가네.jpg

펭귄이_지나가네.jpg

발표장 바로 바깥에는 적절한 식당과 커피가 있었다. 뭐 핀란드 사람들이 커피 좋아하는 사실 정도는 알고 넘어가는 게 좋다. 그냥 커피만 뽑으면 상당히 쓴 놈이 튀어나오므로 설탕인지 자일리톨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단 거를 넣거나, 우유를 넣지 않으면 상당히 쓰다. 그런데 이런 놈을 들이부어도 잠이 오는 건 무슨 센스인지 참. 고등학교 때 커피계가 몸에 잘 듣지 않아서 잠과 전쟁할 때에는 미리 잘 시간을 벌어두는 게 답이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한국에서는 잘 없는 진한 커피로도 어쩔 수 없는 거 보면 GG. 환경 보호에도 신경쓰고 있어서 샌드위치류를 잘라먹기 위한 식기는 대개 나무에 종이 접시였다. 에너지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는 따로 모으고 있다.

행사장 바깥

행사장 바깥

아무튼 커피를 좀 들이붓고 재미있어 보이는 Marble 모바일 발표를 듣고 왔다. 이미 Marble은 Qt만 사용하는 버전도 같이 개발되고 있으며, 지도를 보여주는 데는 이만한 프로그램은 없다. 버전이 점점 올라가면서 GPS에 바로 접근해서 경로를 가져오거나, Qt 컨트롤로 변신하여 다른 프로그램에서 지도를 보여주는 등 여러 기능이 추가되었다. 오전 발표는 이 정도로 끝나고,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학교 식당에서 7유로 정도의 뷔페로 해결하고, 오늘의 메뉴는 연어 스테이크였다. 다행히도 밥이란 게 나와서 많이 퍼먹었다.

7유로에 이런 거 구하기 힘듭니다

7유로에 이런 거 구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여기를 벗어나면 이 정도 음식을 먹으려면 돈도 좀 비싸져서 가능하면 점심을 많이 퍼먹고, 아침과 저녁을 줄여서 돈을 아꼈다. 저기 나온 저 연어 스테이크는 꽤나 맛이 괜찮았다.

오후 발표로는 KWin 모바일 이야기를 들었다. 모바일에서 사용되는 OpenGL ES로 변환, 모바일을 위한 새로운 UI 설계, 제스처 등의 흥미있는 떡밥이 나왔다. 실제 N900에서 사용할 수 있는 KWin 모바일 버전도 이 때 시연해 보았다. 데스크톱에서 볼 수 있는 효과 중 창 크기 조절은 과감하게 삭제되었으며, 창을 그룹별로 나누고 제스처를 사용하여 화면을 전환하는 것 까지 시연하였다. 발표 중에 월드컵 8강전 독일 대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려서, Plasma의 네트워크 애플릿 공유를 사용했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화면 한쪽에 점수가 떴다.

KWin on N900

KWin on N900

아르헨티나 대 독일 0:1

아르헨티나 대 독일 0:1

이거 다음 들은 발표가 KDE 플랫폼 프로필이다. KDE가 모바일과 같은 여러 플랫폼으로 이식되려면 플랫폼에 따라서 필요한 기능 집합이 바뀌어야 한다. 데스크톱/넷북/MID 다 특성이 다르며, 그에 필요한 기능이 다르다. 현재는 Plasma 넷북을 제외하면 별도로 구분되는 게 없지만, 차후 더 개발이 된다면 플랫폼에 따라서 KDE가 어떻게 생기는지도 바뀔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발표는 이거 말고도 하나 더 있었지만, 흥미가 이미 좀 사라져서 잠 자러 들어갔다. 그와 함께 다음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내 발표를 좀 더 가다듬기 위해서, 그 날 있었던 파티에도 불참하였다. 2008년과 2009년 파티는 꽤나 괜찮은 경험이었지만, 한 번 말려들었다가는 언제 끝날지도 몰라서 내 발표에 집중하기 위해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탐페레 대학교에서 컨퍼런스가 진행된 곳을 찍고 왔다. 탐페레 대학교를 빠져나오면 철도를 가로지르는 육교가 있는데,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탐페레 역이 잘 보인다. 오늘은 탐페레 역 남쪽에 Sr1 5중련과 급행 객차가 있었다. 차후 철도 여행기에서 설명하겠지만, 핀란드의 P(ikajuna) 열차는 결코 Express가 아니다.

탐페레 대학교

탐페레 대학교

Sr1 5중련

Sr1 5중련

아무튼 이 정도만 하고 방에서 발표 자료를 보강하였다. 과연 내일 아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2010년 Akademy 여행기: 제 1일

올해 Akademy는 핀란드에서 열린 덕분에, 예년에 비해 참가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했던 돈도 조금 많이 필요했다. 2008년과 2009년 Akademy 때는 딱 거기만 둘러보고 왔던 과거가 있어서 올해는 북유럽 여행까지 같이 계획해 버려서, 두 해 전에 비해서 결코 돈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딱 5월 말에 핀란드로 가는 항공권을 마련해 놓고, 6월에는 핀란드 탐페레 및 북유럽 투어 코스를 짠다고 한 달을 다 썼고, 7월에는 드디어 출국이다.
집 근처에서 김해공항 리무진을 타고(정류장별 첫차 시간은 공항리무진 버스에 전화해 보면 알려준다. 인터넷에는 첫차와 막차 시간만 있어서 낭패봤다.) 일단 김해공항으로 간 다음, 하루에 몇 편 없는 인천행 KE1402편을 타고 올라간다. 은근히 외국인들도 많이 탔고, 안내방송도 델타와 코드셰어 운항을 한다고 했다. 사실 이거 타기도 전에는 김해공항 전광판에 코드셰어가 된다는 것도 안 나와서 몰랐다. 아무튼 이걸 타고 인천공항에 8시쯤 도착한 다음, 출국 카운터를 거쳐서 핀에어 AY42편을 타러 갔다.

인천공항에 대기 중인 AY42편

인천공항에 대기 중인 AY42편

그 날 비가 상당히 오고 있어서 제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출발했지만, 헬싱키 반타 국제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한 걸 보면 얘들은 마법사인 게 확실하다. 한국에 오는 핀에어 비행기에는 모든 좌석에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달려 있고, 언어에 한국어도 들어가 있다. 갈 때 탄 비행기에는 무려 무한도전도 들어 있었다. 한국인 승무원도 타고 있었고,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한국어 순서로 방송이 나온다. 안내방송이 나오는 중에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잠시 중지되는데,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 방송을 한 사람이 하고, 한국어 방송을 다른 사람이 하기 때문에 두 방송 사이 잠깐동안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중지에서 풀린다. 이 날은 가다가 집단리셋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재부팅 화면에 뭔가 익숙한 펭귄이 떴다. 재부팅 이후 내 자리에서 도대체 지도가 안 보여서 ‘다시 한 번 더’ 재부팅시켰더니 지오드 기반 임베디드를 쓴다는 것까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날 나왔던 기내식

그 날 나왔던 기내식

핀에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정체

핀에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의 정체

아무튼 헬싱키 반타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조금 넘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환승을 위한 또 다른 게이트로 빠져나가고, 나는 그대로 입국 심사 및 공항 출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 쪽으로 나간 사람이 나 포함해서 10명도 안 되었다는 건 반쯤 확신한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헬싱키 경유 다른 데로 빠져나갔지, 핀란드가 목적지인 사람은 내가 그 날 혼자, 아니면 한두명 더 있었을 것이다. 2008년 독일/2009년 스페인 입국 심사 때와는 달리, 올해 핀란드 입국 심사 때는 non-EU 게이트에 줄 선 게 나 혼자서였는지(유럽 공항 입국 심사대 게이트는 대개 EU(여따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유럽 안에 있는 EU 미가입국 추가)/non-EU 게이트로 나뉘어 있다) 이것저것 질문이 많아졌다. 방문 목적과 기간은 입국 심사에서 빠지지는 않을 질문이고, 복편 항공권은 마련해 두는 게 좋다. 이게 없으면 좀 골치아파질 수 있다. 어쨌든 입국 게이트를 빠져나온 다음, 티쿠릴라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왔다. 공항이 작아서인지 얼마 걷지 않아도 된다. 61/61V번 버스를 타면 되고, 표는 자동판매기에서 구입하면 된다. 61V 버스는 배차 간격이 1시간인 대신 61번보다 5분 정도 빠르다.

하여튼 티쿠릴라 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헬싱키 시내와는 반대방향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탐페레 공항이 작은 편이기 때문에+기차를 좀 타 보고 싶어서 헬싱키까지만 비행기를 타고 탐페레는 기차로 가기로 했다. 일단 당장 출발하는 펜돌리노 열차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만석이 뜬 덕분에 1시간이나 기다린 다음 다음 펜돌리노 열차를 타기로 했다. 핀란드에는 별도의 고속선이 없기 때문에 시속 220까지 밟을 수 있는 펜돌리노나, 140/160 정도 밟는 인터시티나 시간 면에서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직선화가 잘 된 구간에서는 펜돌리노도 상당히 잘 밟아준다. 기존선을 시속 190으로 밟는 광경은 우리 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 하여튼 펜돌리노 열차를 타고 탐페레 역으로 간다.

VR Sm3 펜돌리노.

VR Sm3 펜돌리노. 이걸 탄 건 아니다.

탐페레 역에서 TOAS City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같이 갈 사람이 있나 싶어서 한국에서 올 때 파란 KDE 티셔츠를 입었던 덕분에 한 사람까지는 찾아서 같이 갈 수 있었다. TOAS City를 호텔이나 호스텔로 착각할 때에 대비해서, 여기는 탐페레 시내 외국인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Akademy 기간 동안 빌려준 것이다. 체크인을 끝내고 열쇠까지 받아 와서 방에 짐을 넣어 놓은 다음, 명찰을 찾으러 Demola로 갔다. 이미 사전 등록으로 사람이 많이 와 있어서 반쯤 놀자판이 되어 있었다. 적당히 알고 있던 사람과 인사를 나눈 다음, 한 몇 시간을 놀다가 오후 7시인가 8시쯤 샤워젤과 면도기를 사러 빠져나왔다. 난 처음에 소파와 자작 아케이드 머신, 축구 경기가 나오는 프로젝터가 있는 분위기를 보고 Demola가 사무실인 줄 몰랐다.

Demola 입구

Demola 입구. 저 건물 3층이다.

기내 액체 반입 규정 때문에 다른 건 다 100ml 이하의 용기를 구했지만 유독 샤워젤은 최소 단위가 2/300ml이다. 게다가 1회용 면도기는 위탁 수하물로 부칠 수는 있지만, 기내에 들고 탈 수는 없다. 1달 동안 쓰고 버리고 갈 거를 생각해서 탐페레 역 주변에 있는 Lidl에서 파는 가장 작은 300ml짜리 샤워젤과 저렴해 보이는 면도기 세트를 사 왔다. 그 다음 역 앞에 있는 R-Kiosk에 가서 Saunalahti 선불 심카드를 사 왔다. 내 노키아 6210은 출국 전에 지인을 통해 언락시킨 상태라서, KT 회선은 일시정지시켜 두고 나라를 이동할 때마다 선불 심카드로 버티기 위해서였다. 한 5.7유로인가에 선불 카드를 살 수 있고, 카드를 사면 6.얼마 정도가 충전되어 있다. 핀란드에 깔려 있는 아무 R-Kiosk에 가서 최소 10유로부터 충전시킬 수 있다. 단 선불이다 보니 최초로 휴대폰에 끼운 날부터 3개월이나, 마지막으로 충전한 날부터 12개월 동안까지만 번호가 유효하다. 아무런 신분증 제시 없이 전화카드처럼 살 수 있는 게 모 후진국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애시당초 핀란드에는 공중전화의 씨가 말랐다.

This is 선불 심카드

This is 선불 심카드


이제 내일부터 Akademy가 시작되어서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자야 하는데… 오후 9시가 되었는데도 해가 질 생각을 안 한다. 11시가 되어도 꿈쩍도 하지 않다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해가 떨어지는 척을 좀 한다. 블라인드를 쳐서 잘만한 상태로 만들긴 했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새벽 5시인가 6시다. 그런데 해가 중천이라서 오전 8시쯤으로 착각했다. wtf.

Akademy 2010 끝 / 북유럽 철도 여행 시작

이렇게 Akademy 2010은 끝났다. 2007년 글래스고 공항 테러, 2008년 브뤼셀 공항 파업, 2009년 Day trip 버스 사고처럼 크고 작은 사고가 한두건씩 터져 줬던 역대 Akademy와는 달리, 올해는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프록시를 받기는 했으나 내가 KDE e.V. 회원이 아니라서 들어가지 못했던 KDE e.V. 회의도 역대 초고속으로 끝났다. 핀란드가 비싼 나라긴 하지만, 주최측의 ‘상당한’ 도움으로 항공편 예약할 때 여행사 직원도 ‘그 정도면 거저 준다’고 했던 탐페레 숙소, 헬싱키 와서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비싼 먹거리를 대체할 수 있었던 대학교 식당핀레이슨 지역에 있었던 식당, 무제한 음료수와 네트워크, 그리고 KDE 개발자가 있었던 Demola의 좋은 분위기가 아직도 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 거따가 원래 150유로이나 공짜로 얻은 Nokia Certified Qt Developer, CACert.org 50 포인트, 그리고 기타등등 스티커도 추가요.

2008년에 했던 발표 때문에 충격먹고 2009년에는 발표를 잠시 쉬었다가, 올해는 다시 발표장에 나섰다. 다행히도 2008년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왔지만, 녹화 장비가 고자가 되어서 유독 내 발표를 비롯한 몇몇 발표만 녹화본이 없다. 그만큼 ‘지역화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반증으로 보였다. 녹화 장비 문제로 인한 지연과 30분을 거의 다 채운 발표 시간 덕분에 질문은 하나만 받고 끝났지만, Translatewiki.net 운영자와 런치패드 개발자 중 한 분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 동안 런치패드의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업스트림에 기여하지 않는다’를 해결하기 위해서, 런치패드에서 번역이 된 프로젝트가 있다면 버그 리포트의 형식으로 되돌려주는 걸 제안하였다. 그나마 내가 생각하는 대안 중 가장 나은 대안이다.

지금은 헬싱키에 있고, 내일 투르쿠를 찍고 로반니에미로 올라간다. Akademy 이후 북유럽 여행을 계획한 건 순전히 이 분의 블로그를 보고 뽐뿌를 받아서이다. 여행을 위해서 한국에서 노키아 지도를 준비해 왔고, 노트북이란 게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큰 그림만 잡은 다음 자세한 사항은 현지에서 잡고 있다. 특히 요즘 호스텔은 시설이 좋아서 어지간히 낡은 곳이 아니면 인터넷이 공짜다. 시간날 때마다 여행기를 쓰긴 하겠지만, 아마도 완전한 글은 한국 가서야 쓸 것 같다. 아마도 내가 Akademy 참가자 중 제일 늦게 귀국할 것 같다. 라기보다 Akademy 빠져 나오니 Geek의 세계를 떠나서 일반인의 세계에 적응이 안돼!

Akademy 2010 여행 계획

올해도 어김없이 Akademy가 열린다. 난 재작년에 발표를 하나 냈다가 터만홀만한 방에 앞 너댓줄만 사람이 차 있는 걸 보고 충격받아서 작년에는 발표를 안 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때 사람이 없을법했던 게, 내 바로 옆 방에서는 Marble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던데다가, 내 발표 주제는 릴리즈 노트를 봐도 언급이 잘 되지 않던 주제다 보니 KDE 지역화에 관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안 올 법도 했다. 2009년은 그 때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뭔가 이야기하기보다는 듣기로 했고, 올해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한 번 발표해 보기로 했다.

이번 해에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KDE 한국어 팀에 참여했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지역화 팀을 꾸려가는 방법, 여러 고민해볼만한 주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좁은 의미로 지역화라면 단순한 메시지 번역만 이야기하겠지만 더 넓게 바라보면 문서, 환경 설정, 예제 파일 등등 다양하다.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맡는다면 좋겠지만, 여러 사람이 나눠서 하다 보면 여러 고통스런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걸 빼먹으면 섭섭하다. 서양 사람들이 번역기 돌린 영어를 보면서 배꼽을 잡고 낄낄대듯이 한국 사람도 발로 해 놓은 현지화를 보면 기업을 욕하기 마련이다. 중간중간 소재가 바닥나거나 장면을 전환할 필요가 있을 때 이런 짤방을 사용할 예정이고, 이참에 Qt 웹 사이트 한국어 번역(and 노키아 코리아의 호구짓)도 좀 까볼까 싶다.

올해 Akademy 주제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컴퓨팅, 다 플랫폼 이식성으로, 모바일은 하루 전체가 할당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내 발표 배정은 강력한 떡밥 옆에 배치되지 않아서 참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Akademy를 통틀어 최초의 발표는 노키아의 Valteri Halla가 진행할 예정인 미고에 관한 키노트이다. 적어도 써 놓은 걸 보면 노키아의 꽤나 높은 장급 인사라서, 이 사람이 뭐라고 할지가 상당히 기대된다.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잘못 건드리면 파급 효과가 크다는 건 이미 작년 GCDS에서 배웠으리라 생각하고, 설마 KDE 진영을 자극하는 주제를 던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기회가 있다면 문자중계라도 해 볼까 생각 중이고, ‘한국에 미고 스마트폰 낼 계획은 있는가’는 꼭 물어볼 예정이다.

올해 Akademy는 핀란드에서 열릴 예정이라서 Akademy 일정이 끝나면 북유럽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처음에는 구글 어스에서 북유럽 도시들을 찍으면서 원을 그려 보다가, 점점 날짜가 다가오니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이번 겨울 내일로 여행 때 썼던 거점도시 잡아서 숙박 해결 + 필요한 경우 열차에서 잠자기 작전을 써 볼까 싶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타 볼 노선/타 볼 차량/둘러볼 곳은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지금 계획은 핀란드 로반니에미에서 북극권 인증, 헬싱키 메트로 완주, 러시아 경유 시 상트페테르부르크-헬싱키 국제열차 타 보기, 스웨덴 인란스 선 완주, X2000/X31K/IC3 탑승, 스톡홀름 시 및 KTH 견학, 노르웨이 피오르 해안 감상, 2차 대전 당시 중수 사건 박물관 투어, 덴마크 코펜하겐 지역 S-토그 탑승, 가능하면 IC4를 타거나 열차 페리 탑승, 독일을 통해 귀국 정도다.

방학 중 대부분은 학교에 있겠지만 여행 준비할 때에는 잠시 집에 내려와 있을 거고, 7월 더울 때에는 북유럽에서 피서를 즐기고 장마를 피하는 센스. 하지만 8월 초가 더위 피크라면 낭패.

Anyway,
I'm going to Akademy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