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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6일

아침 일찍 루돌프 호스텔에서 일어나서 산타클로스 호텔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호텔 뷔페를 이용하는 거라서 가격은 비싸지만, 호스텔에 투숙하고 있으면 11유로에 이용할 수 있다. 청어나 연어 같은 물고기도 보였고, 핫케익 제조용 틀도 있어서 그걸로 배를 채웠다. 오늘은 저 남쪽 스톡홀름까지 내려갈 예정이어서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두기로 했다. 로바니에미는 핀란드 북쪽 끝에 있고, 인구 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야간 침대차를 제외한 여객 열차는 빈도수가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핀란드에서 스웨덴이나 그 반대로 가려면 시간 문제 때문에 페리를 주로 이용하지만(헬싱키에서 저녁에 타면 스톡홀름에 아침에 도착함) 나는 열차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헬싱키에서 일단 케미까지는 올라와야 스웨덴과 연결되는 철길이 있다. 그나마도 궤간 문제 때문에 국경역인 토르니오/하파란타 역에 4선궤가 설치되어 있어서 환승이 불가피하다. 오래 전에 여객 열차는 영업을 중지했고,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으면 케미-토르니오/하파란타 간을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토르니오 역은 콜라리 방면 선로와 케미 방면 선로가 스웨덴 방향으로 합쳐지기 때문에 이 역에 정차하려면 차를 돌려서 나가야 하고, 토르니오 역을 대체하기 위한 역으로는 토르니오 이태이넨 역이 있다.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P 708 열차를 타고 일단 케미로 내려간다. 케미 역 바로 근처에는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거기에서 토르니오/하파란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대부분 버스는 토르니오 종착이고, 기사에게 요청을 하면 하파란타까지 갈 수 있다. 핀란드의 P 열차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강 폐지되기 직전의 통일호 같은 느낌이라서 가장 오래된 객차가 편성되고 주로 단거리를 운행하며 전역 정차하지만, 침대차가 P 등급으로 편성되는 아햏햏한 면도 있다. 열차에 탔는데 시간이 일찍어서였는지 객차 한 칸을 전세내서 케미까지 내려왔다.

P 708에 편성된 Eip 객차.

Eip 객차의 패찰. 파실라 공작창은 헬싱키 북부에 있다.

케미 역.

케미 버스 터미널로 가 보니 아주 낡은 버스 한 대가 토르니오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거기에 올라탄 다음 유레일 패스를 보여 주면 공짜로 탈 수 있다. 버스 안에는 마르카 동전을 받는 NMT 공중전화 단말기가 있다. 마르카가 유로로 대체된 지 거의 10년이 되었으므로, 이 버스는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도로가 2차선인 핀란드의 라플란드를 헤쳐나가는 동안 반쯤 공기로 이동하다가, 약 40분 후 토르니오에 도착했다. 토르니오와 하파란타는 원래 한 도시였다가 1800년대에 핀란드가 러시아 지배를 받으면서 새 국경선이 그어져서 갈라졌다. 이후 핀란드가 독립하고 노르딕 여권 연맹이 체결되면서 국경 검문소의 기능이 약해졌고, 솅겐 조약이 발효된 현재는 옛날 국경 검문소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버스를 타고 하파란타까지 갈 때에도 국경 검문소는 보이지 않았다.

케미 버스 터미널.

하파란타까지 모셔 줄 낡은 버스.

하파란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이케아 가게가 있는데, 가게 자체는 스웨덴에 있지만 핀란드어로도 안내가 쓰여 있고, 스웨덴 크로나와 유로를 모두 다 받는다. 스웨덴은 핀란드보다 1시간 빠르기 때문에 핀란드 시각으로 12시 55분이 스웨덴 시각으로는 11시 55분이 된다. 핀란드에서 토르니오로 운행하는 여객 열차가 없듯이, 스웨덴에서도 하파란타로 운행하는 여객 열차가 없다.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면 하파란타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 있는 룰레오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여기서 큰 실수를 했는데, 룰레오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야간 기차는 6시에 출발한다. 하파란타에서 룰레오로 가는 버스는 12시와 13시 35분에 있는데, 룰레오는 생각보다 작아서 굳이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간다고 12시에 하파란타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던 게 조금은 후회된다. 어쨌든 버스는 내가 내린 바로 그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

우메오행 버스

우메오행 버스. 이용 구간은 룰레오까지다.

버스 자체는 2층이지만 탑승한 승객은 나 포함 그리 많지 않았다. 버스 자체는 룰레오를 지나 우메오까지 운행하지만 유레일 패스로 탑승할 경우 룰레오까지만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스웨덴의 라플란드 역시 핀란드와 경치가 다를 바 없이 숲 속에 2차선 도로가 있고, 차나 사람이나 거의 없기 때문에 제한 속도가 높다. 슬슬 핀란드에서 샀던 SIM 카드가 신호를 잃어버려서 룰레오 도착 이후 SIM 카드를 사기로 했다. 휴대폰은 알람 시계와 A-GPS 비콘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 때문이다.

룰레오 버스 터미널

룰레오 버스 터미널

룰레오 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바로 앞에 기차역이 있다. 역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 자체는 이미 무인화되어 있었고, 승강장에는 여러 Rc 기관차IORE 기관차, 그리고 객차가 보였다. 룰레오 도착은 14시 25분이고, 스톡홀름행 야간 열차는 6시에 출발하므로 시간은 많다. 룰레오 시내를 둘러보면서 가지고 있던 유로 지폐를 스웨덴 크로나로 환전하고, 점심 겸 저녁을 룰레오 시내의 태국 식당에서 해결했다. 1 크로나는 약 10유로이기 때문에 핀란드 쪽에서 보던 숫자에 *10을 하면 대략 스웨덴 쪽에서 보이는 가격이 나온다.

룰레오 역

룰레오 역 승강장.

역명판

이쯤에서 내가 투르쿠에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룰레오와 우메오를 헷갈려서 룰레오에서 16시 32분에 타야 할 열차인데 우메오에서 18시에 탄다는 걸로 착각하고, 쿠셰트와 침대차를 착각해서 잠도 불편하게 잤다. 쿠셰트는 낮에는 좌석으로 쓰다가 밤에는 좌석을 접어서 침대로 쓰는 방식이고, 침대차는 원래 침대가 들어 있는 차다. 좌석 쿠션은 침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불편하므로 쿠셰트는 오래 버틸 곳이 못 된다. 룰레오와 우메오는 서로 엄청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차를 놓쳐 버리면 일정이 꼬인다. 아무튼 16시 32분에 룰레오에서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우메오까지는 좌석을 차지하기로 했다.

분명히 저 차 소유는 반베르케트인데 로고는 SJ?

같은 차인가?

IORE 기관차. 최고 속도는 낮은 대신 출력이 커서 철광석 열차에 특화되어 있다.

저기 보이는 기관차 중 Rc 기관차는 우리나라의 특대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전기 기관차로 생각하면 된다. 도입 시기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7종(현재는 5종)의 파생형도 있고, 최고 시속은 135/160km이다. SJ에서는 여객, 그린 카고 등 회사에서는 화물이나 여객을 담당한다. 파생형 중 하나인 Rc2는 오스트리아에 수출되었다가, 이후 역수입되어서 사철 회사 및 반베르케트에서 쓰고 있다. 스웨덴은 동차화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도 Rc 견인 여객 열차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IORE 기관차는 스웨덴의 철광석 생산지 키루나에서 노르웨이의 항구 나르비크/스웨덴의 항구 룰레오까지 실어나르는 데 사용된다. 주 운행 노선은 당연히 오포트 선/말름 선이며, 최고 시속은 80km이지만 견인력이 커서 철광석 약 70량도 거뜬하게 끌 수 있다. 영구 2중련되어 있으며, 각각 기관차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사진 중에 있는 S-SSRT Rc6 1333 9174 000 0011-8 이라는 표기는 독일을 주축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보급되고 있는 동력차 표기법의 일부로, 맨 처음 나오는 S는 스웨덴, SSRT는 반베르케트 소유를 뜻한다. SSRT 자리에는 SJ와 같은 다른 운송 회사가 올 수 있다. Rc6 1333은 과거 사용하였던 표기법이고, 9174 000 0011-8은 UIC 표준 표기법이다. 91은 시속 100km 이상 전기 기관차, 74는 스웨덴의 UIC 국가 코드, 000/0011은 차종/차종 내 식별 번호, 8은 체크 숫자이다. 현재 스웨덴의 철도 차량은 기존 표기법/UIC 표기법이 섞여 있고, 같은 Rc6이라고 해도 반베르케트 소유는 000, SJ 소유는 106으로 차종 식별 번호가 다르다. 아직까지 전 유럽에 정착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2010년 말 스웨덴 북부에 보트니아 선이 개통되면서, 기존의 노선으로 다니던 여객 열차가 보트니아 선 경유로 조정되었다. 이 때문에 야간 열차 시간표도 조정되어 7시 46분이 아닌 6시 15분에 도착한다. 이를 피하려면 룰레오에서 8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10시 2분에 떨궈 준다. 내가 열차를 탔을 때에는 보트니아 선이 미개통 상태였기 때문에 스톡홀름에 7시 46분에 떨궈 주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에 도착한 다음 뭘 해야 하지? 호스텔만 예약해 놓았고, 로바니에미에서 조사하기로 했던 스톡홀름 관광지는 무선 인터넷이 안 통해서 조사해 놓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스톡홀름 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에라이 몰라 일단 열차를 타고 스톡홀름까지 내려가자. 우메오를 지나고 나서 거의 곧바로 잤다.

다음날 오전 6시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기차는 스웨덴 중부까지 내려와서, 웁살라와 알란다를 거쳐 스톡홀름에 도착할 준비를 했다. 아침의 스톡홀름 센트랄 역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붐비던데다가, 야간 열차에서 제대로 못 잔 피로감까지 겹쳐서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래도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각오로 (다음 편에서 계속)

과연 스톡홀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과연 스톡홀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5일

아침 6시 가까이 되어서 잠에서 깼다. 자고 일어나서야 샤워실은 검은색 키로 연다는 걸 알아채는 바람에 일단 아침 일찍 씻었다. Edm 침대차에 부속된 샤워실은 따뜻한 물은 나온다. 원래 침대차 내 샤워실이 다 그렇듯이 공간은 꽤나 협소한 편이다. 대부분 Edm 침대차는 뽑은 지 5년도 안 된 완전 새삥이기 때문에 샤워실 청결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전 8시쯤 로바니에미 역에 딱 도착했고, 위층에서 자던 사람이 물을 안 먹어서 당장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 득템. 안내방송 그런 거 없기 때문에 내릴 때 우루루 내리면 된다.

로바니에미 역

Edm 침대차

로바니에미 역 뒤편

역 뒤에 있는 Tk3 증기 기관차

당장 8시에 로바니에미에 도착하긴 했는데, 시내에 있는 모든 식당은 문을 아직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이 도심에 근접한 것도 아니라서 로바니에미 역 위에는 증기 기관차밖에 안 보인다. 내가 찾은 루돌프 호스텔은 하룻밤 묵는 데 무슨 3~40유로(싱글 룸)씩이나 하는 바람에 로바니에미에서는 하룻밤만 지내기로 했다. 체크인 시간의 압박으로 짐까지 들고다니느라 고생 좀 했다. 이번 여행 동안 대부분 호스텔들은 체크인 시간 이전에도 짐을 맡아 준다는 사실을 몰라서 도시를 이동할 때 고생 꽤나 했다. 북극권을 오전 일찍 건너고 아르크티쿰 박물관을 보고 온 다음, 호스텔에 짐 풀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로바니에미 역 앞에서 산타 마을로 출발하는 8번 버스 시간표는 정류장 밑에 붙어 있다. 시내를 통과하면서 몇몇 사람을 태우고 공도를 달려서 산타 마을로 간다. 인구 수는 적은데 땅은 넓다보니 지나가는 차나 사람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볼래야 볼 수 없는 풍경. 산타 마을에는 진짜 산타가 사는 집이 있고(여기서 사진 촬영은 불가능) 북극권 인증을 할 수 있도록 금까지 그어 놓았다.

산타 마을 입구

북극권 코앞. 여러 도시간의 거리를 나타낸 표지판.

북극권 밟기 인증

산타의 집 입구

나도 Qt 스티커 하나 붙이고 돌아옴

북극권을 따라 놓여 있는 램프

버스 정류장

산타 기념품 가게를 뒤로하고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와플 한두개로 아침을 때웠다. 사촌동생 선물을 보러 갔던 스와로프스키 가게에서 핀란드의 1/2센트 동전을 무료로 증정하고 있었다. 대부분 유로 통용국과는 다르게 핀란드에서는 5센트 미만은 반올림하거나 버린다. 그래서 1/2센트 동전은 도안이 존재하고 유럽 중앙 은행 규정 때문에 동전을 발행해야 하지만 실제 유통되는 동전은 많지 않다. 다른 나라의 1/2센트 동전은 핀란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시내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와플 한두개는 배고픔을 금방 달래 주었다. 산타 마을 주변은 숲밖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역 주변으로 돌아갔다.

로바니에미에 있는 세계 최북단 맥도날드

로바니에미 시내

시립 미술관이 공사 중이어서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 중에는 아르크티쿰 박물관이 제일 크다. 이름처럼 핀란드 북부의 생활상을 전시해 놓고 있었고, 노르딕 국가 북부 지방의 원주민인 사미 족에 대하여 깊게 다루고 있다. 사미 족은 남쪽에 있는 사람들과는 생활 양식이나 언어나 민족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과거에는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모습이 많이 변했다. 사미 족의 주거지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러시아 일부에 걸쳐 있으며, 이들 나라의 국립 박물관은 항상 사미 족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아르크티쿰 박물관 입구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판

이 외에도 지구 온난화로 핀란드 북부 지역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다루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 입장에서는 주거지가 물에 잠기는 등 재앙이지만, 멀리 북쪽에서는 얼음에 봉인되어 있던 각종 자원의 봉인이 해제되고 항로가 뚫리는 등 이득도 보고 있다. 하지만 북극에 살고 있는 각종 생물의 삶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긍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 중에는 술이 있었다. 핀란드 북부는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고, 술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핀란드 정부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지금도 노르딕 국가에서 시행되는 국가의 주류 독점 제도는 모두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 유통되었던 주류라든가, 주류를 구입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이런저런 허가증이 전시되어 있다. 술 마시면 심신미약으로 형이 감경되는 어떤 나라에는 이런 걸 도입하지 못하겠지. 당장 소주도 알코올 농도 4.7% 이상이잖아.

호스텔 체크인을 맞추기 위해서 아르크티쿰에서 적절히 시간을 때운 다음 시내 중심으로 갔다. 특이하게도 도심을 관통하는 도로는 모두 비포장이다. 9유로 주변에 배를 채울 수 있는 중식 뷔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골든 락스에 질려 있었기에 맛있게 먹었고, 유럽 어디를 가나 저렴한 중식 뷔페가 있어서 배 채울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로바니에미에는 세계 최북단의 맥도날드가 있지만, 핀란드의 다른 패스트푸드가 그렇듯이 가격대 성능비가 안 좋아서 보는 걸로 만족했다. 일단 이걸 끝내고 루돌프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산타클로스 호텔로 갔다.

루돌프 호스텔은 독립적인 체크인 시설이 없는 완전 기숙사형 호스텔이라서 밑에 있는 산타클로스 호텔에서 체크인 및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호텔에서 운영하다 보니 방값도 장난 아니게 비싸서, 로바니에미에서는 하룻밤만 자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도시도 작아서 볼 것도 많이 없다. 루돌프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방 열쇠를 받은 다음, 스톡홀름에서 뭐를 볼지 보려고 노트북을 펼쳤는데… 방에서 무선랜이 안 잡힌다. 스톡홀름에서 지낼 호스텔은 예약해 두었지만 관광지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낭패다. 침대차에서 푹 잘 수 있었지만 오전에 돌아다닌다고 체력 소모가 커서 일단 낮잠을 좀 잤다.

여기가 바로 루돌프 호스텔

여기가 바로 루돌프 호스텔

자고 일어나서 로바니에미 시내를 좀 둘러 보았다. 로바니에미 시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조성되었다. 핀란드는 소련을 몰아내기 위하여 독일과 동맹을 맺었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결과는 패전이었다. 소련과의 평화 조약 중에는 독일군을 핀란드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도 있었고, 독일군은 핀란드에서 철수하면서 이런저런 피해를 남기고 갔다. 핀란드 북부의 큰 도시 로바니에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시내에 이런저런 기념비를 건설하였고, 기념비 근처에는 로바니에미의 이런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핀란드 철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전철화된 역도 바로 로바니에미 역이다. 여기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더 작은 케미얘르비가 나오고, 더 동쪽으로 가다가 러시아 국경선을 앞두고 끊긴다. 과거에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수요 문제로 폐선되어, 지금 핀란드와 러시아를 잇는 철도 노선은 남부에 하나 있다. 로바니에미 동쪽으로 가기 위하여 케미 강을 건너는 다리도 전후에 복구되었다. 오후 5~6시쯤 되었으나, 어지간한 공공 시설은 문을 닫았고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해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시내 곳곳에 있는 조형물

로바니에미에서 동쪽으로 가는 철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복구되었고 전철화는 안 되어 있다.

시립 도서관

밤이 깊어가는데도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리고 창을 완전히 닫고서야 겨우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탐페레는 그래도 12시 주변이 되면 해가 살짝 지는 척이라도 하지, 북극권에 인접한 로바니에미는 그런 거 없다. 룰레오발이라고 착각했던 우메오발 스톡홀름행 쿠셰트 티켓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무선랜이 터지지 않으니 론리플래닛 책을 봐 가면서 스톡홀름에 도착하고 호스텔로 가기 직전까지 볼 장소를 찾아 보았다. 미리 받아 놓은 케미-룰레오 버스 시간표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놓고 잤다. 스톡홀름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다가 스웨덴 쿠셰트는 편안함은 엿 바꿔먹은 물건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4일

오늘은 헬싱키를 떠나 투르쿠를 오후에 둘러보고 탐페레 경유 로바니에미로 올라간다. 핀란드에서 유레일 패스 사용 시 IC 이하
대부분 열차는 예약 없이 탑승 가능하지만, 펜돌리노 및 야간 열차는 예약이 필수다. 오전 9시에 투르쿠로 가는 펜돌리노를
예약하고, 오후 늦게 출발하는 로바니에미행 침대차 P 265 열차를 예약하였다. 어차피 로바니에미는 헬싱키나 투르쿠 둘 다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침대차 요금도 아낄 겸 탐페레에서 로바니에미까지 예약하였다.

펜돌리노는 예약비 5유로 고정이고, 침대차는 이용 구간에 따라서 요금이 다르다. VR은 두 종류의 침대차를 사용 중이며,
상대적으로 구형 CEmt 침대차와 신형 2층 Edm 침대차가 있다. CEmt 침대차는 단층 구조에 1방에 3명이 들어가며, Edm 침대차는
복층 구조에 2인 1실이며, 위층이 공간이 조금 더 넓다. 아직까지 Edm 침대차는 상대적으로 수가 적기 때문에 2010년 1월
기준으로도 헬싱키-로바니에미-케미얘르비 구간만 운행 중이며, 1일 4편성만 Edm 침대차가 연결된다. P 265 열차를 일부러
시간 맞춘 이유도 Edm 침대차 때문이다. 투르쿠에서 바로 로바니에미로 가는 열차에는 Edm이 편성되지 않는다.

헬싱키에 온 목적 중 하나가 헬싱키 지하철 탑승이었기 때문에, 열차 승차권을 예약하기 전 지하철 체험을 해 보려고 좀 빨리 나섰다.
헬싱키 지하철은 1982년 개통되었고, 차량은 1979년부터 반입된 M100과 2000년
반입된 M200
차량이 있다. M100 차량은 전 세계 최초 VVVF(-RCT) 제어를 사용하는 차량이다. 헬싱키 역 바로 앞에 있는
라우타티엔토리 역에서 루오홀라티 역까지를 시간 때우기 용으로 몇 번 왕복해 보았다. 2유로짜리 표를 사면 1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환승 가능하므로 이런 짓도 맘대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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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기억나는 거라면 에스컬레이터가 상당히 빨랐다는 점, 헬싱키 시는 물과 가깝기 때문에 지하 구간이 꽤나 깊었다는 점이 기억에 난다. 한국의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솔직히 느린 편이다. 한국 속도 감각으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가 계단이 빨리 꺼져서 당황스러웠는데, 다른 북유럽 국가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이것과 비슷했다.

라우타티엔토리 역 열차 안내 전광판.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한국에 비해 상당히 빠르다.

라우타티엔토리 역 승강장

M200 열차

떠나는 M200 열차. M100이 궁금해서 떠나보냈다.

M100 열차 내부

떠나가는 M100 열차

M100 열차 중련 연결부

M200 열차 중련 연결부

M100 제작사 패찰

헬싱키 역에서 9시에 출발하는 펜돌리노 열차를 탄 다음 투르쿠로 간다.
헬싱키 역을 서울역에 비유하면 펜돌리노 이하 전 열차가 정차하는 파실라 역은 영등포역 정도로 취급할 수 있다. 파실라 역을
지나면서부터 선로가 서/북/동쪽으로 갈라진다. 투르쿠로 가는 란타 선으로 진입하면 에스포로 진입하고, 에스포의 서쪽 키르코누미
역에서 복선 구간이 끝난다. 헬싱키 통근 열차는 대부분 복선 구간만 운행하며, Y 열차는 키르코누미에서 조금 더 나아가기도 한다.
키르코누미를 벗어나면 단선 구간을 시속 160 정도로 달리며, 살로, 쿠피타 역에 정차한 다음 투르쿠 역에 도착한다. 가끔씩
투르쿠 항까지 가는 열차가 있으며, 투르쿠 성은 항구에서 더 가깝다.

투르쿠에 도착한 다음 투르쿠 역 매표소에서 스웨덴
룰레오-스톡홀름 간 침대차
예약하려고 했는데, 몇 글자를 틀려 버려서 실제로 예약한 열차는 우메오-스톡홀름 간 쿠셰트가 되어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침대차와 쿠셰트는
편안함의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역 앞으로 나와서 지도 한 장만 거머쥐고 투르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일단 역 근처에 있는 투르쿠 시립 미술관을 간단히 둘러본 다음, 아우라 강을 건너서 투르쿠 대성당으로 갔고, 거기서 한 템포 쉬었다. 끌고 다니던 캐리어 가방은 투르쿠 역에 넣어 두었다.

투르쿠 역 열차 전광판. 통근 열차는 꺼져 있었다.

투르쿠 역 매표소

투르쿠 시립 미술관 측면

투르쿠 시립 미술관 정면

투르쿠 대성당과 아우라 강

아우라 강변

시벨리우스 박물관은 투르쿠 대성당 상당히 근처에 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앞에서 엄청난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학생은 상당히 저렴하게 입장할 수 있다. 시벨리우스의 생애, 투르쿠에서 열린 음악 축제, 각종 피아노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깊은 곳에는 시벨리우스의 음악과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자료실이 있다. 내가 갔던 시간대에는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자료실을 전세내고 혼자서 놀 수 있었다. 어지간한 영상 자료는 핀란드어 음성에 영어 자막이 있다.

시벨리우스 박물관

시벨리우스 박물관

투르쿠 대성당 주변을 빠져나온 다음 루오스타린매키 수공예 박물관으로 갔다. 1827년 투르쿠 대화재에 살아남은 가옥을 지금까지 보존해 왔으며, 지금도 당시 전통적인 복장을 입고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있다. 당시 작업실이 대부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에도 일부 작업실은 사용 중이다. 가옥이 보존되어 박물관이 된 만큼, 별도의 전시실은 없고 옛날 집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볼거리이다.

루오스타린매키 박물관의 한 거리

아우라 강변의 배를 개조한 식당

또 다른 식당

시내

여기까지 둘러보니 오후 서너시. 이 때쯤 되면 박물관에 하나 들어가서 돌아보기도 애매하고, 야간 열차는 상당히 늦게 출발하기 때문에 저녁부터 먹었다. 헬싱키에서 내 배를 채워 준 골든 락스는 핀란드 전국에 깔려 있고, 피자 맛이나 종류는 상당히 실망스럽긴 하지만 무제한 음료수와 사이드메뉴의 힘으로 투르쿠에서도 버텼다. 그 다음 투르쿠 역으로 가서 탐페레로 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투르쿠 역 정면

Sr2 기관차

Sr1 기관차와 객차

투르쿠 역 승강장 구조. 1번 승강장은 자동차 진입로가 있다.

탐페레행 열차의 Sr1 기관차

투르쿠에서 탐페레로 가는 P 열차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통근 열차이다. S/IC 열차가 운행하지 않는 곳에는 P 열차가 운행하며, 가장 오래 된 객차로 운행한다. 1980년대에 생산된 객차에 좌석은 여러 방향이 섞여 있고, 리클라이닝 따위는 사치고, 창문도 열려서 고속으로 주행할 때에는 기분마저 찝찝했다. 헬싱키-탐페레, 헬싱키-투르쿠와는 달리 투르쿠-탐페레 간 노선은 역간 거리도 길고 투르쿠, 로이마, 움필라, 토이알라, 탐페레에만 정차한다. 탐페레에 도착할 때가 되니 동 시간대 접속 열차 환승 안내 방송이 나왔다.

Akademy 이후 탐페레에 두 번째로 오지만, 이번에는 탐페레를 그냥 지나간다. 열차가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탐페레 역을 좀 둘러봤다. 평소에는 헬싱키 주변 지역에서만 놀던 Sm4가 탐페레 역에서 포리로 행선지를 바꿔 달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전역에 동글이가 와서 대전선 경유 익산행이나 김천행 무궁화로 운행하는 풍경이다. 헬싱키 통근 열차에 쓰이는 게 아니므로 노선 글자가 표시될 자리는 비어 있다. 백야 현상 때문인지 오후 10시가 다 되었는데도 밝다.

로바니에미까지 갈 야간 열차에는 Edm 침대차, 식당차, 객차, 쿠셰트, 자동차 수송차가 연결되어 있는데 Sr1 1량이 거의 15량을 끌고 간다. 흠좀무. 8200호대 전기 기관차는 HEP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차를 아직도 붙여 다니지만 유럽의 전기 견인 차량에는 발전차 같은 건 안 보인다.

탐페레-포리를 운행하는 Sm4 열차.

Sr2 기관차와 Sm4 전동차

Sm4 전동차. 시계와 풍경을 같이 볼 것.

침대차에 연결된 기관차

Edm 침대차를 타고 내가 잘 곳으로 가는데 문이 도대체 안 열린다. 더워서 씻고 자긴 해야 할 텐데 문이 안 열리니 답답했다. 난 시발역에서 탄 것도 아니라서 안내도 제대로 못 받았다. 알고 보니 문 앞에 있는 흰색 카드키를 찔러 넣으면 된다. 이 카드키는 단지 문만 열 수 있고, 샤워실로 가려면 침대차 안에 있는 검은색 카드키를 사용해야 한다. 이걸 모르고 첫날에 객차를 왔다갔다하면서 엄청 헤맸다. 객차 안에는 간단한 세면대가 있고 세면대 위에 있는 찬장에 물이 좀 있다. 거기 있던 두 팩의 물을 간단하게 해치우고, 위층에 있는 사람이 이미 자고 있어서 로바니에미까지 잤다. 도착 예정 시간은 다음날 오전 8시.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3일

일단 일어난다. 방에 나 혼자다. 세수하고 머리를 감고 아침 식사를 찾으러 간다. 호스텔에 부탁한 아침 식사는 샌드위치, 시리얼, 차가 나왔다. 7유로에 이 정도라는 게 아깝긴 하지만 양 자체는 많았던 편. 차 한 잔을 걸치고, 대강 짐을 챙겨서 헬싱키 역으로 걸어 나왔다. 오늘 가 볼 곳은 핀란드 철도 박물관, Heureka 과학관, 그리고 수오멘린나 해상 요새이다. 나라는 인간이 철도 박물관을 놓칠 리는 없고, 과학관은 개인적인 호기심, 수오멘린나는 꼭 보고 가야 할 곳이다.

방문 순서는 반쯤 의도적으로 조정했다. 철도 박물관이 제일 북쪽, 과학관이 그 다음, 수오멘린나는 헬싱키 중심까지 들어왔다가 나가야 한다. 철도 박물관으로 가려면 히빈캐(Hyvinkää/Hyvinge) 역까지 통근 열차를 타야 하고, Heureka로 가려면 티쿠릴라(Tikkurila/Dickursby), 수오멘린나로 가려면 카우파토리(Kauppatori/Salutorget)에서 페리로 접근해야 한다.

철도 박물관은 히빈캐 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좀 걸어 가면 선로 주변에 있으므로 쉽게 보인다. 헬싱키 통근 열차의 T/H/R 노선이 히빈캐에 서며, T는 헬싱키-리히매키까지 전역 정차, H/R은 중간역을 건너뛴다. T나 H는 타고 싶어도 발에 채이는 게 R 노선이다 보니 그걸 타려는데… 일부 R 노선은 리히매키에서 탐페레까지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천안 급행 중 몇 편성을 대전역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운행을 하려면 열차 속도가 빨라야 하고, 그래서인지 R 노선은 전부 Sm4로 운행한다. R이라고 쓰여 있는 차를 타고 올라간다. 통근 열차 타는 곳에는 SMS 티켓 광고가 있다. 문자 메시지를 특정 번호로 보내면 2유로짜리 티켓이 폰으로 들어오고 이게 표 대신 사용 가능하다.

왼쪽부터 Sr1, Sr2, Sm4

Sm1(2?), Sm4

Sm3, Sr1. 아래쪽에는 통근 열차 SMS 티켓 광고가 있다.

이제 히빈캐 역에 내려서 남쪽으로 걸어간다. 내가 타고 왔던 Sm4는 2+3에 저상 열차이다. 승객 탑승 편의성을 위해서는 승강장을 높이거나 열차를 낮추어서 열차 내 좌석과 승강장의 높이를 맞추는 방법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시도되는 방법은 주로 전자였기에 열차를 낮춘다는 말 자체가 우리나라 철도계에서 생소하다. Sm4는 열차를 낮춘 케이스이다.

Sm4 사진을 보면 창문 높이가 출입문 주변은 낮고 대차 및 운전석 주변은 높으며, 출입문과 승강장 높이가 거의 비슷하고, 천정부가 우리나라 전동차류보다 더 두꺼움을 알 수 있다. 전장품이 죄다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실제 열차를 타 보면 차 내부에 계단이 있고, 저상부에 휠체어 탑승 공간이 있다. 전장품을 위로 올려서 얻는 장점은 동파 방지도 있다. 선로에 쌓인 눈이나 냉기가 차량 하부보다는 상부에 영향을 더 적게 주며, 여기는 북위 60도를 넘기는 핀란드다.

핀란드 철도 박물관은 유레일 패스가 있으면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크게 실내 및 여러 실외 전시실로 나뉘어 있으며, 실내에는 기념품 판매점 및 정태 보존 중인 차량, 실외에는 핀란드 철도 역사관 및 운행 가능한 차량이 있다. 과거 핀란드에서 사용하였던 증기 기관차 및 디젤 차량, 철도 신호기 모형, 철도역 관제실 모형이 있다. 핀란드 쪽 증기 차량 계보는 잘 모르기 때문에 역사관이 있는 바깥쪽으로 나왔다.

핀란드에 철도가 처음 깔린 시기는 제정 러시아 시기였고, 이 때문에 1524mm 러시아 궤간 및 우측 통행을 현재에도 사용한다. 1918년 핀란드가 독립한 이후에도 1524mm 궤간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해안가부터 시작하여 내륙으로 철도가 설치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핀란드 동부 영토를 소련에게 뜯긴 때에도 철도 노선 자체는 연장되었다. 이후 전철화, 고속화, 복선화 등을 거쳐서 현재 핀란드의 철도망이 완성되었다.

역사관에서 볼만한 것은 궤간 비교 모형, 과거에 사용하였던 행선판, 철도역 모습, 철도원 복장 등이다. 글자 형태로 미루어 보아(러시아 혁명 이후 경음 기호 Ъ가 대부분 경우에 빠졌지만, 여기 있는 행선판에는 경음 기호가 들어가 있다) 꽤 오래된 유물부터 지금 사용하는 행선판까지 다양하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박물관을 빠져나오는데 어린이용 기차 모형 코너에 신칸센이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건 뭐. Heureka로 가기 위해 여기를 빠져나와서 티쿠릴라 역으로 내려간다.

히빈캐 역. 역 건물 하나 있고 승강장끼리는 다리로 이동 가능.

핀란드 철박 정문

Dm6(7?) 디젤 동차. 부수차는 아니겠지.

증기 기관차

역 관제실 모형

협궤, 표준궤, 광궤. 핀란드의 궤간은 1524mm이다.

핀란드에 시대 순으로 개통된 철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영토의 변화가 보인다.

과거 행선판

어 왜 여기에 신칸센이 있지

한국에서 과학관을 가서 그다지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Heureka 과학관 구경은 나름 기대가 되었다. 티쿠릴라 역 승강장 구조는 상당히 독특하여, 헬싱키행 열차는 무조건 1번 승강장에 서고 2번부터 7번까지는 티쿠릴라 이북으로 올라가거나 당역 착발 열차이다. 1번 승강장은 버스와 평면으로 연결되어서 좋지만 나머지 승강장은 그렇지 않다. 헬싱키로 내려오는 열차를 타고 티쿠릴라 역으로 갔기 때문에 Heureka까지 가기는 쉽다.

과학관은 실내와 실외로 나뉘어 있으며, 실내는 상설 및 특집 전시관, 그리고 농구하는 햄스터가 볼거리다.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관에서는 범죄 수사를 다루고 있었고, 농구하는 햄스터는 Heureka에서 직접 기르면서 공을 주고받고 골대에 넣는다. 아 물론 앞에서 죄다 핀란드어로 말해서 해설은 못 알아들었지만, 대강 보니 한 골 넣을 때마다 먹을 걸 받는다.

어지간한 전시물들은 핀란드어/스웨덴어/영어/러시아어로 되어 있었고, 개방된 공간에 있는 모니터들은 화면을 반으로 나눠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화면을 출력시키는 배려를 하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과는 확실히 비교된다. 과학관 안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실도 있었고, 이건 내가 갔을 때는 열리지 않았다. 과학관 밖에 있는 놀이터에도 재미난 장난감과 암석이 좀 전시되어 있었다. 월요일 오후, 방학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꽤 많이 왔다.

정문

과학관 1층 개방된 공간

실험실

과학관 외부 놀이터

야외 암석 전시

Heureka를 둘러보고 나서 수오멘린나로 내려간다. 오후 2시라 그런지 초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땀이 엄청 났다. 역 앞의 혼란스러운 카우파토리 광장을 헤쳐 나가면 수오멘린나로 가는 페리가 있다. 카우파토리 광장으로 가는 길은 그냥 바닷가고, 거기서 먹을것들을 팔고 있다. 바닷가라는 특성상 갈매기들이 자주 유람을 오시고, 덕분에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는 갈매기 주의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페리 하나는 HKL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값이 싸지만 순수한 운송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이 외에도 여러 관광 회사에서는 페리+관광 상품을 같이 팔고 있다. 난 돈 없는 여행자다 보니까 HKL 페리를 타고 그냥 수오멘린나로 왔다.

수오멘린나는 핀란드가 스웨덴령이었던 시절에 군사 요새로 건설되었다가, 이후 러시아가 접수하면서 러시아군 요새로 용도 전환되었고, 현재는 평소에는 민간 주거지로 사용되다가 비상시에만 군사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곳곳에 핀란드 국기가 걸려 있고, 심지어 이 안에는 민가도 있다. 헬싱키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지번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돌로 포장된 길이 대부분이며, 해안 경치와 과거 군사 요새의 흔적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한 곳에서는 지금은 쓸 수도 없어 보이는 과거 대포의 유적이 보이고, 다른 곳에서는 보트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거 지역과 관광 지역은 분리되어 있지는 않지만, 민가 주변에는 민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다. 섬을 산책하는 곳곳에도 민가가 보였다. 수오멘린나 박물관은 하필 내가 도착했을 때 닫아 버려서 거의 산책만 하다가 돌아왔다. 이 때가 저녁 6시쯤이었는데 목이 말라서 죽는 줄 알았다.

헬싱키에 도착한 첫 날 갔던 골든 락스를 다시 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 거기 피자가 영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 근처 지하에 있었던 또 다른 피자집으로 갔다. 헌데 이게 고생의 시작이다. 골든 락스는 음료수도 무제한이었지만, 거기는 뷔페 입장료는 싸지만 음료수는 돈 주고 사야 했다. 골든 락스는 살짝 비싸지만 음료수는 그래도 공짜다. 피자 자체는 이 집이 더 내 취향에 잘 맞았지만, 당시 엄청 목이 말랐기 때문에 배가 고팠음에도 불구하고 피자가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한 판 정도만 간신히 먹고 호스텔로 되돌아갔다. 피자 맛은 괜찮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수오멘린나 방면 HKL 페리에서

수오멘린나 선착장

관광객을 위한 이정표

왼쪽: 수오멘린나 박물관

과거 군사 요새였음을 보여 주는 대포의 흔적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우파토리 광장

자 이제 헬싱키에서는 마지막 한 밤을 보내고, 내일 오전에는 투르쿠로 갔다가 저녁에 탐페레를 경유하여 로바니에미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탄다. 수오멘린나에서 체력을 많이 써서 그런지 씻고 나니 잠이 저절로 온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2일

Akademy 기간 동안 묵었던 TOAS City를 뒤로 하고, 이제 헬싱키로 떠난다. 오늘부터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는 이미 한국에서 사용 시작 날짜를 정해서 왔기 때문에 탐페레 역에서 별도의 확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직 26세 이하이기 때문에 2등석 유레일 패스를 끊을 수 있다. 핀란드에서 유레일 패스를 사용한다면 인터시티(2) 이하 모든 열차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며, 펜돌리노나 (투르쿠/헬싱키)-(로바니에미-콜라리) 간 야간 열차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TOAS City

TOAS City

일단 탐페레 역으로 가서 헬싱키로 가는 IC 열차를 타자. 시간은 넉넉하므로 탐페레 역 승강장에서 열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핀란드의 역 승강장은 A/B/C/D로 나뉘어 있어서, 객차가 들어올 때 몇 호차가 어느 구역에 들어오는지를 알려 준다. 핀란드의 주요 간선 철도는 전철화되어 있고, 이미 Sr1/Sr2 전기 기관차와 객차 조합이 간선 노선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열차 시간이 되어서 내가 탈 열차가 Sr1 기관차에 이끌려 탐페레 역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시속 140km까지밖에 못 낼 거라고 생각하고 일단 차에 탔다.

탐페레 역 전광판

탐페레 역 승강장

Sr2 기관차와 인터시티 객차

Dm12 디젤 동차. 전철화가 많이 된 핀란드에서는 보기 힘들다.

오늘 내가 타고 갈(?) Sr1 기관차

일요일 낮 시간대라서 그런지 대부분 구간에서 공기수송. 좌석 지정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자유석 상태였던지라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인터시티 열차에 사용되는 Ed/Edb/Edfs 2층 객차는 핀란드 트랜스텍(한 때 탈고에 인수되었다가 현재는 뱉어낸 상태)에서 2000년대 초반에 제작하였고, 최근 생산한 객차답게 편의 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나는 유레일 패스를 보여 주고 끝나지만, 핀란드의 SMS 티켓은 티켓 바코드를 MMS로 보내 주기 때문에 플랫폼 가리지 않고 잘 보인다. 어느 나라의 철도공사는 스마트폰 승차권이랍시고 아이폰/안드로이드 전용으로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데 핀란드를 보고 배워라 좀. 풀숲 한가운데에 마을과 역이 드문드문 있는 핀란드의 기존선을 통과하는데 어 속도가 140을 넘기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탄 열차의 Sr1 기관차는 160짜리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헬싱키를 거의 다 와서야 뭔가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들었고, 궁금해서 내려서 열차 앞쪽으로 갔더니…

두둥. Sr2였다. 어째 탐페레 역에 오랫동안 정차하고 기관차가 들어온 것과 같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알아봤더니 탐페레 역으로 들어와서 반대쪽에 Sr2 기관차를 붙였다. 하긴 시속 200짜리 펜돌리노가 공유하는 기존선인 만큼 200까지 밟을 수 있는 Sr2 기관차를 붙이는 게 맞다. 헬싱키 역에는 이 놈 말고도 Sm4들이 대거 보였는데, 헬싱키 지역 통근 열차로 사용되었던 Sm1/Sm2 전동차가 상당히 오래되어서 대체하기 위하여 반입하였다. 최고 시속 160km까지 낼 수 있고 저상 열차이다.

진짜로 내가 타고 온 Sr2 기관차와 Sm4

헬싱키 역 서쪽 출구

완전히 굶주린 채로 헬싱키에 도착해서 헬싱키 역 앞에 있는 골든 락스로 점심을 해결했다. 여기 피자는 얇은데다가 토핑도 별로 다양하지 못하지만 사이드 디시가 다양해서 9유로의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 배가 고파서 막 넘어갔다. Erottajanpuisto 호스텔에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체크인 시간 오후 3시가 아직 되지 않아서 근처 공원에서 죽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앞에 한국 대사관이 있네?

호스텔 앞에 있었던 공원

호스텔 앞에 있었던 공원

7월의 헬싱키는 상당히 더웠다. 일단 씻고 잠을 좀 잤다. 일어나니 이미 오후 6시가 넘어 있어서 어지간한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호스텔 안에서 인터넷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호스텔을 빠져 나와서 주변을 걸어다녔다. 실외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위주로 구경하려다 보니 핀란드 국회(에두스쿤타) 의사당, 만네르헤임 동상 정도밖에 보지 못하고 들어갔다. 지금도 헬싱키에는 노면 전차가 다니고 있고, 우연히도 헬싱키 노면 전차 사진도 몇 장 건졌다. 에두스쿤타를 지나서 호스텔로 돌아오는데 한국+핀에어 직항편 광고를 단 버스가 보였다. 사진을 찍으려니 눈 앞에서 사라져 못 찍었지만, 아무리 핀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편이라고 해도 최소한 핀란드어로 써 주는 성의는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핀란드 국회(에두스쿤타) 의사당 건물

핀란드 3대 대통령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동상

헬싱키 노면 전차의 최신형 차량 바리오트램

구스타프 만네르헤임 동상

생각보다 상당히 더웠던 헬싱키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밤 11시쯤 되니 떨어지기 시작했다. 위도가 좀 더 높은 탐페레에서는 밤 12시가 되어도 해가 안 떨어져서 잠을 많이 설쳤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블라인드를 쳐도 해가 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므로, 탐페레를 떠난 이후 엄청 편안하게 잠을 잤다. 탐페레의 TOAS City에 있던 침대에 비해서 상당히 푹신해서 잠도 더 잘 왔다. 이제 내일은 핀란드 철도 박물관, 수오멘린나 해상 요새를 살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