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노키아 마에모를 처음 접하고, 2010년 노키아와 인텔이 미고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충분히 노키아의 행동에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러나 나오기로 했던 미고 휴대폰은 계속 연기되기만 했고, 2011년 N9를 마지막으로 노키아는 윈도 폰을 내놓기로 완전히 돌아섰고, 결국 인텔은 노키아 대신 삼성을 파트너로 삼아서 타이젠을 개발하고 있다. 미고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플랫폼이었으나, 엘롭의 판단 실수로 인하여 묻힐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지금의 윈도 폰 제조 업체인 노키아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고를 그대로 묻어버리기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서 이 글을 번역해 본다.
원래 이 글은 핀란드 사이트 Taskumuro에 핀란드어로 게재되었으나, 그 쪽 사용자들이 영어로 번역한 적이 있으며, 이 글은 영문 번역본의 한국어 중역본이다. 영문 원역본은 다음에 있다:
The story of Nokia MeeGo
2011년 2월 11일 노키아는 새로운 전략을 공개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윈도 폰 운영체제는 노키아 스마트폰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선정되었다. 미고는 오픈소스 모바일 운영 체제 프로젝트로 지속하며,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장치, 플랫폼, 사용자 경험 시장 조사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으면서 더 이상 미고에 투자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미고는 2010년 초부터 인텔과 함께 개발 중이었다. 새로운 전략은 미고를 포기하고 2년간의 개발 끝에 장치를 한 대만 출시한다는 것이었다.
노키아의 새로운 전략이 공개되기 1주 전, 스티븐 엘롭이 노키아 직원에게 보낸 메모가 공개되었다. 그의 불타는 플랫폼 메모에서, 엘롭은 심비안과 미고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애플과 구글의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노키아와 미고의 개발 상황은 최근 몇년간 혼란스러웠으며, 새로운 전략이 공개된 것이 N9 개발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미고 팀과 다른 노키아 직원들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전념하였다. 그 목표는 미고 기반 제품을 완성하고 2011년 내로 출시한다는 것이다.
노키아는 미고 개발을 공개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공개된 그림은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N9이며, 노키아를 다시 스마트폰 시장의 왕좌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제품이었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약 및 윈도 폰 전략에 의해서, 미고 팀은 N9 출시 및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 해체되었다. 저가형 휴대폰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멜테미(Meltemi) 운영체제 역시 잊혀졌고 모든 가용 자원은 윈도 폰에 투입되었다. TaskuMuro.com에서는 노키아 스마트폰 개발을 따라가고 있었고, 리눅스 기반 마에모와 미고 운영체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고의 역사에 관해서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2012년 여름 MuroBBS 포럼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미고 개발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뒷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익명으로 남기 원했던 과거 및 현재 노키아 직원들이 응답하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총 10명의 직원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 결과에 의해서 노키아의 거대한 미고 퍼즐은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 글은 여러 익명 출처에서 얻은 정보와 인터뷰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료를 교차 검증하고 인터넷에 유출된 정보와 대조해 보았다. 독자들은 이 인터뷰가 몇 년 간의 개발 이후 방치된 상태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진행되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핀란드에서만 5000명에 가까운 노키아 직원들이 해고되었기 때문에, 인터뷰 대상자의 말에서는 실직, 실패, 좌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의 원 작성자는 Sampsa Kurri이며, 그는 이 글에 언급된 모든 회사와 관계가 없다. 영문 번역은 MuroBBS 사용자들이 기여하였다.
미고 이전의 노키아: OSSO와 마에모
2005년부터 노키아 내의 매우 작은 그룹은 리눅스를 기반으로 하는 마에모(Maemo) 운영 체제와 이를 사용하는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이 팀은 OSSO (Open Source Software Operations)라고 알려져 있었고, 초기부터 팀원이었던 사람에 의하면 팀 목표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2007년 OSSO 팀은 마에모 팀으로 개칭되었고, 2010년 노키아와 인텔의 파트너십에 의하여 미고 팀으로 개칭되었다. 팀 창설 당시에는 아리 약시(Ari Jaaksi)가 지도하고 있었으며, 2010년 10월 사임하고 HP로 이직하여 webOS 운영 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 770
첫 번째 장치는 2005년에 출시된 노키아 770이었으며, 2007년 후속작 노키아 N800이 출시되었다. 두 제품 모두 매우 적은 자원만 사용하여 개발되었다. 팀 구성원은 수십명 정도였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적은 편이었다.
노키아 N800
개발 과정을 방해하는 관료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팀원들은 제품 개발을 자신의 취미처럼 생각하였다. 제품 생산은 최상위 조직이나 전문가 집단이 개입되지 않은 하청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제한된 자원과 하청 때문에 구성 요소 선택은 단가를 최우선 순위로 두었고, 공간 배치는 그 다음 우선 순위었으며, 하드웨어 성능 한계는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최대한 극복하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투자를 아낄 수 없었기 때문에 저렴한 구성 요소를 사용하여 비용을 절약하였고, 이는 몇 주 동안 성능 최적화를 위한 또 다른 일거리로 되돌아왔다.
인터뷰에 참가하였던 노키아 사람들은 하청을 너무 많이 주었다고 지적하였다. 회사 내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기반을 쌓아나가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OSSO 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청 업체의 작업 결과물 품질을 제어하기 어려웠고, 계약이 제대로 감독되지 않았다. 하청 업체에서는 초기에 최상의 전문가들을 제시하였다가 이후 다른 사람을 투입하는 식으로 속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인도에서 작성된 품질이 안 좋은 코드나, 영어 실력 문제로 중국 및 일본 개발자와 대화하기 힘들었다. 핀란드의 프로젝트 관리자 입장에서 이 모든 문제는 더 많은 일거리와 시간 지연으로 되돌아왔고, 결국에는 품질 개선을 위하여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팀 크기가 커지면서 관료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관료주의의 영향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의 민첩성이 감소하였고, 개발 속도에 영향을 주었다. 미고 팀 개발자들이 제안한 개선 사항 제안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고, 이 때문에 반영되지 않은 개선 사항이 많이 생겼다. 한 예로는 Swipe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현재 프로그램을 닫는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는 제스처가 있다. 이 제안 사항은 바로 거부되었으나, 개발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안을 테스트해 보라고 하였다. 이 결과로 노키아 내부 버그 추적 시스템에서는 수백개의 메시지가 오고 갔고, 관리자와 개발자들은 이 기능을 가지고 논쟁하였다. 마침내 PR 1.1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이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두 플랫폼을 둘러싼 노키아의 내부 경쟁은 N810 장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말에 출시되었고 휴대폰 기능이 제외되었다. 노키아의 첫 마에모 휴대폰이 될 수도 있었으나, 휴대폰 기능이 제외된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결과물이었다.
노키아 N810
우리가 인터뷰한 마에모 팀 구성원에 의하면, 심비안 팀 관리자들은 N810과 심비안 기반 커뮤니케이터 ((역주: QWERTY 키보드가 달려 있고 메일 기능에 특화된 스마트폰. 커뮤니케이터 이름을 달고 나온 스마트폰으로는 노키아 9000 시리즈 및 E90이 있다. 위키백과 참고.))와의 경쟁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미 2005년과 2006년에도 몇몇 사람들은 심비안이 오래된 플랫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비안에 효율적인 터치스크린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추가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심비안 팀과 마에모 팀 사이의 내부 경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 N900
N810이 발표된 이후 마에모 팀에서는 대중을 위한 스마트폰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계획은 N810에 휴대폰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코드명 ‘Rover’라는 새 장치로 바뀌었고 N900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N900은 하청을 많이 사용하는 등 기존 마에모 장치와 같은 방법론으로 개발되었다. 전체적인 일정에 대한 계획 없이 한 번에 한 부분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 방법론은 어려웠다. 놀랍게도 개발 팀에서 사용 가능한 시간 및 예산이 증가할수록 개발 과정은 더 힘들어졌다.
N900은 마에모 5 운영체제(코드명 Fremantle)를 사용하였다. Hildon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GTK+ ((역주: GNOME의 기반이 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툴킷. 공식 홈페이지.))로 작성되었다. N900 개발과 동시에 마에모 6(코드명 Harmattan)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Qt ((역주: KDE의 기반이 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툴킷. GTK+와는 당연히 호환되지 않는다. 공식 홈페이지.))로 다시 작성될 예정이었다.
노키아에서는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위하여 심비안과 마에모를 같이 개발하기로 하였다. 심비안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고, iOS와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시장을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노키아 내부에서 마에모 팀은 심비안 팀의 관리자들이 해고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회사 내의 위치를 사용하여 마에모 개발을 최대한 방해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키아 마에모 + 인텔 모블린 = 미고
2010년 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 노키아와 인텔은 각자 개발하고 있었던 리눅스 기반 모바일 운영 체제를 미고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결합하기로 하였다.
당시 노키아는 2009년에 출시된 N900 스마트폰에 탑재된 마에모 5 운영체제의 후속작이었던 마에모 6을 개발하고 있었다. 인텔은 2007년부터 모블린(Moblin)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모블린 버전 2는 x86 아톰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넷북을 대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미고는 Qt 개발 환경을 사용하였고 모블린의 코어를 받아들였다.
노키아와 인텔은 장치 제조사, 통신사, 반도체 제조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이 미고를 큰 규모로 사용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보도 자료에 의하면 노키아와 다른 제조사들은 2010년에 미고 기반 장치를 출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노키아는 인텔과 연합하여 마에모의 신뢰성을 더 높이려고 하였으나, 두 대기업의 개발 팀을 합치는 것은 문제가 컸고 개발 과정을 더 지연시키는 혼란이 있었다.
Harmattan
출처: Kipp Jones
노키아는 2008년부터 마에모 6 운영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노키아와 인텔이 프로젝트를 합치려고 발표하였던 시점에서 상당한 개발이 진행되어 있었다. 노키아에서는 마에모 6(코드명 Harmattan)의 개발을 계속 진행하기로 하였고, 미고와 최대한의 호환성을 보장하려고 하였다. 노키아 마에모의 코드명은 바람 이름에서 따 왔으며, Harmattan은 서부 아프리카에 부는 무역풍의 이름이다.
Harmattan은 마에모와 (인텔과 함께 개발할) 미고 사이의 다리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Harmattan은 미고 1.2와 API가 호환될 예정이었다. 미고의 RPM 패키지(레드햇 패키지 관리자) 대신 데비안의 .deb 패키지 관리자를 사용하였다. ((역주: iOS의 .ipa, 안드로이드의 .apk와 같은 개념. 다만 RPM이나 DEB은 이 둘보다 역사가 더 오래 되었음))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도구 문제
2008년 노키아는 노르웨이 트롤텍에서 Qt를 매입하였다. ((역주: 매입 이후 노키아는 2011년 Qt의 상용 라이선스를 Digia에 매각하였고, 2012년에는 Qt 프로젝트 전체를 Digia에 매각하였다. 국내 언론에서는 노키아의 모바일 환경 개발 툴킷이라고만 소개하였으나, Qt가 사용되는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Qt는 다중 플랫폼을 지원하는 C++ 기반 소프트웨어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툴킷이다. Qt를 인수한 이후 심비안과 마에모 팀은 Qt의 QGraphicsView ((역주: Qt의 그래픽 처리 시스템. 이미지 처리를 위주로 설계되었다. Qt 프로젝트 문서 참조.))를 사용하여 각자 스마트폰 OS UI 개발 도구를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심비안 팀의 개발 도구는 Orbit으로 알려졌으며, 마에모 팀의 도구는 libdui(Direct UI Library)로 알려져 있다. 수백명의 노키아 직원들이 투입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libdui 개발 중 QGraphicsView 자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Qt 내부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였다. QGraphicsView는 위젯 지원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QGraphicsView 상에서 위젯 지원을 별도로 개발해야 하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도구의 요구 사항이 계속 바뀌면서 팀 내부 문제가 생겼고, 프로그램은 완성되지 않은 libdui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었다.
심비안 팀에서 개발되고 있었던 Orbit은 libdui와 매우 닮았으나 서로 코드를 공유하지 않았다. 때때로 Orbit이 libdui를 대체한다는 루머가 있었고, 어느 시점에서는 대체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Orbit이 libdui를 대체하려면 Harmattan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전부 새로 써야 하였다. 이 계획은 결국 취소되었지만, 이미 몇 달의 시간을 낭비하였다.
Harmattan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libdui로 작성되었고, 이후 이름이 libmeegotouch로 변경되었다. 라이브러리를 지원하기 위해서 자바스크립트를 확장하는 QML ((역주: 원문에서는 Qt Meta-Object Language로 되어 있으나 기능상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 삭제하였다. Qt 4.x 후반대에 추가된 UI 및 비즈니스 로직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 기존의 Qt 위젯과는 호환되지 않음. Qt 프로젝트 문서 참조.))로 개발된 Qt Components가 개발되었다. Qt Components를 통하여 미고와 심비안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을 융합할 수 있었고, QML로 작성된 프로그램은 두 운영체제에서 동시에 작동할 수 있었다. ((역주: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은 결국 심비안과 마에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위젯에 차이가 생겨서 당초 목표를 100%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마에모 6 사용자 인터페이스 컨셉
노키아와 인텔이 합작하기 전인 2009년 10월 열린 마에모 서밋에서 노키아는 Qt로 개발한 마에모 6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컨셉을 공개하였다. 마에모 6은 “특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의 제품에 담아내려고 하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데스크톱 환경은 여러 그리기 영역(캔버스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고 애플릿, 위젯, 실행 아이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에모 6은 가로 및 세로 화면 모두에서 정전식 터치 스크린의 멀티터치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노키아는 기존 마에모 장치에서 세로 화면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큰 변화를 뜻했다.
Harmattan 사용자 인터페이스
초기 컨셉
Harmattan UI는 인간 행동과 개발 과정을 연구하는 프레임인 활동 이론(Activity Theory)을 기반으로 하였다. 활동 이론의 목표는 사회와 개인을 이해하고,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활동 이론은 러시아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가 창안하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목표는 사람들이 어떻게 작업을 합치고 다른 사람과 통신하는지 정보를 활용하고, 기술 기반 작업 모델에 사람을 끼워맞추는 대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일하는 모델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 간의 통신 수단에 적응할 수도 있다.
N900에서 인기있는 기능이었던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단축 아이콘으로 보여 주는 것은 Harmattan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에 차용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필요 사항은 모바일 인터넷 지원, 소셜 미디어 인지, 멀티태스킹, 개인화, 초보자 및 전문가 모드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장치를 꾸며 나갈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했다.
현재 통신 사업자, 외부 프로그램, 장치 상태를 보여 주어야 했고, 사용자가 시스템을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야 했다. 사용자는 배터리 상태, 신호 강도, 날짜와 시간을 알고 있어야 했다. 모든 알림 메시지와 미리 보기는 지정된 하나의 장소에서 표시되어야 했다.
주 화면에서는 연락처, 전화, 메일, 브라우저, 검색과 같은 주요 기능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상태 영역에는 사용자에게 영향을 주는 배터리를 사용하는 작업 등의 정보를 표시해야 했다.
2009년 봄에 Flash 기반 Harmattan UI 초안이 만들어졌다. 아이디어 초기에는 소수의 캔버스가 존재하였고 캔버스 안에는 적은 위젯만이 존재하였다.
첫 Harmattan UI
마에모 조직의 내부 대화에서 단점이 지적되었고, 원래 컨셉은 더 복잡해졌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은 심비안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대폭 개선한 것이었다. 위젯을 추가할 수 있는 홈 화면과 작업 전환기, 알림 영역, 프로그램 실행기 등이 있는 홈 화면으로 구성되었다.
원본 Harmattan UI, 출처: TechCrunch
2009년에는 디자인 팀이 변경되었고 내부 소통 문제로 인하여 원본 컨셉과 배경 이론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화면에는 소수의 캔버스 대신 많은 대형 캔버스들이 등장하였고, 그 안에는 수많은 위젯이 표시되었다. 요구 사항은 계속 커졌고 홈 화면은 하나 이상으로 늘어나야 했다. 개발자 입장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점점 구성을 잃어 가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으나, 사용자 테스트에서는 계속 좋은 평을 받았다. 원래 의도는 Harmattan UI에 사용될 그래픽 구성 요소를 찾는 것이었으나, 그 결과물은 사용 가능한 UI의 첫 번째 버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기존과 많은 차이가 났으나, 매우 복잡해진 탓에 원래의 심리학 이론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노키아의 첫 Harmattan 장치인 코드명 Columbus의 출시 마감 기한은 지나갔고 Harmattan 개발자들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Simple Dali UI
Simple Dali UI, 출처: Engadget
2009년 후반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담당한 관리자들은 원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곧 폐기되었다. 2009년 12월 Simple Dali UI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고 모델이 완전히 변경되어서 과거 활동 이론의 흔적은 삭제되었다.
홈 뷰는 간단명료하게 설계될 예정이었다. 빠른 실행 바 및 프로그램 실행기 버튼(화면 가운데)만이 보일 예정이었다. 위젯은 완전히 사라졌고 멀티태스킹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UI는 대규모로 간략화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시장에 나와 있었던 다른 스마트폰과 비슷해졌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깔끔하고 친숙해 보였으나, 경쟁력이 강하지는 못하였다. 리눅스와 오픈소스는 사용자 입장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아니었다.
Simple Dali UI는 2010년 7월, 6개월 이후에 개발이 끝날 것을 목표로 하였다. 개발 테마는 “Dali as your primary device”였다. 계획에 따르면 소프트웨어의 모든 부분이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주 장치 수준이 되어야 했다. 결국 목표를 달성하였고 거의 준비가 다 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계속 다듬고 있었으나, 목표는 더 높아졌다.
2010년 봄에는 Simple Dali UI의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멀티태스킹만으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장치를 팔기 위한 충분한 차이점이 없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UI에는 새로운 점이 반영되었고 과거의 요구 사항도 일부 이루어졌다.
Swipe UI
2010년 8월에는 Harmattan의 세번째 UI가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코드명 Seattle UI의 시제품은 며칠 안에 개발되었다. 첫 컨셉 그림만 보았을 때에는 스마트폰 UI 중 가장 좋은 UI임이 드러났다. Seattle UI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투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Simple Dali UI에서 무시되었던 과거 Harmattan UI의 기본 원리가 일부 반영되었다.
인터뷰했던 여러 사람들에 따르면 Seattle UI/Swipe UI의 기본 개념은 뉴욕의 80/20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과거 애플과 어도비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웹 사이트의 실적 페이지에서는 노키아 로고가 보이지만, Swipe UI에 대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컨셉은 노키아 외부에서 탄생하였으나, 프로그램이 사용할 스타일은 노키아에서 개발하였다.
Swipe UI와 코드명 Lankku 장치는 미고 팀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제품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남은 과제는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것과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었다.
노키아에서 개발한 Harmattan 및 미고 장치
마에모와 미고의 초반부터 OSSO에서 일했던 직원에 의하면, 카이 외이스태뫼(Kai Öistämö,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노키아 Device 사업부의 관리자였음)의 원래 미고 전략은 애플처럼 1년에 한 대씩 플래그십 휴대폰을 출시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이 전략 하에서는 동시에 여러 미고 장치를 출시할 계획이 없었다. 한 대의 휴대폰을 출시하는 것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갔고, 개발자들은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Columbus (RM-581)
노키아의 첫 Harmattan 장치의 코드명은 Columbus였으며, 노키아와 인텔의 미고 협력이 알려진 몇 달 후인 2010년 상반기에 출시될 예정이었다. Harmattan UI를 개발하는 동안 생긴 혼선과 지연 때문에 Columbus는 원래 출시 스케줄을 맞추지 못하였다. 2009년 말 코드명 Dali에 탑재될 Simple Dali UI 개발이 시작되면서 취소되었다.
Columbus 휴대폰의 디자인은 2010년 4월에 출시된 심비안^3 기반 노키아 N8과 비슷하였다. Columbus 출시 취소가 결정된 이후 이 디자인은 심비안 휴대폰에 사용되었다. 마에모 팀에게는 충격이었다.
My Nokia Blog 사이트에서는 Columbus 장치의 사진을 공개하였다. 화면의 로고 배치에 의하면 가로 모드로 사용될 것을 염두하였다. 이 그림에서는 장치의 아래쪽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뒷면에는 칼 자이스 렌즈가 장착된 1200만 화소 카메라가 보이며, N8에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출처: My Nokia Blog, Exclusive: Leaked Images of RM-581 “Columbus”Harmattan Prototype
N9-00 “Dali” (RM-680)
Harmattan UI 개발이 지연되고 Columbus가 취소된 이후,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개발 플랫폼 장치인 코드명 Dali가 공개되었다. Dali 장치는 2010년 봄에 개발된 Simple Dali UI의 개발 플랫폼이었으며, 2009년 말에 취소된 초기 Harmattan UI를 대체하였다.
그림 출처: Flicker, rsuplido
Dali 장치는 N9-00으로 출시될 예정이었다. 출시 시기가 되었을 때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출시를 취소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미 92,000대의 장치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Dali 장치는 N9 출시에 맞추어 개발자 전용 장치인 N950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구입할 수는 없으나 노키아에서 개발자에게 대여해 주었다.
Dali 장치의 외형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고, 854×480 해상도의 4인치 LCD가 장착되어 있다. TI의 ARM Cortex A8 프로세서와 PowerVR SGX530 그래픽을 포함하는 OMAP 3630 칩셋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1GB 메모리가 장착되어 있다. 1200만 화소 카메라 모듈이 장착되어 있다.
Engadget, Nokia’s QWERTY-slidin’ N9 shows up in the wilds of China
N9-01 “Lankku” (RM-696)
2011년 6월 21일 노키아는 코드명 Lankku인 N9를 발표하였다. N9는 미고 1.2 Harmattan 운영체제를 사용하였다. 미고 휴대폰이라는 말 대신 디자인과 Swipe UI가 마케팅 주안점이었다. N9 바디는 폴리카보네이트 재질 유니바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단에는 곡면이 있는 강화 유리가 장착되어 있다. 노키아는 이 디자인을 루미아 윈도 폰에 재활용하였고 여러 디자인 상을 수상하였다. Swipe UI의 구성 요소는 노키아의 저가형 Asha 휴대폰에도 사용되었다.
Lankku 휴대폰은 N9-01로 출시될 예정이었다. 2011년 4월 발표된 노키아 스마트폰 전략에 의하면 코드명 Dali인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N9-00이 취소될 예정이었다. 그 결과로 N9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스마트폰은 코드명 Lankku이다.
N9의 하드웨어 사양은 Dali와 동일한 OMAP3630 SOC와 1GB RAM을 채용하고 있다. 뒷면에는 800만 화소 칼 자이스 렌즈와 듀얼 LED 플래시가 장착되어 있다.
N9 배송은 2011년 9월에 시작되었고, 이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몇 번 출시되었다. 2012년 7월에 가장 최근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PR1.3이 출시되었다. 며칠 후 노키아의 미고 팀의 많은 구성원이 소프트웨어 개발 관리자 Sotiris Makrygiannis의 방향에 의해서 회사를 떠났다.
“Lauta” (RM-742)
노키아는 2011년 후반 코드명 Lauta인 휴대폰을 출시하려고 하였다. 기존의 Lankku 휴대폰에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형태이다. 휴대폰 외형은 N9와 같은 폴리카보네이트 유니바디로 디자인되었으며, 차이점은 슬라이딩 QWERTY 키보드이다. Lauta는 N9와 같은 OMAP3630 SoC를 사용한다.
N900의 후속작으로 출시될 수도 있었으나 완성된 제품의 형태로는 결국 출시되지 못했다. 노키아는 출시 직전까지 모델명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Lauta의 공식 명칭은 알려져 있지 않고, 결정되었는지 여부 역시 알 수 없다.
그림 출처: My Nokia Blog, Leaked Prototype: Nokia “Lauta” RM-742 –Cancelled “Immediate” N9 Successor
“Soiro” (인텔 미고)
노키아는 인텔 아톰 SoC와 x86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장치인 코드명 “Soiro”를 개발하였다. 이 장치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Lauta”와 같은 슬라이딩 QWERTY 키보드를 장착하였다.
“Soiro”는 Ilmatar 플랫폼 ((역주: 마에모의 코드명은 초기 릴리즈인 Scirocco, Gregale을 제외하면 B부터 시작하여 알파벳 순서로 진행한다. 현재까지 출시된 OS의 코드명은 Bora, Chinook, Diablo, Fremantle, Harmattan이다. E 자리에 올 Elephanta는 Diablo와 Fremantle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개발이 취소되었고, F와 H 사이의 G는 이전에 사용된 Gregale 때문에 건너뛰었다. H 다음에 I가 오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후속작이 될 수도 있었다.))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소프트웨어 설치에는 RPM 플랫폼을 사용하고, 인텔 하드웨어에 맞게 수정되었다. 인터뷰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따르면 Ilmatar 플랫폼과 인텔 하드웨어를 사용한 개발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Ilmatar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다른 접근을 할 예정이었으며, 그 목표는 현대 기술을 사용하여 사용자 정보를 알아내고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정보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었다. Ilmatar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노키아의 인텔 기반 미고 장치의 마케팅 포인트가 될 예정이었다.
“Senna” 태블릿
Engadget, Nokia collects design patent for a tablet
인터뷰에 참가한 많은 과거 노키아 구성원들은 특허 출원에 등장한 태블릿인 Senna가 실제 개발 중이었다고 밝혔다. Senna 장치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N9 개념으로 개발되었다. ST-에릭슨의 NovaThor U8500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후면 카메라로 1080p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였다. Senna는 Harmattan 대신 공개된 미고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프로그램은 N9와 비슷하였다.
U8500은 듀얼 코어 ARM Cortex A9 CPU, ARM Mali 400 GPU, HSPA+ 모뎀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였다.
N9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태블릿 프로토타입을 2010년 후반기에 CEO 스티븐 엘롭에게 제시하였다. 얼마 후 미고 전략을 포기하면서 Senna 장치 역시 잊혀졌다.
Engadget, Is this Nokia’s tablet-shaped MeeGo device?
Fonearena, Nokia MeeGo Device Based on ST Ericsson U8500 Platform
노키아와 인텔의 협력
올리페카 칼라스부오의 시기 노키아는 미국 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역주: 이 때문에 미국에서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에서 노키아는 항상 순위권 밖이었다.)), 칼라스부오 시기가 끝날 때의 노키아는 미국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하였고,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애플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는 심비안보다 더 쉬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였고, 노키아는 미국 고객과 통신사에게 글로벌 제품밖에 제시하지 못하였다.
최소한 2010년 초반에는 미국 통신 시장에 LTE 네트워크가 보급되고, LTE 지원 휴대폰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당시 노키아는 차기 미고 장치에 들어갈 하드웨어 구성 요소를 결정하고 있었다.
2008년 10월 TI는 스마트폰 베이스밴드 칩셋에 대 이상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무선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했다. TI는 이를 통하여 2억 달러를 절약하고 OMAP 4 프로세서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노키아는 미고에서 더 이상 TI OMAP 칩셋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노키아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베이스밴드 칩셋을 같은 제조사에서 구입하는 방침 때문이었다. 노키아는 초기 마에모 장치 및 미고 장치에 TI OMAP 칩셋을 사용하고 있었고, 각각 장치에 탑재된 프로세서는 다음과 같다.
- 770: OMAP1710
- N800: OMAP2420 (330MHz)
- N810: OMAP2420 (400MHz)
- N900: OMAP3430
- N950, N9, Lauta: OMAP3630 ((역주: 원문에서는 OMAP3640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장치는 OMAP 3630을 탑재하였다.))
노키아는 OMAP을 대체하기 위해서 퀄컴과 인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인텔로 결정하였다. 퀄컴은 운영체제와 칩셋이 연동되는 가장 낮은 단계인 하드웨어 드라이버는 지원해 주었으나, 운영체제 개발은 지원해 주지 않았다. 인텔은 미고를 통하여 둘 다를 지원해 줄 수 있었다.
Motorola, Driving 4G: WiMAX & LTE (PDF)
인터뷰했던 사람은 인텔과 협력하는 것을 재앙으로 설명하였으나, 퀄컴 역시 안드로이드나 윈도 폰 같은 다른 프로젝트에 밀려서 미고를 지원해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인텔은 미국에서 사용되는 CDMA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북미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다.
노키아와 인텔은 LTE와 경쟁하는 4G 이동통신 기술 WiMAX를 지원하였다. 미국에 최초로 설치된 4G 네트워크는 Sprint의 WiMAX 네트워크였으나, 실제로는 이론적 최대 속도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느렸다. ((역주: 삼성전자-KT-인텔이 와이브로 기술 연합을 이루었으나, 결국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다.))
LTE의 더 나은 호환성, 신뢰성, 전송 속도 때문에 여러 통신 사업자들은 LTE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가 차세대 하드웨어를 선정할 때 인텔에서는 LTE 지원 계획이나 예정이 없었다.
지금도 인텔은 아톰 메드필드 SoC에 LTE 베이스밴드 지원을 추가하지 못했으나, XMM7160 베이스밴드 칩을 테스트하기 시작하였고 2013년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역주: 인텔은 인피니언 무선 사업부를 인수하였고, 주 목적은 아톰 칩셋에 같이 사용할 베이스밴드 칩셋이다. 인피니언 베이스밴드 칩은 아이폰 등 여러 스마트폰에 사용되었다.))
TechCruch, Intel Confirms Medfield x86 Chips Don’t Support LTE Yet
퀄컴과의 협상은 이후 다시 시작되었고, 인텔 기반 미고 장치를 출시한 이후 퀄컴 스냅드래곤 기반 미고 장치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노키아는 2011년 초 미국 시장을 겨냥한 퀄컴 스냅드래곤 기반 N9(RM-716으로 추정됨)를 개발하고 있었다. 노키아가 윈도 폰으로 전략을 변경한 이후 이 플랫폼은 다시 사용되었다. 루미아 800(코드네임 Sea Ray)의 프로토타입은 N9가 발표된 이후 공개되었고, N9와 같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인텔의 스마트폰 플랫폼: 무어스타운과 메드필드
LTE 미지원 이외에도, 또 다른 개발자에 의하면 인텔은 미고 개발을 자기 쪽에서 계속 지연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고는 x86과 ARM을 모두 지원하기로 설계되었고, 인텔 아톰 기반 미고 플랫폼 Ilmatar는 준비되지 않았다. 인텔은 x86 SoC 때문에 패배할 것을 두려워했고, 운영체제 개발의 많은 부분은 노키아에게 달려 있었다.
2010년 봄 인텔은 스마트폰 플랫폼 무어스타운을 공개하였고, 45nm 공정 CPU 린크로프트와 65nm 공정 칩셋 랭웰, 별도의 베이스밴드 모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톰 Z6xx 칩셋은 1.2-1.9GHz 속도로 작동하였고, CPU 코어 하나와 GMA 600 GPU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어스타운 플랫폼을 실제로 채용한 회사는 없으며 인텔에서 이 플랫폼은 결국 버려졌다. ((역주: LG에서 제작한 GW990 시제품이 있긴 했다.))
2011년 초 인텔은 32nm 공정 기반 메드필드 플랫폼을 발표하였고, 과거 두 칩에 나뉘어 있던 기능을 펜웰 SoC에 통합하기로 하였다. 펜웰 플랫폼은 하이퍼스레딩 지원 1.2GHz 아톰 프로세서, PowerVR SGX540 GPU, 512KB L2 캐시와 LPDDR2 메모리 컨트롤러로 구성되어 있다.
모토로라 레이저 i, 인텔 메드필드 기반 스마트폰
2012년 레노버 K800, 오렌지 샌디에이고 등 메드필드 기반 안드로이드 휴대폰이 발표되었다. 모토로라 레이저 i는 인텔 기반 스마트폰 중에서는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2GHz 아톰 Z2460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다.
2010년 노키아 CEO 스티븐 엘롭
스티븐 엘롭이 CEO로 취임한 이후 가장 큰 변경점은 북미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엘롭의 시각에 의하면 북미 시장에서 발생한 트렌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그 예로 들었다. 이 때문에 노키아는 북미 시장에서 다시 성공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노키아로 온 이후 그는 “Sea Eagle”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노키아 스마트폰 전략의 구조를 개혁하였다. 노키아 내부 직원 뿐만 아니라 외부 컨설턴트의 힘을 빌렸다. 그 결과는 심비안과 미고 조합으로는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AT&T는 N9를 판매하기로 계약하였으나, 하드웨어 담당자는 다른 안드로이드 기계에 비해서 하드웨어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Verizon을 위한 별도의 N9(코드명 RM-716)는 이미 개발 중이었다. 2011년에 북미 시장에 N9가 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노키아는 LTE를 지원하는 후속작을 빠르게 출시할 수는 없었다.
엘롭이 노키아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 의하면 노키아는 2011년 말까지 미고 기반 휴대폰을 1대밖에 출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분석 과정에서 미고 팀은 엘롭이나 노키아 이사회에 2010년 연말에 출시할 수 있는 장치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OMAP3630 기반 장치는 빡빡한 일정으로 출시할 수 있었으나, 애플과 구글에 맞설 수 있는 생태계 구축에 LTE와 북미 통신 사업자가 포함되기는 어려웠다. 협력하고 있었던 인텔에서는 저가형 안드로이드 휴대폰에 맞설 수 있는 중가형 칩셋을 찾을 수 없었고, 심비안 휴대폰은 경쟁력을 잃었다.
N9는 2011년 여름에 출시될 준비가 다 끝났으나,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도 폰 전력 때문에 가을에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직에는 의사 결정권이 강화되었고, 프로젝트에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노키아의 내외부 상황이 정리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제품을 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결국 미고는 다른 장치 제조사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노키아가 시장 리더였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미고 프로젝트에서 노키아의 입김을 우려하였다. 2010년 말 삼성, LG, 소니에릭슨과 미고 채택을 협상하였으나 아무 회사도 미고에 참여하지 않았고 유럽 통신사 역시 투자에 인색하였다.
불타는 플랫폼과 노키아의 새로운 스마트폰 전략 (2011년 2월)
2011년 2월 CEO 스티븐 엘롭이 보낸 메모에서, 그는 회사의 현재 상황, 문제, 미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엘롭의 메모는 유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느 날 밤에 일어나 보니 서 있는 플랫폼이 불타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그는 결국 유전의 끝까지 갈 수 있었고, 불타서 죽는지 30미터 밑 바다로 뛰어드는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뛰어들기로 결정하였다. 이미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추락한 사람은 차가운 물에서 살아남았고, 구조된 이후에 그는 불타는 플랫폼이 행동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엘롭은 지난 여러 달 동안 주주, 통신사, 개발자, 공급자, 직원들과 이야기하면서 노키아가 불타는 플랫폼 위에 있다고 하였다. 엘롭이 이야기한 플랫폼은 노키아 휴대폰, 스마트폰, 미고와 심비안 운영체제이다. 이 플랫폼 하에서는 폭발이 한 번만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언급한 경쟁자들은 애플 아이폰, 구글 안드로이드, 중국의 여러 휴대폰 제조사들이었다. 엘롭에 의하면 2011년 노키아 제품 중에는 2007년의 아이폰 1세대에 버금가는 제품이 없었으며, 안드로이드는 이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심비안을 앞질렀다고 하였다.
미고는 하이엔드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엘롭에 의하면 현재 시간 상황으로는 2011년 말까지 1대밖에 출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장치간 경쟁은 생태계간 경쟁으로 변하였고, 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케팅,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와 위치 서비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까지 포함하였다. 엘롭은 장치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포함하는 경쟁이 있어야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노키아는 생태계를 만들거나, 홍보하거나, 생태계에 합류해야 했다.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 = 루미아+윈도 폰
2011년 2월 11일에 발표된 노키아의 새로운 전략에 의하면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고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기로 하였다. 2010년 가을에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폰 7과 이후 세대 운영체제는 노키아의 주 운영체제가 될 예정이었다. 노키아는 디지털 이미징과 같은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계획된 파트너십에 의해서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폰 플랫폼에 기여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는 하드웨어 디자인, 언어 지원, 소프트웨어 지역화를 돕고, 윈도 폰을 새로운 시장에 보급하기로 하였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케팅 부문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상호간의 모바일 장치와 서비스 개발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스티븐 엘롭은 “오늘날 개발자와 통신사와 소비자들은 경쟁력 있는 모바일 제품을 원하고, 이는 장치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 프로그램, 고객 지원이 함께 있어야 좋은 사용자 경험이 된다”고 런던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밝혔다.
이어서 그는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는 힘을 합쳐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생태계를 개척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노키아 루미아 710, 800
노키아는 2011년 9월 노키아 월드에서 루미아 710과 800을 공개하면서 윈도 폰 7.5 장치를 출시하였다.
Jolla에서 미고 개발을 계속하다
핀란드 회사 Jolla는 과거 노키아의 미고 개발자들이 창립한 회사이며, 2012년 7월 트위터를 통하여 공개되었다. 현재 약 6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노키아가 중단하였던 미고 운영체제와 스마트폰 개발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코드명 Sailfish인 미고 기반 운영체제는 RPM 패키징을 사용할 것이고, 2013년 봄부터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Sailfish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Qt와 Mer 코어 ((역주: 마에모/미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임베디드 리눅스 배포판. 개발 초기에는 N900 출시 이후 N800/N810에 마에모 최신 버전의 기능을 이식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프로젝트는 한동안 진행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미고의 개발이 위태해진 이후 기존 공개된 미고 소스를 사용하여 개발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를 사용하며 스마트폰, 태블릿, 텔레비전 등의 장치에 탑재될 수 있다고 밝혔다.
Jolla는 11월 21일-22일에 열릴 이벤트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공개하기로 하였다. 그 자리에서 Jolla는 Sailfish 운영체제의 SDK를 공개할 예정이다. Jolla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Sailfish 기반 장치의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Jolla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반도체 제조사, OEM 및 ODM 제조사, 통신사, 유통사 등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Sailfish 운영체제를 위하여 약 2억 유로를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Jolla는 중국 시장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홍콩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맺음말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거의 모든 노키아 전 직원들은 힘들었던 일에도 불구하고 마에모/미고 팀의 성과를 칭찬하였다. 팀의 구성원은 전세계에 뻗어 있으며, 작업 할당은 즐거운 일이었고 직원들은 일에 열정적으로 집중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N9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조직은 상아탑에서 지휘되었다. 개별 개발자들은 배경에서 일어난 결정과 변화에 대해서 발언권이나 존재 그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였다. 인터뷰했던 많은 구성원들은 당시 자기가 할 일에만 집중하였고, 미고 개발의 전체적인 그림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전체 기술은 격리되어 있었던 여러 팀에서 개발하였고, 아무도 전체가 모였을 때 어떻게 될 지 상상하지 못하였다.
뒤집어 보면 미고가 실패한 이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키아는 미고를 심비안과 같이 개발하였다. 두 플랫폼이 개별적으로 Qt 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기 위해 투입된 자원은 결국 증발하였다. 프로그램은 완성되지 않은 개발 도구로 작성되고 있었고, 마에모 팀 내부에서도 대화가 부족하였다. Harmattan 개발은 Fremantle과 동시에 진행되었으나, 두 팀 간 교류도 없었다. Fremantle을 개발하면서 있었던 실수는 거의 그대로 Harmattan까지 이어졌다.
Harmattan의 뚜렷한 목표나 어떠한 제품에 탑재될지도 불분명했다. 여러 다른 관리자들은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제품 개발을 결정할 주임이 없었다. 여러 하청 업체와 팀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고용되기도 했다. 조직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Harmattan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탑재될 장치에 대한 이해 없이 개발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두 번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변경되었고 거의 2년이 걸렸다. UI 디자인 중에 개발된 장치 두 종류, Columbus와 Dali는 결국 잊혀졌다. 최종적으로 나온 Swipe UI와 N9는 성공적인 조합이었으나, TI OMAP 3은 N9 출시 시기에는 오래된 플랫폼이었고 LTE 지원은 가능성이 없었다.
2009년 초 미고는 노키아의 새로운 심비안이 되었다. 모든 가용 자원과 인력은 미고에 투입되었고, 새로운 구성원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팀장급 인물이 대거 고용되었으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노키아의 모든 직원들은 미고에 대한 의견을 각자 가지고 있었고 미고 팀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개발에 인텔을 끼워들인 것은 가장 큰 실수였다. 인텔은 x86 기반 아톰 SoC를 몇 년 동안 개발하고 있었으나, x86 기반 스마트폰이 실제로 출시되지는 못하였다. 현재 인텔은 LTE 베이스밴드 칩을 출시한 게 없으며, 최소한 2013년까지 출시 예정이 없다. 또한 인텔은 저가형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경쟁할 수 있는 중저가형 아톰 SoC를 준비하지 못하였다.
노키아가 미고 개발로 힘들어하고 있는 동안 최대의 경쟁자 애플과 구글은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북미 시장을 정복하였다. 결국 노키아는 미고에 다른 제조사를 끼워넣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미국 시장을 정복하려면 LTE 지원과 통신사를 공략해야 했으나, 노키아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애플 iOS는 폐쇄 플랫폼이고, 노키아가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합류하더라도 구글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역주: 노키아가 안드로이드폰 만들라고 하는 사람들은 명심할 것.)) 노키아는 스티븐 엘롭이 취임한 이후 윈도 폰을 새로운 스마트폰 전략으로 선택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협력을 시작하였다. 이제 노키아는 윈도 폰 8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
저런 구조와 상황 속에서도 미고라는 제품이 훌륭하게 출시된 것이 놀랍다.
그리고 jolla에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최소한 여태 개발해왔던 환경과는 다르니까,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하드웨어는 어떨지 도무지 모르겠다.
노키아가 폰을 잘 만들긴 했었거든…)
개인적으로 윈도 폰은 좋아하지 않지만, Nokia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다.
좋다는 이야기도, 안 좋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그리고 노키아는 다시는 미고로 돌아오지 않겠지. 그들 내부에서는 악몽이었으니까.
좋은글 잘봤습니다.
이 블로그를 구글리더에 등록해놓기를 잘했군요.
또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졸라가 꼭성공했으면 좋겠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Qt틀 탑재한 스마트폰을 정말 기대했는데, 왜 이렇게 노키아가 허둥되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