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일어나서 코펜하겐 중앙역으로 가는 열차에 탔다. 뇌레포르트 역에서 아무 열차나 탄 다음,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이번에는 덴마크 서쪽으로 이동한다. 오늘 타고 갈 차는 IC3 병결 편성이다. IC3 디젤 동차는 1990년대 초반에 덴마크에 도입되었고, 제작 당시에는 덴마크 스칸디아에서 제작되었으나 IC3이 제작되는 동안 ABB에 인수되었다. (이후 봄바디어에 인수됨) 파생형으로는 전기로 운행하는 IR4, 소규모 사철용 IC2가 있다. 이론적으로 세 종류 모두 병결 운행이 가능하고 실제로 IC3과 IR4는 영업 시 병결 운행하기도 하나, 오늘의 열차는 평범한 IC3 3편성 병결 운행이다.
타고 나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어… 칸마다 행선지가 다 다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덴마크 중부 퓐 섬까지는 같이 다니다가 덴마크 서쪽에서 갈라진다. 어차피 오덴세는 갈라지기 전이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앉아도 되었다. 열차는 어느덧 서쪽으로 가면서 S-토그 종점을 지나서 스토레벨트 해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현재 열차가 스토레벨트 해협을 넘을 때에는 교량터널을 따라서 진행하며, 도로 운행 시에는 교량-섬-교량 식으로 진행한다. 과거에 철도교들이 건설되기 전에는 열차 페리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으며, 유럽 대륙과 덴마크의 섬과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연결된 것은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다. 차후 설명할 오덴세의 철도 박물관에서는 덴마크의 이러한 철도 역사를 다루고 있다.
터널과 다리를 통해서 바다를 한 번 넘고 나니 오덴세 역에 도착했다. 오덴세 역 라커에 가방을 밀어넣은 다음 역 바로 옆에 있는 덴마크 철도 박물관으로 갔다. 덴마크에서 사용하였던 철도 차량과 함께 어떤 식으로 바다를 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흔히 네덜란드의 역사가 물의 역사라고 하지만, 덴마크는 내해가 아닌 바다와 싸워 왔다. 특히 국토가 여러 섬에 걸쳐 있기 때문에 섬과 섬을 이동하는 수단 건설은 필수적이다. 최서단 릴레벨트 해협부터 최동단 외레순 해협까지,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를 어떻게 연결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덴마크 철도 박물관의 또 다른 재미난 볼거리는 증기 기관차 본선 운행과 MSTS 등 열차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1920년대에 생산되어 실제로 석탄을 넣는 증기 기관차와 객차가 철도 박물관을 지나는 본선 주변을 달린다!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본선과 나란히 붙어 있는 선로를 사용하지만, 본선상의 열차와 경적을 주고받는 모습은 평소 보기 상당히 힘들다. 박물관 내에는 어린이를 위한 MSTS 게임도 깔려 있었고, 놀이방 시설도 있었다. 그 당시까지 가 본 철도 박물관 중에 이런 게임이 있는 박물관은 보지 못했다.
오덴세의 철도 박물관에서 감동을 받은 다음 시내에 있는 안데르센 박물관으로 나왔다. 박물관 내부 전시는 안데르센의 생애와 작품 활동이며, 한국어를 포함한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된 동화집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밖에서는 동화 공연이 있었으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알아듣지는 못했다.
이제 점심을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월요일이었다! 오덴세에는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볼거리가 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많은 박물관들이 문을 닫았다. 시내를 돌아다녀봤자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것 같아서 더 서쪽으로 가는 오르후스행 열차를 탔다. 이쯤에서 내 여행 전략을 바꾸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많이 걷기도 하면서 돈도 최대한 아껴서 배고픔을 참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쉬면서 다니기로 결심하였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정신줄 놓은 물가에서 벗어나서 오덴세 정도 내려오니 물가도 좀 현실화되었고, 체력을 극한까지 쓰는 여행이 좀 피곤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오르후스에 예약해 둔 호스텔에 들어간 다음 일단 쉬기부터 했다. 도시 자체가 작아서 그런지 호스텔에 오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그 동안 여행은 전부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과 교통편 때문에 쉬면서 다니지는 못했지만, 오늘의 오르후스는 처음 계획 때부터 쉬는 걸 가정했기 때문에, 딱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 간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일단 오르후스 역으로 가서 독일로 들어갈 기차표를 끊은 다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시내 중심가의 Nordea 은행 지하에는 바이킹 박물관이 있다. 바이킹 시대의 유적을 복원해서 전시해 두었고 (은행 지하에!) 오르후스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바이킹 박물관에서 나온 다음 미술관 ARoS에 가 보려고 했으나, 좌절스러운 입장료 때문에 포기하고 주변에 있는 여성 박물관으로 갔다. 덴마크의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어떻게 발달해 왔고, 세계의 비슷한 사례를 모아 두었다. 당시에는 학교 내 체벌 금지 문제로 시끄러웠는데(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덴마크에서는 1954년에 학교에서 체벌을 폐지했다는 말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가 본 곳 중에서 이러한 종류의 박물관은 드문 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호스텔 주변 바닷가를 잠시 걷다가 들어갔다. 드디어 독일만 여행하면 된다는 생각에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오전에는 ICE-TD 열차를 타고 독일 함부르크까지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