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동안 카나리아 제도 라스 팔마스 데 그란 카나리아에서 열렸던 그란 카나리아 데스크톱 서밋(이라고 쓰고 Akademy+GUADEC이라고 읽는 곳)에 갔다 왔다. 한국에서 GUADEC에 참가하는 사람은 여태까지 없었다고 알고 있고, KLDP에 GUADEC에 대해서 올린 글도 재외 교포분이 쓴 글 같았다. 이에 반해 Akademy 쪽은 최소 2006년부터 한국에서 꾸준히 가 왔고, 작년에는 여태까지 최대 인원인 4명이 갔다. 그런데 하필 올해 작년 참가자 중 대부분이 일이 꼬여서, 결국 한국에서는 나 혼자 갔다.
아직까지는 가난한 대학생 신분이라서 KDE e.V.에 지원을 해 달라고 빌어 보았고, 그 결과로 항공권과 호텔을 받았다. 인천에서 마드리드를 찍고 그 다음 그란 카나리아로 들어가는 비행기였다. 항공권에는 찍혀 있지 않았지만 인천발 마드리드행은 도중에 암스테르담을 찍고 가기 때문에, 스키폴 공항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환승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한 쪽 출구는 탑승구, 다른 쪽 출구는 보안 검색대였다. 하는 수 없이 환승 라운지에서 비행기 사진이나 찍었다.
일단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고생 시작이었다. 스페인까지는 대한항공을 탔고, 스페인 안에서는 이베리아 항공을 이용해서 카나리아로 이동해야 한다. 일단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한 다음 이베리아 항공 카운터를 찾는데 어 없다? 출발 전광판을 찾아보는데 내가 타고 갈 비행기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서 안내 데스크를 찾으려고 한참을 걸어간 끝에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라하스 공항은 터미널이 총 5개 있고, 각각 이름은 T1, T2, T3, T4, T4s이다. T1, T2, T3은 같은 건물 안에서 무빙워크로 이동이 가능하다. T4와 T4s는 이 세 터미널과 분리되어 있고, 각각 지하 경전철(제조사 패찰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실패. 아시는 분은 제보좀)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두 건물 사이는 버스가 수송하는데, 버스를 타야 T4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 알았다. 하여튼 T4로 가니 이베리아 항공 카운터가 보였고, 내가 탈 비행기도 찾았다.
내가 탔던 비행기의 내 주변 좌석은 전부 GCDS 참가자로 가득했다. 대개의 해커들은 구글 등지에서 준 수첩이나, 각종의 요란한 스티커로 충분히 구별이 가능하다. 하는 말도 들어 보니까 GCDS 이야기가 전부라서 ‘일단 착륙하면 같이 갈 사람은 찾을 수 있겠구나!’는 생각에 우선 안심부터 했다. 인천에서 마드리드까지 가는 동안 상당히 피곤했던데다가, 복도쪽 자리를 골랐기 때문에 볼 바깥 경치도 없어서 2시간 40분 동안 눈을 좀 붙였다. 이렇게 대서양을 날아간 끝에 그란 카나리아 공항에 착륙했다.
일단 카나리아 공항을 빠져나오기까지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그 다음부터가 고생 시작이라서 문제다. 숙소까지 이동하는 버스를 찾아서 탔다. 노선 정보는 대강 홈페이지에 쓰여 있어서 같이 가는 사람만 잡으면 되었다. 2.1유로짜리 버스를 타고 산 텔모 정류장까지 간 다음, 1.2유로짜리 버스를 또 타고 산타 카탈리나 정류장까지 가서 숙소를 찾으면 된다. 내 휴대폰에 지도를 미리 설치해 두었기 때문에, 방향 감각만 헷갈리지 않으면 엉뚱한 데를 찾을 염려는 안 해도 된다. 같이 버스를 탔던 사람들 사이에서 내 휴대폰은 상당히 도움을 줬다. 자석 나침반은 이럴 때 은근 도움이 된다.
Santa Catalina Park 호텔(별 하나)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푸려는데 카운터에 있는 사람이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간신히 숙박부에서 내 이름을 찾고(동양인 이름이라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방 열쇠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사람이 조금 있어서 스페인어로 말하는 무언가를 통역해 줄 수 있었다. 짐 들고 걸어온다고 엄청 흘린 땀 덕분에 일단 샤워부터 하고, 내일 10시부터 행사 시작이라서 알람을 걸어 두고 곤히 잤다. 보다폰 에스파냐/모비스타의 협찬으로 시간대 설정은 따로 안 해도 되었다.
노키아 까페를 찾다 보면 KT/KTF라는 문구를 어떻게 없앨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이건 협찬이나 통신사 로고 삽입의 성격이 아니라 현재 휴대폰이 소속된 통신사를 표시해 준다. 한국 내에서는 쓸모가 거의 없겠지만, 해외로 나가면 이게 상당히 귀중한 정보가 된다. 네덜란드에서는 NL KPN이 떴고,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movistar/vodafone ES가 때에 따라서 바뀌었다. 수신률이 안 좋아지면 로밍 중이라서 그런지 통신사를 자동으로 바꿔 버린다.
일요일 오전 10시에 잠이 덜 깬 채로 Alfredo Kraus 강당으로 갔다. 숙소에서 강당까지 가는 길은 Las Canteras 해변을 쭉 걸으면 되었다. 오전 10시 행사 시작이라서 한 9시쯤에 나와서 해변가를 걷다 보면, 연 가게가 거의 없었다. ‘아이고 이러다 아침 못 먹겠군’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첫날 케밥집을 찾았고, 행사장 근처에는 쇼핑 센터도 있었고, 호텔 주변에는 슈퍼도 있었다. 우유와 콘플레이크, 빵을 미리 사 두고 아침에 먹는 식으로 해결했다. 아 쌀도 있긴 했지만 중요한 밥솥이 없었고,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관뒀다.
미리 만들어져 있던 명찰을 찾고, 기념품으로 2GB microSD+리더기(사실상 USB 메모리죠)와 노키아 비치 타올을 받았다. 이 셋 다 해커들을 구분하기 참 좋은 수단이다. 첫 키노트는 Robert Lefkowitz 씨가 시작하였다. 솔직히 첫 키노트는 반쯤은 졸리고, 반쯤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생략한다. 두 번째 키노트는 Walter Bender의 OLPC에 대한 발표였다. Sugar 플랫폼을 디자인한 철학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세 번째 키노트는 가장 논쟁거리가 많은 그 분이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Qt는 이제 괜찮다”, “C#은 언제든지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 돈을 바쳐라”였다. 두 번째 주제 C#을 놓고서는 엄청나게 격한 질의 응답이 오갔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St. Ignucius 복장으로 변신해서 참석자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GNU 인형을 경매하는데 시작가 50유로, 낙찰가 150유로, 카드도 된다는 사실을 엄청 강조했다. 이게 최고 기록은 아니지만, 경매 과정을 보면서 ‘이게 과연 얼마에 팔릴까’ 엄청 가슴이 떨리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에 걸친 점심 식사 시간 끝에 네 번째 키노트가 시작되었다. 노키아에서 마에모 플랫폼을 담당하고 있는 Quim Gil의 발표이다. 지금 한창 개발 중인 마에모 Harmattan(5)에서는 GTK가 핵심 역할을 차지하고 있지만, Harmattan 다음 버전에서는 Qt가 핵심 구성 요소로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그놈 진영은 좀 난리가 났지만, KDE 진영은 반대로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긴 키노트가 끝나고 나서는 양쪽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짧은 발표를 하였다.
한창 마에모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좀 의외의 사람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고 있는데 카메라에 한글이 뜬다. ‘어? 한국에서는 나 혼자 왔는데 혹시 재외 교포인가?’ 왠지 또 궁금해져서 노트북을 꺼내는 걸 살펴봤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본 스티커?’ 그 분 노트북에는 KLDP 스티커도 있었다. ‘한국 분이세요?’ 질문과 함께 모든 일이 풀렸다. 여기 와서 한국 참가자를 또 만났다. KLDP에서 활동하는 joone 님이었다. 평소에 행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여러 이유로 오지 못했다가 올해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서 왔다고 한다. 나 혼자 한국에서 올 줄 알았는데, 참 반가웠다.
두번째 날 오전에는 양쪽 데스크톱 모두의 발표가 진행되었고, 그 날 오후부터 각각 데스크톱이 분리된 발표를 하였다. 돌아 보니 나는 거의 대부분 KDE 쪽 발표를 들었지만, 그놈 쪽 발표도 재밌는 건 많아 보였다. 글의 분량이 많아져서 여러 편으로 나눠 올린다.
오~~~
부럽다 ㅠ.ㅠ 암튼 수고했음.
P.S http://blog.peremen.name/entry/gcds-2009-log-1 님들아 댓글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