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8일

핀란드 로바니에미보다는 덜했지만, 스톡홀름의 백야도 만만찮았다. 일어나 보니 꽤 이른 시간이었다. 어제는 스톡홀름의 야외 관광지를 둘러보고 뻗었다면, 오늘은 박물관을 위주로 일정을 계획하였다. 돌아다닐 일이 많아서 스톡홀름 카드를 샀다. 내가 샀을 때에는 학생 할인이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2011년 현재에는 없다. 1일권이 425크로나 정도이고, 대개 박물관 입장료가 100크로나 안팎, SL A구역 표가 30크로나이므로 본전 뽑기는 쉽다.

호스텔 주변에 있는 큰 호텔로 가서 스톡홀름 카드를 산 다음, 지하철을 타고 감라 스탄으로 올라갔다. 지하철 역은 감라 스탄의 바깥쪽에 있고, 여기서 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야 관광지와 박물관이 나온다. 옛날 스톡홀름의 좁은 골목길이 잘 보존되어 있기에 차가 쉽게 들어오지 못해서 걸어다니기는 좋다.

감라 스탄 지하철역

감라 스탄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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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라 스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노벨 박물관이다. 여기쯤에서 스톡홀름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노벨의 일생, 역대 노벨 상 수상자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 영어와 스웨덴어 가이드 투어를 확인하였고, 삼성과 기아가 후원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팸플릿도 있다. 이 안에 있는 까페에서는 노벨 상 메달 디자인 초콜릿을 팔고 있다. 노벨의 유언 중에는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결정하라는 말이 있었고, 이는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동군 연합을 이루었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오슬로에는 노벨 평화 센터가 있다.

노벨 박물관

노벨 박물관

노벨 박물관을 다 둘러 본 다음 근처의 스톡홀름 왕궁으로 갔다. 관람객에게 개방된 곳은 왕궁의 일부이고, 스웨덴 왕실의 역사와 왕궁 건물 그 자체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스톡홀름 왕궁

스톡홀름 왕궁

왕궁을 다 둘러본 다음 화폐 박물관으로 갔다. 스웨덴은 유럽 연합 국가이지만 스웨덴 크로나를 사용하고 있으며, 당분간 유로로 전환될 일은 없어 보인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스웨덴에서 사용되었던 화폐들, 그리고 스웨덴 크로나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당시 스웨덴 전국이 공주의 결혼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기념 주화와 기념품을 박물관에서 팔고 있었다.

멀리서 본 화폐 박물관

화폐 박물관 입구

감라 스탄에서는 매일 정오 쯤 근위병 행진이 있다. 일부가 개방되어 있기는 하지만 왕궁이 여기에 있기에 이것도 나름 볼거리다.

감라 스탄 주변의 근위병 행진

감라 스탄 주변의 근위병 행진

근위병 행진을 본 다음 슬루센 역으로 가서, 노면 전차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노면 전차라는 이름과는 달리 ‘작은 철도 박물관’ 수준이다. 현재 스톡홀름에는 유르고르덴 방면 노면 전차가 있으며, 1967년 우측 통행으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기타 노선의 노면 전차도 운행하였다. 물론 버스, 통근 열차, 지하철 등 다른 대중 교통 수단도 많이 있다. 노면 전차 박물관은 이름만 노면 전차지, 스톡홀름 지역 대중 교통의 역사를 다 다루고 있다.

특히 스톡홀름 지하철 및 통근 열차는 공간 문제 때문에 앞부분만 잘라서 전시해 놓은 차량도 많지만, 가능한 한 실차를 보존하려고 하였다. 임시 열차로 쓰려고 투입한 알루미늄 무도장 지하철 열차 C5도 여기에 있다. 다른 스톡홀름 지하철 전동차와는 다른 은색의 외관, 임시 열차로만 나타나는 희귀성 때문에 도시 전설과 자주 얽힌다. 이 외에도 스톡홀름 지하철에 사용되었던 롤지, SL의 이름이 변해 온 역사나 글씨체의 역사 등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내 자료실에는 SL뿐만 아니라 스웨덴 전국 철도차량 정보를 담은 연감도 있고, 안에는 자그마한 식당이 있어서 끼니를 여기에서 해결했다. 결코 지나가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 박물관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여행기에서 다룰 예블레의 철박보다 연감 하나는 좋았다.

슬루센 역

노면 전차 박물관

스톡홀름 지하철의 행선판과 롤지

SL 역사에 관한 자료

노면 전차 박물관을 다 둘러본 다음, 마지막으로 뽕을 뽑기 위해서 유르고르덴 쪽에 있는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고 왔다. 과학 기술 박물관경찰 박물관이다. 슬루센에서 유르고르덴으로 가려면 T-센트랄렌이나 카를라플란 쪽에서 버스를 타야 하고, 버스의 경우 유르고르덴을 지나서 더 들어가면 박물관 지역에 내려 준다. 거의 종점이므로 같이 내리면 된다.

슬루센 역의 또 다른 출구

슬루센 역의 또 다른 출구

과학 기술 박물관은 입장 시간이 거의 끝나서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 핀란드에서 봤던 과학관처럼 시설 자체는 꽤 잘 되어 있고 스웨덴어와 영어로 둘 다 설명이 적혀 있다. 눈여겨 볼 전시물로는 The Pirate Bay에서 압수한 서버, 우분투, OLPC이다. The Pirate Bay는 스웨덴에 서버를 두고 있는 토렌트 사이트고, 우분투와 OLPC야 잘만 사용하면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언젠가 스웨덴에서 소송이 걸려서 서버를 압수당한 게 여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과학 박물관 앞에 있는 경찰 박물관은 범죄 수사 기법과 스웨덴에서 일어난 특종 등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는 영어 설명이 거의 없어서 보기 불편할 수도 있다. 버추어 캅 아케이드도 갖다 놓았다.

과학 기술 박물관 입구

The Pirate Bay 서버

우분투

OLPC

경찰 박물관 입구

경찰 박물관에 전시된 헬리콥터

이제 유르고르덴 지역을 빠져 나와서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하여 도심으로 다시 나왔다. 스톡홀름에서 버스를 탄다면 세르겔 광장(Sergals Torg)과 T-센트랄렌 역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퇴근 시간이 되니까 역 앞은 상당히 붐볐다.

세르겔 광장/T-센트랄렌

세르겔 광장/T-센트랄렌

여기까지가 오후 6시쯤. 많은 볼거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박물관 투어는 이제 어렵고, KTH 건물이나 보고 오자고 생각해서 지하철을 탔다. 우리 학교 전자과 학생으로 교환학생을 가려면 전자공학실험을 듣기 전 일찍 가거나 들은 후 늦게 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데, 난 어쩌다 보니 둘 다 놓쳐 버려서 캠퍼스만 보고 왔다. 테크니스카 획스콜란(Tekniska Högskolan) 역에 내리면 KTH 정문이 바로 보인다.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일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대학교가 원래 그런 걸 수도 있다. 입구 쪽에 있는 캠퍼스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다.

KTH는 잠깐 둘러보고, 그 앞에 있는 로스라그스 선 기차역으로 갔다. 로스라그스 선은 스톡홀름 동북부로 나아가는 861mm 협궤 철도이다. 직류 1500V로 전철화되었다. 개통 초기에 비하면 많은 구간이 폐선되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80년대에 생산된 X10p 차량은 2+2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총 3종류의 운행 계통이 있으며, 모두 스톡홀름 외스트라 역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분기된다. 여기 말고는 지하철 접속 지점도 찾기 힘들고, 배차 간격도 짧지는 않아 보여서 그냥 보고만 왔다.

KTH 건물

테크니스카 획스콜란 지하철역. 코앞에 KTH가 있다.

스톡홀름 외스트라 역

승강장. 891mm 협궤가 눈에 보인다.

내일은 예블레의 철도 박물관, 웁살라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모레는 노르웨이 오슬로로 들어가기 위한 기차를 끊어 놨는데, 여기에서 난생 처음 기차가 퍼져서 2시간을 갇혀 있었다.

V43 하드 CF 개조기

거의 4년만에 이 분류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사실 내 손에서 V43이 떠나서 동생에게 간 지도 꽤나 오래 되었고, 하드디스크가 고장났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V43을 쳐다볼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말인가 하드디스크가 고장나 주신 이후, 동생이 인강 듣겠다고 PMP를 사기 전까지는. 실제로도 갤럭시 탭 Wi-Fi를 샀다가 메가스터디가 안 되는 문제로 환불했고, 갤럭시 플레이어 5인치 모델을 사기 직전까지 갔다. 물론 V43을 고칠 수 있으면 사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다.

인터넷을 좀 찾아 보니 V43에 CF 카드를 설치했다는 삽질기가 있어서 나도 CF 카드를 달아 보기로 했다. 준비물은 CF 카드와 CF to 1.8인치 IDE 젠더, 그리고 인두기와 기타 피크/신용 카드다. 어차피 스펙의 한계 때문에 고 비트레이트 파일은 틀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하여 트랜센드 32GB 133x CF 카드를 샀다. CF to 1.8인치 IDE 젠더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점퍼가 달려 있는 젠더를 싸게는 3000원에 살 수 있다. 점퍼의 높이 때문에 V43 케이스가 안 닫힐 수도 있으며, 인두기를 통해서 점퍼를 떼내고 마스터로 고정시켰다. 인두기가 없다면 두 선을 꺾어서 이어도 되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기타 피크는 V43 분해 시 필요하다.

V43을 분해하려면 일단 나사를 다 풀어야 한다. 플라스틱 클립으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나사만 다 푼다고 해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기타 피크나 신용 카드를 사용해서 모서리 부분에 있는 클립을 공략한다. 클립 몇 개만 맞물려 있던 것을 풀면 V43의 하판은 쉽게 따낼 수 있다. 하드 디스크만 교체하려면 하판만 뜯어내면 된다. 달리 말하면, 하판 바로 아래에 하드디스크가 있어서 배터리가 임신하면 하드 디스크는 직격탄을 맞는다. 어쨌든 하드를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저기 저 쇳덩어리가 하드다. 내가 이걸 뜯을 때 상황은 전원을 켜면 달그락 달그락거리기만 하고 V43 | Qtopia 화면에 멈춰 있었다. 여기 있는 이 1.8인치 하드를 뽑아 내고 CF 카드를 꼽는 것이 개조의 핵심이다. 젠더를 샀으면 CF 카드를 꼽기 전에 마스터/슬레이브 전환 점퍼를 인두로 지져서 빼내 놓고, 선을 이어서 항상 마스터로 보이게 만들면 된다.

CF 카드를 꼽기 전에 컴퓨터에 꼽아서 파티션을 나눠 놓아야 한다. 윈도에서 이걸 하려면 삽질이 많이 필요하지만, 리눅스에서는 쉽게 할 수 있다. 좋아하는 GUI 파티션 편집기를 열어서 맨 끝 1GB 정도를 ext2 파티션으로 잡아 놓고, 나머지를 fat32로 만들어 놓는다. 레이블이니 뭐니 하는 건 상관없고 핵심은 ext2다. 파티션을 만들 때나 만들고 나서 fat32 쪽의 레이블을 V43으로 바꿔 두지 않으면 넷싱크 DRM 적용 기기에 연결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ext2 파티션까지 다 만들었으면 CF 젠더에 꼽고 V43에 젠더를 꼽자. 젠더가 들뜬다면 테이프로 붙여도 되고, 어차피 케이스 안에 있으니까 케이스에 의해서 눌릴 수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젠더를 다 끼우면 이렇게 된다. 만약 사진에 보이는 저 젠더를 샀다면. 1.8인치 하드 연결부 끝의 플라스틱을 잘라내서 V43 쪽의 하드 연결부를 보존하고, CF 카드가 위로 가게 연결하면 된다. 1번 핀 시작 지점이라고 되어 있는 곳 왼쪽의 선 3쌍은 어차피 V43 메인보드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까 걱정 뚝. 이제 케이스를 덮고 나사를 조이고, AC 어댑터를 연결한 채로 전원을 켜면 복구 모드로 들어간다. 1.4.9 펌웨어가 가장 최근 복구 모드용 펌웨어이므로 거기에서 시작해서 순서대로 패치하면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스템 정보를 보면 V43 32G라는 유니크한 용량이 뜬다. 바로 32GB CF를 끼웠기 때문이다. 30GB 하드에 비하면 나름 옆그레이드이다. CF 개조를 머뭇거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맨 오른쪽의 인증 때문인데, T43의 경우에는 나올 때부터 Qtopia였기 때문에 사전을 제외하면 별도의 인증이 필요없지만 V43은 나올 때는 Qtopia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면 PMP 자체를 쓸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다행히도 트랜센드 133x CF 카드는 인증 탭을 누르면 일련 번호를 보여 주기 때문에 어떻게 잘 하면 인증이 가능하다. 물론 원래 들어있던 하드 디스크보다 일련 번호가 길다는 건 유의해야 한다. 일부 CF 카드는 여기 번호가 뜨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여기까지만 해서는 별로 만족스러운 속도가 안 나온다. 터미널을 열고 dmesg를 입력해 보니 DMA 모드가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뜬다. hdparm -tT로 속도를 구해 보면 3.7MB/s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PMP 안에서는 문제될 것 없는 속도지만, 이 속도 그대로 PC와 연결했을 때 복사되기 때문에 속이 터질 확률이 상당히 높다. dmesg를 입력해 보면 DMA 화이트리스트에 없는 하드 디스크라고 DMA 활성화를 거부한다. 이건 리눅스 커널의 Au1200 IDE 드라이버가 일부의 DMA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하드 디스크 때문에 목록에 없는 하드디스크는 PIO 모드를 사용한다. Au1200의 구조 상 USB와 IDE가 같은 버스를 공유하므로, PIO 모드로 CF 카드가 잡혀 있으면 전송 속도가 속터지게 느려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커널을 수정해야 하는데, V43의 커널 소스 코드나 빌드 방법은 현재 사라져서 커널 바이너리 이미지를 건드려야 한다.

최근의 리눅스 커널에서는 위의 제한이 사라졌지만, V43에 탑재된 리눅스 2.6.11 커널 소스 코드의 au1xxx-ide.h에는 이러한 제한이 있다. 링크를 건 코드는 2.6.17이지만 2.6.11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디큐에서 공개한 커널 소스 코드에는 저 위에 V43에 탑재되는 도시바 1.8인치 하드디스크가 화이트리스트로 추가되어 있다. kernel.bin 파일에 도시바 하드의 모델명이 보이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dmesg | grep hda를 통해서 CF 카드의 모델명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알아낸 다음, 헥사 에디터로 kernel.bin 파일을 열어서 적당한 것 하나를 CF 카드 모델명으로 바꾸자. 내 경우에는 CF 카드 모델명 “TS32GCF133″과 “ST3120026A”의 글자 수가 같아서 그걸 바꿨다. kernel.bin 파일을 디스크에 복사하면 부팅이 될 줄 알았는데…

V43의 kernel.bin 파일은 체크섬 정보가 들어 있다. 이 외에도 로더 주소, 파일 크기, 장치 정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글자 하나 고치면 체크섬이 틀어져서 큐토피아 대신 복구 모드가 뜬다. 디큐가 공개한 커널 소스 중에 kernel.bin 파일을 만드는 부분이 있는데, 그걸 잘 사용하면 체크섬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알 수 있다. 대강 이 코드를 받아다 컴파일하면 된다. 맨 앞 40바이트를 지우고 이 프로그램으로 체크섬을 계산한 다음, 헤더가 있는 파일의 28~32바이트 부분에 리틀 엔디안 순서(이 프로그램이 뱉는 값의 역순)로 집어넣으면 된다. 아 뭐 간단한 거니까 이게 귀찮으면 고쳐서 써도 된다.4206390033.c이제 이렇게 커널을 고쳐서 집어 넣으면 dmesg에 무시무시한 DMA 경고가 뜨지도 않고, 속도도 9.7MB/s로 상승한다. CF 카드의 한계도 있고, 리눅스 Au1200 IDE 드라이버가 MWDMA 모드 2까지만 지원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나올 수 있는 속도는 16.7MB/s이다. 좌절스러운 속도에도 다 이유가 있었군.

CF 카드 개조 이후의 배터리 시간은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배터리 임신에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기를 기대하며.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7일

북유럽 여행기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3월에 포맷한 이후 여행기를 적고 있던 위키를 날려 버려서 사진 및 입장권 자료로 기억을 복원해야 해서이다. 올해 여름이 되기 전까지 연재는 끝낼 생각이지만 아직 1/3도 채 끝나지 않아서 걱정이 앞선다.

오전 7시 50분의 스톡홀름은 사람들이 붐볐다. 북유럽으로 출발한 이후 뭔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SJ의 쿠셰트는 편하다는 느낌도 딱히 들지 않아서, 아침 6시쯤 일어나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침대차와 쿠셰트를 헷갈린 내 잘못인데 뭐. 핀란드의 침대차와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예약해 두었던 스칸스툴 호스텔에는 오후 2시는 되어야 들어갈 수 있고, 스톡홀름 시내에서 6시간 가까이를 보내긴 해야 하는데 로바니에미에서 Wi-Fi가 안 터져서 관광지 정보도 찾을 수 없었고, 믿을 건 가까이 있는 론리 플래닛 뿐이다. 스톡홀름 역에서 어떻게 끼니를 때운 다음 유르고르덴(Djurgården)으로 향했다.

스톡홀름 중앙역에 도착한 밤 기차

스톡홀름 중앙역 대합실

스톡홀름 중앙역 대합실

유르고르덴은 스톡홀름 중심부에 있는 섬이고, 1500년대에 국왕의 사냥터로 사용되다가 18세기 후반에 주거 지구로 개발되었다. 1897, 1930년에 스톡홀름 세계 박람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현재는 주거 지구 이외에도 노르딕 박물관, 스칸센(Skansen) 등의 볼거리와 놀거리도 많이 있다.

유르고르덴으로 가려면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SL이 운영하는 도시 철도/버스 등을 타려면 표를 일단 끊어야 하는데, 헬싱키와 비슷한 방식이란 건 알겠지만 유르고르덴 방면 버스 정거장 근처에는 표 자판기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보니 열이 나서, 버스 정거장 밑에 쓰여 있는 카를라플란(Karlaplan) 역 환승 안내가 눈에 띄었다. ‘지하철에는 표 자판기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톡홀름 중앙역 아래에 있는 T-센트랄렌(T-Centralen) 역으로 갔다.

당시 수중에 스웨덴 크로나가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 결제가 되는 발매기에 30 크로나를 뜯기고 나서야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일단 표를 사고 나면 유효 기간 동안 환승은 무제한이니 뭐. 지하철을 타고 카를라플란 역으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좀 많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이용객 수가 적었다는 점은 기억이 난다.

유르고르덴 같아 보이는 곳에 아무렇게나 내리고 나니 눈 앞에 보이는 건 스톡홀름의 해안선과 요트들이다.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아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앉아서 시간을 보낼 만한 무언가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여기는 이역만리 스웨덴.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길바닥에 짐 풀어놓고 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니 문을 연 건 근처의 노르딕 박물관이었다. 실외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들어갔다. 박물관 중앙은 구스타브 바사 상이 굽어보고 있는 구조이고,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는 플라스틱이었다.

유르고르덴에 있는 노르딕 박물관

플라스틱!

구스타브 바사 상

플라스틱을 다 보고, 근처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다가 작은 규모에 좌절하고, 스칸센의 입장료에 좌절하고 보니 어느덧 정오가 지났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서 스칸스툴 호스텔로 가서 잠을 푹 잤다. 어차피 스칸스툴 호스텔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하므로 복잡한 T-센트랄렌 대신 승객도 적은 카를라플란으로 가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입장료

야외 박물관 스칸센. 차라리 이걸 보고 돌아올 걸.

앞 문단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스톡홀름에 지하철이 개통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노선은 총 3개로, 과거 스톡홀름을 달리던 노면 전차가 지하로 들어간 노선이 그뢰나 선이고, 뢰다와 블로 선은 아예 지하를 뚫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뢰다 선과 그뢰나 선이 X자를 그리고, 블로 선이 X자의 위쪽 부분에 가로선을 긋는 구조이다. 모든 노선에 도중 분기가 있어서 운행 계통은 총 7종류이다. 물론 대부분 환승은 개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카를라플란 역에서 호스텔이 있는 스칸스툴 역으로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뢰다 선과 그뢰나 선이 만나는 지점은 T-센트랄렌, 감라 스탄, 슬루센 역이다. 뢰다와 그뢰나 선만의 환승만 생각하면, T-센트랄렌 역은 한 섬에서 서로 반대 방향, 감라 스탄과 슬루센 역에서는 같은 방향의 열차가 정차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감라 스탄과 슬루센 역은 수도권 1/4호선 금정역과 비슷한 환승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정역 3초환승의 유일한 단점인 서로 반대 방향 환승이 어렵다는 점을 스톡홀름에서는 바로 다음 역에서 열차 방향을 꼬아 주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안내 방송 역시 이를 배려하였다. 뢰다 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T-센트랄렌 역에서는 그뢰나 선의 T-센트랄렌 이북, 감라 스탄 역과 슬루센 역에서는 그뢰나 선의 T-센트랄렌 이남으로 가려면 여기서 갈아타라는 방송이 나온다. 안내 방송 멘트는 우리 나라처럼 길지 않고, 두 번 나오지도 않고, 역 이름만 나오기 때문에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어차피 T-센트랄렌 역은 사람도 많고, 계단까지 걸어가야 해서 감라 스탄 역에서 갈아탔다.

카를라플란 역 T-센트랄렌 방면 승강장

감라 스탄 역. 남쪽으로 가는 열차가 같은 섬을 공유한다.

드디어 도착한 스칸스툴 역.

딱딱한 쿠셰트에서 잠자다가 푹신한 침대로 오니 정말 꿀맛같다. 잠 좀 자고 일어나니 6시.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내일 스톡홀름의 어디를 둘러볼지를 정하고 잤다. 역시 쿠셰트와 침대차는 다르고 침대는 편안하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6일

아침 일찍 루돌프 호스텔에서 일어나서 산타클로스 호텔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호텔 뷔페를 이용하는 거라서 가격은 비싸지만, 호스텔에 투숙하고 있으면 11유로에 이용할 수 있다. 청어나 연어 같은 물고기도 보였고, 핫케익 제조용 틀도 있어서 그걸로 배를 채웠다. 오늘은 저 남쪽 스톡홀름까지 내려갈 예정이어서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두기로 했다. 로바니에미는 핀란드 북쪽 끝에 있고, 인구 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야간 침대차를 제외한 여객 열차는 빈도수가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핀란드에서 스웨덴이나 그 반대로 가려면 시간 문제 때문에 페리를 주로 이용하지만(헬싱키에서 저녁에 타면 스톡홀름에 아침에 도착함) 나는 열차편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헬싱키에서 일단 케미까지는 올라와야 스웨덴과 연결되는 철길이 있다. 그나마도 궤간 문제 때문에 국경역인 토르니오/하파란타 역에 4선궤가 설치되어 있어서 환승이 불가피하다. 오래 전에 여객 열차는 영업을 중지했고, 유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으면 케미-토르니오/하파란타 간을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토르니오 역은 콜라리 방면 선로와 케미 방면 선로가 스웨덴 방향으로 합쳐지기 때문에 이 역에 정차하려면 차를 돌려서 나가야 하고, 토르니오 역을 대체하기 위한 역으로는 토르니오 이태이넨 역이 있다.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P 708 열차를 타고 일단 케미로 내려간다. 케미 역 바로 근처에는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거기에서 토르니오/하파란타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대부분 버스는 토르니오 종착이고, 기사에게 요청을 하면 하파란타까지 갈 수 있다. 핀란드의 P 열차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강 폐지되기 직전의 통일호 같은 느낌이라서 가장 오래된 객차가 편성되고 주로 단거리를 운행하며 전역 정차하지만, 침대차가 P 등급으로 편성되는 아햏햏한 면도 있다. 열차에 탔는데 시간이 일찍어서였는지 객차 한 칸을 전세내서 케미까지 내려왔다.

P 708에 편성된 Eip 객차.

Eip 객차의 패찰. 파실라 공작창은 헬싱키 북부에 있다.

케미 역.

케미 버스 터미널로 가 보니 아주 낡은 버스 한 대가 토르니오라는 팻말을 달고 있었다. 거기에 올라탄 다음 유레일 패스를 보여 주면 공짜로 탈 수 있다. 버스 안에는 마르카 동전을 받는 NMT 공중전화 단말기가 있다. 마르카가 유로로 대체된 지 거의 10년이 되었으므로, 이 버스는 꽤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도로가 2차선인 핀란드의 라플란드를 헤쳐나가는 동안 반쯤 공기로 이동하다가, 약 40분 후 토르니오에 도착했다. 토르니오와 하파란타는 원래 한 도시였다가 1800년대에 핀란드가 러시아 지배를 받으면서 새 국경선이 그어져서 갈라졌다. 이후 핀란드가 독립하고 노르딕 여권 연맹이 체결되면서 국경 검문소의 기능이 약해졌고, 솅겐 조약이 발효된 현재는 옛날 국경 검문소는 사용되고 있지 않다. 버스를 타고 하파란타까지 갈 때에도 국경 검문소는 보이지 않았다.

케미 버스 터미널.

하파란타까지 모셔 줄 낡은 버스.

하파란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이케아 가게가 있는데, 가게 자체는 스웨덴에 있지만 핀란드어로도 안내가 쓰여 있고, 스웨덴 크로나와 유로를 모두 다 받는다. 스웨덴은 핀란드보다 1시간 빠르기 때문에 핀란드 시각으로 12시 55분이 스웨덴 시각으로는 11시 55분이 된다. 핀란드에서 토르니오로 운행하는 여객 열차가 없듯이, 스웨덴에서도 하파란타로 운행하는 여객 열차가 없다.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면 하파란타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 있는 룰레오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여기서 큰 실수를 했는데, 룰레오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야간 기차는 6시에 출발한다. 하파란타에서 룰레오로 가는 버스는 12시와 13시 35분에 있는데, 룰레오는 생각보다 작아서 굳이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간다고 12시에 하파란타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던 게 조금은 후회된다. 어쨌든 버스는 내가 내린 바로 그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

우메오행 버스

우메오행 버스. 이용 구간은 룰레오까지다.

버스 자체는 2층이지만 탑승한 승객은 나 포함 그리 많지 않았다. 버스 자체는 룰레오를 지나 우메오까지 운행하지만 유레일 패스로 탑승할 경우 룰레오까지만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스웨덴의 라플란드 역시 핀란드와 경치가 다를 바 없이 숲 속에 2차선 도로가 있고, 차나 사람이나 거의 없기 때문에 제한 속도가 높다. 슬슬 핀란드에서 샀던 SIM 카드가 신호를 잃어버려서 룰레오 도착 이후 SIM 카드를 사기로 했다. 휴대폰은 알람 시계와 A-GPS 비콘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기 때문이다.

룰레오 버스 터미널

룰레오 버스 터미널

룰레오 버스 터미널에 내리면 바로 앞에 기차역이 있다. 역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 자체는 이미 무인화되어 있었고, 승강장에는 여러 Rc 기관차IORE 기관차, 그리고 객차가 보였다. 룰레오 도착은 14시 25분이고, 스톡홀름행 야간 열차는 6시에 출발하므로 시간은 많다. 룰레오 시내를 둘러보면서 가지고 있던 유로 지폐를 스웨덴 크로나로 환전하고, 점심 겸 저녁을 룰레오 시내의 태국 식당에서 해결했다. 1 크로나는 약 10유로이기 때문에 핀란드 쪽에서 보던 숫자에 *10을 하면 대략 스웨덴 쪽에서 보이는 가격이 나온다.

룰레오 역

룰레오 역 승강장.

역명판

이쯤에서 내가 투르쿠에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룰레오와 우메오를 헷갈려서 룰레오에서 16시 32분에 타야 할 열차인데 우메오에서 18시에 탄다는 걸로 착각하고, 쿠셰트와 침대차를 착각해서 잠도 불편하게 잤다. 쿠셰트는 낮에는 좌석으로 쓰다가 밤에는 좌석을 접어서 침대로 쓰는 방식이고, 침대차는 원래 침대가 들어 있는 차다. 좌석 쿠션은 침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불편하므로 쿠셰트는 오래 버틸 곳이 못 된다. 룰레오와 우메오는 서로 엄청 떨어져 있기 때문에 기차를 놓쳐 버리면 일정이 꼬인다. 아무튼 16시 32분에 룰레오에서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우메오까지는 좌석을 차지하기로 했다.

분명히 저 차 소유는 반베르케트인데 로고는 SJ?

같은 차인가?

IORE 기관차. 최고 속도는 낮은 대신 출력이 커서 철광석 열차에 특화되어 있다.

저기 보이는 기관차 중 Rc 기관차는 우리나라의 특대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전기 기관차로 생각하면 된다. 도입 시기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7종(현재는 5종)의 파생형도 있고, 최고 시속은 135/160km이다. SJ에서는 여객, 그린 카고 등 회사에서는 화물이나 여객을 담당한다. 파생형 중 하나인 Rc2는 오스트리아에 수출되었다가, 이후 역수입되어서 사철 회사 및 반베르케트에서 쓰고 있다. 스웨덴은 동차화가 많이 진행되었지만, 아직까지도 Rc 견인 여객 열차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IORE 기관차는 스웨덴의 철광석 생산지 키루나에서 노르웨이의 항구 나르비크/스웨덴의 항구 룰레오까지 실어나르는 데 사용된다. 주 운행 노선은 당연히 오포트 선/말름 선이며, 최고 시속은 80km이지만 견인력이 커서 철광석 약 70량도 거뜬하게 끌 수 있다. 영구 2중련되어 있으며, 각각 기관차마다 이름이 붙어 있다.

사진 중에 있는 S-SSRT Rc6 1333 9174 000 0011-8 이라는 표기는 독일을 주축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 보급되고 있는 동력차 표기법의 일부로, 맨 처음 나오는 S는 스웨덴, SSRT는 반베르케트 소유를 뜻한다. SSRT 자리에는 SJ와 같은 다른 운송 회사가 올 수 있다. Rc6 1333은 과거 사용하였던 표기법이고, 9174 000 0011-8은 UIC 표준 표기법이다. 91은 시속 100km 이상 전기 기관차, 74는 스웨덴의 UIC 국가 코드, 000/0011은 차종/차종 내 식별 번호, 8은 체크 숫자이다. 현재 스웨덴의 철도 차량은 기존 표기법/UIC 표기법이 섞여 있고, 같은 Rc6이라고 해도 반베르케트 소유는 000, SJ 소유는 106으로 차종 식별 번호가 다르다. 아직까지 전 유럽에 정착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2010년 말 스웨덴 북부에 보트니아 선이 개통되면서, 기존의 노선으로 다니던 여객 열차가 보트니아 선 경유로 조정되었다. 이 때문에 야간 열차 시간표도 조정되어 7시 46분이 아닌 6시 15분에 도착한다. 이를 피하려면 룰레오에서 8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10시 2분에 떨궈 준다. 내가 열차를 탔을 때에는 보트니아 선이 미개통 상태였기 때문에 스톡홀름에 7시 46분에 떨궈 주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에 도착한 다음 뭘 해야 하지? 호스텔만 예약해 놓았고, 로바니에미에서 조사하기로 했던 스톡홀름 관광지는 무선 인터넷이 안 통해서 조사해 놓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스톡홀름 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할 수도 없는 거고. 에라이 몰라 일단 열차를 타고 스톡홀름까지 내려가자. 우메오를 지나고 나서 거의 곧바로 잤다.

다음날 오전 6시쯤 눈을 떠 보니 어느새 기차는 스웨덴 중부까지 내려와서, 웁살라와 알란다를 거쳐 스톡홀름에 도착할 준비를 했다. 아침의 스톡홀름 센트랄 역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붐비던데다가, 야간 열차에서 제대로 못 잔 피로감까지 겹쳐서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래도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각오로 (다음 편에서 계속)

과연 스톡홀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과연 스톡홀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5일

아침 6시 가까이 되어서 잠에서 깼다. 자고 일어나서야 샤워실은 검은색 키로 연다는 걸 알아채는 바람에 일단 아침 일찍 씻었다. Edm 침대차에 부속된 샤워실은 따뜻한 물은 나온다. 원래 침대차 내 샤워실이 다 그렇듯이 공간은 꽤나 협소한 편이다. 대부분 Edm 침대차는 뽑은 지 5년도 안 된 완전 새삥이기 때문에 샤워실 청결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전 8시쯤 로바니에미 역에 딱 도착했고, 위층에서 자던 사람이 물을 안 먹어서 당장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 득템. 안내방송 그런 거 없기 때문에 내릴 때 우루루 내리면 된다.

로바니에미 역

Edm 침대차

로바니에미 역 뒤편

역 뒤에 있는 Tk3 증기 기관차

당장 8시에 로바니에미에 도착하긴 했는데, 시내에 있는 모든 식당은 문을 아직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역이 도심에 근접한 것도 아니라서 로바니에미 역 위에는 증기 기관차밖에 안 보인다. 내가 찾은 루돌프 호스텔은 하룻밤 묵는 데 무슨 3~40유로(싱글 룸)씩이나 하는 바람에 로바니에미에서는 하룻밤만 지내기로 했다. 체크인 시간의 압박으로 짐까지 들고다니느라 고생 좀 했다. 이번 여행 동안 대부분 호스텔들은 체크인 시간 이전에도 짐을 맡아 준다는 사실을 몰라서 도시를 이동할 때 고생 꽤나 했다. 북극권을 오전 일찍 건너고 아르크티쿰 박물관을 보고 온 다음, 호스텔에 짐 풀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로바니에미 역 앞에서 산타 마을로 출발하는 8번 버스 시간표는 정류장 밑에 붙어 있다. 시내를 통과하면서 몇몇 사람을 태우고 공도를 달려서 산타 마을로 간다. 인구 수는 적은데 땅은 넓다보니 지나가는 차나 사람 찾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볼래야 볼 수 없는 풍경. 산타 마을에는 진짜 산타가 사는 집이 있고(여기서 사진 촬영은 불가능) 북극권 인증을 할 수 있도록 금까지 그어 놓았다.

산타 마을 입구

북극권 코앞. 여러 도시간의 거리를 나타낸 표지판.

북극권 밟기 인증

산타의 집 입구

나도 Qt 스티커 하나 붙이고 돌아옴

북극권을 따라 놓여 있는 램프

버스 정류장

산타 기념품 가게를 뒤로하고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서 와플 한두개로 아침을 때웠다. 사촌동생 선물을 보러 갔던 스와로프스키 가게에서 핀란드의 1/2센트 동전을 무료로 증정하고 있었다. 대부분 유로 통용국과는 다르게 핀란드에서는 5센트 미만은 반올림하거나 버린다. 그래서 1/2센트 동전은 도안이 존재하고 유럽 중앙 은행 규정 때문에 동전을 발행해야 하지만 실제 유통되는 동전은 많지 않다. 다른 나라의 1/2센트 동전은 핀란드에서 사용할 수 있다. 시내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와플 한두개는 배고픔을 금방 달래 주었다. 산타 마을 주변은 숲밖에는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역 주변으로 돌아갔다.

로바니에미에 있는 세계 최북단 맥도날드

로바니에미 시내

시립 미술관이 공사 중이어서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 중에는 아르크티쿰 박물관이 제일 크다. 이름처럼 핀란드 북부의 생활상을 전시해 놓고 있었고, 노르딕 국가 북부 지방의 원주민인 사미 족에 대하여 깊게 다루고 있다. 사미 족은 남쪽에 있는 사람들과는 생활 양식이나 언어나 민족과 문화가 달랐기 때문에 과거에는 억압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러한 모습이 많이 변했다. 사미 족의 주거지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러시아 일부에 걸쳐 있으며, 이들 나라의 국립 박물관은 항상 사미 족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아르크티쿰 박물관 입구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명판

이 외에도 지구 온난화로 핀란드 북부 지역이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다루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 입장에서는 주거지가 물에 잠기는 등 재앙이지만, 멀리 북쪽에서는 얼음에 봉인되어 있던 각종 자원의 봉인이 해제되고 항로가 뚫리는 등 이득도 보고 있다. 하지만 북극에 살고 있는 각종 생물의 삶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긍정적으로만은 볼 수 없다.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 중에는 술이 있었다. 핀란드 북부는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많이 마셨고, 술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핀란드 정부는 여러 조치를 취했다. 지금도 노르딕 국가에서 시행되는 국가의 주류 독점 제도는 모두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 유통되었던 주류라든가, 주류를 구입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이런저런 허가증이 전시되어 있다. 술 마시면 심신미약으로 형이 감경되는 어떤 나라에는 이런 걸 도입하지 못하겠지. 당장 소주도 알코올 농도 4.7% 이상이잖아.

호스텔 체크인을 맞추기 위해서 아르크티쿰에서 적절히 시간을 때운 다음 시내 중심으로 갔다. 특이하게도 도심을 관통하는 도로는 모두 비포장이다. 9유로 주변에 배를 채울 수 있는 중식 뷔페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골든 락스에 질려 있었기에 맛있게 먹었고, 유럽 어디를 가나 저렴한 중식 뷔페가 있어서 배 채울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로바니에미에는 세계 최북단의 맥도날드가 있지만, 핀란드의 다른 패스트푸드가 그렇듯이 가격대 성능비가 안 좋아서 보는 걸로 만족했다. 일단 이걸 끝내고 루돌프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기 위해서 산타클로스 호텔로 갔다.

루돌프 호스텔은 독립적인 체크인 시설이 없는 완전 기숙사형 호스텔이라서 밑에 있는 산타클로스 호텔에서 체크인 및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호텔에서 운영하다 보니 방값도 장난 아니게 비싸서, 로바니에미에서는 하룻밤만 자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도시도 작아서 볼 것도 많이 없다. 루돌프 호스텔에 체크인하고 방 열쇠를 받은 다음, 스톡홀름에서 뭐를 볼지 보려고 노트북을 펼쳤는데… 방에서 무선랜이 안 잡힌다. 스톡홀름에서 지낼 호스텔은 예약해 두었지만 관광지 정보를 알 수 없으니 낭패다. 침대차에서 푹 잘 수 있었지만 오전에 돌아다닌다고 체력 소모가 커서 일단 낮잠을 좀 잤다.

여기가 바로 루돌프 호스텔

여기가 바로 루돌프 호스텔

자고 일어나서 로바니에미 시내를 좀 둘러 보았다. 로바니에미 시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조성되었다. 핀란드는 소련을 몰아내기 위하여 독일과 동맹을 맺었고, 독일과 동맹을 맺은 결과는 패전이었다. 소련과의 평화 조약 중에는 독일군을 핀란드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도 있었고, 독일군은 핀란드에서 철수하면서 이런저런 피해를 남기고 갔다. 핀란드 북부의 큰 도시 로바니에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시내에 이런저런 기념비를 건설하였고, 기념비 근처에는 로바니에미의 이런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핀란드 철도의 가장 북쪽에 있는 전철화된 역도 바로 로바니에미 역이다. 여기에서 더 동쪽으로 가면 더 작은 케미얘르비가 나오고, 더 동쪽으로 가다가 러시아 국경선을 앞두고 끊긴다. 과거에는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었으나 수요 문제로 폐선되어, 지금 핀란드와 러시아를 잇는 철도 노선은 남부에 하나 있다. 로바니에미 동쪽으로 가기 위하여 케미 강을 건너는 다리도 전후에 복구되었다. 오후 5~6시쯤 되었으나, 어지간한 공공 시설은 문을 닫았고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해서 호스텔로 돌아왔다.

시내 곳곳에 있는 조형물

로바니에미에서 동쪽으로 가는 철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복구되었고 전철화는 안 되어 있다.

시립 도서관

밤이 깊어가는데도 해가 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블라인드를 완전히 내리고 창을 완전히 닫고서야 겨우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탐페레는 그래도 12시 주변이 되면 해가 살짝 지는 척이라도 하지, 북극권에 인접한 로바니에미는 그런 거 없다. 룰레오발이라고 착각했던 우메오발 스톡홀름행 쿠셰트 티켓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무선랜이 터지지 않으니 론리플래닛 책을 봐 가면서 스톡홀름에 도착하고 호스텔로 가기 직전까지 볼 장소를 찾아 보았다. 미리 받아 놓은 케미-룰레오 버스 시간표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놓고 잤다. 스톡홀름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다가 스웨덴 쿠셰트는 편안함은 엿 바꿔먹은 물건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