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19/20일

오르후스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드디어 노르딕 국가를 벗어난다는 생각으로 오르후스 역으로 갔다. 그 다음 ICE-TD에 올라서, 호차 번호를 제대로 읽지 못해서 엉뚱한 자리에 앉아서 독일까지 갈 뻔 했다. 현재 덴마크와 독일을 연결하는 국제 열차편은 함부르크-오르후스/코펜하겐 편이 있으며 전자는 육로, 후자는 해로를 통하여 연결된다. 비록 코펜하겐까지 기찻길은 연결되어 있으나, 코펜하겐으로 가는 육로 기찻길이 ㄱ자의 가로와 세로를 따라 가는 거라면 해로는 ㄱ자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이다. 따라서 빠른 시간이 중요한 여객 열차는 현재도 페마른 해협을 가로지르는 페리를 이용하며, 화물 열차는 페리에 일일이 실을 수 없으므로 육지로 보낸다.

ICE-TD 열차는 DB/DSB 공동 운행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으며, 덴마크 내에서는 IC급, 독일로 들어가면 ICE급으로 운행한다. 덴마크 내에서는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를 내지 못해서 고속 열차를 탄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는 않았다. 독일-덴마크-스웨덴으로 가는 기찻길은 전철화되어 있으나 (생뚱맞은 점은 독일과 스웨덴이 교류 15kV 16.7Hz를 사용하나, 덴마크는 교류 25kV 50Hz를 사용한다) 이 두 국제 열차는 비전화 구간을 도중에 지나므로 디젤 동차로 운행할 수 밖에 없다.

열차는 오르후스에서 남쪽으로 가서 독일 슐레스비히를 지난 다음 함부르크로 들어왔다. 덴마크에서 출발할 때부터 날씨가 흐려서 수상했으나 독일로 내려오면서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함부르크에 도착했을 때에는 비가 엄청 퍼부었다. 가려고 했던 호스텔로는 이러다가 못 갈 것 같아서 함부르크 역에서 끼니를 때우다 가기로 했다. 역 안에 있는 서브웨이에서 끼니를 때운 다음 비가 그치나 안 그치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도통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하기에, 노르웨이에서 경험했던 대로 일단 빗속을 뛰어서 호스텔로 도착한 다음 머리를 말리든지 뭘 하든지 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니 비가 그쳤는데, 운이 없게도 비가 그쳤을 때에는 이미 해도 떨어질락 말락 하고 있었다. 그랬던 탓에 볼 것이 많을 수도 있었던 함부르크였지만, 시내를 조금 걸어다니다가 함부르크 항구 쪽만 주마간산처럼 보고 들어왔다. 아, 또한 사용하고 있었던 스웨덴 선불 USIM 카드가 슬슬 잔액이 다 떨어질 시점이 되었는데, 노르웨이나 덴마크라면 몰라도 독일에서는 스웨덴으로 올라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독일 USIM 카드를 사기로 결심하였다. 이거 하나가 함부르크에서 이룬 성과인 것 같다. 장거리 기차 여행은 아니었지만 비를 쫄딱 맞은 탓에 일찍 잠이 왔다. 또한 여행 당초부터 함부르크는 찍고 가는 곳의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오전에 바로 쾰른으로 출발하기 위해서라도 일찍 자야만 했다.

함부르크의 호스텔에서 아침을 먹은 다음, 쾰른으로 가는 IC 열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왜 IC 열차인가? 어차피 이 때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ICE는 직선 선로를 달리지만 IC 열차는 강을 끼고 굽이굽이 달린다는 말을 들었다. 좀 더 긴 시간을 열차에서 보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IC 열차를 탔다. IC 여행 시간이 길기 때문에 + 쾰른에서는 좀 오랫동안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첫날 도착하자 말자 별도의 일정을 잡지는 않았다. 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스텔을 잡은 덕분에 들어가서 자기는 쉬웠다. 막간을 이용해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빨래도 해치웠다. 아무래도 함부르크에서 젖은 옷도 있었으니까.

번역: 노키아 미고 이야기 (제 2부)

지난번에 올렸던 글이 원래 올라왔던 핀란드 사이트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영어 번역본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졌다.글을 본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부분에서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후속으로 올라온 글이 있기 때문에 이 글도번역해 보았다.

글의 원문은 지난번과 같은 Taskumuro 사이트에 올라와 있으며, 이 글은 영문 번역본의 한국어 중역본이다. 영문 원역본은 다음에 있다: English version: After the story of Nokia MeeGo (part 2)


2012년 12월 노키아가 미고를 개발하고 포기한 과정에 대한 자세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미고에 참여한 전 현직 노키아 직원들을 인터뷰하였다. Muropaketti 웹 사이트가 운영된 14년 동안 조회수가 가장 많은 글이 되었다. 글의 영어 번역본은 Engadget, The Wall Street Journal, CNET, The Register, Slashdot 등 전 세계 미디어에 링크되었고 현재 조회수는 9만회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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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야기가 올라간 후 미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의 메일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쓴 것에 대한 감사만을 표했고, 또한 글에 대한 자세한 정보나 자신이 참여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짧은 글은 첫번째 글이 올려진 이후 더 자세한 정보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항목만 다루고 있다. 원래 글에서 그랬던 것처럼 증거와 검증 가능한 사실이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편지를 보내 온 사람들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해석은 가능한 한 배제하였다. 우리는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비교하고 대조해 보았으며, 가지고 있던 정보와 합쳐 보았다. 독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 중 인터뷰했던 사람들은 일이 끝난 이후에 버려졌다.

글의 핀란드어 원 작성자의 이메일 주소는 sampsa.kurri [a] muropaketti.com이며, 이 글이나 이전 글에 대한 피드백을 환영한다. 영어 번역은 Aleksi Vänttinen이 도와 주었다.

Searay는 Verizon용 N9였으나 루미아 800이 되었다

노키아에서 나온 유일한 미고 휴대폰인 N9는 CDMA 네트워크를 지원하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는 Verizon과 Sprint가 CDMA 네트워크를 사용한다. 인텔이 자사 모바일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CDMA와 LTE 지원을 추가하는 동안 퀄컴은 노키아와 협력하려고 하였다. 당시 노키아는 최대한 많은 칩 제조사들과 협력하려고 했으며(TI, ST-에릭슨, 퀄컴), 이는 대량 구매를 통하여 가격을 인하하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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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과 공동 진행한 프로젝트는 미국, 특히 Verizon 시장을 위한 CDMA 지원 N9(모델 RM-716) 개발로부터 시작하였다. 코드명은 “Searay”였으며, 퀄컴 스냅드래곤 SoC를 장착하고 CDMA 지원이 추가되었다. 2011년 2월 하드웨어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던 때 하드웨어 지원 계층(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통신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소프트웨어)은 이미 개발되고 있었다.

노키아가 윈도 폰 운영체제로 전략을 바꾸었을 때, Searay N9 계획도 완전히 변경되었다. 윈도 폰 플랫폼은 Searay N9에서 사용하려고 했던 퀄컴 스냅드래곤 SoC를 지원했으며, 2011년 봄에 이 프로젝트는 노키아의 첫 윈도 폰 스마트폰인 루미아 800 개발로 변경되었다.

이는 2011년 6월 N9가 나온 바로 며칠 후 노키아 CEO 스티븐 엘롭이 자사 직원들에게 윈도 폰 기반 N9 파생 모델을 시연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인텔 플랫폼의 가장 큰 문제: 전력 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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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GW990, 출처: Engadget

불행히도 노키아와 인텔의 협력이나 Ilmatar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코드명 “Soiro” 장치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없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텔 플랫폼을 사용하여 개발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전력 소모량이었다. 실시간 그래픽 기반 개발 도구는 장점으로 꼽혔다.

x86 기반 인텔 미고 휴대폰과 가장 가까운 것은 LG에서 2010년 라스 베가스에서 개최된 CES에서 발표한 GW990의 시제품이었다. GW990은 인텔의 45nm 무어스타운 SoC, 512MB RAM, 4.8인치 1024×480 디스플레이를 장착하였고, 인텔이 미고 이전에 개발하였던 모블린 2.1 운영체제를 탑재하였다. LG에서는 미고를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2010년 봄에 실제 제품으로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소한 설계도에는 존재했던 태블릿

이 글의 1부에서는 미고 기반 태블릿인 코드명 Senna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 태블릿은 ST-에릭슨의 NovaThor U8500 프로세서를 장착하였고, 커다란 N9와 같은 외관을 가졌다. 미고를 포기하기 전 노키아 CEO에게 시연하였던 태블릿 중 가장 많이 개발된 장치였다.

노키아는 이 외에도 초기 디자인 단계에 들어갔던 태블릿이 두 종류 더 있었으나, 디자인 스케치만으로 존재하였고 기술적인 사항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 태블릿은 Senna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또 다른 태블릿은 기술적으로 흥미로운 컨셉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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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 장치의 코드명은 Cerberus이며 세 개의 연결된 디스플레이로 이루어져 있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지도처럼 접어서 일반 휴대폰 정도의 크기로 휴대할 수 있고, 맨 위에 있는 화면은 기본 기능만 표시된다. 접은 디스플레이를 펼치면 장치를 사용하여 책을 읽거나, 지도를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아이디어 자체는 흥미있었고 콘텐츠도 기획 단계에 있었으나, 앱 개발자들의 입장에서는 흥미를 유발하지 못했다.

퀄컴은 위에 있는 장치와 비슷한 특허를 2009년에 출원하였다(Multi-fold mobile device with configurable interface). 이 특허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접을 수 있는 모바일 장치이다. 노키아와 퀄컴은 당시 미국 시장을 위한 N9를 출시하기 위해서 협력하고 있었다.

노키아의 미고 개발에서 태블릿은 우선 순위가 낮았으며, 따라서 Senna 장치는 시제품이 나온 유일한 장치이다. 다른 두 장치는 초기 기획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칠판에 있었던 전자 잉크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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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킨들 전자책 단말기

연락해 온 몇 사람에 의하면 2010년 말 잠시 동안 노키아는 전자 잉크 기반 장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프로젝트에서 일했던 한 사람에 의하면 LCD 패널과 전자 잉크 패널이 장착된 단말기를 기획하고 있었고, 전자 잉크는 15fps 프레임 레이트를 지원하였다. 전자 잉크 프로젝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취소되었다.

LG는 원했고, 삼성은 의심했고, 통신사들은 무시했다

2011년 노키아에서 결정된 미고의 운명은 매우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었다. LG는 미고 초창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고를 계속 개발할 가능성이 있었을 때 LG는 결정에 영향을 주기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삼성은 노키아와 함께 미고를 사용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당시 삼성은 LiMo, 현재 Tizen으로 불리는 운영 체제를 개발하고 있었던 파트너였다. 과거 협상에 참여하였던 전직 노키아 직원에 의하면 노키아가 윈도 폰으로 이동한다고 결정하였을 때 삼성에서는 발언권조차 없었다고 하였다.

제조사들이 미고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가장 넘기 힘든 벽은 통신사였다. 원래 글에서는 미고의 취약점으로 LTE 미지원 및 애플과 구글에 대항할 수 있는 생태계 설립의 어려움을 꼽았다.

생태계와 앱 개발자들 사이의 혼란

사용자 삽입 이미지미고 운영 체제와 인터페이스를 둘러싼 여러 혼란스러운 사건은 Ovi Store에 앱을 올리는 개발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새로운 장치가 출시되기 전 Ovi Store에는 장치를 지원하는 앱과 콘텐츠들이 올라와 있었다. 계획이 계속 바뀌는 동안 결정은 개발자 스스로 내려야 했고, 개발자들은 거의 추측으로만 얻어낸 정보에 의존해야 했다.

미고 장치가 개발되는 동안 대상 사용자와 주요 기능은 한 마디도 없이 변경되었다. 장치를 위한 콘텐츠 개발은 기본적인 정보를 가지고 시작되었으나, 미팅이 진행되면 대상 사용자와 주요 기능이 또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앱 개발자들에게는 출시될 미고 장치에 어떠한 앱이 필요한지,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 역시 시스템과 함께 개발되고 있었다. 하나 알려진 사실은 장치가 출시되면 콘텐츠가 많지 않을 것이었다. 미고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생태계를 둘러싼 압박이 컸고, 애플과 구글과 경쟁하기 위하여는 각각 앱의 품질보다는 전체 앱의 개수가 중요하다에 초점이 맞춰졌다.

심비안 팀은 미고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았다

원래 글에서는 심비안 팀과 미고 팀이 같은 회사 안에서 일하면서도 정보를 교환하기 힘들었다고 하였다. 심비안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일했던 사람에 의하면 미고 개발은 심비안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심비안과 미고 UI를 통일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도 여러 번 엇갈렸다. 개발 팀간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팀 간 미팅도 자주 취소되었다. 심비안 팀 구성원의 일화에 의하면 대화가 단절되었던 시기 미고 UI가 개발되는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서 TechCrunch 같은 뉴스 사이트의 정보나 유출된 정보에 의존해야 하였다.

공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젝트: Meltemi

2010년-2012년 미고와 함께 개발되었던 일급 비밀 운영체제의 코드명은 Meltemi였다. 노키아는 공식적으로 프로젝트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었다. 프로젝트의 주요 대상은 보급형 스마트폰이었으며 최종 출시명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고 라이트가 가장 우선시되는 후보였다.

Meltemi는 미고와 100% 호환되었고, 미고의 개발자 생태계와 앱을 그대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Meltemi의 목표는 UI를 항상 60FPS로 구동하고 앱들이 1초 안으로 실행될 수 있는 것이다. Meltemi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데이터 제어였으며, 데이터베이스에 한 번의 질의로 여러 정보를 가져오는 것이다. Meltemi 개발에서의 어려웠던 점은 빡빡한 일정, 펌웨어 버전, 데이터베이스 및 데이터베이스의 기능, 새로운 SoC 등이 있다.

Meltemi 프로젝트는 2012년 6월 14일에 취소되었고 프로젝트의 책임자 Mary McDowell은 사임하였다. 인터넷에는 Meltemi에 대한 여러 루머가 나돌았다. 우리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Meltemi는 개발 초기 단계였으며 다음에 올라올 예정인 글인 노키아 멜테미 이야기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다룰 것이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17/18일

오전에 일어나서 코펜하겐 중앙역으로 가는 열차에 탔다. 뇌레포르트 역에서 아무 열차나 탄 다음,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이번에는 덴마크 서쪽으로 이동한다. 오늘 타고 갈 차는 IC3 병결 편성이다. IC3 디젤 동차는 1990년대 초반에 덴마크에 도입되었고, 제작 당시에는 덴마크 스칸디아에서 제작되었으나 IC3이 제작되는 동안 ABB에 인수되었다. (이후 봄바디어에 인수됨) 파생형으로는 전기로 운행하는 IR4, 소규모 사철용 IC2가 있다. 이론적으로 세 종류 모두 병결 운행이 가능하고 실제로 IC3과 IR4는 영업 시 병결 운행하기도 하나, 오늘의 열차는 평범한 IC3 3편성 병결 운행이다.

타고 나서 자리를 잡으려는데 어… 칸마다 행선지가 다 다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덴마크 중부 퓐 섬까지는 같이 다니다가 덴마크 서쪽에서 갈라진다. 어차피 오덴세는 갈라지기 전이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앉아도 되었다. 열차는 어느덧 서쪽으로 가면서 S-토그 종점을 지나서 스토레벨트 해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현재 열차가 스토레벨트 해협을 넘을 때에는 교량터널을 따라서 진행하며, 도로 운행 시에는 교량-섬-교량 식으로 진행한다. 과거에 철도교들이 건설되기 전에는 열차 페리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으며, 유럽 대륙과 덴마크의 섬과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연결된 것은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다. 차후 설명할 오덴세의 철도 박물관에서는 덴마크의 이러한 철도 역사를 다루고 있다.

IC3

MQ/Desiro

오덴세 역

터널과 다리를 통해서 바다를 한 번 넘고 나니 오덴세 역에 도착했다. 오덴세 역 라커에 가방을 밀어넣은 다음 역 바로 옆에 있는 덴마크 철도 박물관으로 갔다. 덴마크에서 사용하였던 철도 차량과 함께 어떤 식으로 바다를 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흔히 네덜란드의 역사가 물의 역사라고 하지만, 덴마크는 내해가 아닌 바다와 싸워 왔다. 특히 국토가 여러 섬에 걸쳐 있기 때문에 섬과 섬을 이동하는 수단 건설은 필수적이다. 최서단 릴레벨트 해협부터 최동단 외레순 해협까지, 유럽 대륙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를 어떻게 연결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덴마크 철도 박물관의 또 다른 재미난 볼거리는 증기 기관차 본선 운행과 MSTS 등 열차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1920년대에 생산되어 실제로 석탄을 넣는 증기 기관차와 객차가 철도 박물관을 지나는 본선 주변을 달린다!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본선과 나란히 붙어 있는 선로를 사용하지만, 본선상의 열차와 경적을 주고받는 모습은 평소 보기 상당히 힘들다. 박물관 내에는 어린이를 위한 MSTS 게임도 깔려 있었고, 놀이방 시설도 있었다. 그 당시까지 가 본 철도 박물관 중에 이런 게임이 있는 박물관은 보지 못했다.

덴마크 철도 박물관에서 보존 중인 증기 기관차

덴마크 철도에서 사용했던 차량 (1970년대~현재)

덴마크 철도 박물관의 MSTS

덴마크 철도 박물관

오덴세의 철도 박물관에서 감동을 받은 다음 시내에 있는 안데르센 박물관으로 나왔다. 박물관 내부 전시는 안데르센의 생애와 작품 활동이며, 한국어를 포함한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된 동화집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밖에서는 동화 공연이 있었으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알아듣지는 못했다.

안데르센 박물관

안데르센 박물관

이제 점심을 먹고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월요일이었다! 오덴세에는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볼거리가 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월요일이라서 그런지 많은 박물관들이 문을 닫았다. 시내를 돌아다녀봤자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것 같아서 더 서쪽으로 가는 오르후스행 열차를 탔다. 이쯤에서 내 여행 전략을 바꾸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많이 걷기도 하면서 돈도 최대한 아껴서 배고픔을 참았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쉬면서 다니기로 결심하였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정신줄 놓은 물가에서 벗어나서 오덴세 정도 내려오니 물가도 좀 현실화되었고, 체력을 극한까지 쓰는 여행이 좀 피곤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오르후스에 예약해 둔 호스텔에 들어간 다음 일단 쉬기부터 했다. 도시 자체가 작아서 그런지 호스텔에 오는 사람이 많지도 않았다.

오덴세 역에서 돌아면서. MQ.

오덴세 역에서 돌아면서. MQ.

그 동안 여행은 전부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과 교통편 때문에 쉬면서 다니지는 못했지만, 오늘의 오르후스는 처음 계획 때부터 쉬는 걸 가정했기 때문에, 딱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 간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일단 오르후스 역으로 가서 독일로 들어갈 기차표를 끊은 다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시내 중심가의 Nordea 은행 지하에는 바이킹 박물관이 있다. 바이킹 시대의 유적을 복원해서 전시해 두었고 (은행 지하에!) 오르후스 지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오르후스 역

오르후스 시내 중심가

ARoS

바이킹 박물관에서 나온 다음 미술관 ARoS에 가 보려고 했으나, 좌절스러운 입장료 때문에 포기하고 주변에 있는 여성 박물관으로 갔다. 덴마크의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어떻게 발달해 왔고, 세계의 비슷한 사례를 모아 두었다. 당시에는 학교 내 체벌 금지 문제로 시끄러웠는데(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덴마크에서는 1954년에 학교에서 체벌을 폐지했다는 말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가 본 곳 중에서 이러한 종류의 박물관은 드문 편이었다.

오르후스 역사 박물관

실내 전시

돌아오는 길에 호스텔 주변 바닷가를 잠시 걷다가 들어갔다. 드디어 독일만 여행하면 된다는 생각에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오전에는 ICE-TD 열차를 타고 독일 함부르크까지 내려간다.

번역: 노키아 미고 이야기

2008년 노키아 마에모를 처음 접하고, 2010년 노키아와 인텔이 미고를 만든다고 했을 때 나는 충분히 노키아의 행동에 박수를 쳐 주었다. 그러나 나오기로 했던 미고 휴대폰은 계속 연기되기만 했고, 2011년 N9를 마지막으로 노키아는 윈도 폰을 내놓기로 완전히 돌아섰고, 결국 인텔은 노키아 대신 삼성을 파트너로 삼아서 타이젠을 개발하고 있다. 미고는 지금 생각해 보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플랫폼이었으나, 엘롭의 판단 실수로 인하여 묻힐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록 지금의 윈도 폰 제조 업체인 노키아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고를 그대로 묻어버리기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서 이 글을 번역해 본다.

원래 이 글은 핀란드 사이트 Taskumuro에 핀란드어로 게재되었으나, 그 쪽 사용자들이 영어로 번역한 적이 있으며, 이 글은 영문 번역본의 한국어 중역본이다. 영문 원역본은 다음에 있다:
The story of Nokia MeeGo


2011년 2월 11일 노키아는 새로운 전략을 공개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하기 시작하였다. 윈도 폰 운영체제는 노키아 스마트폰의 새로운 플랫폼으로 선정되었다. 미고는 오픈소스 모바일 운영 체제 프로젝트로 지속하며,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장치, 플랫폼, 사용자 경험 시장 조사용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으면서 더 이상 미고에 투자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미고는 2010년 초부터 인텔과 함께 개발 중이었다. 새로운 전략은 미고를 포기하고 2년간의 개발 끝에 장치를 한 대만 출시한다는 것이었다.

노키아의 새로운 전략이 공개되기 1주 전, 스티븐 엘롭이 노키아 직원에게 보낸 메모가 공개되었다. 그의 불타는 플랫폼 메모에서, 엘롭은 심비안과 미고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애플과 구글의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노키아와 미고의 개발 상황은 최근 몇년간 혼란스러웠으며, 새로운 전략이 공개된 것이 N9 개발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미고 팀과 다른 노키아 직원들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전념하였다. 그 목표는 미고 기반 제품을 완성하고 2011년 내로 출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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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는 미고 개발을 공개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공개된 그림은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N9이며, 노키아를 다시 스마트폰 시장의 왕좌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제품이었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약 및 윈도 폰 전략에 의해서, 미고 팀은 N9 출시 및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 해체되었다. 저가형 휴대폰에 탑재될 예정이었던 멜테미(Meltemi) 운영체제 역시 잊혀졌고 모든 가용 자원은 윈도 폰에 투입되었다. TaskuMuro.com에서는 노키아 스마트폰 개발을 따라가고 있었고, 리눅스 기반 마에모와 미고 운영체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고의 역사에 관해서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에, 2012년 여름 MuroBBS 포럼에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미고 개발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뒷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익명으로 남기 원했던 과거 및 현재 노키아 직원들이 응답하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총 10명의 직원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 결과에 의해서 노키아의 거대한 미고 퍼즐은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 글은 여러 익명 출처에서 얻은 정보와 인터뷰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료를 교차 검증하고 인터넷에 유출된 정보와 대조해 보았다. 독자들은 이 인터뷰가 몇 년 간의 개발 이후 방치된 상태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진행되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핀란드에서만 5000명에 가까운 노키아 직원들이 해고되었기 때문에, 인터뷰 대상자의 말에서는 실직, 실패, 좌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의 원 작성자는 Sampsa Kurri이며, 그는 이 글에 언급된 모든 회사와 관계가 없다. 영문 번역은 MuroBBS 사용자들이 기여하였다.

미고 이전의 노키아: OSSO와 마에모

2005년부터 노키아 내의 매우 작은 그룹은 리눅스를 기반으로 하는 마에모(Maemo) 운영 체제와 이를 사용하는 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이 팀은 OSSO (Open Source Software Operations)라고 알려져 있었고, 초기부터 팀원이었던 사람에 의하면 팀 목표는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2007년 OSSO 팀은 마에모 팀으로 개칭되었고, 2010년 노키아와 인텔의 파트너십에 의하여 미고 팀으로 개칭되었다. 팀 창설 당시에는 아리 약시(Ari Jaaksi)가 지도하고 있었으며, 2010년 10월 사임하고 HP로 이직하여 webOS 운영 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 770노키아 770

첫 번째 장치는 2005년에 출시된 노키아 770이었으며, 2007년 후속작 노키아 N800이 출시되었다. 두 제품 모두 매우 적은 자원만 사용하여 개발되었다. 팀 구성원은 수십명 정도였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적은 편이었다.

노키아 N800노키아 N800

개발 과정을 방해하는 관료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팀원들은 제품 개발을 자신의 취미처럼 생각하였다. 제품 생산은 최상위 조직이나 전문가 집단이 개입되지 않은 하청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제한된 자원과 하청 때문에 구성 요소 선택은 단가를 최우선 순위로 두었고, 공간 배치는 그 다음 우선 순위었으며, 하드웨어 성능 한계는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최대한 극복하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투자를 아낄 수 없었기 때문에 저렴한 구성 요소를 사용하여 비용을 절약하였고, 이는 몇 주 동안 성능 최적화를 위한 또 다른 일거리로 되돌아왔다.

인터뷰에 참가하였던 노키아 사람들은 하청을 너무 많이 주었다고 지적하였다. 회사 내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기반을 쌓아나가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OSSO 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청 업체의 작업 결과물 품질을 제어하기 어려웠고, 계약이 제대로 감독되지 않았다. 하청 업체에서는 초기에 최상의 전문가들을 제시하였다가 이후 다른 사람을 투입하는 식으로 속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인도에서 작성된 품질이 안 좋은 코드나, 영어 실력 문제로 중국 및 일본 개발자와 대화하기 힘들었다. 핀란드의 프로젝트 관리자 입장에서 이 모든 문제는 더 많은 일거리와 시간 지연으로 되돌아왔고, 결국에는 품질 개선을 위하여 또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팀 크기가 커지면서 관료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관료주의의 영향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의 민첩성이 감소하였고, 개발 속도에 영향을 주었다. 미고 팀 개발자들이 제안한 개선 사항 제안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고, 이 때문에 반영되지 않은 개선 사항이 많이 생겼다. 한 예로는 Swipe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현재 프로그램을 닫는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는 제스처가 있다. 이 제안 사항은 바로 거부되었으나, 개발자는 포기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안을 테스트해 보라고 하였다. 이 결과로 노키아 내부 버그 추적 시스템에서는 수백개의 메시지가 오고 갔고, 관리자와 개발자들은 이 기능을 가지고 논쟁하였다. 마침내 PR 1.1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에 이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갔다.

두 플랫폼을 둘러싼 노키아의 내부 경쟁은 N810 장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2007년 말에 출시되었고 휴대폰 기능이 제외되었다. 노키아의 첫 마에모 휴대폰이 될 수도 있었으나, 휴대폰 기능이 제외된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결과물이었다.

노키아 N810노키아 N810

우리가 인터뷰한 마에모 팀 구성원에 의하면, 심비안 팀 관리자들은 N810과 심비안 기반 커뮤니케이터 ((역주: QWERTY 키보드가 달려 있고 메일 기능에 특화된 스마트폰. 커뮤니케이터 이름을 달고 나온 스마트폰으로는 노키아 9000 시리즈 및 E90이 있다. 위키백과 참고.))와의 경쟁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미 2005년과 2006년에도 몇몇 사람들은 심비안이 오래된 플랫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비안에 효율적인 터치스크린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추가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심비안 팀과 마에모 팀 사이의 내부 경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 N900노키아 N900

N810이 발표된 이후 마에모 팀에서는 대중을 위한 스마트폰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계획은 N810에 휴대폰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코드명 ‘Rover’라는 새 장치로 바뀌었고 N900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N900은 하청을 많이 사용하는 등 기존 마에모 장치와 같은 방법론으로 개발되었다. 전체적인 일정에 대한 계획 없이 한 번에 한 부분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 방법론은 어려웠다. 놀랍게도 개발 팀에서 사용 가능한 시간 및 예산이 증가할수록 개발 과정은 더 힘들어졌다.

N900은 마에모 5 운영체제(코드명 Fremantle)를 사용하였다. Hildon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GTK+ ((역주: GNOME의 기반이 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툴킷. 공식 홈페이지.))로 작성되었다. N900 개발과 동시에 마에모 6(코드명 Harmattan)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Qt ((역주: KDE의 기반이 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툴킷. GTK+와는 당연히 호환되지 않는다. 공식 홈페이지.))로 다시 작성될 예정이었다.

노키아에서는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위하여 심비안과 마에모를 같이 개발하기로 하였다. 심비안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었고, iOS와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시장을 어떻게 바꿀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노키아 내부에서 마에모 팀은 심비안 팀의 관리자들이 해고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회사 내의 위치를 사용하여 마에모 개발을 최대한 방해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노키아 마에모 + 인텔 모블린 = 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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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에서 노키아와 인텔은 각자 개발하고 있었던 리눅스 기반 모바일 운영 체제를 미고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결합하기로 하였다.

당시 노키아는 2009년에 출시된 N900 스마트폰에 탑재된 마에모 5 운영체제의 후속작이었던 마에모 6을 개발하고 있었다. 인텔은 2007년부터 모블린(Moblin)을 개발하고 있었으며, 모블린 버전 2는 x86 아톰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넷북을 대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미고는 Qt 개발 환경을 사용하였고 모블린의 코어를 받아들였다.

노키아와 인텔은 장치 제조사, 통신사, 반도체 제조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이 미고를 큰 규모로 사용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보도 자료에 의하면 노키아와 다른 제조사들은 2010년에 미고 기반 장치를 출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노키아는 인텔과 연합하여 마에모의 신뢰성을 더 높이려고 하였으나, 두 대기업의 개발 팀을 합치는 것은 문제가 컸고 개발 과정을 더 지연시키는 혼란이 있었다.

Harmattan

Harmattan출처: Kipp Jones

노키아는 2008년부터 마에모 6 운영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노키아와 인텔이 프로젝트를 합치려고 발표하였던 시점에서 상당한 개발이 진행되어 있었다. 노키아에서는 마에모 6(코드명 Harmattan)의 개발을 계속 진행하기로 하였고, 미고와 최대한의 호환성을 보장하려고 하였다. 노키아 마에모의 코드명은 바람 이름에서 따 왔으며, Harmattan은 서부 아프리카에 부는 무역풍의 이름이다.

Harmattan은 마에모와 (인텔과 함께 개발할) 미고 사이의 다리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었다. Harmattan은 미고 1.2와 API가 호환될 예정이었다. 미고의 RPM 패키지(레드햇 패키지 관리자) 대신 데비안의 .deb 패키지 관리자를 사용하였다. ((역주: iOS의 .ipa, 안드로이드의 .apk와 같은 개념. 다만 RPM이나 DEB은 이 둘보다 역사가 더 오래 되었음))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도구 문제

2008년 노키아는 노르웨이 트롤텍에서 Qt를 매입하였다. ((역주: 매입 이후 노키아는 2011년 Qt의 상용 라이선스를 Digia에 매각하였고, 2012년에는 Qt 프로젝트 전체를 Digia에 매각하였다. 국내 언론에서는 노키아의 모바일 환경 개발 툴킷이라고만 소개하였으나, Qt가 사용되는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Qt는 다중 플랫폼을 지원하는 C++ 기반 소프트웨어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툴킷이다. Qt를 인수한 이후 심비안과 마에모 팀은 Qt의 QGraphicsView ((역주: Qt의 그래픽 처리 시스템. 이미지 처리를 위주로 설계되었다. Qt 프로젝트 문서 참조.))를 사용하여 각자 스마트폰 OS UI 개발 도구를 작업하기 시작하였다. 심비안 팀의 개발 도구는 Orbit으로 알려졌으며, 마에모 팀의 도구는 libdui(Direct UI Library)로 알려져 있다. 수백명의 노키아 직원들이 투입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필요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libdui 개발 중 QGraphicsView 자체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Qt 내부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였다. QGraphicsView는 위젯 지원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QGraphicsView 상에서 위젯 지원을 별도로 개발해야 하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도구의 요구 사항이 계속 바뀌면서 팀 내부 문제가 생겼고, 프로그램은 완성되지 않은 libdui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었다.

심비안 팀에서 개발되고 있었던 Orbit은 libdui와 매우 닮았으나 서로 코드를 공유하지 않았다. 때때로 Orbit이 libdui를 대체한다는 루머가 있었고, 어느 시점에서는 대체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Orbit이 libdui를 대체하려면 Harmattan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전부 새로 써야 하였다. 이 계획은 결국 취소되었지만, 이미 몇 달의 시간을 낭비하였다.

Harmattan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libdui로 작성되었고, 이후 이름이 libmeegotouch로 변경되었다. 라이브러리를 지원하기 위해서 자바스크립트를 확장하는 QML ((역주: 원문에서는 Qt Meta-Object Language로 되어 있으나 기능상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 삭제하였다. Qt 4.x 후반대에 추가된 UI 및 비즈니스 로직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 기존의 Qt 위젯과는 호환되지 않음. Qt 프로젝트 문서 참조.))로 개발된 Qt Components가 개발되었다. Qt Components를 통하여 미고와 심비안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을 융합할 수 있었고, QML로 작성된 프로그램은 두 운영체제에서 동시에 작동할 수 있었다. ((역주: 최종적으로 나온 결과물은 결국 심비안과 마에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위젯에 차이가 생겨서 당초 목표를 100%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마에모 6 사용자 인터페이스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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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와 인텔이 합작하기 전인 2009년 10월 열린 마에모 서밋에서 노키아는 Qt로 개발한 마에모 6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컨셉을 공개하였다. 마에모 6은 “특별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의 제품에 담아내려고 하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데스크톱 환경은 여러 그리기 영역(캔버스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고 애플릿, 위젯, 실행 아이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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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모 6은 가로 및 세로 화면 모두에서 정전식 터치 스크린의 멀티터치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노키아는 기존 마에모 장치에서 세로 화면을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이는 큰 변화를 뜻했다.

참고: UMPC Portal, 마에모 6 초기 컨셉

Harmattan 사용자 인터페이스

초기 컨셉

Harmattan UI는 인간 행동과 개발 과정을 연구하는 프레임인 활동 이론(Activity Theory)을 기반으로 하였다. 활동 이론의 목표는 사회와 개인을 이해하고,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활동 이론은 러시아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가 창안하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목표는 사람들이 어떻게 작업을 합치고 다른 사람과 통신하는지 정보를 활용하고, 기술 기반 작업 모델에 사람을 끼워맞추는 대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하여 일하는 모델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시스템은 사용자 간의 통신 수단에 적응할 수도 있다.

N900에서 인기있는 기능이었던 실행 중인 프로그램을 단축 아이콘으로 보여 주는 것은 Harmattan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에 차용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필요 사항은 모바일 인터넷 지원, 소셜 미디어 인지, 멀티태스킹, 개인화, 초보자 및 전문가 모드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장치를 꾸며 나갈 수 있는 방안이 제시되어야 했다.

현재 통신 사업자, 외부 프로그램, 장치 상태를 보여 주어야 했고, 사용자가 시스템을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야 했다. 사용자는 배터리 상태, 신호 강도, 날짜와 시간을 알고 있어야 했다. 모든 알림 메시지와 미리 보기는 지정된 하나의 장소에서 표시되어야 했다.

주 화면에서는 연락처, 전화, 메일, 브라우저, 검색과 같은 주요 기능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상태 영역에는 사용자에게 영향을 주는 배터리를 사용하는 작업 등의 정보를 표시해야 했다.

2009년 봄에 Flash 기반 Harmattan UI 초안이 만들어졌다. 아이디어 초기에는 소수의 캔버스가 존재하였고 캔버스 안에는 적은 위젯만이 존재하였다.

첫 Harmattan UI

마에모 조직의 내부 대화에서 단점이 지적되었고, 원래 컨셉은 더 복잡해졌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은 심비안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대폭 개선한 것이었다. 위젯을 추가할 수 있는 홈 화면과 작업 전환기, 알림 영역, 프로그램 실행기 등이 있는 홈 화면으로 구성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원본 Harmattan UI, 출처: TechCrunch

2009년에는 디자인 팀이 변경되었고 내부 소통 문제로 인하여 원본 컨셉과 배경 이론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였다. 화면에는 소수의 캔버스 대신 많은 대형 캔버스들이 등장하였고, 그 안에는 수많은 위젯이 표시되었다. 요구 사항은 계속 커졌고 홈 화면은 하나 이상으로 늘어나야 했다. 개발자 입장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점점 구성을 잃어 가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으나, 사용자 테스트에서는 계속 좋은 평을 받았다. 원래 의도는 Harmattan UI에 사용될 그래픽 구성 요소를 찾는 것이었으나, 그 결과물은 사용 가능한 UI의 첫 번째 버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기존과 많은 차이가 났으나, 매우 복잡해진 탓에 원래의 심리학 이론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노키아의 첫 Harmattan 장치인 코드명 Columbus의 출시 마감 기한은 지나갔고 Harmattan 개발자들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Simple Dali UI

사용자 삽입 이미지Simple Dali UI, 출처: Engadget

2009년 후반에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담당한 관리자들은 원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곧 폐기되었다. 2009년 12월 Simple Dali UI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사고 모델이 완전히 변경되어서 과거 활동 이론의 흔적은 삭제되었다.

홈 뷰는 간단명료하게 설계될 예정이었다. 빠른 실행 바 및 프로그램 실행기 버튼(화면 가운데)만이 보일 예정이었다. 위젯은 완전히 사라졌고 멀티태스킹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UI는 대규모로 간략화되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시장에 나와 있었던 다른 스마트폰과 비슷해졌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개발자 입장에서는 깔끔하고 친숙해 보였으나, 경쟁력이 강하지는 못하였다. 리눅스와 오픈소스는 사용자 입장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아니었다.

Simple Dali UI는 2010년 7월, 6개월 이후에 개발이 끝날 것을 목표로 하였다. 개발 테마는 “Dali as your primary device”였다. 계획에 따르면 소프트웨어의 모든 부분이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주 장치 수준이 되어야 했다. 결국 목표를 달성하였고 거의 준비가 다 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계속 다듬고 있었으나, 목표는 더 높아졌다.

2010년 봄에는 Simple Dali UI의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멀티태스킹만으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장치를 팔기 위한 충분한 차이점이 없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UI에는 새로운 점이 반영되었고 과거의 요구 사항도 일부 이루어졌다.

Swipe 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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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에는 Harmattan의 세번째 UI가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코드명 Seattle UI의 시제품은 며칠 안에 개발되었다. 첫 컨셉 그림만 보았을 때에는 스마트폰 UI 중 가장 좋은 UI임이 드러났다. Seattle UI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투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Simple Dali UI에서 무시되었던 과거 Harmattan UI의 기본 원리가 일부 반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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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했던 여러 사람들에 따르면 Seattle UI/Swipe UI의 기본 개념은 뉴욕의 80/20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과거 애플과 어도비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웹 사이트의 실적 페이지에서는 노키아 로고가 보이지만, Swipe UI에 대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컨셉은 노키아 외부에서 탄생하였으나, 프로그램이 사용할 스타일은 노키아에서 개발하였다.

Swipe UI와 코드명 Lankku 장치는 미고 팀에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 모든 사람들이 제품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남은 과제는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것과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었다.

노키아에서 개발한 Harmattan 및 미고 장치

마에모와 미고의 초반부터 OSSO에서 일했던 직원에 의하면, 카이 외이스태뫼(Kai Öistämö,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노키아 Device 사업부의 관리자였음)의 원래 미고 전략은 애플처럼 1년에 한 대씩 플래그십 휴대폰을 출시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이 전략 하에서는 동시에 여러 미고 장치를 출시할 계획이 없었다. 한 대의 휴대폰을 출시하는 것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갔고, 개발자들은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Columbus (RM-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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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의 첫 Harmattan 장치의 코드명은 Columbus였으며, 노키아와 인텔의 미고 협력이 알려진 몇 달 후인 2010년 상반기에 출시될 예정이었다. Harmattan UI를 개발하는 동안 생긴 혼선과 지연 때문에 Columbus는 원래 출시 스케줄을 맞추지 못하였다. 2009년 말 코드명 Dali에 탑재될 Simple Dali UI 개발이 시작되면서 취소되었다.

Columbus 휴대폰의 디자인은 2010년 4월에 출시된 심비안^3 기반 노키아 N8과 비슷하였다. Columbus 출시 취소가 결정된 이후 이 디자인은 심비안 휴대폰에 사용되었다. 마에모 팀에게는 충격이었다.

My Nokia Blog 사이트에서는 Columbus 장치의 사진을 공개하였다. 화면의 로고 배치에 의하면 가로 모드로 사용될 것을 염두하였다. 이 그림에서는 장치의 아래쪽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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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에는 칼 자이스 렌즈가 장착된 1200만 화소 카메라가 보이며, N8에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출처: My Nokia Blog, Exclusive: Leaked Images of RM-581 “Columbus”Harmattan Prototype

N9-00 “Dali” (RM-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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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mattan UI 개발이 지연되고 Columbus가 취소된 이후,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개발 플랫폼 장치인 코드명 Dali가 공개되었다. Dali 장치는 2010년 봄에 개발된 Simple Dali UI의 개발 플랫폼이었으며, 2009년 말에 취소된 초기 Harmattan UI를 대체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림 출처: Flicker, rsuplido

Dali 장치는 N9-00으로 출시될 예정이었다. 출시 시기가 되었을 때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출시를 취소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미 92,000대의 장치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Dali 장치는 N9 출시에 맞추어 개발자 전용 장치인 N950으로 출시하기로 했다. 구입할 수는 없으나 노키아에서 개발자에게 대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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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i 장치의 외형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고, 854×480 해상도의 4인치 LCD가 장착되어 있다. TI의 ARM Cortex A8 프로세서와 PowerVR SGX530 그래픽을 포함하는 OMAP 3630 칩셋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1GB 메모리가 장착되어 있다. 1200만 화소 카메라 모듈이 장착되어 있다.

Engadget, Nokia’s QWERTY-slidin’ N9 shows up in the wilds of China

N9-01 “Lankku” (RM-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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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1일 노키아는 코드명 Lankku인 N9를 발표하였다. N9는 미고 1.2 Harmattan 운영체제를 사용하였다. 미고 휴대폰이라는 말 대신 디자인과 Swipe UI가 마케팅 주안점이었다. N9 바디는 폴리카보네이트 재질 유니바디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단에는 곡면이 있는 강화 유리가 장착되어 있다. 노키아는 이 디자인을 루미아 윈도 폰에 재활용하였고 여러 디자인 상을 수상하였다. Swipe UI의 구성 요소는 노키아의 저가형 Asha 휴대폰에도 사용되었다.

Lankku 휴대폰은 N9-01로 출시될 예정이었다. 2011년 4월 발표된 노키아 스마트폰 전략에 의하면 코드명 Dali인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N9-00이 취소될 예정이었다. 그 결과로 N9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스마트폰은 코드명 Lankku이다.

N9의 하드웨어 사양은 Dali와 동일한 OMAP3630 SOC와 1GB RAM을 채용하고 있다. 뒷면에는 800만 화소 칼 자이스 렌즈와 듀얼 LED 플래시가 장착되어 있다.

N9 배송은 2011년 9월에 시작되었고, 이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몇 번 출시되었다. 2012년 7월에 가장 최근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PR1.3이 출시되었다. 며칠 후 노키아의 미고 팀의 많은 구성원이 소프트웨어 개발 관리자 Sotiris Makrygiannis의 방향에 의해서 회사를 떠났다.

“Lauta” (RM-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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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는 2011년 후반 코드명 Lauta인 휴대폰을 출시하려고 하였다. 기존의 Lankku 휴대폰에 QWERTY 키보드가 장착된 형태이다. 휴대폰 외형은 N9와 같은 폴리카보네이트 유니바디로 디자인되었으며, 차이점은 슬라이딩 QWERTY 키보드이다. Lauta는 N9와 같은 OMAP3630 SoC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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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900의 후속작으로 출시될 수도 있었으나 완성된 제품의 형태로는 결국 출시되지 못했다. 노키아는 출시 직전까지 모델명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Lauta의 공식 명칭은 알려져 있지 않고, 결정되었는지 여부 역시 알 수 없다.

그림 출처: My Nokia Blog, Leaked Prototype: Nokia “Lauta” RM-742 –Cancelled “Immediate” N9 Successor

“Soiro” (인텔 미고)

노키아는 인텔 아톰 SoC와 x86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장치인 코드명 “Soiro”를 개발하였다. 이 장치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Lauta”와 같은 슬라이딩 QWERTY 키보드를 장착하였다.

“Soiro”는 Ilmatar 플랫폼 ((역주: 마에모의 코드명은 초기 릴리즈인 Scirocco, Gregale을 제외하면 B부터 시작하여 알파벳 순서로 진행한다. 현재까지 출시된 OS의 코드명은 Bora, Chinook, Diablo, Fremantle, Harmattan이다. E 자리에 올 Elephanta는 Diablo와 Fremantle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개발이 취소되었고, F와 H 사이의 G는 이전에 사용된 Gregale 때문에 건너뛰었다. H 다음에 I가 오는 것으로 생각해 보면 후속작이 될 수도 있었다.))을 탑재할 예정이었다. 소프트웨어 설치에는 RPM 플랫폼을 사용하고, 인텔 하드웨어에 맞게 수정되었다. 인터뷰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따르면 Ilmatar 플랫폼과 인텔 하드웨어를 사용한 개발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Ilmatar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다른 접근을 할 예정이었으며, 그 목표는 현대 기술을 사용하여 사용자 정보를 알아내고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정보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었다. Ilmatar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노키아의 인텔 기반 미고 장치의 마케팅 포인트가 될 예정이었다.

“Senna” 태블릿

사용자 삽입 이미지Engadget, Nokia collects design patent for a tablet

인터뷰에 참가한 많은 과거 노키아 구성원들은 특허 출원에 등장한 태블릿인 Senna가 실제 개발 중이었다고 밝혔다. Senna 장치는 기본적으로 거대한 N9 개념으로 개발되었다. ST-에릭슨의 NovaThor U8500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후면 카메라로 1080p 동영상 촬영을 지원하였다. Senna는 Harmattan 대신 공개된 미고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프로그램은 N9와 비슷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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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8500은 듀얼 코어 ARM Cortex A9 CPU, ARM Mali 400 GPU, HSPA+ 모뎀을 하나의 칩에 통합하였다.

N9 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태블릿 프로토타입을 2010년 후반기에 CEO 스티븐 엘롭에게 제시하였다. 얼마 후 미고 전략을 포기하면서 Senna 장치 역시 잊혀졌다.

Engadget, Is this Nokia’s tablet-shaped MeeGo device?
Fonearena, Nokia MeeGo Device Based on ST Ericsson U8500 Platform

노키아와 인텔의 협력

올리페카 칼라스부오의 시기 노키아는 미국 이외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역주: 이 때문에 미국에서의 휴대폰 시장 점유율에서 노키아는 항상 순위권 밖이었다.)), 칼라스부오 시기가 끝날 때의 노키아는 미국에서 힘을 전혀 쓰지 못하였고,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애플 아이폰과 구글 안드로이드는 심비안보다 더 쉬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공하였고, 노키아는 미국 고객과 통신사에게 글로벌 제품밖에 제시하지 못하였다.

최소한 2010년 초반에는 미국 통신 시장에 LTE 네트워크가 보급되고, LTE 지원 휴대폰이 주류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당시 노키아는 차기 미고 장치에 들어갈 하드웨어 구성 요소를 결정하고 있었다.

2008년 10월 TI는 스마트폰 베이스밴드 칩셋에 대 이상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무선 사업부를 매각하기로 했다. TI는 이를 통하여 2억 달러를 절약하고 OMAP 4 프로세서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노키아는 미고에서 더 이상 TI OMAP 칩셋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노키아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와 베이스밴드 칩셋을 같은 제조사에서 구입하는 방침 때문이었다. 노키아는 초기 마에모 장치 및 미고 장치에 TI OMAP 칩셋을 사용하고 있었고, 각각 장치에 탑재된 프로세서는 다음과 같다.

  • 770: OMAP1710
  • N800: OMAP2420 (330MHz)
  • N810: OMAP2420 (400MHz)
  • N900: OMAP3430
  • N950, N9, Lauta: OMAP3630 ((역주: 원문에서는 OMAP3640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 장치는 OMAP 3630을 탑재하였다.))

노키아는 OMAP을 대체하기 위해서 퀄컴과 인텔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인텔로 결정하였다. 퀄컴은 운영체제와 칩셋이 연동되는 가장 낮은 단계인 하드웨어 드라이버는 지원해 주었으나, 운영체제 개발은 지원해 주지 않았다. 인텔은 미고를 통하여 둘 다를 지원해 줄 수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Motorola, Driving 4G: WiMAX & LTE (PDF)

인터뷰했던 사람은 인텔과 협력하는 것을 재앙으로 설명하였으나, 퀄컴 역시 안드로이드나 윈도 폰 같은 다른 프로젝트에 밀려서 미고를 지원해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인텔은 미국에서 사용되는 CDMA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북미 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다.

노키아와 인텔은 LTE와 경쟁하는 4G 이동통신 기술 WiMAX를 지원하였다. 미국에 최초로 설치된 4G 네트워크는 Sprint의 WiMAX 네트워크였으나, 실제로는 이론적 최대 속도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느렸다. ((역주: 삼성전자-KT-인텔이 와이브로 기술 연합을 이루었으나, 결국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었다.))

LTE의 더 나은 호환성, 신뢰성, 전송 속도 때문에 여러 통신 사업자들은 LTE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가 차세대 하드웨어를 선정할 때 인텔에서는 LTE 지원 계획이나 예정이 없었다.

지금도 인텔은 아톰 메드필드 SoC에 LTE 베이스밴드 지원을 추가하지 못했으나, XMM7160 베이스밴드 칩을 테스트하기 시작하였고 2013년에 출시한다고 밝혔다. ((역주: 인텔은 인피니언 무선 사업부를 인수하였고, 주 목적은 아톰 칩셋에 같이 사용할 베이스밴드 칩셋이다. 인피니언 베이스밴드 칩은 아이폰 등 여러 스마트폰에 사용되었다.))

TechCruch, Intel Confirms Medfield x86 Chips Don’t Support LTE Yet

퀄컴과의 협상은 이후 다시 시작되었고, 인텔 기반 미고 장치를 출시한 이후 퀄컴 스냅드래곤 기반 미고 장치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노키아는 2011년 초 미국 시장을 겨냥한 퀄컴 스냅드래곤 기반 N9(RM-716으로 추정됨)를 개발하고 있었다. 노키아가 윈도 폰으로 전략을 변경한 이후 이 플랫폼은 다시 사용되었다. 루미아 800(코드네임 Sea Ray)의 프로토타입은 N9가 발표된 이후 공개되었고, N9와 같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인텔의 스마트폰 플랫폼: 무어스타운과 메드필드

LTE 미지원 이외에도, 또 다른 개발자에 의하면 인텔은 미고 개발을 자기 쪽에서 계속 지연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고는 x86과 ARM을 모두 지원하기로 설계되었고, 인텔 아톰 기반 미고 플랫폼 Ilmatar는 준비되지 않았다. 인텔은 x86 SoC 때문에 패배할 것을 두려워했고, 운영체제 개발의 많은 부분은 노키아에게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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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봄 인텔은 스마트폰 플랫폼 무어스타운을 공개하였고, 45nm 공정 CPU 린크로프트와 65nm 공정 칩셋 랭웰, 별도의 베이스밴드 모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톰 Z6xx 칩셋은 1.2-1.9GHz 속도로 작동하였고, CPU 코어 하나와 GMA 600 GPU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어스타운 플랫폼을 실제로 채용한 회사는 없으며 인텔에서 이 플랫폼은 결국 버려졌다. ((역주: LG에서 제작한 GW990 시제품이 있긴 했다.))

2011년 초 인텔은 32nm 공정 기반 메드필드 플랫폼을 발표하였고, 과거 두 칩에 나뉘어 있던 기능을 펜웰 SoC에 통합하기로 하였다. 펜웰 플랫폼은 하이퍼스레딩 지원 1.2GHz 아톰 프로세서, PowerVR SGX540 GPU, 512KB L2 캐시와 LPDDR2 메모리 컨트롤러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모토로라 레이저 i, 인텔 메드필드 기반 스마트폰

2012년 레노버 K800, 오렌지 샌디에이고 등 메드필드 기반 안드로이드 휴대폰이 발표되었다. 모토로라 레이저 i는 인텔 기반 스마트폰 중에서는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2GHz 아톰 Z2460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있다.

2010년 노키아 CEO 스티븐 엘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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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엘롭이 CEO로 취임한 이후 가장 큰 변경점은 북미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었다. 엘롭의 시각에 의하면 북미 시장에서 발생한 트렌드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그 예로 들었다. 이 때문에 노키아는 북미 시장에서 다시 성공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노키아로 온 이후 그는 “Sea Eagle”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노키아 스마트폰 전략의 구조를 개혁하였다. 노키아 내부 직원 뿐만 아니라 외부 컨설턴트의 힘을 빌렸다. 그 결과는 심비안과 미고 조합으로는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AT&T는 N9를 판매하기로 계약하였으나, 하드웨어 담당자는 다른 안드로이드 기계에 비해서 하드웨어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Verizon을 위한 별도의 N9(코드명 RM-716)는 이미 개발 중이었다. 2011년에 북미 시장에 N9가 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노키아는 LTE를 지원하는 후속작을 빠르게 출시할 수는 없었다.

엘롭이 노키아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 의하면 노키아는 2011년 말까지 미고 기반 휴대폰을 1대밖에 출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분석 과정에서 미고 팀은 엘롭이나 노키아 이사회에 2010년 연말에 출시할 수 있는 장치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OMAP3630 기반 장치는 빡빡한 일정으로 출시할 수 있었으나, 애플과 구글에 맞설 수 있는 생태계 구축에 LTE와 북미 통신 사업자가 포함되기는 어려웠다. 협력하고 있었던 인텔에서는 저가형 안드로이드 휴대폰에 맞설 수 있는 중가형 칩셋을 찾을 수 없었고, 심비안 휴대폰은 경쟁력을 잃었다.

N9는 2011년 여름에 출시될 준비가 다 끝났으나,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도 폰 전력 때문에 가을에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직에는 의사 결정권이 강화되었고, 프로젝트에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노키아의 내외부 상황이 정리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제품을 출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결국 미고는 다른 장치 제조사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노키아가 시장 리더였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미고 프로젝트에서 노키아의 입김을 우려하였다. 2010년 말 삼성, LG, 소니에릭슨과 미고 채택을 협상하였으나 아무 회사도 미고에 참여하지 않았고 유럽 통신사 역시 투자에 인색하였다.

불타는 플랫폼과 노키아의 새로운 스마트폰 전략 (2011년 2월)

2011년 2월 CEO 스티븐 엘롭이 보낸 메모에서, 그는 회사의 현재 상황, 문제, 미래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엘롭의 메모는 유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느 날 밤에 일어나 보니 서 있는 플랫폼이 불타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그는 결국 유전의 끝까지 갈 수 있었고, 불타서 죽는지 30미터 밑 바다로 뛰어드는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뛰어들기로 결정하였다. 이미 그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추락한 사람은 차가운 물에서 살아남았고, 구조된 이후에 그는 불타는 플랫폼이 행동을 바꾸었다고 하였다.

엘롭은 지난 여러 달 동안 주주, 통신사, 개발자, 공급자, 직원들과 이야기하면서 노키아가 불타는 플랫폼 위에 있다고 하였다. 엘롭이 이야기한 플랫폼은 노키아 휴대폰, 스마트폰, 미고와 심비안 운영체제이다. 이 플랫폼 하에서는 폭발이 한 번만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가 언급한 경쟁자들은 애플 아이폰, 구글 안드로이드, 중국의 여러 휴대폰 제조사들이었다. 엘롭에 의하면 2011년 노키아 제품 중에는 2007년의 아이폰 1세대에 버금가는 제품이 없었으며, 안드로이드는 이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심비안을 앞질렀다고 하였다.

미고는 하이엔드 스마트폰 플랫폼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엘롭에 의하면 현재 시간 상황으로는 2011년 말까지 1대밖에 출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장치간 경쟁은 생태계간 경쟁으로 변하였고, 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케팅,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와 위치 서비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까지 포함하였다. 엘롭은 장치뿐만 아니라 생태계를 포함하는 경쟁이 있어야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노키아는 생태계를 만들거나, 홍보하거나, 생태계에 합류해야 했다.

노키아+마이크로소프트 = 루미아+윈도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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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2월 11일에 발표된 노키아의 새로운 전략에 의하면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고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기로 하였다. 2010년 가을에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폰 7과 이후 세대 운영체제는 노키아의 주 운영체제가 될 예정이었다. 노키아는 디지털 이미징과 같은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로 하였다.

계획된 파트너십에 의해서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폰 플랫폼에 기여하기 시작하였다. 노키아는 하드웨어 디자인, 언어 지원, 소프트웨어 지역화를 돕고, 윈도 폰을 새로운 시장에 보급하기로 하였다.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케팅 부문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상호간의 모바일 장치와 서비스 개발에 협력하기로 하였다. 스티븐 엘롭은 “오늘날 개발자와 통신사와 소비자들은 경쟁력 있는 모바일 제품을 원하고, 이는 장치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서비스, 프로그램, 고객 지원이 함께 있어야 좋은 사용자 경험이 된다”고 런던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밝혔다.

이어서 그는 “노키아와 마이크로소프트는 힘을 합쳐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생태계를 개척하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노키아 루미아 710, 800

노키아는 2011년 9월 노키아 월드에서 루미아 710과 800을 공개하면서 윈도 폰 7.5 장치를 출시하였다.

Jolla에서 미고 개발을 계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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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회사 Jolla는 과거 노키아의 미고 개발자들이 창립한 회사이며, 2012년 7월 트위터를 통하여 공개되었다. 현재 약 6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노키아가 중단하였던 미고 운영체제와 스마트폰 개발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코드명 Sailfish인 미고 기반 운영체제는 RPM 패키징을 사용할 것이고, 2013년 봄부터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Sailfish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Qt와 Mer 코어 ((역주: 마에모/미고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임베디드 리눅스 배포판. 개발 초기에는 N900 출시 이후 N800/N810에 마에모 최신 버전의 기능을 이식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프로젝트는 한동안 진행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미고의 개발이 위태해진 이후 기존 공개된 미고 소스를 사용하여 개발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를 사용하며 스마트폰, 태블릿, 텔레비전 등의 장치에 탑재될 수 있다고 밝혔다.

Jolla는 11월 21일-22일에 열릴 이벤트에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공개하기로 하였다. 그 자리에서 Jolla는 Sailfish 운영체제의 SDK를 공개할 예정이다. Jolla는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Sailfish 기반 장치의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다.

Jolla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반도체 제조사, OEM 및 ODM 제조사, 통신사, 유통사 등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Sailfish 운영체제를 위하여 약 2억 유로를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Jolla는 중국 시장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홍콩에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맺음말

지금까지 인터뷰했던 거의 모든 노키아 전 직원들은 힘들었던 일에도 불구하고 마에모/미고 팀의 성과를 칭찬하였다. 팀의 구성원은 전세계에 뻗어 있으며, 작업 할당은 즐거운 일이었고 직원들은 일에 열정적으로 집중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N9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하지만 조직은 상아탑에서 지휘되었다. 개별 개발자들은 배경에서 일어난 결정과 변화에 대해서 발언권이나 존재 그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였다. 인터뷰했던 많은 구성원들은 당시 자기가 할 일에만 집중하였고, 미고 개발의 전체적인 그림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전체 기술은 격리되어 있었던 여러 팀에서 개발하였고, 아무도 전체가 모였을 때 어떻게 될 지 상상하지 못하였다.

뒤집어 보면 미고가 실패한 이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키아는 미고를 심비안과 같이 개발하였다. 두 플랫폼이 개별적으로 Qt 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기 위해 투입된 자원은 결국 증발하였다. 프로그램은 완성되지 않은 개발 도구로 작성되고 있었고, 마에모 팀 내부에서도 대화가 부족하였다. Harmattan 개발은 Fremantle과 동시에 진행되었으나, 두 팀 간 교류도 없었다. Fremantle을 개발하면서 있었던 실수는 거의 그대로 Harmattan까지 이어졌다.

Harmattan의 뚜렷한 목표나 어떠한 제품에 탑재될지도 불분명했다. 여러 다른 관리자들은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제품 개발을 결정할 주임이 없었다. 여러 하청 업체와 팀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고용되기도 했다. 조직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Harmattan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탑재될 장치에 대한 이해 없이 개발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두 번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변경되었고 거의 2년이 걸렸다. UI 디자인 중에 개발된 장치 두 종류, Columbus와 Dali는 결국 잊혀졌다. 최종적으로 나온 Swipe UI와 N9는 성공적인 조합이었으나, TI OMAP 3은 N9 출시 시기에는 오래된 플랫폼이었고 LTE 지원은 가능성이 없었다.

2009년 초 미고는 노키아의 새로운 심비안이 되었다. 모든 가용 자원과 인력은 미고에 투입되었고, 새로운 구성원들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팀장급 인물이 대거 고용되었으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노키아의 모든 직원들은 미고에 대한 의견을 각자 가지고 있었고 미고 팀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개발에 인텔을 끼워들인 것은 가장 큰 실수였다. 인텔은 x86 기반 아톰 SoC를 몇 년 동안 개발하고 있었으나, x86 기반 스마트폰이 실제로 출시되지는 못하였다. 현재 인텔은 LTE 베이스밴드 칩을 출시한 게 없으며, 최소한 2013년까지 출시 예정이 없다. 또한 인텔은 저가형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경쟁할 수 있는 중저가형 아톰 SoC를 준비하지 못하였다.

노키아가 미고 개발로 힘들어하고 있는 동안 최대의 경쟁자 애플과 구글은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북미 시장을 정복하였다. 결국 노키아는 미고에 다른 제조사를 끼워넣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미국 시장을 정복하려면 LTE 지원과 통신사를 공략해야 했으나, 노키아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애플 iOS는 폐쇄 플랫폼이고, 노키아가 구글 안드로이드 플랫폼에 합류하더라도 구글에서 추가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역주: 노키아가 안드로이드폰 만들라고 하는 사람들은 명심할 것.)) 노키아는 스티븐 엘롭이 취임한 이후 윈도 폰을 새로운 스마트폰 전략으로 선택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략적 협력을 시작하였다. 이제 노키아는 윈도 폰 8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15/16일

코펜하겐의 호스텔은 호텔과 붙어 있는 구조였고, 호스텔 방은 상대적으로 호텔보다는 안 좋은 위치에 있었다. 내가 이 호스텔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아침 식사가 있었는데, 유럽에 도착한 이후 오래간만에 고기가 들어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부분 호스텔의 아침식사는 빵과 시리얼 정도였는데, 고기가 나온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잘 다진 돼지고기 같았고 이게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연 덴마크는 낙농업 국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말리엔보르그 궁 입구

아말리엔보르그 궁 입구

호스텔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궁전을 둘러보려고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오는 열차에서 탄 지도를 펼쳐보면서 길을 찾고 있는데, 호스텔 주인분이 거기에 쌓아놨던 다른 지도를 꺼내 주신 다음 친절하게 왕실 근위대 행진 시간까지 표시해 주셨다. 그와 함께 코펜하겐에서 둘러볼만한 곳까지 표시해 주셨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에 지도를 받아들고 근위대 행진을 보러 갔다. 스웨덴에서도 보았던 것이기에 형식에서 큰 차이는 없었지만, 장소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덴마크 쪽이 더 인상에 남았다.

덴마크 왕실 근위대 행진

덴마크 왕실 근위대 행진

이후 그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가려고 했으나, 당시에는 인어공주가 상하이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인어공주는 없었다. 인어공주를 보러 가는 길에 덴마크의 저항 박물관이 있었다. 앞서 보았던 노르웨이의 저항 박물관과는 분위기가 달랐던 게, 노르웨이는 나치 독일에 맞서 싸웠고 왕가가 해외로 망명하는 등 저항 분위기가 강했으나, 덴마크는 나치 독일이 세를 키우자마자 백기를 들었기 때문에 노르웨이의 저항 운동과는 방식이 달랐다. 독일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보다는 겉으로는 순응하는 척 하면서 뒤로 저항하는 것이 덴마크의 저항 운동이었다. 그래서 덴마크의 저항 박물관 역시 거시적보다는 미시적인 성과를 위주로 소개하였다. 그 다음 몇 정거장이 아니긴 하지만 S-tog를 타고 코펜하겐 중앙역으로 갔다.

나치 점령 당시 덴마크에서 사용한 동전

인어공주 조형물

S-tog는 코펜하겐 도심과 주변 교외를 잇는 일련의 여러 철도 노선으로 구성된 광역 철도망이다. 덴마크의 간선 철도가 꽤 늦게 전철화된 것과는 달리 2차 세계 대전 주변부터 직류 1500V로 전철화되어 있으며(간선 철도는 교류 25000V), 신호 시스템이 호환되지 않는 것 역시 어느 나라를 보는 것 같다. 차량은 크게 4개 세대로 구분할 수 있으며, 현재 사용 중인 차량은 4세대 차량이 전 노선에 투입 중이다. 특이한 점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힘든 1축 대차와 뒤집은 항아리를 연상시키는 차량 단면이다. 대차가 1축밖에 없기 때문에 S-tog 차량 2량의 길이가 통상 철도차량의 1량 길이이며, 따라서 8량 편성의 수송력도 큰 편은 아니다. 차내에는 전자 노선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외부에 플랩 방식으로 노선 표기가 되어 있다. 알스톰 LHB/지멘스에서 합작으로 제작하였으며, 제어 소자는 지멘스 계열 제품을 사용하였으나 지멘스 옥타브와는 거리가 있는, 대구 지하철 1호선과 같은 소리가 난다.

뇌레포르트 역에 있는 ER(IC4) 열차

S-토그 열차

원래 목적은 코펜하겐에 있는 놀이공원 Tivoli 방문이었지만, 입장료의 압박으로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가던 길에 덴마크의 유대인 박물관을 발견해서 잠시 들렀다 왔다. 저항 운동 박물관에서 유대인에 대해서는 크게 비중을 다루지 않았지만, 이곳의 유대인 박물관에서는 덴마크에 살았던 유대인의 역사와 함께 2차 세계 대전 후반에 잠깐 다루어졌던 덴마크 유대인의 스웨덴 피신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의외로 볼 것이 많지는 않았다. 그 이후 한참을 걸어서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자치국 크리스티아니아의 ‘입구’까지만 조금 보다가 돌아왔다.

코펜하겐 시내

크리스티아니아 입구

올 때 잠시 이용하였던 코펜하겐 지하철은 안살도브레다의 무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운임은 코펜하겐 지역 다른 교통 수단과 통합되어 있다. 총 2개의 운행 계통이 있으며, 도중에 노선이 분기된다.

다음 날에는 코펜하겐 교외를 돌아보기 위해서 일찍 잤다. 헬싱외르로 이동한 다음 훔레베크 역에 내려서 미술관을 관람하고, 시간이 남으면 스웨덴 말뫼를 잠깐 밟아보고 돌아오기로 했다.

헬싱외르 역 승강장

역 건물 뒤편

노면을 따라 깔려 있는

오전 일찍 일어나서 헬싱외르로 이동하였다. 헬싱외르에 간 것은 크론보르그 성을 위해서였으며, 이 성은 햄릿의 무대이기도 하다. 한동안 군사 지역으로 사용되다가 무장이 해제된 후 관광객에게 개방되었으며, 덴마크가 외레순 해협의 양안을 전부 장악하였을 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크론보르그 성에 붙어 있는 전보탑은 또 다른 볼거리이며, 산이 거의 없이 평탄한 덴마크에서 높은 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이다. 성 곳곳에는 오디오 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블루투스 및 Wi-Fi를 사용해서 여러 언어로 되어 있는 MP3 파일을 전송받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2010년만 해도 이러한 시설을 한국 관광지에서 찾기는 힘들었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한술 더 떠서 QR 코드를 곳곳에 박아 두었다. 참 적절한 기술의 발전을 미리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기차를 타고 훔레베크 역으로 이동하여 근처에 있는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잠시 찾았다. 이번 여행에서 둘러본 몇 안 되는 현대 미술관이었다. 박물관 자체도 넓었고 녹지 공간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박물관 안의 녹지에서 스웨덴 영토가 보이는데, 실제로 해협 거리가 채 5km도 안 되기 때문에 스웨덴 휴대폰 신호가 안테나 풀로 터졌다! 덴마크에는 오래 있지는 않을 것 같아서 스웨덴 휴대폰을 그대로 들고 내려왔는데, 이게 아직 터져서 집에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다만 덴마크 땅에 있다 보니 충전을 하려면 스웨덴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훔레베크 역

루이지애나 미술관 야외 조형물

이쯤 한 다음 카메라 배터리를 사기 위해서 내친김에 스웨덴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코펜하겐보다는 말뫼가 물가가 싸긴 한데, 문제는 이 싸다는 것이 코펜하겐에서 X 크로네라면 말뫼에서 X 크로나라는 식이라서, 그다지 비싼 게 아니라면 차익을 기대하기 힘들다. 말뫼에서 건전지 4개를 사는데, 건전지 값이 50크로나였지만 덴마크 크로네 지폐밖에 없어서 결국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덴세나 오르후스쯤 가면 같은 건전지 4개가 35크로네였다!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한 이후에는 새 카메라를 살 때 첫 조건은 충전지 사용이 되었다.

말뫼 중앙역. 사진 찍을 당시에는 시티 터널 공사 중이었다.

승강장

또 다른 승강장

내일은 오덴세를 찍고 오르후스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날이며, 오르후스 이후부터는 돌아다니는 게 조금은 지겨워지기도 해서 일정의 밀도를 급격하게 낮추기로 하였다. 또한 독일쯤 들어오니까 기상천외한 북유럽 물가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물가가 된다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코펜하겐 중앙역의 ME 기관차

(예고: 2010년 유럽 여행기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덴마크 오덴세/오르후스 편이 끝난 후 2010년 독일편은 한 글에 모아서 쓸 예정이며, 2011년과 2012년 여행기는 2010년 여행기가 끝난 후에 쓸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