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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12일

오전 6시의 오슬로는 차분했다. 오슬로-베르겐 사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부선만큼 열차가 자주 다니고, 거리 역시 경부선보다 살짝 먼 오슬로-베르겐 간이 496km이지만, 그 흔한 고속 열차 하나 없고 지금도 6시간 20분이 최’소’ 운행 시간이다. 아니지, 고속 전동차가 다니긴 하지만 제 성능 제대로 못 내고 다니고 있다. 게다가 경부선과는 달리 대부분 구간이 단선이다. 그만큼 산도 많고 험한 길도 많은 구간이라서 볼거리 역시 많다고 생각한다.

베르겐 선은 오슬로 기점이 아닌 오슬로 북서쪽의 회네포스 기점이다. 따라서 베르겐 선으로 진입하려면 어떻게든 회네포스까지는 와야 하는데,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가 갈린다. 하나는 오슬로 서쪽 드람멘을 경유하여 회네포스로 진입하는 것으로, 좀 더 둘러가지만 선로 상태가 좋고 수요지도 많다. 위에 있는 496km 역시 드람멘 경유 기준이다. 다른 하나는 오슬로 동쪽 로아를 경유하여 회네포스로 진입하는 것으로, 거리는 더 짧지만 선로 상태는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 1980년대에 오슬로 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모든 열차가 로아를 경유하여 오슬로 동쪽으로 진입했지만, 이제는 오슬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선로도 더 좋은 서쪽으로 진입해서 오슬로 터널을 타고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탄 열차는 뭔가 달랐다. 승차권에 로아 경유(kjøres o/Roa)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 와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 구간은 여객 열차가 평소에 운행하는 구간이 아니다. 당시 오슬로 터널 공사 때문에 여객 열차 운행 구간이 조정되었고, 베르겐으로 가는 여객 열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 베르겐은 분명히 오슬로 서쪽인데 왜 동쪽으로 열차가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겐으로 가는 철도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 사진들이 드람멘을 중간 기점으로 하는 것 같지만, 로아 쪽은 ‘여기 오슬로 주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로아까지는 예비크 선으로 운행하며, 뭉크 박물관을 지나면서 보았던 퇴위엔 역 등이 지나갔다. 열차는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회네포스 역에 정차하였다.

베르겐까지는 계속 오르막을 올라간다. 한국 철도의 최고점이 추전역의 830m 주변이라면, 노르웨이 철도의 최고점은 핀세 역의 1300m 주변이다. 힘 좋은(하지만 속도는 못 내는) El 18 기관차가 선두에서 끌어 주는 건 좋지만, 타고 있는 B3 객차는 이건 영 아니올시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한국 철도에서 낙창식 창문 객차를 본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이 B3 객차는 내장재만 개조되었지 낙창식 창문은 그대로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산을 올라가면서 귀가 멍멍해진다는 느낌이 이렇다는 것을 제대로 알았다. 1300m 주변으로는 올라갈 일이 더더욱 없어서인지. 아침 잠은 이것 덕분에 다 깼다.

노르웨이 철도의 최고 지점 핀세 역에 도착하였다. 이 역에서는 주변 경치를 보다 가라고 10분간 정차한다. 나는 뮈르달까지 이 열차를 타고 플롬 선으로 가기 때문에 역 주변만 구경하다가 왔다.

핀세 역

핀세 역

핀세 역을 꺾으면 이제 베르겐까지는 내리막이다. 좀 더 가서 뮈르달 역에 내렸는데, 헬게이트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전에 오슬로의 날씨가 흐렸지만, 뮈르달에서는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플롬 선 열차가 도착했을 때는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플롬 선 열차는 지역 사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NSB의 다른 구간보다 비용이 더 비싸며, 객차는 B3 객차를 개조하여 LCD 안내 방송 시스템을 달아 놓았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기 때문에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뛰어 들어가야 했으며, 난 캐리어도 끌고 있어서 완전히 죽을 맛이었다. 이제 열차가 뮈르달에서 플롬으로 내려간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운행 속도도 느리며, 실제 올라오는 열차와 내려가는 열차의 운행 시간도 다르다.

플롬 선의 주변 볼거리는 많지만, 비도 많이 오기 시작했다. 전 구간 단선이다 보니 교행역도 여럿 있으며, 노선 중간에 있는 쇼스포센 폭포에서 한 번 정차한다. 노선이 플롬을 향해 내려가면서 산을 감고 내려가는 풍경 하나로도 플롬 선을 구경할 가치는 충분하다. 단 비가 올 때는 제외하고. 비가 올 때도 산 풍경은 꽤나 보기 좋은데 갈수록 굵어지는 빗줄기가 왠지 수상하다. 뭐 일단 플롬까지 가 보자.

플롬 역 승강장

플롬 역 승강장

플롬 역

플롬 역

이제 플롬에 도착해서 비도 오기 때문에 구드방겐으로 가는 유람선에 올라탔다. 비 때문에 피오르 관광은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피오르 지형이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만 받으면서 들어왔다.

흔한 비 오는 날의 피오르

흔한 비 오는 날의 피오르

종착점 구드방겐에서는 버스를 타고 보스로 올라갔고, 보스 역에서 베르겐으로는 통근 열차로 이동했다. 구드방겐에서 보스로 올라가는 고갯길에서 난생 처음으로 21단 콤보를 봤으며, 경사도 꽤 급했다. 21단 콤보를 위에서 내려다 볼 때는 이 구간을 차량이 전복되지 않고 내려온 게 천만 다행이었다. 구드방겐-보스 사이에는 마을이나 민가가 거의 없었고, 호텔도 딱 하나 작은 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직통은 아니었지만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드방겐 터미널

구드방겐 터미널

보스 역에서는 통근 열차로 베르겐 역으로 간다. 보스 역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전동차가 기어온다. 통근 열차이기 때문에 2+3 좌석 배열에 여객 열차만큼 좌석 배치가 편하진 않다. 하지만 이미 물귀신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서 베르겐의 호스텔로 갈 생각만 했다. 보스-베르겐 간은 내리막 경사가 꽤나 완만해졌고, 통근 열차라는 특성 상 역 같아 보이는 곳에 죄다 섰다.

보스 역

보스 역

내가 탔을 때는 NSB 69 전동차로 운행하였다. 이 차량은 1970~80년대에 도입된 전동차이다. 도색과 내장재는 개조되어 노르웨이 이곳 저곳에서 통근용으로 운행하지만, 낙창식 창문과 화장실 등은 크게 개조할 수 없었다. 당장 화장실을 가려는데, 통로가 밀폐되지 않아서 내심 엄청 불안했을 뿐만 아니라 기압 차이 때문에 터널이라도 들어간다 치면 문 여는 데 힘이 엄청 들어갔다. 전동차라고는 했지만 익숙한 올라가는 구동음이 아닌 전동기의 윙윙 거리는 소리가 객실로 들려와서 이거 가다가 사고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에 흠뻑 젖어 있었기에 드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바깥 경치도 좀 보면서 불안감을 달랬다.

아르나 역에 도착하면 베르겐에 거의 다 왔다. 베르겐 동쪽을 가로막고 있는 울리켄 산을 가장 빠르게 통과하는 방법은 철도이다. 아르나 역은 울리켄 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역이다. 도로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1개 역만 운행하는 통근 열차도 베르겐 지역 주변에서 운행한다. 아르나 역을 지나 긴 단선 울리켄 터널을 통과하니 베르겐 역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69 전동차의 후덜거리는 승차감 때문에, 그 때까지만 해도 내구연한 반대론자였으나 탑승 이후 내구연한 제도의 필요성을 다시 깨닫게 해 주었고, 내구연한 찬성으로 돌아서게 해 주었다. 40년 운행? 뼈대는 못 고칩니다.

베르겐 역

베르겐 역

베르겐에서 예약해 둔 Intermission 호스텔은 지역 교회에서 여름 기간에만 임시로 운영하는 호스텔이다 보니 3층 침대라는 괴악한 물건도 볼 수 있었다. 내 질량이 질량이다 보니 2층 침대로도 올라가지 않아서 3층 침대의 꼭대기는 엄청 불안했다. 하지만 잘 공간이 있으니 그걸로 다행. 비로 젖은 몸을 씻고 젖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잠을 청했다. 오늘의 불안한 기억을 빨리 떨쳐 버리기 위해서라도.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11일

어제 오후에 안 그래도 기차도 늦었고, 오슬로 시내에는 비도 내리고 있어서 역과 호스텔이 가깝긴 했지만 고생도 좀 했다. 체크카드가 긁히지도 않아서 간 떨리는 노르웨이 크로네 지폐를 뽑아다가 호스텔 방 가격을 지불해 보기도 했고, 일찍 내린 비 때문에 잠도 일찍 잤다. 다음날 오전에는 일찍 일어나서 시리얼 등으로 아침 식사를 끝내고, 호스텔 안의 세탁기에서 그 동안 묵은 빨래를 돌렸다.

빨래가 다 끝나고 마르는 걸 지켜본 다음, 오슬로 중앙역으로 나가서 근처 관광 안내소에 가서 오슬로 패스를 샀다. 스톡홀름에서 스톡홀름 카드의 대중 교통 무료 이용 혜택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교통비 비싼 오슬로에서 본전 제대로 뽑기 위해서 오슬로 패스를 샀다. 스톡홀름 카드는 교통카드 형태지만, 오슬로 패스는 평범한 종이다. 도시 철도역의 검표 기계에서 도장 찍으면 유효 기간 시작이다.

오슬로 중앙역

오슬로 중앙역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봤던 것 같은 번호표 기계가 있었던 덕분에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 알 수 있었던 건 좋았다. 번호표를 뽑고 내 차례를 기다린 다음 패스를 받았다. 오슬로 패스가 있으면 박물관 무료 및 할인 입장과 함께 유효 기간 동안 오슬로 시내 모든 대중 교통이 이용 가능하다. 오슬로 시내 티켓이 비싼 상황에서 매우 도움이 된다. 뭉크 박물관을 보러 가기 위해서 퇴위엔(Tøyen) 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MX3000

MX3000

오슬로 도시 철도에 현재 사용 중인 차량은 지멘스에서 생산한 MX3000 차량이고, 과거 사용했던 차량은 T1000과 T2000 차량이 있다. 오슬로의 도시 철도는 노면 전차를 도시 철도로 전환한 구간과 도시 철도 기준으로 건설한 구간이 한 동안 혼재되어 있었다. 2011년 FIS 노르딕 스키 챔피언십을 개최하면서 홀멘콜렌 선(운행 계통 상 1호선)이 노면 전차에서 제3궤조로 전환하였고, 콜소스 선(운행 계통 상 6호선)은 현재 노면 전차에서 제3궤조 전환 공사 중이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승강장 길이, 급전 방식이 가장 크다. 노면 전차 구간이었던 곳은 2량짜리 차량만 들어갈 수 있고, 가공 전차선으로 DC 750V를 공급받는다. 도시 철도 구간은 6량짜리 차량이 들어갈 수 있고, 제3궤조로 DC 750V를 공급받는다. 모 국의 제3궤조 까들을 위한 좋은 반박이다 도시 철도 개업 후 처음으로 사용한 T1000 차량은 일부 편성이 제3궤조/팬터그래프를 둘 다 지원하며, 1990년대 말에 잠깐 사용했던 T2000 차량은 제3궤조/팬터그래프 겸용으로 개발되었으나 얼마 사용되지 못하고 T1000보다 더 빨리 퇴역하였다. 내가 오슬로에 갔던 시점에서는 이미 MX3000이 전 노선에 다 깔려 있었다.

MX3000의 구동음은 우리 나라에 비슷한 것이 없다. 지멘스 IGBT 인버터를 사용하지만, 지멘스 옥타브와는 관계 없는 구동음이다. 오히려 다른 회사의 IGBT 인버터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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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위엔 역에 내린 다음 뭉크 박물관은 오래 걷지 않아도 된다. 입장권을 가지고 들어가려는데 X-레이 검색대가 내 앞에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뭉크의 절규가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어서 다른 뭉크의 작품과는 달리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밀봉되어 있으며, 그 주변에 도난 경보기도 많이 붙어 있다. 도난 사고를 겪었던 곳이었기에 이런 걸 예방하려고 X-레이 검색대를 갖다 놓은 것 같다.

뭉크 박물관

뭉크 박물관

뭉크 박물관을 보고 나서, 그 앞에 있는 식물원과 노르웨이 자연사 박물관에 가 보았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노르웨이에서 생산되는 광물을 보았는데 왜 토륨이 먼저 눈에 띄는지는 모르겠지만, 토륨 자체가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발견된 원소임은 사실이다. 주괴를 갖다 놓지는 않은 게 좀 아쉬웠다. 무슨 와갤러도 아니고. 노르웨이에 운석이 떨어진 적이 있었을 때 운석을 채집해서 제일 먼저 전시해 놓은 것도 바로 여기 자연사 박물관이고, 운석을 보러 몰려온 인파를 사진으로 찍어 놓은 기록도 있었다.

지질학 박물관

퇴위엔 역에서 오슬로 중앙역으로 되돌아온 다음, 거기에서 걸어서 아케르스후스(Akershus) 요새로 이동하였다. 오슬로 앞바다를 지키는 아케르스후스 요새는 현재에도 군사적 목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야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헬싱키 앞바다에 떠 있는 수오멘린나와 비슷한 역할을 위해서 세워 놓았다. 아케르스후스 요새 안에 있는 기념관은 과거 노르웨이의 나치 부역자 비드쿤 크비슬링의 거처였으며, 2차 대전 이후 현재의 기념관으로 개축되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노르웨이가 어떻게 점령되었고 독일군 점령 하의 노르웨이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군사 요새라는 걸 느끼기 힘들게 꾸며져 있다.

아케르스후스 요새에서 빠져나온 다음 오슬로 시청사 앞에 있는 노벨 평화 센터로 갔다. 노벨 상이 제쟁될 당시의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동군 연합을 이루고 있어서,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에서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하라고 하였다. 이 때의 유산이 지금까지 남아서 노르웨이가 동군 연합을 탈퇴한 이후에도 평화상은 오슬로에서 관리한다. 같은 노벨 상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 박물관 역시 스톡홀름의 노벨 박물관과 자매 결연을 맺고 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을 전시해 두었으며, 업적이 노르웨이어와 한국어 둘 다로 나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받은 편지나, 오바마가 사용하는 블랙베리가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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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평화 센터를 나오면 바로 앞에 시청사가 있고, 시청사 앞에는 뷔그되위(Bygdøy)로 가는 배편이 모여 있다. 오슬로 패스의 혜택 중에는 뷔그되위로 가는 페리 이용 혜택이 있다. 물론 오슬로 시의 Ruter에서 운영하는 페리만 해당하며, 같은 선착장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관광 회사에서 운영하는 페리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오슬로는 맑음과 비가 계속 반복되어서 비 좀 피한다고 평화 센터 주변에 있었다가 비가 그쳤을 때 쯤 페리를 탔다. 이 페리는 오슬로 대중 교통의 일부라서 다른 페리처럼 안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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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그되위 방면 페리 종점에는 박물관이 바로 보인다. 뷔그되위 섬에 있는 박물관 중 가 본 곳은 프람 박물관, 해양 박물관, 콘티키 박물관, 살짝 걸어 나온 곳에 있는 민속 박물관이다. 전자의 두 곳은 노르웨이가 과거에 어떻게 해양으로 진출했는지를 다루고 있으며, 프람 박물관은 배 한 척을 통째로 집어넣었는데다가, 외양부터가 삼각형으로 인상적이다. 콘티키 박물관은 과거 사람들이 어떻게 배를 만들어서 대양을 건넜는가를 재현한 실험을 전시하고 있다.

프람 박물관. 삼각형이 인상적이다.

바로 뒤에 붙어 있는 해양 박물관

과거 노르웨이인이 사용하였던 배

콘티키 박물관

옛날 배를 재현한 모형

민속 박물관

민속 박물관 내부 건물

민속 박물관 앞에서 버스를 탄 다음 노르웨이 국립 극장 앞으로 이동하였다. CBD라고 알고 있는 이 근처에서 저녁을 먹으려다가 결국 실패해서, 호스텔 근처의 케밥 가게로 간 다음 저녁을 해결하였다. 국립 극장은 오슬로 도심과 그리 멀지 않았고, 저녁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심 분위기가 났다. 물론 비는 여전히 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산 없이 잘 다니고 있다. 오후 6시쯤 되니 여전히 해는 떠 있었지만 각종 박물관은 문을 닫은 상태이고, 비 올 때 돌아다니는 건 에너지 낭비다 보니 케밥 먹고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하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국립 극장

노르웨이 국립 극장

내일은 아침 6시에 베르겐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뮈르달(Myrdal)까지 이동한 다음, 거기에서 플롬 선을 구경하고, 버스편으로 보스(Voss)로 이동하여 베르겐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오늘 온 비는 약과에 불과했음을 알게 될 줄은 몰랐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9/10일

오늘은 오전 일찍 이동할 필요가 있다. 스웨덴에는 철도 박물관이 북부의 예블레와 남부의 엥겔홀름 두 곳이 있는데, 이 중 북쪽에 있는 예블레 지역 철도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웁살라를 경유하여 저녁에 스톡홀름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예블레로 가는 X2000 열차는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며, 스웨덴의 X2000 열차는 핀란드의 펜돌리노처럼 예약이 필수이므로 스톡홀름 중앙역이 딱 하고 여는 순간 예약부터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호스텔에서 좀 일찍 빠져 나왔다. 어제 끊어 놓은 스톡홀름 카드가 오전 10시에 활성화되었으므로 오늘도 오전 10시까지는 지하철 무제한 탑승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시행 중인 도시 철도 1일권은 발권 당일만 사용이 가능하므로 오후 늦게 끊으면 오전에 끊는 것보다 불리한데, 발권 당일보다는 발권 이후 24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인건비가 비싼 북유럽인 만큼 스톡홀름 중앙역의 발권 창구는 역이 열었다고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오전 9시가 땡 하고 되어야 열린다. 발권 창구가 열렸다 해도 줄을 먼저 서는 게 아닌 번호표를 먼저 받아야 표를 살 수 있으므로, 내가 발권 창구에 갔을 때는 번호표 뽑는 기계를 노리는 매의 눈이 여럿 보였다. 오늘 오전에 이동할 X2000 및 내일 오전에 오슬로로 가는 IC 열차를 예약해야만 하므로 나도 줄을 놓칠 수는 없었다. 예블레로 가는 X2000 열차는 자리가 바로 나왔지만, 오슬로로 가는 IC 열차는 애완동물 동반 가능석만 남아 있다고 해서 좀 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서서 가지 않는 걸 위해서 일단 끊었다.

표를 받자마자 바로 X2000 열차에 뛰어들어 일단 앉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속 300을 못 넘겨서 세계 랭킹 매길 때에도 언급이 거의 되지 않지만, 펜돌리노가 등장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영업 운행이 시작되었다. 스웨덴에는 고속 열차 전용선이 깔린 구간은 없지만, 스톡홀름-예테보리-말뫼를 잇는 삼각형은 시속 200km급으로 고속화가 되어 있으며, 2010년 10월 경에 스웨덴 북부 지역을 관통하는 시속 250km급 보트니아 선이 개통되었다. 고속선 주제에 단선이다. 앞서 여행기에서 이야기했던 룰레오에서 스톡홀름으로 이동하는 야간 열차가 보트니아 선 개통 이후로 보트니아 선 경유로 조정되었으나, 내가 갔을 때는 아직 개통 전이었으므로 내륙을 넘나들었다.

아침 시간대에 출발하는 X2000 1등석 열차에는 공짜 식사가 딸려 나오지만, 2등석에는 그런 것 없었다. 난 그저 예블레로 가기만 하면 장땡이었으므로. 스톡홀름 중앙역을 출발한 열차는 알란다 선으로 진입하여 알란다 공항에 정차한 다음 스웨덴 북부로 올라갔다. 고속 철도를 운영하는 일부 유럽 국가는 장거리 고속 열차의 경우 시내 이동을 고속 열차로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면 서울발 KTX로 서울-광명을 이동할 수 없거나, 부산발 KTX로 부산-구포를 이동할 수 없는 제한을 거는 것이다. 알란다 중앙역도 비슷한 경우로, 이 역에서는 시외로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린 후 예블레에 도착하였다.

알란다 익스프레스 열차. 자세히 보면 플랫폼이 옆쪽보다 높다.

진짜로 타고 갈 X2000 열차

예블레 센트랄 역명판

타고 온 X2000 열차

예블레 철도 박물관은 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내가 못 찾은 건지 가는 길이 차도 옆에 붙어 있는 조그만 인도가 전부였고, 교외 아니랄까봐 차들도 씽씽 달렸다. 걸은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겁도 조금 나기도 했다. 유레일 패스 소지자에게는 할인 혜택만 제공된다. 스웨덴의 철도 박물관은 여기 말고도 남쪽의 엥겔홀름에 한 군데 더 있지만, 스웨덴 남부 여행은 일정상 계획에 없었고, 보기로 했던 웁살라에서 더 북쪽으로 가면 예블레가 있다는 점 때문에 예블레의 박물관을 선택하였다.

예블레 박물관에 들어서니 스웨덴의 과거 차량들이 반겨 주고 있다. T44 도입 이후로 물러난 T43 기관차, 아주 오래 전에 사용되었던 X9 전동차, IORE가 도입되면서 퇴역한 Dm 기관차 등이 있었다. Dm 기관차는 스웨덴 북부에서 사용되었던 철광석 수송에 특화된 기관차였고, 처음에 2량으로 시작해서 중간차를 끼워넣어서 3량으로 만들었다. 이후 IORE가 들어오면서 Dm3은 퇴역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이렇게 보존되어 있다. 2010년은 스웨덴에 철도가 들어온 지 15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예블레 박물관에서 이걸 기념하고 있었다. 객차 몇 칸을 빌려서 스웨덴 철도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고, 전철화 비율이 높은 스웨덴의 특성 상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예블레 철도 박물관 입구

T43 기관차

X9 전동차의 앞부분

Dm 기관차

박물관 안에 있는 역 건물

박물관을 한 바퀴 도는 Minitåg

예블레에는 순전히 철도 박물관 때문에 왔고, 웁살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예블레 역 주변에서 핫도그로 점심을 대강 때우고, 웁살라로 내려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내려오는 길에는 X40이 걸렸다. 2층 열차인 건 좋은데 악랄하게도 2층이 전부 1등석이라서 어쩔 수 없이 1층에 앉아야 했다. 거의 1시간 정도를 달려서 웁살라 역에 도착하였다. 웁살라 역은 최근 공사가 끝난 듯 승강장과 역 건물이 개축되어 있었다. 웁살라 역을 빠져나와서 우플란드 박물관과 웁살라 대학교 방면으로 갔다.

웁살라 역에 도착한 X40

웁살라 역사

우플란드 박물관은 대학 도시 웁살라의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웁살라 대학교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고, 그러다 보니 여러 학생들이 웁살라를 거쳐 지나갔다. 우플란드 박물관은 이 지역의 역사만큼 이 지역에서 배출된 학자, 학생들의 생활상을 잘 다루고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역에서 찾아가기는 쉬운 편이다. 웁살라 박물관을 나온 다음 웁살라 대학 박물관으로 가 봤다. 앞서의 박물관이 일반적인 웁살라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면, 웁살라 대학 박물관은 린네로 대표되는 웁살라의 학자들을 다루고 있다.

웁살라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 저 멀리 웁살라 대성당이 보인다.

우플란드 박물관

웁살라 대성당. 웁살라 대학 박물관과 딱 붙어 있다.

웁살라 대학 박물관

웁살라 대학 박물관을 빠져나와서 드넓은 웁살라 대학 식물원으로 갔다. 규모 하나는 꽤 어마어마해서 야외 전시된 식물을 보는 데만 꽤 시간이 걸렸다.

웁살라 대학 식물원

웁살라 대학 식물원을 둘러보다가, 폐장 시간이 슬슬 다가와서 스톡홀름으로 되돌아갔다. 웁살라-스톡홀름 간은 여러 철도 운영사들이 경쟁적으로 열차를 굴리며, SJ에서도 웁살라 통근 열차(Uppsalapendeln)를 굴린다. 기관차 2량이 앞뒤에 연결되어 스톡홀름-웁살라를 거의 고정 편성으로 운행한다. SL 열차와 접속은 주로 종점 부근에서만 이루어지며, SJ 열차는 스톡홀름 도심으로 빠르게 진입시켜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단 다른 SL 열차와 운임은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오후 6시경인데도 불구하고 공기 수송이었다. 그 다음 호스텔로 이동해서 내일 오전 6시 오슬로행을 준비하였다.

웁살라 역에서 출발 대기중인 열차

스톡홀름에 도착한 웁살라 통근 열차

스웨덴에서 노르웨이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은 총 4곳 있지만 어느 곳 하나 열차가 자주 다니지는 않는다. 남쪽부터 북쪽으로 오슬로-예테보리, 오슬로-스톡홀름, 트론헤임-외스테르순드, 나르비크-룰레오가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거리 및 속도 문제로 인하여 열차가 많이는 다니지 않고, 오슬로-스톡홀름은 상징성과는 달리 열차편이 의외로 적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예약할 때도 창구 직원이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고, 이 예상이 상당히 적중했다.

흔한_반도의_가축수송.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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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스톡홀름 남쪽으로 떠난 다음 쇠데르텔리에에서 SL 열차와 마지막으로 만나고, 다시 서쪽으로 달려서 카를스타드 등을 거쳐서 노르웨이 영내로 진입한다. 여기까지는 좋았고, 기찻길이 거의 숲 속에 있고 역 주변으로 가야 거주지가 보였다. 카를스타드까지는 상당히 잘 왔으나… 노르웨이 국경을 앞두고 킬(Kil)에서 열차가 섰다. 안내 방송으로는 기관차가 퍼졌다는 말만 나왔다. 객차에 전원은 계속 공급되고 있었고, 공조 장치는 계속 작동하고 있어서 굳이 나가 보지는 않았다.

한 2시간쯤 후. 대체 기관차를 수배할 수 없어서 버스 대행 수송을 한다는 말이 나왔고, 그 때가 다 되어서야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열차를 탄 사람들이 노르웨이 국경 주변에 내릴 일은 없고, 의외로 오슬로는 노르웨이 동부 국경과도 멀지 않아서 버스는 오슬로로 바로 갔다. 참 놀라웠던 점이라면, 오슬로로 가는 길은 왕복 2차선 이상으로 된 구간 찾기가 힘들었고, 국경선 주변의 검문소는 형태만 남아 있었다. 노르웨이 휴대폰 신호가 잡히기 시작해서 로밍 문자가 가서야 국경을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웨덴과 도로 표지판의 글자체가 미묘하게 다르다.

철도를 이용하면 높은 확률로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을 거치지만, 도로는 철도보다는 남쪽으로 노르웨이에 진입한다. 오슬로에 거의 다 왔을때쯤 혼잡 통행료 징수 톨게이트가 보였고, ‘아 이제 내려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슬로에는 거의 2시간 반을 지연먹고 도착하였다. 아니 도대체 기차가 얼마나 느리기에/버스가 얼마나 빠르기에 역에서 2시간 반을 세워 놓고도 그만큼 지연되어서 도착하나.

여담으로, 이 열차에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안내 방송도 안 나오고 ‘기다리라’는 말만 나오고, 승무원들은 전혀 코빼기도 안 보이고(실제 그랬다!), 열차 내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면 절대 사람들이 두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아니, 열차가 5분 지연되었다고 그걸 가지고 들고 일어나는 게 한국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역 만리에서는 이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다는 게 내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다. 부디 한국에서도 몇 분 지연되었다고 언론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람들이 철도공사를 뒤엎을 기세로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되나.

노르웨이 국경을 앞둔 Kil 역

노르웨이 국경을 앞둔 Kil 역

그 날 나를 고생시킨 Rc6 1394 기관차

그 날 나를 고생시킨 Rc6 1394 기관차

열차 지연+오슬로의 비가 왔다갔다하는 날씨 때문에 호스텔로 들어가서 일단 씻었다. 내 외환은행 체크카드가 통하지 않아서 근처 ATM에서 1000 크로네(약 25만원)를 뽑았는데, 500크로네 지폐 한 장을 프론트에 내면서 이게 12만원짜리 지폐라는 게 잘 실감이 가지 않았다. 뭐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피곤해서 이것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내일의 오슬로는 과연 어떨까.

오슬로 센트랄

오슬로 센트랄 역. 버스는 역 맨 남쪽으로 들어왔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8일

핀란드 로바니에미보다는 덜했지만, 스톡홀름의 백야도 만만찮았다. 일어나 보니 꽤 이른 시간이었다. 어제는 스톡홀름의 야외 관광지를 둘러보고 뻗었다면, 오늘은 박물관을 위주로 일정을 계획하였다. 돌아다닐 일이 많아서 스톡홀름 카드를 샀다. 내가 샀을 때에는 학생 할인이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2011년 현재에는 없다. 1일권이 425크로나 정도이고, 대개 박물관 입장료가 100크로나 안팎, SL A구역 표가 30크로나이므로 본전 뽑기는 쉽다.

호스텔 주변에 있는 큰 호텔로 가서 스톡홀름 카드를 산 다음, 지하철을 타고 감라 스탄으로 올라갔다. 지하철 역은 감라 스탄의 바깥쪽에 있고, 여기서 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야 관광지와 박물관이 나온다. 옛날 스톡홀름의 좁은 골목길이 잘 보존되어 있기에 차가 쉽게 들어오지 못해서 걸어다니기는 좋다.

감라 스탄 지하철역

감라 스탄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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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라 스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노벨 박물관이다. 여기쯤에서 스톡홀름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노벨의 일생, 역대 노벨 상 수상자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 영어와 스웨덴어 가이드 투어를 확인하였고, 삼성과 기아가 후원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 팸플릿도 있다. 이 안에 있는 까페에서는 노벨 상 메달 디자인 초콜릿을 팔고 있다. 노벨의 유언 중에는 평화상은 노르웨이에서 결정하라는 말이 있었고, 이는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동군 연합을 이루었기에 가능하다. 그래서 오슬로에는 노벨 평화 센터가 있다.

노벨 박물관

노벨 박물관

노벨 박물관을 다 둘러 본 다음 근처의 스톡홀름 왕궁으로 갔다. 관람객에게 개방된 곳은 왕궁의 일부이고, 스웨덴 왕실의 역사와 왕궁 건물 그 자체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스톡홀름 왕궁

스톡홀름 왕궁

왕궁을 다 둘러본 다음 화폐 박물관으로 갔다. 스웨덴은 유럽 연합 국가이지만 스웨덴 크로나를 사용하고 있으며, 당분간 유로로 전환될 일은 없어 보인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스웨덴에서 사용되었던 화폐들, 그리고 스웨덴 크로나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당시 스웨덴 전국이 공주의 결혼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기념 주화와 기념품을 박물관에서 팔고 있었다.

멀리서 본 화폐 박물관

화폐 박물관 입구

감라 스탄에서는 매일 정오 쯤 근위병 행진이 있다. 일부가 개방되어 있기는 하지만 왕궁이 여기에 있기에 이것도 나름 볼거리다.

감라 스탄 주변의 근위병 행진

감라 스탄 주변의 근위병 행진

근위병 행진을 본 다음 슬루센 역으로 가서, 노면 전차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노면 전차라는 이름과는 달리 ‘작은 철도 박물관’ 수준이다. 현재 스톡홀름에는 유르고르덴 방면 노면 전차가 있으며, 1967년 우측 통행으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기타 노선의 노면 전차도 운행하였다. 물론 버스, 통근 열차, 지하철 등 다른 대중 교통 수단도 많이 있다. 노면 전차 박물관은 이름만 노면 전차지, 스톡홀름 지역 대중 교통의 역사를 다 다루고 있다.

특히 스톡홀름 지하철 및 통근 열차는 공간 문제 때문에 앞부분만 잘라서 전시해 놓은 차량도 많지만, 가능한 한 실차를 보존하려고 하였다. 임시 열차로 쓰려고 투입한 알루미늄 무도장 지하철 열차 C5도 여기에 있다. 다른 스톡홀름 지하철 전동차와는 다른 은색의 외관, 임시 열차로만 나타나는 희귀성 때문에 도시 전설과 자주 얽힌다. 이 외에도 스톡홀름 지하철에 사용되었던 롤지, SL의 이름이 변해 온 역사나 글씨체의 역사 등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내 자료실에는 SL뿐만 아니라 스웨덴 전국 철도차량 정보를 담은 연감도 있고, 안에는 자그마한 식당이 있어서 끼니를 여기에서 해결했다. 결코 지나가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 박물관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여행기에서 다룰 예블레의 철박보다 연감 하나는 좋았다.

슬루센 역

노면 전차 박물관

스톡홀름 지하철의 행선판과 롤지

SL 역사에 관한 자료

노면 전차 박물관을 다 둘러본 다음, 마지막으로 뽕을 뽑기 위해서 유르고르덴 쪽에 있는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고 왔다. 과학 기술 박물관경찰 박물관이다. 슬루센에서 유르고르덴으로 가려면 T-센트랄렌이나 카를라플란 쪽에서 버스를 타야 하고, 버스의 경우 유르고르덴을 지나서 더 들어가면 박물관 지역에 내려 준다. 거의 종점이므로 같이 내리면 된다.

슬루센 역의 또 다른 출구

슬루센 역의 또 다른 출구

과학 기술 박물관은 입장 시간이 거의 끝나서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 핀란드에서 봤던 과학관처럼 시설 자체는 꽤 잘 되어 있고 스웨덴어와 영어로 둘 다 설명이 적혀 있다. 눈여겨 볼 전시물로는 The Pirate Bay에서 압수한 서버, 우분투, OLPC이다. The Pirate Bay는 스웨덴에 서버를 두고 있는 토렌트 사이트고, 우분투와 OLPC야 잘만 사용하면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언젠가 스웨덴에서 소송이 걸려서 서버를 압수당한 게 여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과학 박물관 앞에 있는 경찰 박물관은 범죄 수사 기법과 스웨덴에서 일어난 특종 등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는 영어 설명이 거의 없어서 보기 불편할 수도 있다. 버추어 캅 아케이드도 갖다 놓았다.

과학 기술 박물관 입구

The Pirate Bay 서버

우분투

OLPC

경찰 박물관 입구

경찰 박물관에 전시된 헬리콥터

이제 유르고르덴 지역을 빠져 나와서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하여 도심으로 다시 나왔다. 스톡홀름에서 버스를 탄다면 세르겔 광장(Sergals Torg)과 T-센트랄렌 역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퇴근 시간이 되니까 역 앞은 상당히 붐볐다.

세르겔 광장/T-센트랄렌

세르겔 광장/T-센트랄렌

여기까지가 오후 6시쯤. 많은 볼거리가 문을 닫았기 때문에 박물관 투어는 이제 어렵고, KTH 건물이나 보고 오자고 생각해서 지하철을 탔다. 우리 학교 전자과 학생으로 교환학생을 가려면 전자공학실험을 듣기 전 일찍 가거나 들은 후 늦게 가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는데, 난 어쩌다 보니 둘 다 놓쳐 버려서 캠퍼스만 보고 왔다. 테크니스카 획스콜란(Tekniska Högskolan) 역에 내리면 KTH 정문이 바로 보인다. 방학 기간이라서 그런지, 일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대학교가 원래 그런 걸 수도 있다. 입구 쪽에 있는 캠퍼스 건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벽돌로 장식되어 있었다.

KTH는 잠깐 둘러보고, 그 앞에 있는 로스라그스 선 기차역으로 갔다. 로스라그스 선은 스톡홀름 동북부로 나아가는 861mm 협궤 철도이다. 직류 1500V로 전철화되었다. 개통 초기에 비하면 많은 구간이 폐선되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80년대에 생산된 X10p 차량은 2+2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총 3종류의 운행 계통이 있으며, 모두 스톡홀름 외스트라 역에서 출발하여 중간에 분기된다. 여기 말고는 지하철 접속 지점도 찾기 힘들고, 배차 간격도 짧지는 않아 보여서 그냥 보고만 왔다.

KTH 건물

테크니스카 획스콜란 지하철역. 코앞에 KTH가 있다.

스톡홀름 외스트라 역

승강장. 891mm 협궤가 눈에 보인다.

내일은 예블레의 철도 박물관, 웁살라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 모레는 노르웨이 오슬로로 들어가기 위한 기차를 끊어 놨는데, 여기에서 난생 처음 기차가 퍼져서 2시간을 갇혀 있었다.

2010년 여름 북유럽 여행기: 제 7일

북유럽 여행기가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3월에 포맷한 이후 여행기를 적고 있던 위키를 날려 버려서 사진 및 입장권 자료로 기억을 복원해야 해서이다. 올해 여름이 되기 전까지 연재는 끝낼 생각이지만 아직 1/3도 채 끝나지 않아서 걱정이 앞선다.

오전 7시 50분의 스톡홀름은 사람들이 붐볐다. 북유럽으로 출발한 이후 뭔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SJ의 쿠셰트는 편하다는 느낌도 딱히 들지 않아서, 아침 6시쯤 일어나긴 했지만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침대차와 쿠셰트를 헷갈린 내 잘못인데 뭐. 핀란드의 침대차와 너무나도 비교되었다. 예약해 두었던 스칸스툴 호스텔에는 오후 2시는 되어야 들어갈 수 있고, 스톡홀름 시내에서 6시간 가까이를 보내긴 해야 하는데 로바니에미에서 Wi-Fi가 안 터져서 관광지 정보도 찾을 수 없었고, 믿을 건 가까이 있는 론리 플래닛 뿐이다. 스톡홀름 역에서 어떻게 끼니를 때운 다음 유르고르덴(Djurgården)으로 향했다.

스톡홀름 중앙역에 도착한 밤 기차

스톡홀름 중앙역 대합실

스톡홀름 중앙역 대합실

유르고르덴은 스톡홀름 중심부에 있는 섬이고, 1500년대에 국왕의 사냥터로 사용되다가 18세기 후반에 주거 지구로 개발되었다. 1897, 1930년에 스톡홀름 세계 박람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현재는 주거 지구 이외에도 노르딕 박물관, 스칸센(Skansen) 등의 볼거리와 놀거리도 많이 있다.

유르고르덴으로 가려면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SL이 운영하는 도시 철도/버스 등을 타려면 표를 일단 끊어야 하는데, 헬싱키와 비슷한 방식이란 건 알겠지만 유르고르덴 방면 버스 정거장 근처에는 표 자판기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보니 열이 나서, 버스 정거장 밑에 쓰여 있는 카를라플란(Karlaplan) 역 환승 안내가 눈에 띄었다. ‘지하철에는 표 자판기가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스톡홀름 중앙역 아래에 있는 T-센트랄렌(T-Centralen) 역으로 갔다.

당시 수중에 스웨덴 크로나가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 결제가 되는 발매기에 30 크로나를 뜯기고 나서야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일단 표를 사고 나면 유효 기간 동안 환승은 무제한이니 뭐. 지하철을 타고 카를라플란 역으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는 게 좀 많이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이용객 수가 적었다는 점은 기억이 난다.

유르고르덴 같아 보이는 곳에 아무렇게나 내리고 나니 눈 앞에 보이는 건 스톡홀름의 해안선과 요트들이다.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아서인지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내가 앉아서 시간을 보낼 만한 무언가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여기는 이역만리 스웨덴.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길바닥에 짐 풀어놓고 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니 문을 연 건 근처의 노르딕 박물관이었다. 실외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들어갔다. 박물관 중앙은 구스타브 바사 상이 굽어보고 있는 구조이고, 내가 갔을 때의 특집 전시는 플라스틱이었다.

유르고르덴에 있는 노르딕 박물관

플라스틱!

구스타브 바사 상

플라스틱을 다 보고, 근처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찾았다가 작은 규모에 좌절하고, 스칸센의 입장료에 좌절하고 보니 어느덧 정오가 지났다.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서 스칸스툴 호스텔로 가서 잠을 푹 잤다. 어차피 스칸스툴 호스텔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야 하므로 복잡한 T-센트랄렌 대신 승객도 적은 카를라플란으로 가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입장료

야외 박물관 스칸센. 차라리 이걸 보고 돌아올 걸.

앞 문단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스톡홀름에 지하철이 개통된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노선은 총 3개로, 과거 스톡홀름을 달리던 노면 전차가 지하로 들어간 노선이 그뢰나 선이고, 뢰다와 블로 선은 아예 지하를 뚫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뢰다 선과 그뢰나 선이 X자를 그리고, 블로 선이 X자의 위쪽 부분에 가로선을 긋는 구조이다. 모든 노선에 도중 분기가 있어서 운행 계통은 총 7종류이다. 물론 대부분 환승은 개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카를라플란 역에서 호스텔이 있는 스칸스툴 역으로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뢰다 선과 그뢰나 선이 만나는 지점은 T-센트랄렌, 감라 스탄, 슬루센 역이다. 뢰다와 그뢰나 선만의 환승만 생각하면, T-센트랄렌 역은 한 섬에서 서로 반대 방향, 감라 스탄과 슬루센 역에서는 같은 방향의 열차가 정차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감라 스탄과 슬루센 역은 수도권 1/4호선 금정역과 비슷한 환승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금정역 3초환승의 유일한 단점인 서로 반대 방향 환승이 어렵다는 점을 스톡홀름에서는 바로 다음 역에서 열차 방향을 꼬아 주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안내 방송 역시 이를 배려하였다. 뢰다 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T-센트랄렌 역에서는 그뢰나 선의 T-센트랄렌 이북, 감라 스탄 역과 슬루센 역에서는 그뢰나 선의 T-센트랄렌 이남으로 가려면 여기서 갈아타라는 방송이 나온다. 안내 방송 멘트는 우리 나라처럼 길지 않고, 두 번 나오지도 않고, 역 이름만 나오기 때문에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어차피 T-센트랄렌 역은 사람도 많고, 계단까지 걸어가야 해서 감라 스탄 역에서 갈아탔다.

카를라플란 역 T-센트랄렌 방면 승강장

감라 스탄 역. 남쪽으로 가는 열차가 같은 섬을 공유한다.

드디어 도착한 스칸스툴 역.

딱딱한 쿠셰트에서 잠자다가 푹신한 침대로 오니 정말 꿀맛같다. 잠 좀 자고 일어나니 6시.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한 다음 내일 스톡홀름의 어디를 둘러볼지를 정하고 잤다. 역시 쿠셰트와 침대차는 다르고 침대는 편안하다.